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 휴전선 등 관한 시모음 12)
잊을 수 없는 날 /鞍山백원기
달력을 바라보니
유월 이십오 일이 토요일이다
칠십이 년 전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서대문 형무소가 부서지고
신촌 터널을 빠져나온 열차에서
군가를 부르던 누런 군복의 인민군
부대를 잃고 홀로 뛰어가던
찢어진 군복의 국군 뒤로
장총을 든 청년이 뒤쫓았다
지하실에서 밤을 지새운
우리와 이웃 사람들
위험과 공포 속에서
숨 막히는 총소리를 들으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새벽 시간을 맞았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휴전선 /박봉우(1934∼199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전쟁 /김한수
길도 없는 길 위에 주저 앉아서
유월의 찬란한 꽃을 보고 있나니
이 강토 이 강산 지키다
산화하신 호국영령이시여
내 생의 한나절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네요
그대가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피비린내 나는 전장터에서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불살랐으니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오늘 가만히 유엔묘지에서
KOREA를 위해
산화하신 그네들의 넋을 다시금 보나니
속절없이 다가온 나날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네요
전쟁은 알 수 없고
피아가 모두 손해라는 것을 느끼며
영령의 눈빛을 생각하지요
DMZ 연가 /나병춘
사랑하는 사람은
온세상
영웅이란다*
노래가
울러퍼질 때
베를린 장벽은 와르르
시인아
부르짖어라
사랑이 하나 될 때까지
*데이빗 보위의 '히어로즈'(Heroes) 중에서
대한 해협의 승리 /강명호
햇볕이 아까운 초여름 아침
푸르게 오른 벼싹
산색은 어느새 윤색으로 변하고
대한해협은 옛이나 지금이나
광활한 수평선 너머
지난 72년 북한의 함정의 격침
우리 해군이 첫 승전보를 올렸다
만약에 이게 뚫렸으면
아마 공산치하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라고
해군 출신의 아저씨가 들려 주셨다
우리나라 첫 승리한 해전
얼마나 장한 일인가
열병처럼 떠도는 꽃의 화염에 젖어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호국영령님의 넋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묵념을 올린다
휴전선의 유월 /김순진
송홧가루, 아카시아 꽃잎이
화약연기처럼
날리거니
박격포의 폭음이
저 철의 장막 노루 토끼 귀엔
아직도 들리거니
그래서
육군 김 상병은
소총을 받들어 섰나니.
비무장지대 /권영상
슬픈 일일수록
새들은 빨리 용서할 줄 안다.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지난 일을 잊기 위해
새들은 소총 소리 들리는 숲을 찾아와
거기에다 편안한 집을 짓는다
지뢰가 흩어진 숲속을
우리보다 더 먼저 찾아와
탄탄하게 집을 짓고
따스한 알을 낳는다.
6,25의 0시 /이원문
우리끼리 싸워 이긴
그 훈장이 자랑스럽던가
흔들리는 일본의 마음
남과 북 무엇 하나
한 핏줄의 남과 북
우리 형제 무엇 하나
독도 뜰 앞 대마도
일본을 다시 보자
6.25 역사의 거울 /김금자
72주년 기념행사
6.25의 노래를 부르는 가슴에
그날의 참상과 아픔을 느끼는가
희석되어 가는 슬픈 가슴
이산의 고통이 역사 속에 묻혀 가고
해결하려는 의지는 있는지
상봉의 날을 손꼽는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와 미얀마
지금 피 흘리며 죽어가는 저들의 희생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눈물이 마를까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
그 피 값은 어디에서 찾을까
우리의 6.25를 거울삼아
하루속히 전쟁이 종식되면 좋겠다
연평도의 폭음 /권윤오
갈매기 벗 삼아 웃음을 삼키며
오순도손 이웃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섬에
악마의
빗발처럼 포화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동족의 배신에
하염없이 분노의 눈물만 흘렸다
수없이 쏟아지는 포탄소리에
심장이 흔들리고
섬은 공포의 불바다로 변했다
풍랑은 핏빛으로 끓어오르고
온 민족은 분노의 태풍이었다
이 억울한 현실은
북녘을 향해 절규하지만
피 냄새에 미친개는 개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둥둥둥 자유의 북을 울려야 한다
암흑의 터널 속에서
악랄한 짓만 하는 붉은 무리들
동족의 가슴에
비수를 꼽고
즐거워하는 괴뢰들에게는
공멸과 자멸의 길만 있을 뿐이라
DMZ 평화공원에서 /고진하
삼복 중에
DMZ 평화공원에 왔다
호기심에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가
공원 가장자리 나직한 건물 뒤편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철망우리 속에 갇혀 풀을 뜯던
꽃사슴 한 마리가
이글거리는 눈망울로 날 바라본다
뭘 봐! 그런 건방진 눈빛은 아니고,
무슨 이념, 적의, 증오, 경계심을 품은 그런 무장(武裝)의 눈빛은 더더욱
아니고
그냥, 멀뚱멀뚱!
