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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월) 맑음 115월 21일 (월) 맑음 11℃,22℃
성동사거리 → 낙하리→ 반구정→ 임진각 → 화석정 → 율곡습지공원
7시 20분 화창한 날씨, 아침부터 햇볕에 눈이 부시다.
성동사거리에서 평화누리길 7코스(헤이리길)가 시작된다.
성동사거리는 나의 첫 마라톤 풀 도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4Km 달리기를 시작으로 4개월 만에 참가한 2001년 10월 7일 통일문화일보 마라톤대회가 성동사거리에서 개최되었다.
4시간 이내 완주를 목표로 한 나의 첫 대회에서 나이 지긋하신 감사원 아저씨를 따라가다 오버페이스(over pace) 를
범하고, 더운 날씨에 지쳐 30Km 이후 부터는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4시간 8분에 초죽음이 되어 골인 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도로에 주저 앉아 하늘을 쳐다보고 다시는 안 뛴다고 다짐을 했건만
18년 지난 지금까지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통정리 중인 짝퉁 교통순경과 인사를 나누고 자유로 옆 자전길로 접어 들었다.
자전거 도로에는 하얀 찔레꽃과 노란 꽃의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가시가 찌른다 하여 찔레라 한다. 어릴 적에 줄기 껍질을 벗기고 먹던 생각이 난다.
조그마하고 앙증맞은 잎과 꽃을 가진 애기똥풀은 줄기나 뿌리를 자르면 노란 액체가 나오는데
그 색깔이 애기똥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애기똥풀은 독성이 있어 식용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효능이 있어 약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자전거 길 주변 야산에서 뻐꾸기가 뻐꾹 ~ 뻐꾹 ~ 청아하게 울어댄다.
“ 뻐꾸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 “
“어디” ,
“옆에 있잖아 “
“ 그게 무슨 이야기야 ? ”
“ 당신이 내 배낭에 뻐꾸기 알 2개를 넣어 났잖아 “
옆지기가 오늘 아침에 내가 모르게 모텔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 캔 2개를
배낭에 넣어 놓은 것을 배낭을 정리하면서 알고 한 이야기였다.
옆지기는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이 있으면 내 배낭에 넣어 두곤 했었다.
“ 이히 ! 어떻게 알았어 ? “
“ 그런데 뻐꾸기가 왜 뻐꾹 뻐꾹 하고 우는지 알아 ? “
“ 왜 ? “
“ 뻐꾸기가 뱁새 둥지에 탁란을 해 놓은 다음 , 뻐꾸기 새끼가 부화할 무렵에 어미가 둥지 근처에 와서 뻐꾸기 새끼에게 다른 알 또는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라고 뻐꾹 뻐꾹하며 응원하는 거래 “
“ 정말 “
“ 믿거나 말거나 “
자전거 길을 걸으면서 30여 m 간격으로 직경 15Cm 파이프를 땅에 박아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저게 무엇일까 ? 생각하다 시추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치 표시와 글씨체로 보아 미군이 북한의 지하땅굴을 탐지하기 위해 시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이 임진강만 건너면 바로 북한 황해북도다.
자전거 길 옆 한적한 곳에 이상한 모양의 커다란 트럭이 있었다.
길이가 15m정도 되는 트랙터와 윙바디 트레일러였다.
양쪽 문이 열린 윙바디 안에는 벌통이 실려있었고 뒤쪽에는 주거용 판넬 박스가 실려 있었다.
밀원이 많은 곳에 도착하여 벌통을 내릴 필요 없이
윙바디 문만 열어 주면 벌들이 날아 다니면서 꿀을 채취하는 것 이었다.
아까시아 꽃이 피는 5월은 꿀 채취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연간 꿀 생산량의 70%가 이때 생산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아까시아 꽃이 먼저 개화하는 남부지방에서부터 꿀 채취를 시작하여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꿀을 채취하였다. 최근에는 기후 온난화로 남부지방과 북부지방의 아까시아 개화시기가 겹치면서
꿀 수확량이 절반으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벌꿀 통을 싣고 내리는 시간을 단축하여 여러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차량인 것 이였다.
평화누리길은 자전거 길을 벗어나 인근 야산의 군작전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야산 능선에는 차량도 통행 할 수 있게 비포장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길에는 질경이가 군락을 이르며 널려 있었다
질경이는 생명력이 매우 강하여 차량이나 사람이 짖 밟아도 다시 살아난다.
질긴 목숨이라 하여 질경이라 한다고 한다.
옆지기가 10분만 질경이를 뜯고 가자고 한다.
