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1916-2002), ‘작품(Work)’, 1972년, 캔버스에 유채, 133×13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1916-2002), ‘작품(Work)’, 1974년, 캔버스에 유채, 136×136.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유영국미술문화재단. 미국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는 유영국의 해외 첫 개인전 ‘Mountain Within’이 10일(현지 시간) 개막했다.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 등 1960, 70년대 작품 17점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12월 23일까지 열린다. 아니 글림셔 페이스갤러리 회장이 유영국을 두고 ‘톱 클래스 화가’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스와 PKM갤러리,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내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유영국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유영국의 아들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가 1940년대 일본에서 귀국 후 해외 미술 동향을 접할 수 없어 선택한 것이 가장 변하지 않는 주제인 산”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가 산의 형태를 본질만 남기고 자신의 느낌을 색채로 입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러한 보편성이 해외로도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영국(1916-2002), ‘산’, 1966년, 163.2×130cm. 캔버스에 유채. 리움미술관 소장. 유영국 화백, 그는 삶이란 '산' 을 숨 가쁘게 오르내렸다. ‘산’ 이라는 한 음절은 산을 담기에 너무 짧다. ‘삶’ 이라는 단어 또한 삶을 담기엔 간소하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고 삶의 곡절을 겪고 나면 결국 산은 산이고 삶은 삶일 수밖에 없는 간명한 진리에 감복한다. 복잡할수록 단순해진다. 고단할수록 선명해진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로 일컬어지는 유영국 (1916~2002)의 ‘산’ (1966년작)은 가장 구체적인 추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난해하고 모호하다는, 추상에 대한 오래된 오해와 편견은 유영국이 생전에 했던 말로 갈음한다. “추상은 말이 필요 없다. 설명이 필요 없다. 보는 사람이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유영국이 평생을 두고 천착했던 산은 삶의 시원 (始原)이다. 1916년 강원도 (현재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에게 고향의 높고 웅숭깊은 산은 압도적인 자연의 원형으로 영혼의 마디마다 새겨진다. 해상 상업으로 치부한 집안 출신으로서 후미진 벽촌에서 경성 제2고보를 거쳐 도쿄 문화학원 유학생이 되었고,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자유미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활동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 가업을 이었던 유영국 개인의 삶은, 급경사의 험산 같은 한국 현대사를 통과하며 생업과 예술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숨 가쁘게 오간다. 고향과 가족은 힘이면서 짐이었다. 귀국 후 10년 동안 붓을 꺾었던 시간은 스스로를 몰아치게 만드는 공백의 공포이기도 했다. ‘문제적 인간’ 임에 분명한 유영국은 중간이 없는 캐릭터다. 1964년 첫 개인전을 열면서 그룹 활동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현대미술운동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내던졌고, 개인의 작업실로 돌아간 후로는 심장 박동기를 부착한 채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작품에 매달렸다. “60세까지는 기초 공부” 를 한다며 정해진 일상의 시간표에 맞춰 “기계같이” 그림을 그렸다. 그 타협 없는 숨 가쁜 날들이, 바위에 구멍을 뚫는 듯한 집중과 몰입이 강렬하지만 편안한 ‘균형과 하모니’ 의 색채로 ‘산’ 에 표현되어 있다. 산은 다정한 듯 가혹하다. 고독한 정상과 비밀의 골짜기가 숨어 있고 변화무쌍한 날씨에 시시때때로 낯빛이 달라진다. 그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과 같아서, 사람들은 삶을 닮은 산에 간다. 추상은 수많은 해석을 낳기 마련이지만, 1960년 8월 23일 자 ‘조선일보’ 에 그림과 함께 “화제(畵題) ㅡ 산” 에 대해 기고한 유영국의 글은 의외로 소박하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산 고장에서 자란 탓일 게다. 내가 자란 마을에서 평탄한 길을 걸어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끝없는 바다였다 바다를 둘러싸고 첩첩이 헐벗은 산과 웃 입은 산들이 보였다.” (출처: 조선일보 2023년 7월 26일, 글: 김별아 소설가) 유영국(劉永國, 1916-2002)은 울진에서 출생한 유영국은, 1935년 동경의 문화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 미술계에서는 기하학적 추상이 전위 미술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유영국 역시 이 시기, 자유미술가협회 같은 전위 미술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합판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조형의 부조 작품들을 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40년, 이 작품들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그의 작품에 대해 김환기는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 마치 새로 생긴 다방의 실내장식처럼 유행만 따를 뿐, 아무 내용도 없는 그림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전위적으로 평가받던 미술이 귀국한 뒤에는 인테리어 장식 같다고 폄하된 것이다. 사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일반적으로 인쇄물의 표지 디자인이나 다방, 백화점의 인테리어에 주로 활용되곤 했다. 유영국의 작품에 대한 김환기의 평가는 이런 당대의 분위기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비판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순수 미술이냐, 디자인이냐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런 비판은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됐었다. 하지만 유영국은 평생토록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지속적으로 제작했다. 특히 해방 이후로는 점차 자연에 기반한 한국적인 기하학적 미술을 시도하게 된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 유영국(1916-2002)
이상욱(李相昱, 1923-1988), '점(Point)', 1976년, 캔버스에 유채, 91×72cm, 유족 소장.
