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에게 정선 땅이 유명해진 것은 동강과 정선아라리 때문일 것이다。 그중 동강은 댐건설 문제로 인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해 매년 여름이면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차곤 한다。 천연기념물로 남아 있는 백룡동굴과 보호종인 어름치가 사는 동강은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작은 왕국이라 하겠다。
거대한 바위를 단칼에 베어낸 듯한 돌비알을 이룬 절벽지대。 이런 곳을 강원도 토박이들은 뼝대라 부른다。 그 아래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새들、 또 연신 자맥질을 하며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는 비오리、 금보라빛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원앙 등 동강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다。 10월 중순、 가을이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동강을 찾아 무릉도원을 유람하듯 카약을 띄웠다。<편집자 주>
산골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노래로 풀어낸 정선아라리는 아름다운 가사를 담은 것도 아니며, 귀에 익은 박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삶의 이야기들을 담아 마음 속에 맺힌 근심을 풀어냈을 뿐이다. 정선아라리에는 예전 뗏목꾼들이 뗏목을 운반하며 부르던 노래도 있다. 가사에 등장하는 만지산이나 된꼬까리여울, 전산옥 등은 떼꾼들이 여울이 치는 강을 건너며 즐겨 찾았던 곳들이다.
사실 동강을 따라가며 래프팅을 즐기는 일은 떼꾼들이 뗏목을 나르던 길을 따라가는 일이라 하겠다. 동강 래프팅은 내린천과 달리 급류가 지닌 스릴을 만끽하기보다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 일품이다. 10월, 래프팅 시즌이 끝나 숨죽이고 있는 동강을 찾아 카약을 띄워 보기로 했다.
가을 단풍이 첫 발을 내민 동강은 아직 남은 푸른 잎들로 여름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이번 동강 카약 투어링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12명으로 1인승 카약 8대, 2인승 카약 2대를 준비했다. 평창 미탄에서 래프팅 회사를 운영하는 동강레포츠의 김정하 사장의 안내로 조양강을 끼고 이어진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가수리를 지나 제장나루에 짐을 풀었다.
점심 식사 후, 모두들 부산스럽게 자신이 탈 카약을 조립했지만 금세 1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이번 투어에는 초보자가 많다보니 조립하는 데만 시간이 갑절은 걸린 셈이다. 오후 3시, 조립을 끝내고 동강에 첫 배를 띄웠다.
유연하게 흐르는 물살이 햇살을 받아 은빛 여울을 뿌리기 시작하는 강물 사이로 10대의 카약이 유영을 시작했다. 한갓진 동강에서 카약을 타는 일은 부드러움과 유연함 속에 자신을 띄우는 일이다. 그저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노를 저을 뿐, 모터가 주는 기계적인 도움이나 문명이 주는 혜택은 필요하지 않다.
강물에 떨구어진 커다란 꽃봉오리처럼 카약이 물가를 수놓기 시작한다. 파아란 색의 카약에서부터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카약 10대가 길게 늘어서니 오색 빛의 원앙들이 길게 무리를 지은 듯하다.
제장나루에서 잔잔한 물살을 타고 내려가던 카약은 하방소 앞에서 작은 여울을 넘어야 했다. 하방소를 지나 용트림하듯 휘어진 산줄기를 돌아 연포로 가는 길은 좌우로 커다란 벽을 잘라낸 듯한 돌비알의 뼝대강원도 토박이들이 절벽지대를 이르는 말 숲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인 연포마을은 90년대 말까지 소사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여져 접근이 편해졌다.
동강에 자리 잡은 연포마을에는 하루에 세 번 해가 뜬다고 하지만 오후 늦게 출발한 탓인지 어느덧 해가 힘을 잃고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한다. 연포나루를 지나 급하게 휘도는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다시금 펼쳐진 멋진 풍경은 ‘한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강가 좌우론 온통 물벼루를 이룬 산비탈이다. 깎아지른 돌비알의 벼랑들이 이어져 멋들어진 풍광을 이루고 있다.
가정마을을 지나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이다. 백룡동굴은 굴을 보호하기 위해 철창으로 막아 놓았다. 동굴에 이르자 강바람이 유유자적하며 카약을 타고 내려온 일행을 시샘하는지 점점 거칠어진다. 강가의 서덜에는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연신 시침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붕어라도 잡아야 자리를 뜰 것이다.