어린 잎과 뿌리는 나물로 먹거나 국을 끓여 먹으면 맛도 있고,
약효도 뛰어난 만병통치약이라며 나물을 채취하자고 유혹을 한다.
“ 그거 누가 지고 다녀야 하는데 ? ”
“ 나는 싫어 “ 하고 발걸음을 빨리 하여 앞서 갔다.
조그마한 공장지대와 낙하IC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야산의 도로를 따라
파주시 환경관리센터와 공설운동장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했다.
다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숲 속에서 행군중인 30여 명의 비무장군인들을 만났다.
장교, 부사관, 사병들 중에는 여군 부사관이 있어 이채로웠다.
총은 휴대하지 않았지만 헬멧과 상반신 어깨에는 센서가 달린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과학화 전투 훈련을 하기 위한 복장이라는 것 알 수 있었다.
요즈음은 센서가 달린 복장을 착용하고 레이져 발사기가 달린 총으로
실제 전장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전투훈련을 한다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길 옆에 서서 군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우리에게 목례를 하거나 화이팅을 외쳐주는 등 사기가 넘치는 모습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함께 외쳐 주었다. “ 화이 ~ 팅 !! “
당동리 아파트지나 야산을 넘어 평화누리길 7코스 끝에 반구정이 있었다.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반구정은 명재상이며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정승이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다 노년에 임진강이 한눈에 보이는 강변에 정자를 짓고 90세까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세종 때에는 의정부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을 19년간 재직하면서 세종대왕을 도와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오늘은 월요일 휴관으로 문이 닫혀 있어 반구정, 황희 동상과 영정 등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20여 년 전에 왔을 때에는 조그마한 식당 2~3개 있었던 것 같은데,
반구정 옆 주차장 건너에 L형의 큰 한옥 건물이 있었다.
건물 앞에는 반구정 나루터집 이라는 간판이 있었는데 식당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전시관 같은 공공건물인 줄 알았다
.
구경 할 생각으로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밖에서 볼 때 보다 내부 홀의 규모가 매우 넓은 식당이었다.
아무런 안내표시도 없고 서빙하는 직원들이 큰 상을 들고 분주히 오고 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리벙벙하고 있는데 마침 계산대에 근무자가 있어 물어보았다.
“ 여기서 식사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
뒷편 식당으로 가면 된다고 한다.
뒷편에는 임진강이 보이는 긴 회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회랑의 자리 번호가 100번 까지 있었다. 즉 4인상이 50개가 들어가는 규모였다.
여기는 비싸겠다는 생각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메뉴는 장어간장구이, 소금구이와 메기매운탕 뿐 이었다.
그런데 가격은 다른 식당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우리는 매기매운탕 소자(\30,000)를 주문하였다.
통통한 살찐 메기와 민물새우가 곁들여진 진하고 얼큰한 국물의 메기매운탕은 나의 입맛에 잘 맞았다.
요청하지 않는 수제비와 국물을 넉넉하게 제공하는 써비스도 좋았다.
저녁 이였으면 장어구이를 먹었을텐…… 점심때에는 너무 지체 할 수 없어 간단히 식사만 했다.
식사 후 식당을 들러보니 한 지붕에 여러 건물로 구획되어 있었고 건물규모는 오백평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50년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문산의 대표적인 맛집 이라고 한다.
반구정에서 평화누리길 8코스(반구정길)이 시작된다.
우리는 도로와 농로를 따라 임진각 관광지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뛴 것은 전에 보지 못했었던 6.25전쟁 납북자 기념관이 있었다.
전쟁시 납북자의 문제와 납북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여기도 월요일이라 휴관.
미얀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을 지나 통일전망대 그리고 명절 때 실향민들이 제사를
지내며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배단이 있었다.
남북 분단의 상징물인 부서진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와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증기기관차
2대가 익숙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통일과 평화를 염원하는 글귀가 담겨진 색색의 리본이 걸린 철조망 앞에서 이제는 전쟁과 과거의 아픔을 끝내고 화해와 상생으로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소망은 간절히 기원해 본다.
부디 이번 회담에서 핵문제가 잘 해결 되어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가는 그날이 꼭 빨리 오기를 빌면서
다시 평화누리길 8코스로 접어 들었다.
좁은 농로를 군용 닷지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트럭 화물칸에는 츄리닝복 차림의 군인 몇 명과 모를 싣고 있었다.
모내기를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뒤를 이어 10명의 군인이 이열 종대로 줄을 맞추어 트럭을 쫓아서 뛰어가고, 조금 지난 후에
고참으로 보이는 군인 4명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하이 참 ! 웃음이 나왔다. 쫄병들은 뛰어가고 고참은 걸어가는 모습이 38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았다.