이상욱(李相昱, 1923-1988), ‘무제 70(Untitled 70) 1970년, 캔버스에 유채, 62×47cm, 유족 소장./ 이상욱(李相昱, 1923-1988), ‘무제(Untitled) 1982년, 캔버스에 유채, 93×93cm, 유족 소장. 이상욱(李相昱, 1923-1988)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우기 전, 함흥의 세무서에 취직해 근무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끝없는 갈망으로 결국 세무서를 그만두고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게 된다. 이후 신조형파 운동에 참여해 1958년 열린 제2회 전시회에 3점의 작품을 출품하는데,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기하학적 추상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자연의 대상을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하는 대신, 부드러운 선과 형태를 기반으로 서정적인 화풍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일필휘지를 바탕으로 한, 절제되면서도 자유로운 서체적인 추상 역시 그의 추상 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상욱은 또한 판화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당시로선 새로운 장르였던 판화 기법을 국내에 도입하고 한국판화협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미술 교과서 집필에도 여러 차례 참여한 미술 교육자이다. 두 번째 “한국의 바우하우스(Bauhaus)를 꿈꾸며, 신조형파”에서는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하여 1957년 한국 최초로 결성된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의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을 소개한다. 이들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미술이라고 보았고, 이것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여주었다. 건축가 이상순(李商淳)이 당시 촬영한 《신조형파전(新造型派展)》 작품 및 전시장 사진과 김충선의〈무제〉(1959)를 포함한 변영원(邊永園, 1921-1988), 이상욱(李相昱, 1923-1988), 조병현(趙炳賢, 1921-2011)의 출품작 등을 소개한다.
전성우(雨松 全晟雨, 1934-2018), ‘색동만다라(Colorful Mandala)‘, 1968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168×136.3cm, 유족 소장.
전성우(雨松 全晟雨, 1934-2018), ‘공간만다라(空間曼茶羅)’, 1965년, 유족에 따르면 작가가 개인적인 애착을 크게 가졌던 작품이다./ 전성우(雨松 全晟雨, 1934-2018), ‘청화만다라(靑華曼茶羅)광배(光背#47’, 1999년, 캔버스에 유화.
전성우(雨松 全晟雨, 1934-2018), ‘연화만다라(蓮花曼茶羅), 1986년, 수채화 종이. 전성우는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간송미술재단의 이사장이었다. 사재를 들여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켰던 간송 전형필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미국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던 1세대 화가이기도 하다.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미대에 다니던 중 터진 전쟁 때문에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그곳에서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밀즈 칼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중, 대학의 만다라 컬렉션을 접하게 되는데, 만다라는 사각형이나 원 같은 기하학적 형태와 불교의 상징적 도상을 통해 부처나 보살의 가르침과 불교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이다. 만다라가 지닌 정신적이면서도 우주적인 의미에 매료된 전성우는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다라라는 주제 아래 자연과 인간, 우주의 신비를 펼쳐낸다. 덕분에 만다라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는데, 서양 중심의 추상회화가 미술의 주류가 된 시점에서, 그는 만다라 속의 기하학적인 조형과 한국적인 미감을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한다. 그 결과 나온 그의 그림은 기하학 문양이 대칭적으로 반복되는 일반적인 만다라 그림과는 달리, 스밈과 울림을 강조하면서 동양적인 철학을 표현한다. 특히, ‹색동 만다라› 시리즈는 색동이라는 한국적인 전통적 색감을 만다라의 기하학적 조형 속에 녹여내고 있다.
이준(2019-2022), '송(頌)-유향(幽鄕)', 1985, 캔버스에 유채, 130.5×9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준(2019-2022), ‘달무리(Halo around the Moon)’, 1979년, 캔버스에 유채, 130×19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준(2019-2021), ‘석양(夕陽)’, 199년1, Acrylic on canvas, 97x130cm.
이준(2019-2021), ‘채원(彩苑)‘, 1994년, Acrylic on canvas, 130x230cm.
이준(2019-2021), ‘축제(祝祭)’, 1990년, Acrylic on canvas, 59x101.5cm. 남사(藍史) 이준(2019-2021)은 한국의 풍경과 서정에 기반한 한국적 기하 추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한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때 보았던 햇살이 비추는 바다의 빛깔과 아름다운 섬의 풍경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그는 1960년대, 앵포르멜 경향의 표현적인 추상을 제작하다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이준은 자연을 평면화해 삼각과 사각형, 동그라미를 조형 요소로 삼아 자연을 그려냈다. 이렇게 고향 남해의 모습을 기하학적 조형과 연계한 작품에 그는 ‘고요하게 고향을 기리다’라는 뜻의 ‹송-유향(頌-幽鄕)› 같은 제목을 붙이는 것으로 서정적 분위기를 더했다. 그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따뜻한 색채와 서정적 작품명은 기하학적 형태가 가지는 차가운 이미지를 대체시키고 있다. 자연의 이미지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추상이라는 점에서 이준의 작품은 독자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보여준다.
조병현(1921-2011), ‘작품 4-69(Work 4-69)’, 1969년, 캔버스에 유채, 130.3×130.3cm, 유족 소장./ 조병현(1921-2011), ‘작품 2-69(Work 2-69)’, 1969년, 캔버스에 유채, 128×12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조병현(1921-2011)은 충북 청원 출생으로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57년 신조형파에 가담해 활동했다. 이 시기 그는 건물이나 도시의 풍경을 입체주의적으로 분할하면서 평면화해 나간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추사 김정희의 서예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체를 연상시키는 표현적인 추상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시에 삼각형과 원 등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듯이 배치한 기하학적 추상 작품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1960년대에는 신조형파에 이어 미술가와 디자이너가 함께 활동했던 신상회에 가담해 추상 작업을 선보였다. 세 번째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2019-2022) 등 1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과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특수성을 살펴본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 추상을 제작하거나, 자연을 대하는 서정적인 감성을 부여한 작품들이 발견된다. 엄격한 기하학적 형식을 탈피하여 한국적 특수성을 담아낸 유영국의 〈산〉(1970), 전성우의 〈색동만다라〉(1968)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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