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잔뜩 찌푸린 하늘에선, 오후로 접어들자 어김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강릉방향 용인휴게소에서 생수를 사들고 차에 오를 때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아들과 많이 다투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와 놀러가자는 우리부부 사이에서 한참을 징징거리던 아이는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말이 없어졌다. 놀러갈 줄도 모르고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겠지. 아무런 장난감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이번 나들이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렇게 차 안 분위기가 무거울 때, 보슬 보슬 내리는 비는 더 얄밉다. 오려면 시원하게 쫙쫙 쏟아질 것이지 와이퍼의 뻑뻑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찔끔 내리는 비는 오히려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한다.
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고 오로지 밖만 내다본다. 아내도 나름대로 삐쳐서 얼굴이 굳어있다. 아! 비도 짜증나게 내리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보다! 하지만 서울을 향해 밀려오는 차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어댔다. 여기서 차를 돌려 집으로 가면 밀리는 도로 때문에 분명 더 짜증이 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와중에도 대관령 고개에 닿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기할 수가!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는 길에,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곳은 아예 비가 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느새 따뜻한 햇살이 비추자 차 안의 분위기도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현남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맨 먼저 지경리해수욕장에 닿았다. 막상 바다를 바라보니 여기까지 오기 전에 있었던 모든 상황이 다 해결된듯하다. 어느새 아들과 아내는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 지경리해수욕장, 철조망만 없다면 더 좋을 텐데.
오후 5시. 역시 겨울과 달리 아직 환하다. 겨울에는 이 시간이면 주변이 어두워져서 아쉬웠었는데 이젠 낮이 길어서 참 좋다. 주문진에서 양양방향으로 가다보면 남애항이 있다. 이곳은 이미 널리 알려진 명소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야 이곳을 찾게 되었다. 매번 이 길을 달릴 때, 동산 위로 삐죽 올라온 소나무의 모습이 멋있어 저곳이 어딜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남애항이었다.
처음 이정표를 놓쳐 미처 진입을 하지 못했다. 유턴할 생각을 하고 달리는데 다시 이정표가 나왔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아래로 내려가니 비릿한 짠 내 나는 항구가 우릴 맞는다.
▲ 남애항
강원도에는 3대 미항이라고 손꼽히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다. 초곡항, 심곡항 그리고 바로 이곳 남애항이 그중 하나다. 또 이곳은 양양군에서 가장 큰 항구라고 한다. 항구를 중심으로 남애1~4리 4개의 포구 마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동해의 추암과 함께 멋진 해돋이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로 이틀째 파도 때문에 배가 출항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오징어 값이 어제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10마리 만 원하던 것이 3마리에 만 원으로 올랐다고 횟집 상인은 말한다.
▲ 남애항
그래서 그런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항구에 묶여있는 배들은 힘이 없어 보인다. 그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파도에 따라 너울댈 뿐이다. 일할 때 일을 못해서, 아니 일을 하고 싶은데 못해서 저리 힘이 없어 보이나 보다.
항구에는 두 개의 등대가 마주보고 서 있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그것이다. 그것 참 희한하다. 왜 등대가 한 항구에 두 개씩이나 있는 것일까? 길을 밝혀주기에는 하나보다 두 개가 더 좋을 것이다. 이런 기능상의 문제뿐 아니라 바라보기에도 좋으니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그저 좋다. 들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나가 항구 뒤쪽에 있는 작은 동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그곳에 오르면 항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올 듯하다.
▲ 성황당 오르는 길
뒷동산을 오르는 계단에서 바라보니 굵은 소나무가 기울게 자란 모습이 보인다. 바로 저 소나무가 멀리서 바라봤을 때, 마치 금방 자다 깬 사람의 머리처럼 그렇게 삐쭉 올라온 나무다. 역시 저 모습은 멀리서 바라봐야 멋지다.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니 잘 모르겠다.
▲ 성황당
계단의 끝에는 성황당이 항구를 바라보고 서있다. 이곳 남애 어업인들은 풍어와 무사고, 마을 발전을 기원하며 이곳에서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두 차례씩 성황제를 올려왔다고 한다. 지금은 그 뒤로 정자를 조성중이다. 동네 아이들은 공사가 한참중인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다. 그렇게 동산 위는 생각보다 좁았다. 성황당과 공사 중인 정자, 그리고 아까 얘기한 소나무가 주위를 다 차지하고 있다.
