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 룻, 보아즈, 나오미
조연 : 무명(無名)의 친족, 장로들 등
지난주에 드라마 주연은 에스더였는데 오늘 드라마 주연은 룻입니다. 남자 주인공은 보아즈고 시어머니는 나오미입니다.
조연에 무명(無名)의 친족이 있는데,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조연에는 베들레헴의 장로들이 있습니다.
땅이 하나님의 앞에 부패하고 땅이 폭력으로 가득 찼습니다(창 6:11).
“부패(腐敗)”라는 한자는 “썩을 부(腐)”와 “깨뜨릴 패(敗)”가 연결되어, “썩어서 깨짐”, “정신·정치·사상·의식 등이 타락(墮落)한 것”을 뜻합니다.
“타락(墮落)”이라는 말은 “떨어질 타(墮)”와 “떨어질 락(落)”에서 나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떨어짐”, “불신의 삶에 빠짐”입니다.
땅이 하나님의 앞에 부패하였다는 말은 땅이 썩어서 깨졌다는 뜻이며, 땅의 사람들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떨어져 타락하면 땅이 썩어서 깨지는 것입니다. 땅과 같은 무생물은 사람들의 말과 행위(行爲)에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12절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보시고 그것이 부패하였으니 왜냐하면 모든 육체가 그 땅 위에 그의 길을 부패하게 하였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육체를 그 땅과 함께 파괴(破壞)하는 나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부패하다(corrupt)”(샤하트)는 “타락하다”, “부패하다”를 뜻하며, 같은 단어에 “파괴하다”(destroy), “멸망시키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람이 부패하면 땅도 부패하게 되고, 부패하면(corrupt) 파괴함(destroy)을 받습니다(창 6:12~13).
땅이 하나님의 앞에 부패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땅을 파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며 부패한 것을 파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썩어 깨지고 있는 것을 완전히 파괴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과 땅은 밀접하게 관련되며 땅은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이 땅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행위가 올발라야 합니다. 홍수로 땅이 멸망하게 되었던 것은 인류가 땅을 부패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영(breath)이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파괴하시려고 물을 홍수를 그 땅 위에 가져오셨습니다(창 6:17).
“내가 나의 언약을 세우고, 모든 육체가 홍수부터 잘라냄을 받지 않고 땅을 파괴하게 홍수가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창 9:11). 모든 육체를 파괴하기에 물이 다시는 홍수에 되지 아니합니다(창 9:15).
오늘은 “파괴하다”, “멸망시키다”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룻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재판하는 자들의 재판하기 날들에 되었으며 기근이 그 땅에 있었고 유다의 베들레헴으로부터 사람이 모아브의 토지들에 머무르기 위하여서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 둘이 갔습니다(룻 1:1).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레크고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고, 모아브의 토지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룻 1:2).
그리고 그가 죽고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 둘이 남았습니다(룻 1:3).
그리고 그들이 그들을 위해 모아브 사람들을 여자들을 들어 올리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파고 두 번째의 이름은 룻이고 10년쯤 살았습니다.
그리고 말론과 킬론 그들 둘이 죽었고, 그 여자가 남았습니다(룻 1:5).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들이 일어나고 모아브의 토지들로부터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그들에게 식량을 주시기에 방문하셨다’라는 것을 모아브의 토지 안에서 그녀가 들었기 때문입니다(룻 1:6).
그녀가 거기 있은 그 장소로부터 그녀와 그녀의 며느리들 둘이 나오고 그녀들이 유다의 땅에 돌아오기 위해 그 길 안에 갔습니다(룻 1:7).
그녀가 그 며느리들에게 말하기를, “가라 너희의 엄마 집에 돌아가라, 너희가 나에게 보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친절을 보이실 것이라. 그가 주시겠고 너희는 새 남편의 집에 안식처를 발견하라”라고 말하니까 그녀의 며느리들이 그 목소리를 높이 들어 올려 울었습니다(룻 1:8~9).
룻기 1장 11~13절에 “돌아가라, 어찌 너희가 나와 함께 가려 하느냐, 나에게 아들들이 내장에 있어 너희에게 인간들에게 되겠냐? 너희는 돌아가라 너희는 가라 이는 나는 사람에 있기에서 늙은 까닭이니 나에게 소망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내가 사람에 있고 아들들을 낳았어도. 이 때문에 그들이 자라기까지 바라느냐 사람에 있기에 가로막힐 것이냐, 나의 딸들아 그렇지 않노라 이는 나에게 너희에서 대단히 썼기 때문이니 내 안에 하나님의 손이 나왔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 올리고 그녀들이 다시 울고, 하나는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룻은 그녀 안에 달라붙었습니다.