ㄱ자와 ㄴ자로 꺽어 가는 농로를 지루하게 걸어 가는데 하늘에서 두두두두 하는 헬기 소리가 하늘을 뒤흔든다.
탱크 킬러 아파치 헬기다.
1대도 아니고 8대가 줄지어 임진강 강변 위를 날고 있었다.
미군인지 한국군인지 식별하지는 못했지만 평화회담에 관계없이
군사훈련에 여념이 없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화석정으로 가는 길은 장산전망대 입구 장산을 넘어가면서 오늘도 진을 뺀다.
장어와 매운탕 집이 많이 모여있는 먹거리촌을 지나도 모텔은 보이지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잘 곳이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 온다.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다는 화석정에 도착했다.
화석정은 율곡 이이 선조가 세운 정자로 서울에서 의주를 오가는 중요한 길목인
임진나루가 마주 보이는 임진강 벼랑 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율곡 이이는 외갓집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지만 파주 율곡리에서 성장하였고 후에 파주 자운산 선산에 묻혔다.
석정 주위에는 율곡이란 이름이 붙은 지명과 시설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 숲 속에 호텔이란 간판이 보인다.
이런 곳에도 손님이 올까 싶은 곳에 모텔 같은 호텔이 2개가 있었다.
차가 없는 우리는 저녁 먹을 방법이 없어 호텔을 지나쳐
평화누리길 8코스(반구정길) 도착지점인 율곡 습지공원으로 갔다.
버려진 습지을 개발했다는 율곡 습지공원에는 원두막, 정자, 물레방아, 항아리 탑 그리고 장승들이 세워져 있었고,
둘레길 넓은 청보리 밭에는 싱그러운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평화누리길 9코스(율곡길) 입구에서 사진과 스탬프를 찍고 조금 걸어 간 곳에 버스정거장이 있었다.
버스 정보안내 버튼을 눌러보았다. 5분 안에 문산 가는 버스가 온다는 방송 맨트가 흘러 나왔다.
그래 문산으로 가서 자고 내일 아침 이곳으로 다시 오자라는 말에 “그래” 하며 옆지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곧 도착한 버스를 타고 15여 분 만에 문산에 도착하였다.
예상 밖에 문산에는 모텔도 많이 없고 있는 모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괜찮을까 싶어 선택한 모텔은 7층 건물 옥상에 증축한 것 같은 꺼림직한 모텔이었다.
가격은 육만원, 예상대로 시골동네가 더 무섭다. 방법은 없다.
휴전선 지역의 도보여행을 기획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식사와 숙박문제였다.
날은 저물어 가고 배는 고픈데 먹을 곳과 잘 곳은 없고, 길은 먼데 교통편은 없고……..
잘 되겠지 뭐 ? 치맥 먹으로 가자 !
5월 21일(화) 흐림 12℃,22℃
율곡습지공원 → 파평면 → 두지나루 → 장남교
어제 문산으로 갔던 율곡리 버스 정류장에서 평화누리길 9코스(율곡길)를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자전거도로에는 파주시 유니폼을 입고 부부가 조깅을 하고 있었다.
여자분의 달리기 폼이 문제가 있어 보였다.
팔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만 움직이니 등도 함께 좌우로 흔들거리는 것 이었다.
저 폼으로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힘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지기도 여자 달림이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싶다고 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진교가 있었다.
평창동계 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 김영철 통일 선전부장이 건너왔다는 다리였다.
통일대교에서 정치인들과 천안함 유족들의 농성을 하자,
우회하여 전진교로 내려와 군사시설을 적들에게 노출했다고 논란이 있었다.
민통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전진교는
통행문이 굳게 닫혀있고 초병 몇 명만이 지키고 있었다.
율곡길은 백석고개 옆 등산로를 따라 공사가 한창인 파평면 사무소로 이어져 있었다.
파평면은 파평 윤씨의 발생지다.
파평산 기슭의 용연이란 연못에서 옥함이 발견되어 열어보니 양 겨드랑이에 잉어비늘이 많이 돋아 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가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신달 이라 한다.
그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의 5대손인 윤관장군이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여진군에 쫓기다가 잉어 때의 도움으로 강을 건널 수가 있었다고 한다.
잉어에 관련된 시조의 탄생설화 때문에 파평 윤씨 후손들은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한다.
적벽 산책로에서 바라본 임진강 건너의 한적하고 고요한 풍경은
1960년대 뚝섬에서 청담동 한강변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비슷했다.
고적한 적벽 산책로는 녹색 우레탄으로 포장된 후 관리기 되지 않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적벽은 60만년 전 신생대 시기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내륙에서는 유일한 주상절리라 한다.