▲ 동산에서 바라본 남애항
다시 길을 내려와 항구에 세워둔 차를 몰고 ‘아들의 바다’를 향해 달렸다. 아들이 ‘자신의 바다’라고 말하는 곳은 바로‘잔교리 해수욕장’이다. 경찰전적비가 있고, 어린이 교통 공원이 있는 곳이 그곳이다.
아마 아들이 처음 기억하는 바다가 이곳일 것이다. 막 앉기 시작했을 때 함께 왔던 곳이니까 기억에 뚜렷하게 남나보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젠 더 이상 아들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했다. 더 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 잔교리 해수욕장의 교통공원
▲ 잔교리 해수욕장
교통공원 안에서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녔다. 자신이 버스도 되고, 택시도 되고, 트럭도 되서 도로를 달린다. 우리는 버스 승객이 됐다가, 택시 손님도 됐다가, 지나가는 행인이 되기도 했다.
아들은 또 민박집에서 자고 가자고 조른다. 내일 출근할 생각에 머리를 흔들어 보이지만 조금씩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집과 멀어져 속초를 향해 달렸다.
근접 촬영된 자동차 바퀴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곧 이어 바퀴가 멈추면서 파열음이 방파제를 따라 길게 울려 퍼진다. 차에서 내린 부하가 방파제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동수(장동건)에게 다가가면 동수는 다음과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한다.
"조오련과 거북이가 수영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 것 같노?"
▲ 대변항의 전경
이 장면이 촬영된 장소가 바로 기장군 대변항의 동쪽 방파제이다. 대변항은 영화 <친구> 덕택에 일약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그전부터 대변항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대변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멸치회'였다.
▲ 밀려드는 차량들
기장 대변항이 유독 멸치로 유명한 것은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량의 70%를 차지하는 대규모 물량에 기인한다. 특히 대변항에서 유통되는 멸치는 잔멸치가 아니라 손가락 굵기의 젓갈용 멸치를 말한다.
평상시 멸치는 젓갈을 담는 게 주이지만, 봄철에 잡히는 싱싱한 굵은 멸치는 갖은 양념과 야채를 버무려 회로 먹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회 맛 자체로 본다면 일품은 아니다. 멸치는 엄밀히 말해 횟감용으로 쓰기엔 좀 부족한 고기임에 틀림없다. 멸치나 고등어, 전갱이, 꽁치 같은 생선은 성질이 급해 물 위로 나오면 빨리 죽기 때문에 활어 상태로 횟감을 만들기엔 적당치 않은 고기인 것이다. 또한 실제 고기 자체가 별로 탄력이 없다.
▲ 바다의 푸른 빛이 정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변항은 멸치회로 유명하다. 멸치회는 고기 자체의 육향보다는 멸치회와 버무려서 나오는 야채와 양념의 향을 즐기는 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명성만 듣고 군침을 흘리며 맛보러 왔다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탄력이라고는 전혀 없고 아이스크림처럼 금방 흐늘거리는 맛이다) 아주 독특한 회를 맛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된다.
다만 흐늘거리는 멸치를 그래도 인내심 있게 씹다 보면(?) 담백한 향이 어느새 입안에 고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변항의 멸치회는 투박한 질그릇에 담긴 민중의 향인 것이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만 오천 원 정도면 두세 사람 넉넉히 먹는다.
▲ 먹거리가 풍성하다
기장 대변항은 먼 하늘에서 보면 마치 항아리처럼 생긴 모양이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는 항구는 멸치젓을 사러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일년 열두 달 늘 풍성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 나는 저 상위의 멸치회이고 싶다.
또한 대변항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멸치털이' 작업이다. 촘촘한 그물코에 걸린 멸치를 작업을 주로 아침에 어민들이 그물 한쪽 끝을 서로 당기면서 털어낸다. 털어낸 그물 밑에는 다소 상품성이 떨어지는 멸치들이 수북이 쌓이기 마련이다.