룻기 1장 15절에 “너의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神)들에게 돌아갔노라 너도 너의 동서 뒤에 돌아가라”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1장 16~17절에 “당신 뒤로부터 돌아가게 마주치실 것이 아니니 당신이 가실 곳에 내가 가겠고 당신이 투숙하실 곳에 내가 투숙하겠으며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겠으며. 당신이 돌아가실 곳에 내가 죽겠으며 거기에 내가 매장함을 받을 것이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시겠고 이렇게 그가 더하게 하실 것이니, 그 죽음이 나 사이와 어머니 사이에 분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1~2절에 “재력의 사람인 친척이 있고 그 이름은 ‘보아즈’고. 그 모아브 여자 룻이 그 시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밭에 갈 것이고 내가 그의 눈에 은혜를 발견할 자 뒤에 이삭에 주울 것입니다’라고 하고, 그녀가 말하기에 ‘나의 딸아, 가라’라고 한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룻기 2장 3절에 “그녀가 가고 그 수확하는 자들 뒤에 그 밭 안에 줍고, 그녀의 우연이 보아즈에 그 밭의 한 부분에 직면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즈가 추수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함께”라고 하였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룻 2:4).
그리고 보아즈가 그 수확하는 자들 위에 선 그의 소년에게 말하였기를 “이 소녀는 누구에게 속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룻 2:5).
그리고 그 수확하는 자들 위에 선 소년이 그에게 대답하고 말하였기를 “그녀는 모아브의 들판부터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아브의 소녀인데. 그녀가 말하기를 ‘제가 모아들이고 단들에서 모을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그녀가 오고 아침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서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8~9절에 “나의 딸아, 너는 다른 밭에 줍기에 갈 것이 아니고 이것으로부터 지나갈 것이 아니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달라붙을 것이라. 그들이 수확할 밭에 너의 눈이 있으며, 너는 그녀들 뒤에 따랐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즈는 룻에 다른 밭에서 줍지 말고 자기 밭에서 주우라고 말하면서 룻에 친절하고 자비롭게 대우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고 땅에 절하고 그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주목하게 내가 당신의 눈 안에 은혜를 발견한 것입니까, 그리고 나는 외국의 여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2:10).
룻기 2장 11~12절에 “남편의 죽음 후 너의 시어머니에 한 모든 것과 너의 이전에 알지 아니한 백성에게 온 것이 나에게 알려졌노라. 야훼께서 너의 행함(work)에 보답하실(repay) 것이고, 너의 보상(wage)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와 함께 완전하나니, 너는 그의 날개 아래 피난하기에 왔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말하였기를, “나의 주여 나는 당신의 시녀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나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만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2:13).
그가 그녀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고 그녀가 먹고 배부르고 남았습니다.
룻기 2장 15~16절에 “그리고 그 곡식 단 사이에 그녀가 주울 것이고, 너희는 그녀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지(embarrass) 말 것이고. 너희가 그녀를 위해 묶음들로부터 뽑아내고 버리고 그녀가 주울 것이고, 너희는 그녀를 꾸짖지(rebuke) 말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18절에 “그리고 그녀가 들어 올리고 나서 성읍에 들어가고, 그 시어머니가 주운 것을 보았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룻기 2장 19절에 “어디에 너는 오늘 주웠고 어디에 너는 일하였느냐, 너를 주목하여 보는 그는 복을 줌을 받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대답하기를 “그 사람의 이름은 보아즈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20절에 “생존자와 사망자를 친절을 떠나지 않으신 하나님께 그가 복을 줌을 받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가 룻에 말하였기를, “그 사람은 우리에게 가까운 자며, 그는 우리의 되사는 자로부터라”라고 하였습니다(룻 2:20).
1. 나오미는 룻을 보아즈에 보내었습니다(룻 3장).
