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2016년생 도담이
오경희
일일이 손을 넣어 옷의 두께와 촉감을 확인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한 일이다.
몇 해 전, 지인 댁 혼사에 다녀오던 날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아이들보다 앞질러 나온 녀석이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방 안을 보니 더욱더 가관이었다. 작은 울타리, 방석, 물통이 딸린 사료 그릇, 녀석의 몸길이만 한 작은 페트병과 공들이 성급히 제자리를 찾는 중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는 아들에게 종주먹을 쥐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귓등으로 흘렸던 아들의 ‘개타령’이 눈앞에 벌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애완동물을 소재로 하는 TV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때였다.
“엄마, 우리도 닥스훈트 한 마리 키워 볼까요? 연예인 〇〇〇가 키우는데, 애교가 장난이 아니래요. 저것 좀 보세요.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는 모습이 엄청 귀엽지요?”
하며 발장구까지 쳤다. 강아지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꿈도 꾸지 말라고 어깃장을 놓았던 터였다. 설마 했었다.
아이들을 향해 아랫입술을 깨물어 보였지만 소용없었다. 젖떼기 무섭게 어미 품을 떠나왔을 성싶은 조막만 한 녀석이 쪼르륵 달려와 내게 안기는 게 아닌가.
“철부지도 아니고, 결국 네 엄마 일인데 어쩌려고….”
혀를 끌끌 차는 남편 목소리가 한동안 안방을 넘나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은 물론, 목욕도 시키고 모두 책임지겠으니 맡겨만 달라는 아들의 그 언약을 믿기로 했다. 2016년생 도담이는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짧은 다리에 긴 허리, 다부지게 생긴 앞발과 길게 늘어뜨린 귀, 검정 베이스에 갈색 포인트가 매력인 ‘블랙 탄 닥스훈트’다.
아들의 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많던 아침잠에서 스스로 일어나 도담이와 산책하러 다니고, 때맞춰 목욕도 시켰다. 헤어드라이어기 온도를 조절해 가며 녀석의 짧은 털까지 말끔하게 빗겨주었다. 주기적으로 예방접종을 챙기고 애견카페에도 가끔 데리고 다녔다. 여느 사람 옷값에 버금가는 강아지 옷을 사 입히는 아들을 보며
“지극정성이다. 나중에 네 엄마 늙어지면 어떻게 하는지 봐야지. 아프면 병원 가세요.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했더니, 무슨 그런 어이없는 질투냐며 도담이랑 커플룩이라도 한 벌 맞춰 주겠노라 너스레를 떨었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허락만 해주면 다 알아서 하겠다더니, 슬슬 내 차지가 되었다. 이렇게 될 줄 짐작이야 했지만, 아들의 허술한 심지가 얄밉다. 여름 겨울 없이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느라 도시가스 계량기는 한참을 더 돌고, 헤어드라이어기는 더운 바람을 줄곧 불어댔다. 꼬리가 올라가는 우리 집 에너지 검침 그래프에 자꾸만 신경 쓰인다.
빨간 가죽 목걸이에 이름을 새겨 단 지 4년이 훌쩍 지났다. 덩치도 커지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지만, 꾀도 예사롭지 않다. 하루 두 번 산책 시간에만 배변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사람의 눈치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삐치기도 잘한다. 커피 내리는 순간은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향을 기억하는지 끓어오르는 물소리를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커피 마시는 시간엔 언제나 아기처럼 내 품에 안겨 눈을 맞추려 한다. 매번 이 녀석과의 전생이 궁금해지는 찰나이지만, ‘개통령’을 모르는 이들은 아마 기겁할 일인지도 모른다.
도담이를 만나기 전에는 나 또한 그랬다.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강아지의 배변을 아무렇잖게 비닐에 감싸 쥐는 사람을 보면 나는 소름부터 털어냈다.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를 보면 참 얄궂어지는 세상이라 싶었다. 풀숲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녀석들과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행동이 차마 이해되지 않았다. 뒷짐 진 어르신의 못마땅한 시선과 마주칠 때면 실없이 거들기도 했던 터였다.
“자기들 부모한테나 잘하지. 강아지 똥은 저리 거두면서 시어미 시아비는 요양원에 눕혀놓는 세상이야. 말세여 말세….”
온통 개 세상이라며 노여워하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그날도 노인정 장기판을 넘나들었을 터이다.
‘내로남불’의 드라마에 나도 이제 조연급은 된 듯하다. 겪어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어쩌랴. 길가에 실례를 한 녀석의 배변은 당연히 치워야 하고, 씻기고 닦아줘야 한다. 같이 걸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안고 업고 태울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강아지 유치원이 생겨나고 전문용품점과 장례식장도 곳곳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반려동물의 자리매김이 커졌다고나 할까. 회사 임원이 키우던 개의 장례식에 부의금을 전하고 왔다던 웹툰 한 페이지에 생각이 엉클어진다.
공원 산책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목줄을 한 강아지에게 아이들은 이끌리고 새댁은 옹알이를 건네며 간다. 개모차를 앞세운 할머니는 단풍잎을 주워 강아지 코끝에 가져다 대며
“봐라. 이쁘재?”
한다. 하나같이 다정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내남없이 밥때를 제외하면 식구들이 얼굴 마주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다들 제 할 일에 묶이고 각자 인터넷 세상으로 스며드느라, 서로 나누고 싶은 언어는 자주 날개를 접는다. 잊지 않기 위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말동무 하나씩 곁에 두었는가 싶다.
오늘도 퇴근길에 강아지용품점에 들렀다. 지난번보다 더 다채로워진 것 같은 먹거리들 속에서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이거 어때? 가격도 저렴하고 따뜻할 것 같은데….”
남편의 손엔 핸드메이드 글씨가 선명한 노란 옷 한 벌이 들려있었다.
(《수필문예》 제19집, 2020.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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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 2014년《수필과비평》등단
· 수필문예회,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회원
· 2015년 영남일보전국주부수필 가작, 2016년대구은행주부백일장 입상
· 대구수필문예대학 17기 수료
· beauy78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