그런데 난 왜 그 비무장의 눈빛
멀뚱멀뚱을 못 견디고
어디 갈 길 바쁜 사람처럼 그냥 돌아섰나
실은 땡볕 때문에
나지막한 건물 속으로 피신했는데,
형소 구경도 못하던 희귀동물들 사진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산양, 사향노루, 수달, 열목어 등등… 여태 말로만 듣던 녀석들,
높고 깊은 산협에,
울울창창한 숲속에,
맑은 개울에 천방지축 뛰노는 녀석들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반신불수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무장해제!
평화로 가는 길이 멀고멀지만,
그 길 위에 무장해제의 징검다리를 놓는 산양, 사향노루, 수달, 열목어들
따라 이제부터 한 걸음씩,
그래, 천천히 한 걸음씩……
잊혀진 전쟁 /김동진
세월 흘러
칠십 여 년
산하에 전쟁의 상흔
지워져 가지만
민족의 가슴에
남은 상처
아직도 아물지 않아
붉은 피로 응어리져 있다
그간 우리
헛된 평화 환상 꿈꾸며
퍼주기와 저자세로
북쪽 핵무기만 키웠다
수 십 번의 협상과 약속
돌아서면 돌변하는 공산주의
애초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이젠 북쪽 핵무기
손 댈 수 없을 만큼 자라
어떤 우리 재래식 무기로도
상대가 안 된다
우리들 마음 속
잊혀져 가는 전쟁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라
무너지는 힘 없는 정의
이제라도
상대 의도 알았으면
핵무기와 맞설 수 있게
무기와 정신을 가져야 한다
확실한 힘의 우위가 바로
우리의 생명과 평화를 지킬 것이다
육이오 /鞍山백원기
아직도 생생한 기억
눈에 담겨있어 버리지 못하고
엉켜있어 풀리지 않는 생각
신촌 굴다리로 머리를 내민
누런 기차 화통에 X 자 인공기
초등생 나의 눈에도
아빠 엄마의 눈에도
겁에 질린 눈동자와 입술에
파르르 떨리는 경련이 일었다
안산 고개 넘어 우리 집 뒤편
서대문 감옥 철문 부서지는 소리
사상범과 잡범이 지르는 함성
하늘을 찌르고 세상을 뒤집었다
청년 빨갱이가 장총을 들고
찢어진 군복의 국방군 낙오자를
무섭게 뒤쫓으며 “따콩” 총을 쐈다
참화속에서 /김재명
초록의 입자가 더 푸르게 굵어질 때
아버지 곰방대의 담배연기
허공에 흩어졌습니다
“빨강이덜 아주 지독한 넘덜이다”
다부동 전투에서 육군 포로가 되어
갖은 고통을 껶으셨다고 합니다
밥은 죽 한그릇에 전부였고
지나가는 쥐는 잡아 별식으로 먹었다 했습니다
하루에도 두,서너명은 죽어나갔고
배고픔과 추위
이는 왜 그렇게 많은지
긁고 긁어서
온 몸은 상처투성이었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아군의 폭격으로 수용소가 개어지고
그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도 참화속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던 건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내 덕이라고
아버지의 순간이 내 앞에 서성거렸습니다
아~아 잊으라 어찌 우리 그 날을 /하영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20분
그날이 일요일 모두 편히 잠든 새벽
무자비한 따발총 소리
이 땅의 평화는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논에 물 대려고 가다가 총 맞아 죽고
거름 지고 가다가 총 맞아 죽고
집에 있어도 죽고 피란 가다가 죽고
온 세상이 아비규환
73년이 지나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비참한 민족 상잔
아~아 잊으라 어찌 우리 그날을
아이러니 하게도
그 전쟁을 모르는 사람 많다는 사실이다
건망증이 625전쟁 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잊지 말자 그날의 그 아픔을
아~아 잊으라 어찌 우리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