룻기 3장 1~4절에 “너에게 좋을 안식처를 너에게 찾지 않을 것이냐? 지금 자신의 소녀들과 함께 있은 보아즈는 우리의 혈족의 사람이 아니냐 오늘 밤에 그 보리들 타작마당을 까부르는(winnow) 그를 보고.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너의 옷을 너에 놓고 타작마당에 내려가며 먹기와 마시기에 그의 끝내기까지 너는 그에게 알려지지 아니할 것이고. 그것이 그의 눕는 때가 되는 때에 그가 거기 누울 그 장소를 너는 알았고 너는 들어갔고 그의 발치(feet)를 덮개를 벗겼고(uncover) 누웠으며 너의 행할 일을 그가 너에게 알릴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모아브에 살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며느리 룻과 돌아왔고 자비로운 룻은 일꾼이 떨어뜨린 이삭을 주워 그 시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 밭의 주인은 보아즈고 나오미는 룻과 보아즈를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 말하였기를,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찾아서 너를 좋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룻의 시어머니는 룻에 안정과 휴식 장소를 찾아 주고자 소망하였습니다.
나오미는 그 며느리에게 보아즈에 가까이 갈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보아즈가 어디에서 자는지 보고 그가 잠들면 옆에 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녀가 시어머니에게 말하였기를 “당신이 나에게 말씀하실 모든 것을 내가 행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3:5).
룻은 나오미의 말을 듣고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서 옆에 누웠습니다. 나오미가 룻에 말한 모든 것을 룻은 행하였습니다(룻 3:5).
룻기 3장 8절에 “밤의 중앙에 되었고 그 사람이 놀라고 그가 뒤틀었고 보라 한 여자가 그의 발치에 누워 있은(lying).”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너는 누구냐”라고 하였고, 그녀가 대답하기를 “당신의 하녀 룻이고 당신은 당신의 날개를 당신의 하녀 위에 펴 주소서, 이는 당신은 되사는 자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룻 3:9).
그가 말하였기를, “하나님께 복을 줌을 받는 너는 빈약하든 부유하든 청년들 뒤에 가지 않게 그 첫째로부터 그 뒤에 너의 친절을 좋게 하였고. 너는 두려워하지 말 것이라 그대가 말할 모두를 내가 너에게 행하겠으니 그 이유는 나의 백성(百姓)의 모든 성문이 그대가 힘의 여자임을 앎이고. 참으로 나는 되사는 자임이고 나로부터 가까운 되사는 자가 존재하노라. 그 밤 투숙하라 그 아침 안에 되었으며 만일 그가 너를 되살 것이면 좋고 만일 너를 되사기에 그가 즐거워하지 아니할 것이고 내가 너를 되샀노라 하나님께서 사시니 아침까지 누우라”라고 하였습니다(룻 3:10~13).
룻은 젊은데도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젊은이를 따르지 아니하였는데 룻은 젊은이와 결혼할 수 있었으나 시어머니에게 친절을 베푼 것입니다. 룻은 나이 든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열심히 이삭을 주웠습니다(룻 3:10).
룻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녀가 말할 모두를 그가 그녀에 행하리니 성문의 모든 자가 그녀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룻 3:11).
베들레헴은 오늘날의 큰 도시처럼 100만 명 정도 사는 도시가 아니고, 인구 2만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도시 사람들은 서로서로 잘 아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을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이 룻의 소문을 들어 안 것입니다.
2. 보아즈가 룻과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1) 장로들이 성문에 앉았습니다(룻 4:1~2).
룻기 4장 2절에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즈가 성문에 올라갔고 거기 앉고 그가 말한 되사는 자가 지나가고 그가 말하기를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고 그가 앉았습니다(룻 4:1).
룻기 4장은 룻기 이야기의 마지막 무대입니다.1) 1~12절은 보아즈가 룻과 나오미를 되살 권리를 얻은 내용입니다.2) 1~8절은 보아즈가 다른 되사는 자를 대면하는 내용입니다.3) 1~2절은 법정 회의의 개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룻 4:1, 신 25:7).4)
보아즈가 그 성읍의 장로들에서부터 열 인간을 취하였습니다(룻 4:2). 그리고 그가 말하였기를, “당신들은 여기에 앉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장로”라는 말은 늙은 자라기보다 직분을 가진 자를 가리킨 말입니다. 장로들은 단체를 다스리는 자로 법정 회의의 일부분으로 나타납니다.5)
2) 보아즈가 땅을 되사는 경위를 이야기하였습니다(룻 4:3~4).