인근 마을의 아낙네들은 그저 바가지 하나만 가지고 와서 쓸어 담기만 하면 그대로 자기 것이 되었다. 일종의 '보리이삭 줍기'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장면이지 않은가? 그리고 어민들이 멸치를 털면서 흥얼거리는 노래 가락과 그들의 힘찬 팔뚝질은 약동과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한 마디로 대변항은 늘 출렁이는 생명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대변항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송정해수욕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20여분 정도 가면 대변항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른 새벽, 이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천천히 가다보면 신선한 바다향이 전신을 감돌고, 수평선을 희롱하듯 아주 은밀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미소를 접하게 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바다에 가장 근접한 사찰로 유명한 해동 용궁사를 도중에 구경할 수 있다. 사월 초파일에 해동 용궁사에 가면 휘황한 등불이 옻 빛깔의 바다에 반사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가히 환상적이다.
▲ 상자 안에 담긴 멸치의 꿈은 무엇일까
다른 길은 송정해수욕장 입구에서 기장군청으로 방향을 틀어 10분 정도 가다가 대변항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죽 내려가면 된다.
대변항의 또 다른 별미 중 하나는 가을에 맛 볼 수 있는 고등어회와 갈치회인데, 역시 입안에 감도는 담백한 향을 즐길 수 있다. 만일 멸치회와 고등어회, 갈치 회를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봄보다는 가을에 오는 것이 훨씬 낫다.
▲ 풍성하게 쌓인 멸치젓갈, 입맛이 돈다.
김영삼씨의 전성 시절에 멸치 어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김홍조 씨가 아들의 지인들에게 최상품의 멸치를 한 상자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 멸치가 이른바 '상도동 멸치'라 해서 정재계의 상류 사회에서 회자되었다고 한다.
상류사회의 귀족들이 이 고급 멸치에 배어 있는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알고나 있는지 참 궁금한 일이다. 이 귀족 멸치가 제 아무리 아름다운 자태와 맛을 뽐내더라도 나에겐 멸치털이하면서 떨어진 하품 멸치의 순수한 향이 더욱 정겹다.
외지인들에겐 부산은 '바다'라는 단어와 동격으로 사용된다. 바다가 보고 싶어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장거리 운전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밤을 친구 삼아 열심히 달려 온 그들의 피로를 행복으로 바꿔주는 곳이 어딜까. 아마도 부산 해변길의 백미로 꼽힌다는 기장 해변로가 1순위가 될 것 같다.
기장 해변로 언덕에 자리잡은 영화 '친구' 촬영지. 확 트인 바다와 나무벤치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송정에서 대변,죽성을 거쳐 일광,임랑으로 이어지는 기장 해변로는 호젓한 해송숲,포구의 소박함,해안 절벽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따금 바람을 타고 와 코를 간지럽히는 갯내음에 얼굴 속 미소까지 끌어내는 그곳으로 떠나보자.
들머리는 송정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해운대서 송정삼거리로 가기 전 작은 골목길로 우회전을 하면 송정해수욕장의 오른쪽 끝부터 제대로 된 바닷가 길을 탈 수 있다. 골목길을 놓쳤다면 송정해수욕장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으로 들어가서 해변로를 시작해도 좋다.
음식점과 논밭 사이를 여유롭게 달리다보면 해동 용궁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해안 절벽에 자리잡은 절이라는 이유로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 불이문 아래로 바닷물이 드나들고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독경소리가 매력적인 곳이다. 주말이면 놀이공원을 방불케 할 만큼 인파가 몰려 요란한 곳을 싫어하는 여행객이라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용궁사 위편 절벽 일대는 시랑대라는 유명한 유적지이다. 춘원 이광수가 '바다와 청산이 함께하고 청풍명월이 여기인가 하노라'라고 칭찬할 만큼 빼어난 풍경을 가졌지만 용궁사 입구가 막고 있고 군사보호구역으로까지 지정돼 접근이 쉽지는 않다.
용궁사쪽으로 빠지지 말고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을 돌아가며 특이한 모양의 카페가 등장한다. 대형 신발 모양의 카페부터 만화 속에나 등장할 듯한 스머프 집까지 눈요기가 즐거운 공간이다.
이곳을 지나면 기장 해변길의 하이라이트라는 대변항부터 죽성 길이 시작된다. 대변항의 특산물을 알리는 생멸치회 간판이 즐비하고 수산물을 사러 나온 주부들의 웃음이 반가운 풍경이다. 갈매기들의 저공비행과 차 바로 아래로 펼쳐진 바닷가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배 주위로 나란히 줄지어 앉은 갈매기 가족을 만나는 것도 이곳만의 즐거운 장면이다.