20여 m의 수직 절벽이 붉은색으로 보인다고 하여 적벽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벽 산책로 강가에는 철책이 설치되어 강 아래를 볼 수 없어 적벽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적벽 산책로를 지나자 6.25전쟁 시 미군이 건설했다는 리비교(북진교)가 임진강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안전문제로 완전 폐쇄되어 통행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2019년에는 이 다리를 다시 보수하여 관광과 농업용으로 다시 개통한다고 한다.
리비교라는 이름은 미국의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리비중사가 북한군의 남하를 방어하기 위하여
다리를 폭파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고 한다.
리비중사는 대전에서 포차에 부상병을 태우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운전병을 감싸 보호하며
적들과 교전을 벌이며 동료를 구출하고 자신은 전신에 수많은 총상을 입고 전사 하였다고 한다.
리비교 주변은 1960~70년대 미군 기지촌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소도시 이였다고 한다.
지금은 미군이 철수하여 쇠퇴한 마을이 되었지만 임진강에서 나는 장어, 황복, 참게 등의
매운탕을 판매하는 장마루 먹거리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계속 농로를 따라 걸었다.
모내기 철 농수로에는 물이 힘차게 흐르고, 승용차에서 내려 내가 가는 길 옆길로 걸어가는
아낙네 손에는 보자기로 싼 참이 들려있었다. 보자기 위로 솟은 모양이 막걸리도 있는 것 같았다.
논 사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는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어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가도 모내기 하는 이양기 몇 대만 보일 뿐 이다.
“ 요즈음은 모내기를 기계로 해서 참 먹는 문화가 사라졌어”
“ 참을 먹고 있으면 인사만 잘해도 막걸리 한잔은 얻어 먹을 수 있을 텐데 “
아마 옆지기가 걷기도 지루하고 시장기가 도는 모양이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두지나루에는 연천 고랑포 여울을 오간다는 황포 돛단배는 보이지 않고,
고기잡이 배 두 척만이 두지나루를 지키고 있었다. 장남교로 가는 길 건너편에 두지리 매운탕 집 간판이 보였다.
옆지기는 저쪽에 두지리 매운탕 집이 있다고 계속 방송을 한다.
“ 거기로 가면 적성 가는 길과 멀어져서, 그 쪽으로 가면 안돼 “
나는 적성으로 갈 방법을 궁리하는데 옆지기는 매운탕 생각이 간절한 모양이다.
“ 먼저 적성 가는 버스 정거장을 찾아 보고 ”
장남교 사거리에서 버스 정거장과 매운탕집을 찾아 보았으나 둘 다 없었다.
옆지기가 잠시 정차중인 트럭 기사에게 물어 본 결과,
마을버스는 하루에 2번 다니고 20분 정도 걸어가면 적성 시장이 보인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차를 얻어 타는 것이 쑥스러워 미련하게 그냥 걸어서 적성에 도착했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오면 도로변에서 팔을 도로 쪽으로 뻗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히치하이를
해서 차를 얻어 타기로 마음 먹었다.
적성면에서는 매운탕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옆지기는 찐 옥수수로 마음을 달랬는지, 아니면 여러 번 학습이 되었는지, 매운탕 이야기는 더 이상하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콩국수를 먹고 불광동 전철역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1시간 45분 지난 후에 우리를 구파발역에 내려 주었다. 차비는 2,000원이었다.
일반 버스가 130여 개의 정거장으로 이어지는 긴 노선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행하는 것에 놀랬다.
버스는 왕복 4시간이 소요되므로 하루 2번 왕복하면 하루 근무가 끝날 것 같다.
운전기사는 긴 노선을 어떻게 알고 찾아가는지 신기 할 따름이다.
구파발에서 전철을 타고 남서울 터미널로 이동하여 평택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17시 20분, 적성면에서 출발한지 4시간 걸려 집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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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대단합니다!
만연체의 자상함과~~~
걸었던 길이지만 쏠쏠한 옛날 옛적 이야기(ㅎ)
궁금해서 끊었다 읽으려다 내리읽었습니다
두 분 가는 길에 행복만 가득하길 빕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아리아리^^!
ㅎㅎ
옛날 옛적 이야기!
긴 글 읽으시려 고생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
날씨가 흐려서 걷는데 도움이 되셨을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음식 드시는 부분에서 내심 음식 사진을 기대했었는데 없어서 아쉽네요ㅎㅎ
음식사진도 많이 있어요,
의미있는 사진이 너무 많아서,,,
다 올리질 못했어요!
요즘은 더워서 주로 치맥!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