룻기 4장 3~4절에 “우리의 형제에 있은 토지의 부분을 팔고. ‘얻어라’라고 말하기에 내가 그대의 귀를 덮개를 벗길 것을 내가 말하고, 그대가 되살 것이면 되사고 그대가 되사지 아니할 것이면 나에게 알리라 그대를 제외하고 되사기에 없음이고 그대 뒤에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그 되사는 자(closest relative)에 말하였기를, “우리의 형제에 속한 그 토지의 부분을 팔았다”라고 하였습니다(룻 4:3).
“팔았다”가 완료면 나오미가 그 토지를 언제 판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여러 학자는 이 문제로 고심하면서 엘리멜레크가 판 것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팔았다”를 완료로 보지 않고서 현재로 보기도 합니다. “팔아야 한다”(has to sell)나 “팔고 있다”(is selling)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 토지의 부분에 대한 그 권리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6)
그 땅은 오래 비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팔린 땅을 원래의 주인이 값을 치르고 되살 수 있었으며 원래의 주인에게 능력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되살 수 있었습니다.
3) 친족은 자신이 되산다고 긍정적으로 말하였습니다(룻 4:4).
룻기 4장 4절에 “내가 되살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4) 토지를 되사려면 룻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룻 4:5).
룻기 4장 5절에 “그녀의 손으로부터 그 토지를 그대의 얻기의 날 안에 그 죽은 자의 이름을 일어나게 만들기 위해 그 상속에 대해 얻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
3‘) 친족은 되사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말하였습니다(룻 4:6).
룻기 4장 6절에 “내가 나의 상속을 멸망시키지 않도록 되살 수 없으니 당신이 나의 되삼을 취하여 주시오 내가 되살 수 없소.”라고 하였습니다.
“멸망시키다”라는 단어는 우리 한국어 개역 성경에 “손해”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위태롭게 하다”, “파괴하다”, “위험하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그는 자기 상속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려고 되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무르다”라는 말은 “판값을 돌려주고 팔았던 것을 되찾는다”라는 말로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되삼”, “되찾음”(redemption)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있어 땅은 궁극에 팔릴(be sold) 것이 아니며. 만일 어떤 형제가 가난해질 것이고 그가 그의 소유로부터 판 때에 근친이 그의 형제의 판 것을 되사야만 하였습니다(레 25:23~25).
지금 가장 가까운 친족인 이 사람에게 최우선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자신이 기꺼이 땅을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룻과 결혼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듣고 그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대를 이었는데 형수와 결혼하여 태어난 아이를 형의 아들로 인정함으로 그렇게 합니다.
이 사람은 룻과 결혼하여야 한다는 조건에 그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룻이 아들을 낳는다면 자기 아들이 아니라 엘리멜레크의 아들이 됩니다. 태어난 아들에게 오히려 자신의 상속에서부터 떼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일을 가리켜 자신의 상속을 멸망시키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상속에 손해를 보지 아니하려고 사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땅만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때에는 자신이 땅을 사겠다고 하였으나, 룻과 결혼하여야만 한다는 조건을 듣고서 사지 못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 되찾음에 대해 교환에 대해 모든 말을 일어나도록 하도록 사람이 그의 샌들을 벗었고(draw off) 그의 동료에게 주었고 이것이 이스라엘 안에 그 증명(attestation)이었습니다(룻 4:7).
사거나 교환할 때에 사람이 그의 샌들을 벗어 그의 동료에게 주었으며 사거나 교환한 물품에 대하여서 다음에 어떠한 문제점이 발생하게 될 때 동료의 샌들이 그것을 샀거나 교환한 사실을 확증하는 증거물이 됩니다.
되사는 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당신에게 얻으시오”라고 하고, 그가 그의 샌들을 벗었습니다(룻 4:8).
8절에 “사다”라고 번역된 말(카나)은 “얻다”, “취득하다”를 뜻하며 되사는 자는 자신이 얻지 아니할 것이니 보아즈에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우선권을 포기하고서 보아즈에 얻을 권리를 넘긴 것입니다.
되사는 자가 그 샌들을 벗음으로써 그 권리를 양도합니다(룻 4:7-8). 친족으로서 먼저 되살 수 있는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샌들을 벗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벗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샌들을 벗음으로써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제거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샌들을 벗음으로써 “되사는 자”의 권리를 양도한 것입니다.