방파제를 지나면 확 트인 도로가 나온다. 언덕으로 접어들 무렵 부산을 알리는데 '공'을 세웠다는 영화 '친구'촬영지가 자리잡고 있다. 표지판에 붙은 익숙한 영화 속 장면과 실제 바닷가를 비교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바다로 열려있는 작은 절벽에 몇 개의 소박한 나무 벤치가 있어 조용히 바다 조망을 하기 좋다. 왼쪽엔 해안 절벽도 키 자랑을 하고 있어 이곳을 행복한 바닷가 나들이의 첫번째 쉼터로 정할 만하다.
속도를 조금 늦춰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해변길로 접어든다. 폐허가 된 해안초소 지붕엔 푸른 이끼가 세월의 깊이를 전해주고 야생화,분재를 파는 카페도 반갑기만 하다. 해안언덕을 내려와 커브를 돌면 해송의 푸름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절경이 등장하니 두 번째 여유로움을 즐기도록 하자.
이제 죽성마을로 들어설 차례. 기장 특유의 먹거리인 짚불곰장어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죽성 마을이 적당할 듯싶다. 죽성 바닷가까지 돌아봤다면 잠깐 해변길과 작별인사를 하자. 월전수퍼 옆으로 좌회전한 후 길 따라 돌아가면 신앙촌 자율방범대 간판을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죽성초등학교를 만날 수 있다. 학교를 지나 삼거리서 양어장으로 우회전하면 산 밑 청록색 원두막을 발견한다. 여기가 죽성리 왜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5분정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라서면 넓은 잔디밭이 아름다운 석축에 도착한다. 얼마 남지 않은 벚꽃과 석축 위로 한가로이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한가로움을 자랑한다. 성 위에 올라서니 기장의 바닷가가 한눈에 보여 생각지 못한 보너스를 받는 기분이다. 넓은 잔디밭은 아이들이 뛰기도 좋아 가족 소풍코스로 죽성리 왜성을 적극 추천해본다.
다시 신앙촌 입구로 나와 기장군청을 지나 14번 국도에서 31번 일광쪽으로 빠지면 임랑까지 새로운 해변길을 달릴 수 있다. 대변~죽성 해안길과는 또 다른 인상을 전해주는 곳. 오른쪽으로 야생화,향토 염색,공예품,청국장,골동품 가게까지 소박한 볼거리가 눈길을 끈다.
중간 중간 바다 마을로 내려서는 골목길이 있어 바닷가 마을과 도로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맛이 즐거움을 더한다.
고리원자력발전소까지 달리면 부산 바닷가길 드라이브가 마무리되지만 아쉽다 싶으면 간절곶까지 달려보는 것도 욕심낼 만한 바닷가길 여행이 될 것이다.
기장 8경 금빛 은빛 …달빛따라 흥겹다
기장 8경은 기장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8곳을 말한다. 기장 1경은 달음산이다. 예부터 천명의 성인이 나오고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다하여 명산중에 명산으로 꼽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새벽빛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싱싱한 해산물이 항상 풍부한 대변항과 거북이 물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지녔다는 죽도가 2경. 백설같은 백사장이 1㎞ 넘게 깔려있고 달이 뜨면 달이 묻히고 뱃놀이를 즐겼다는 임랑해수욕장도 8경의 하나로 꼽힌다. 금빛 모래로 알려진 일광해수욕장과 이미 너무 유명한 장안사도 8경에 속한다.
이밖에 단풍명소로서 사시사철 계곡의 경치가 좋아 금수동으로 불리는 불광산 계곡과 철마면 웅천리 웅천상류에 있는 홍연폭포도 빼놓을 수 없는 기장의 장관이다. 정관면 매락리에 있는 거대한 매바위인 소학대는 백척이 넘는 층암이 깎아 세운 듯 솟아 있어 멋을 더하는 기장의 경치. 기장 8경은 아니지만 우리 선비들의 단아한 멋을 잘 나타낸 기장향교도 기장 여행지에서 빼면 아쉽다.
[팔방미어 멸치] 테마임도 가족 나들이로 '딱'청정한 공기 마셔요
숲으로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도심서 몇 걸음만 걸으면 청정의 공기를 접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장 만화리 테마임도는 분명 축복의 수준이 될 듯싶다.
부산에서 출발할 경우 반송고개를 넘어 첫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면 이진테마빌 아파트를 만난다. 아파트를 지나 고속도로 공사장 아랫길로 내려서 직진하면 테마임도가 시작된다. 만화리에서 철마면 웅천리 간 10㎞ 산길이 아기자기한 소풍공원으로 펼쳐지는 것.