뇌운마을로 들어서자 점점 물살이 빨라진다. 풍경에 취한 사이 배는 어느새 아라리에 등장하는 된여울인 ‘황새여울’에 닿아 있었다. 황새여울은 정선아라리에 ‘우리 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는 무사히 지나 가셨나’라는 가사가 등장할 정도로 동강에서 물살이 센 살여울 중 한 곳이다.
여울을 넘어서면 숙박지인 진탄나루라는 생각에 잠시 방심을 한 탓인지 여울목의 숨은 바위에 배가 부딪히면서 뒤집히고 말았다. 강한 물살에 5~6m를 순식간에 떠내려가고 나니 예전 답사 때 마하에 살던 떼꾼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강 뗏목 길에 가장 위험한 곳이 황새여울과 된꼬까리였지, 물이 꼬꾸라지듯하다 솟아 오르거든” 그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물살은 나를 집어 삼켰다가 뱉어냈다. 구명조끼가 없었다면 옛 뗏목꾼처럼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와야 했을 것이다. 다들 쉽게 넘어서는 듯하다가도 마지막 물살에 배가 요동쳐 애를 먹었다.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건너편 산마루를 넘어가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배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몰려들기 전에 뇌운마을과 진탄나루 사이에서 오늘의 카약 투어를 마치기로 했다.
해가 떨어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깊어지자 하늘에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은하수와 별들이 떠 이방인의 친구가 되어준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별을 보고 있자니, 매연과 가스가 없는 청정의 자연이 주는 작은 혜택에 이내 행복지경에 빠지고만다.
진탄나루 앞에 위치한 펜션 아스테리아빌리지에 짐을 풀고 잔잔하게 빛을 발하는 밤하늘 아래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여름과 달리 늦가을 동강의 풍경은 한갓지고 고즈넉함이 흐르는 평온의 땅이다. 다음날 강변에 메어 둔 카약을 풀고 둘째 날의 투어를 시작했다. 동강은 진탄나루 이후론 정선이 아닌 영월 땅으로 접어들게 된다.
진탄나루에서 섭새까지 이어진 13km 구간에 가장 위험한 구간은 역시 어라연 아래 위치한 된꼬까리여울이다. 오색의 카약이 하나 둘 잔잔한 물결을 타고 나루를 떠나간다. 진탄에서 문산나루까지는 큰 여울이 없이 잔잔한 물결이 이어져 카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문산나루에서 물장난도 치고 패들링 연습도 하며 한가한 오후시간을 보내다 다시금 어라연으로 향했다. 동강의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어라연은 동강 12경 중 제 1경에 꼽히는 곳으로 햇살에 비친 물결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곳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산모퉁이 끝자락을 급하게 휘돌아가는 강물은 강 한가운데 자리 잡은 3개의 바위 덩어리 사이를 통과하면서 동강 제 1경 어라연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카약은 점점이 박힌 바위 덩어리 사이를 헤치고 나아간다.
동강은 한 굽이 한 여울을 지날 때마다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일이 없다. 늘 수천 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뼝대와 돌비알, 자연이 살아 숨쉬는 천혜의 보고를 펼쳐 보인다. 어라연의 거북이바위 위로 외롭게 솟은 소나무는 동강이 지닌 긴 시간의 터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라연을 지나자 잠시 물살이 잠잠해진다. 동강에서 가장 살여울이라는 된꼬까리여울을 지나기 위해 빵과 간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되게 꼬꾸라진다’는 된여울의 물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진다.
동강을 물길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동강레포츠의 김종하 사장을 선두로 차례차례 노를 저어 된꼬까리여울을 통과했다. 여울의 소용돌이치는 물살은 카약을 집어 삼켰다가 다시 내뱉고, 다시 휘감기를 반복했다.
앞서가던 사람들의 카약이 뒤집어지는 통에 여울 앞에 서자 긴장된 표정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살여울의 물살을 빠르게 헤쳐나가자 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해진다.
이후론 잔잔한 물살을 따라가며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는 여유로움만이 남는다. 만지나루에 이르자 강가를 따라 비포장길이 이어져 있다. 이제 동강의 카약 투어링도 거의 끝난 셈이다.
1박 2일의 투어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천혜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기쁨과 함께 강이 주는 시간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작정 헤치고 나아가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 속에 나를 던질줄 아는 지혜, 동강이 일러주는 또 하나의 작은 깨달음이었다.
[동강 카약 투어 지도 및 주의할 점 - 아웃도어 라이프 2004년 11월호 70, 73페이지를 참조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