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국가고사, 졸업, 중국 실습여행, 개원준비 등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새 환자를 진료한지도 한달 가까이 되었네요.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런 저런 환자를 대하면서 세상에는 아픈사람도 많고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구나하는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몇살이냐, 어느학교 나왔냐...' 등등 나로서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나이들어 시작한 공부라 젊은 친구들과 함께한 7년간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년초 두어달동안 책을 낼까하고 써둔 글이 있는데 결국은 문학적인 능력이 없어서인지 퇴짜맞고 말았습니다.
이글이 공개되어 약간의 불이익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냥 사장시키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되더라도 개념치 말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9살에 다시 쓰는 학창일기>
-머리글
사람이 긴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은 인생을 바꾸게 되는 전환의 계기가 있는 것 같다. 마흔 둘에 잘 다니던 회사 그만 두고 한의학 공부하겠다고 대전 내려와 인생의 한창 때인 사십대의 대부분을 여기서 보낼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누구는 한의학은 철학이다, 철학이 아니다 또 누구는 한의학은 종교이다, 과학이다 등 한의학이 다루는 영역의 본질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나는 ‘한의학은 예술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명칭이야 한(韓)의학이 되었든 한(漢)의학이든 간에 의학의 기본 목적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고 그 치료를 위해서 서양의학은 기계의 도움을 빌어오지만 한의학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종합예술일 수밖에 없다. 한의사는 그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예술가가 되어야 하고.
젊지도 않은 나이에 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낯선 대전에 내려와 사고방식과 생활환경이 다른 이십대의 팔팔한 젊은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짧지도 않은 7년의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건 아들 둘을 두고 십년 이상 사회생활을 해온 중년의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일어났던 데모 때문에 때로는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고 집단유급을 당해 1년 이상을 쉬어야했던 안타까운 순간마다 우리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동기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곤 했다. ‘제발 우리 오십되기 전에 개업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내 나이 올해 마흔 아홉. 이제 그 희망의 마지막 순간에 오래동안 기대해온 한의원을 개업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러다 보니 지난날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나온 한순간 한순간마다 아쉽고 그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눈감으면 지금도 달려가고 싶은 그 때, 그 자리, 그 얼굴들... 신입생 환영으로 온거리가 왁자지껄하며 활기넘치는 3월이면 캠퍼스는 온통 벚꽃 천지가 되고 샛노란 은행잎이 가득 쌓이는 가을이 되면 대전대앞 용운동 거리는 낙엽 밟는 운치를 더해준다. 써머리 기다리며 초조해하던 시험기간과 그게 끝났을 때의 해방감, 늙은이가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며 한푼이라도 더 깎아주던 학교앞 책방 아저씨, 하나의 안주라도 더 내주던 호프집 아줌마... 수많은 사연들이 이제 과거의 추억속으로 사라지려 한다. 그 추억들이 멀리 달아나기 전에 못쓰는 글이나마 기억의 단상들을 모아서 짧지않은 7년간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어느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주위의 눈을 피해가며 수능 준비하던 시절부터 마음졸이며 한의사 국가고시 결과를 기다리던 본과 4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많은 기억 중엔 하찮은 생활단편이나 개인생활에 불과한 글도 섞여 있지만 이 글들이 혹시 나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여러 후배 한의대생이나 샐러리맨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또 우리의 자녀들에게 학업을 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부모와 같은 이런 사람도 가능했는데 무엇이든 못하랴하는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되었다.
현역인 젊은 친구들과는 달리 우리 나이든 사람들은 비록 전공은 틀리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배경으로 한 분야에서 각자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사고가 전혀 다른 한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실제 임상에 나가서는 오히려 큰 힘이 될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야 어째든 간에 이왕 시작한 한의학이라면 좀더 고민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여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업적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하겠고 병들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을 해주길 이 길을 걸어올 수많은 후배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의대를 다니며 겪은 학교와 생활주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쓰려 했다.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준 집사람, 이젠 자라서 대학생이된 두 아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과 이 책에 나오는 학우들뿐만 아니라 나의 학창시절을 문제없이 보낼수 있도록 도와준 95학번 우리 동기들, 알게 모르게 주위에서 격려를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여기에 나오는 동기들의 이름은 혹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지않을까하여 모두 가명으로 하였고 글 중에 나이든 사람의 의미로 나오는 우리라는 말은 ‘나와 영호’를 의미할 때가 많음을 밝혀둔다.
-목차
1. 15여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마무리하다.
2. 회사를 그만 두고 한의대를 들어가게 된 동기
3. 3개월간의 수능준비
4. 2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수능시험
5. 대전대 한의대 최고령 합격자
6. 머리가 반백인 화이트 헤어의 김 영호를 만나다.
7. 교수님 이쪽으로 오시죠.
8. 한의대생으로서의 생활 시작
9. 등록금 면제
10. 집사람은 선생님 나는 학생
11. 내경(內經)과 난경(難經) 그리고 상한론(傷寒論)
12. 한의학의 근본인 음양오행(陰陽五行)
13. 향우회에서의 봉변
14. 아저씨 시끄러워요.
15. 제발 아저씨란 호칭만은 하지 마라.
16. 예과시절의 야학
17. 시험과 레포트로 점철된 예과시절
18. 아침운동과 수영
19. 장식용 한의학책
20. 기차표 할인되는 학생증
21. 잡비와 아르바이트
22. 일본 학생 홈스테이
23. 데모로 시작된 대학생활 그리고 1년 유급 양한방분쟁
24.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비교
25. 나사라는 동아리
26. 명리학(命理學)과 정 성택 선배
27. 대체의학이란?
28. 해부학 교수님과 경철이
29. 잠자리(dragonfly)가 좋아서
30. 술에 있어서는 스토커인 황 창호
31. 캠퍼스 커플
32. 도사와 통원서당
33. 써머리인생
34. 원룸으로 이사
35. 삐삐에서 휴대폰까지
36. 짱구는 내친구
37. 난장판 벌리는 본과 진입식
38. 새로운 친구 편입생들
39. 임상(臨床)에 필수인 한방진단학(韓方診斷學)
40.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애환
41. 본초(本草) 땡시험
42. 의료봉사활동
43. 사람잡는 경혈학(經穴學)과 침구학(鍼灸學)
44. 경호와 민경이
45. 또 한명의 스토커인 갬블러 서 홍순
46.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의 허실
47. 멍드는 재시, 삼시
48. 한의대생 가족은 실험용 모르모토
49. 선배제자 후배교수
50. 스승의 날 체육대회
51. 기념일과 라디오방송
52. 일본 배낭여행
53 한많은 주식투자
54. 장인과 중고차
55. 장모와 상화탕
56. 대학생 삼부자.
57. 담배 무용론
58.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
59. 저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예요.
60. 내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한 주말 부부생활
61. 서모 교수와 배모양의 사건
62. 오랜 친구 조성수를 만나다.
63. 동의보감(東醫寶鑑)과 방약합편(方藥合編)
64. 인터넷 유감
65. 마음을 다스리면 병의 절반은 없어진다.
66. 호텔 써머리
67. 졸업생 환송회와 사은회 그리고 졸업
68. 드디어 한의사가 되다.
69. 고생은 지금부터
70. 에필로그 (중국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