약수터,화원,단풍나무,동백길,벚꽃길,정자,연못,대나무숲,적송숲,장승,해송숲,체육공원 등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산길이 전혀 지겹지 않다. 비비추 섬초롱꽃 원추리 참나무 등의 군락지엔 친절하게도 나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판까지 달려 있다. 샘물을 한잔 마시고 하늘을 보고 쉴 수 있는 나무정자에선 여유로움이 절로 쑥 들어오는 것 같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등산로가 개설돼 있어 제대로 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즉석으로 등산에 나설 수도 있다.
겨울 바다, 겨울바람. 여름동안 몰렸던 인파가 사라진, 황량하게 펼쳐진 백사장과 그 위를 ‘휘이익’ 소리를 내며 스쳐가는 매서운 바람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겨울에 찾은 강구항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오히려 더 부산스럽고 따스함이 넘쳐난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항.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고 여기는 이도 많을 터. 몇 년 전 방영됐던 MBC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극중 선장 박재천(최불암 분)의 꿈과 희망이 담긴 삶의 터전으로 꽤나 유명해진 곳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 강구항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주인공들은 잊혀졌어도 이 곳 사람들은 여전히 강구항에서 배를 타고 그물질을 하며 희망을 낚는다. 강구교를 지나면서부터 풍기는 비릿한 생선 내음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을 군데군데 남겨진 적산가옥(일제시대 때 지어진 목조 기와집)들에게선 묘한 감정도 인다. 강구항은 욕심을 내어서라도 이른 아침에 찾는 것이 좋다. 해 뜨기 전부터 시작해서 오전 9시까지 ‘탕 탕 탕’ 활기찬 엔진 소리를 내며 귀항하는 고깃배의 행렬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배를 선두로 하여, 고등어, 청어배가 따라 들어오면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전국에서 활어차들이 몰려온다. 강구항의 하루는 시작부터 분주하다. 내일의 출어를 위해 배들이 잠시 정박한 사이 동네 갈매기들이 뱃머리를 차지하고, 포구 주변 어시장과 풍물거리의 횟집들도 손님 맞을 차비에 바빠진다. 오징어, 광어, 도다리 등 풍부한 해산물의 집산지로 각양각색의 입맛을 가진 관광객들을 만족시켜주는 강구항.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 사이엔 강구항의 유명세에 대적할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니 바로 ‘대게’란 놈이다. 미인 뺨칠 만한 길고 늘씬한 다리를 가진 대게. 저마다 원조마을임을 내세우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열을 올리건만, 어쨌든 강구를 대표할 만한 유명인사가 대게임은 틀림없다. 요즘 한창 제철인 대게 맛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강구항은 평일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털게, 북한산 게, 러시아산 게, 홍게. 많고 많은 게 중에서도 대게를 으뜸으로 치는 건 그 쫄깃쫄깃하고 꽉 찬 속살 때문일까. 좌판 위에 올려진 대게를 장난스럽게 들어올리는 아이, 무섭다고 울어대는 아이, 값을 흥정하며 좀더 알찬 놈으로 고르는 어른. 모두모두 재미있는 구경거리이다. “대게는 배가 하얗고요, 홍게는 빨간 기라요. 대게가 크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이다아닌교. 대나무처럼 다리가 곧다고 해서 그래 부른다 아닌교. 요쪽 놈은 털게인데, 생긴 게 좀 못생겼지요?” 워낙 많은 매체에서 취재를 해 가는 터라 이 곳 사람 모두가 게 전문가가 다 됐다. 4백m정도 되는 풍물거리에 쭈욱 늘어선 80여군데의 대게 전문식당에서는 쉴 새 없이 대게를 쪄 내고, 찜통에서 올라오는 짭조름한 냄새를 담은 연기는 거리를 온통 하얗게 덮어 버린다.
