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blog.naver.com/viking999/40094143635
[불교입문 2] 신과의 대화 / 정병조
고대사회에서는 흔히 자연계의 여러 요소들이 신격화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아리안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자연 현상의 배후에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며 그것을 신격화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믿는 소박한 형태의 종교관을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때문에 베다시대의 초기는 다신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바람의 신, 태양의 신, 비의 신, 물의 신 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츰 신들 간의 관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신들 중의 최고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났는데, 중기에 이르게 되면 유일신적인 종교성향을 띠게 된다.
여기서 다시 베다의 철인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 유일신을 창조한 신은 또 누구인가라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였기 때문이다. 이 유일신에 대한 고대 인도인들의 고뇌와 회의는 유찬가에 도 잘 나타나 있다. 태초에는 무도 없고,유도 없고 공계도 없고, 또한 천계도 없었다. 무엇이 이를 뒤엎었는가. 그것은 어디에 있었는가. 누가 이를 옹호했던가. 저 물은 어떻게 있었으며, 끝없는 깊이는 어떻게 있었던가. 여러 신들도 또한 천지창조 이후에 생겨 났다면, 그들이 그 어디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이 조화의 원천을 하는 사람은 최고천에서 이 세계를 관장하고 있다. 그는 진실로 알리라. 그러나 아마 그도 또한 모르리라. 위에서 보듯이 베다의 철인들은 천지창조의 근원을 어떤 유일신에서 찾으려 했으나, 다시 유일신에 대한 회의에 빠져 들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결과 그들은 범신론을 상정하게 된다. 범신론이란 모 든 사물에 신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논리이다. 이렇게 되면 유일신의 근원을 다시 설명해야 하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대 인도인들은 사고의 발전단계에 따라 그들 나름의 독특한 종교형태를 지녔던 것이다. 결국 베다의 종교는 막스 뮬러의 적절한 지적처럼 '다신교에서 교체신교를 거쳐 유일신과 범신론의 단계에 이르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베다의 신들은 철저하게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동시에 갖춘 존재들로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베다의 신들은 인 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어떤 절대자나 영원불사의 존재, 혹은 정의를 수호하고 악마를 퇴치하는 능력 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베다 신 들의 신적인 측면이라면, 자신에 대한 찬가에 기뻐하고, 술을 마시고 취하기를 즐겨하며, 신들 간에도 불화나 폭 행, 사음 따위의 행위묘사는 인간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 다. 이제 베다인들은 이러한 신들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 게 제사를 드리고, 또한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부 르는 일 등을 통해 자신들의 행복을 보장받으려 하였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신들과의 직접적인 교통이 불가능했 으므로 인간과 신을 매개해 줄 사제계층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바라문족이다. 이들은 일반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소원과 행복을 신에게 비는 제사를 드 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에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바라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되자 신들은 죽은 존재가 되었고, 신을 움직인다는 바라 문들이 살아있는 신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결국 바 라문족의 오만과 타락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제사만능주 의, 베다만능주의를 초래했다. 요약하면 베다 시대의 종 교는 다신교에서 출발하여 배타적인 유일신의 단계를 거 쳤고 좀 더 포용성을 띠는 범신론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특징을 갖는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 징은 바라문의 오만과 타락이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었던 바라문 지상주의시대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러한 사회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당시의 철인들이 우파 니샤드라는 새로운 자아철학을 정립해 가게 된다. 이 시 대에 이르면 사고의 중심 고리가 신이나 자연 중심에서 인간 자신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즉 인간의 자아란 무엇 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보다 뒷 날의 일이긴 하지만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인간중심적인 사고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전환은 불교의 출현으로 완성된다. 자아탐구 우파니샤드 시대는 기원전 약 13-12 세기경부터 기원전 8-7세기 에 이르는 약 4-5백여 년 동 안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지역적으로는 개지스강의 상류 부분이 주무대였다.