2') 보아즈가 땅을 되사는 사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룻기 4장 9~10절에 “당신들이 그날 증인들이니, 이는 내가 얻음이고. 그 모아브 여자 룻을 그 죽은 자의 이름을 일으키기 위해 아내에 얻었고, 당신들은 그날 증인들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되사는 자”의 자격을 얻은 그는 땅을 샀으며 룻과 결혼하였습니다.7)
1') 장로들이 성문에 모였습니다(룻 4:11~12).
룻기 4장 11절에 “그 성문 가운데 있는 그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11절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라헬과 레아처럼 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아브 여자인 룻은 그녀가 그 시어머니에게 말한 것과 같이(룻 1:16),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여자인 라헬과 레아처럼 이스라엘 여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이스라엘의 국모들처럼 주시기를 축복하였습니다.
룻기 4장 12절에 “그대의 가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씨를 통함으로써 타마르가 유다에게 낳은 아들의 가문처럼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문이 룻이 낳을 아들을 통하여 복된 가문이 되라고 복을 빌었고, 오늘날의 우리는 이 축복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을 자를 축복할 때 그 축복처럼 그가 복을 받게 됩니다.
3. 룻의 결혼으로 가문이 회복됩니다(룻 4:13~21).8)
1) 룻이 아들을 낳았습니다(룻 4:13).
룻기 4장 13절에 “그가 룻을 취하였으며 그녀가 그에게 아내가 되고 그가 그녀에 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임신을 주시고 아들을 낳게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4장 13~21절은 결론으로 그 가문이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9)
룻기 4장 13~17절은 오베드의 탄생을 기록한 끝맺음입니다.10)
하나님께서 “친절”과 “사랑”을 기적을 일으키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친절을 보일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친절을 보이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을 보이실 때 행복한 결말이 주어질 것입니다. 해피엔딩은 룻의 친절과 그녀를 향한 친절이 모두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2) 여자들이 아기로 인해 하나님을 송축하고 룻을 칭송합니다.
룻기 4장 14~15절에 “하나님께서는 되사는 자를 그치지 아니하시고. 그는 너에게 영혼을 돌아오게 하고 너의 노령을 부양하는 자가 되었으니 너의 며느리가 아들들의 일곱보다 더 좋은 그녀가 그를 낳았음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친척의 땅이 팔렸을 때 그것을 대신 되살 수 있었습니다(레 25:25).11)
“되사는 자”는 히브리어로 “고엘”로, 친척의 땅을 되사는 자입니다.12)
3) 나오미가 그 젊은이에게 믿는 여자가 되었습니다(룻 4:16).
룻기 4장 16절에 “나오미가 젊은이를 취하고 그를 그녀의 품에 두고 그녀가 그에게 믿는 여자에게 되었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법적 절차로 해석한 사실을 타당치 못하게 만드는 것은 본문의 성격이 행복으로의 그녀의 회복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입니다.13)
룻은 자기가 포기한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았습니다.14)
“믿는”이라는 말은 아기를 “기르는 자”, “돌보는 자”라는 말로 쓰여,15) 나오미가 그 아이의 “기르는 자” 또는 “돌보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4) 그 이웃 여자들이 아기의 이름을 지었습니다(룻 4:17).
룻기 4장 17절에 “그 이웃 여자들이 그의 이름을 ‘오베드’라고 부르니, 그는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라.”라고 하였습니다.
5)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중대한 족보가 기록되었습니다.
룻기 4장 18-22절에 “그리고 이것들이 페레츠의 역사(들이라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고. 헤츠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다브를 낳며. 암미나다브는 나흐숀을 낳게 하였으며, 나흐숀은 살마를 낳게 하였으며. 살몬은 보아즈를 낳게 만들었으며, 보아즈는 오베드를 낳게 만들었으며. 오베드는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되살 수 있는 권리는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최우선권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포기할 때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에게 권리가 이양됩니다(룻 3:13).
가까운 친척은 상속을 멸망시키지 않기 위해 되살 수 없다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보아즈는 그 상속의 일부를 파괴할 위험을 껴안고 롯과 결혼해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일부에 손해를 볼까 봐 움켜쥐고 있다면,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 변화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죽으면 죽을 것입니다”라는 각오로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 때,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상속을 멸망시킬까 현실에 안주하는 친척 같은 자가 되지 않고 “죽으면 죽을 것입니다”라는 각오로 복된 기회를 잡는 복된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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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