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독서가 외 1편
김정미
비스듬해지는 건 한쪽을 편애하는 습관이야
기어코 삐딱해지고야 마는
너란 뼈대,
그렇다고 한 번도 내가 내 쪽으로 넘어진 적은 없다
트렁크를 끌고 현관을 나섰고
복도 끝엔 이명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었다
붉거나 발칙해지려는 순간들
발각과 들키는 일은 다른 일일까.
우리는 고작 그 두 개의 일을 주고받았을까.
너는 밀반입된 계절이었어, 알고 있어?
어린 독서가의 자세
한 마음에 둘이 숨기에는 너무 비좁지
표정은 상대에게 맡겨놓았다가
그때그때 서로를 찾아 쓴다는 것
여름엔 숨겨둔, 숨겨둘 장소가 너무 많았어.
사람들은 틈이 나면
먼발치 날아가는 몇 마리 새처럼
묵은 관계를 탁탁 털어 말리고 싶다고들 하지.
미처 말리지 못한 몇 개의 사연에 노을이 걸려있었다
가까울수록 멀고 멀수록 가깝다는 일을
주머니가 미어지도록 짓무른 것들을 넣고 나서야
우리는 상하기 쉬운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삼킨 눈물 같은 건
각자의 심장으로 말려야 해
꺾어 신은 신발을 힘껏 던졌고
거기 무해한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여름이었고
맨발이 더 따뜻했다
발속에서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동백꽃은
소실점 하나 새처럼 날아간다
날아가 종일 바람을 헤엄쳐 다니다
깃털로 살면 그 뿐
그늘을 들락거리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텅 비게 했으니
이미 유정의 사랑 또한 심장에서 으깨졌으니
동백꽃은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것
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봄을 노랗게 맞불로 놓은 것
이건 너의 계절이고 저건 나의 시작이었으면 해
정성이 상하는 냄새
누가 더 많이 서로를 한 잎 씩 떼어낼 수 있을까
누가 더 많은 바람에 흔들려 봤는지 줄기를 가늠하는 식물의 방식
봄은 피고 지는 것들의 영역이었으므로
유정의 사랑은 늘 길 옆이었고
뿔뿔이 흩어진 불화하는 사랑이 빼곡하다
누군들 지는 순간을 평생으로 두고 싶었을까
김정미_2015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베르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가 있음. 2017년 춘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