당시의 가장 큰 변화는 바라문 계급의 타락과 몰락이 두 드러지면서 크샤트리아 계급이 아주 비약적인 발전을 했 다는 점이다. 물론 카스트적인 농촌 사회가 계승되었지 만, 그 시대에는 언론과 사색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었다. 따라서 신들에 대한 탐구도 무한하게 발전되어 갔으며, 인간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영원한 자아에 대한 탐구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우파니샤드(upanisad) 의 'upa'란 '아래로'라는 의미이고 'sad' 는 영어의 'sit'에 해당하며, '앉다'의 뜻이다. 'ni'라는 말은 영어의 'n ear'로서 '-에 가까이'를 뜻한다. 따라서 우파니샤드란 좀 더 가까이 내려았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이를 '비밀스런 회좌'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저 끝없는 깊이를 가진 물 은 어떻게 생겨난 것입니까? 나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나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스승이 대답하기를, 우파니 샤드, 좀 더 내게 가까이 오너라. 내 그대를 위해서 설명 하리라 이런 식의 문답을 통해서 스승과 제자간의 인격 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고 우파니샤드 철학이 성립되었다
우파니샤드 철학의 특징은,
첫째로 그 표현 자체가 체계 적이라 기보다는 상당히 비유적이고 은유적이다. 그 까닭은 우파니샤드 시대를 수놓았던 철인들이 그들 자신의 신비적인 영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전체의 구성이 대화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즉, 스승 의 일방적인 강의록이 아니고 어떤 의문에 대해 제자가 묻고, 또 그것에 대해 스승이 대답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전편을 흐르는 우파니샤드의 사고방식은 지혜의 중요성 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우주와 자연, 인간의 신비 등을 깨달아 아는 지혜를 중시하였던 이 철학의 요체는 범아
우파니샤드 철인들은 자연과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 원리 를 브라흐만이라고 하였다. 브라흐만이란 우주만유의 질서, 자연의 섭리, 철리 등의 의미로, 요컨대 자연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범이다. 아트만이란 우주적인 원리가 인간의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브라흐만과 아트만, 즉 범과 아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 범아일여사상이며,이 원리를 깨닫는 것이 해탈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반면, 범과 아가 하나임을 모를 때에는 이 덧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나고 죽는 윤회를 되풀이함으로써 고통스런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결국, '하나가 되자'는 운동이 아닐까? 진리와 세속이 하나 되고,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서 끝내는 다툼이 없는 세상, 모든 정직한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부끄러움 없는 삶이 예찬될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종교이다. 인도 철학자들의 범아일여사상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하나 됨이 실패했을 때 대립이 있게 된다. 너와 내가 대립을 이루고, 악과 불의가 대립을 이루어 끊임없는 다툼과 분쟁이 생겨난다. 비록 불의를 없애기 위한 것 이라 할지라도 전쟁이 정당화될 수 없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우파니샤드 문헌에는 무수한 철인들이 등장하여 범아일 여라는 자아 철학의 입장에서 사상을 펴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철인 가운데 샨딜리야('Sandlya)는 다음과 같 이 범아일여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우주의 본질과 핵심 은 브라흐만이다. 그러나 개인의 원초적인 원리는 아트 만이다. 따라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동일함을 믿을 인 간은 해탈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아트만과 브라흐만은 가 장 큰 것이면서도 가장 작은 것이다. 또한 이것은 모든 사 물 속에 내재되어 있는 내재자이면서 그 모든 것을 초월 하는 초월자이다. 이러한 내용은 부분적으로 불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해인사의 선방에는 '성적등지문' 이라고 쓰여 있다. 성이란 반짝반짝하다, 빛난다, 또렷하다는 뜻이고, 적은 고요하다, 앎이 없다, 침묵을 뜻한다. 따라서 성 (1)과 적( )은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동시에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극대이면서 극소라고 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것들이 하나가 됨을 뜻한다.
샨딜리야는 이러한 극대이면서 동시에 극소인 것을 범아 일여로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서 윤회의 개념이 싹트고 있다. 즉 개체 중심적인 인간 존재가 끊임없이 나고 죽음 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이 철인은 해명하고자 노력하였 다. 이 노력 자체가 '윤회'라고 하는 사고의 시초이고, 동 시에 개체중심적인 생명의 인과응보라는 것을 나타내주 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결국 샨딜리야는 범아일여사상을 통해서 이것과 저것의 상대적인 대립을 초월하는 것이 해탈이라고 하는 것과 거기에 따른 수행을 강조했던 것 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우파니샤드 철인들이 자아의식에 대한 매우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주와 개체적인 인격을 분리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사상적인 노력들이 우파니샤드 철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 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인도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교라는 종교의 전인적인 요소는 이 우파니 샤드 속에 잠재되어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의 의미는, 우파니샤 드의 범아일여사상 등에 불교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의 전인적인 이해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는 우파니샤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였다. 우파니샤 드의 자아철학에 대하여 부처님은 과감하게 무아를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들이 우파니샤 드로부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