시끌시끌한 어시장에서 조금 벗어나 본다. 바닷가를 따라 난 구불구불한 해안도로에 서면 이내 가슴이 탁 트인다. 조금만 더 가다보면 여러 가지 눈요기 거리가 있어 즐겁다. 쪽빛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들. 바다 바람을 맞으며 잘 말라가는 오징어피데기,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처럼 마주선 두 개의 등대. 눈이 어지럽도록 머리 위를 맴도는 갈매기 떼.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 모두가 강구항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여느 항구, 여느 바닷가와 별반 차이 없는 풍경이라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시사철 찾을 때마다 새로운 눈요기 거리와 먹을거리를 주는 강구항은 배낭하나에 간단한 짐을 꾸려 쉬이 나설 수 있는 부담 없는 여행지이다. 바다가 있어 좋고, 맘에 담아 올 추억이 있어 더욱 좋은 길. 강구로 향하는 길이다.
들러보세요
● 영덕 해맞이 공원 강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높은 바닷가 절벽 위의 해맞이 공원을 만난다. 등대도 만들어 놓았고, 도로에서 바다까지 내려가는 산책길도 마련되어 있다. 간이 포장마차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일도 잊지 말자.
● 경보화석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화석박물관. 제1전시관에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모은 시대별, 지역별 화석 약 2천여 점, 제2전시관에는 1백30여 점의 식물화석 그리고 특별전시관에는 세계 24개국 지폐가 전시되어 있다. 위치 | 경북 영덕군 남정면 원척리 경보휴게소 2, 3층 전화 | 054-732-8655
식목일에는 하루 종일 바빴습니다. 한식을 맞아 선산에도 다녀왔고 고장난 차를 고치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인터넷을 보았을 때 강원도 산불 소식을 접했습니다. 많은 산림이 불탔고 더욱이 낙산사까지 불에 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 낙산사 경내에 있던 낙산배 시조목입니다. 이 배나무 역시 화재에 피해를 보았겠지요.
낙산사는 저에게 참 많은 추억이 있는 절집입니다. 고등학교의 수학여행 때 처음 들른 그곳은 바다와 접한 절집의 모습이 아름답게 제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울창한 노송들이 어울린 절집 풍경도 좋았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의상대의 모습도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에 반해 강원도를 찾을 때마다 자주 들렀습니다.
▲ 천왕문입니다. 주변의 아름드리 벚나무와 참 잘 어울렸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가족여행으로도 많이 찾았습니다. 지난해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던 10월 24일에도 가족이 함께 그곳을 찾았었습니다. 단풍이 잘 든 나무들과 어울린 낙산사의 모습 또한 새로운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때 여행에서는 낙산사에서 일출도 볼 수 있어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 낙산사라는 사액이 걸려 있는 조계문입니다. 천왕문을 지나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에 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절집이 이번 화재로 사라졌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도 크게 안타까웠고, 슬펐습니다. 낙산사를 관리하시는 분들이나 그곳 불자분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슬픔이겠지만, 우리 가족 역시 소중한 추억도 함께 불 타버린 느낌입니다. 낙산사를 한번이라도 가신 분이라면 저와 마찬가지 생각이겠지요?
▲ 원통보전입니다. 대웅전의 역할을 하는 곳이지요.
낙산사 화재 소식을 들으며 낙산사를 찍었던 지난 여행의 앨범을 돌아보았습니다. 앨범에는 아직 아름다운 가을 풍경으로 낙산사의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 원통보전에서 들어온 길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아기자기한 가람 배치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연과 잘 어울린 사진의 모습들은 앞으로 50년은 더 지나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100년이 지나도 못 볼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의 모습을 다시 되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건조한 날이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낙산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회상하며 다시 한번 산불 조심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 담쟁이덩쿨이 잘 어울린 담장입니다.
▲ 원통보전 뒷뜰과 화계, 그리고 담장
▲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보살상으로 연결되는 오솔길입니다. 이 오솔길 앞쪽으로 보타전이 있습니다.
▲ 해수관음보살상 앞에서 바라본 일출입니다.
낙산사의 화재에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아픈 마음을 함께 달래기 위해 사진 몇 장 올립니다.
올봄 독도여행 제한 철폐 조치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단연 울릉도이다. 독도를 가는 모든 배편의 출항지가 울릉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일치기 독도관광이 불가능해 울릉도는 독도관광의 전초기지이자 여정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 바람 많은 울릉도 해안도로에서는 동해의 장쾌한 파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행남등대
게다가 여행의 목적지인 독도 여행이 상륙 인원 제한(1일 140명)에, 당일 인근 해역의 기상여건 등으로 아무때나 가능한 건 아니어서 울릉도 관광은 선택이 아닌 필수 코스가 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울릉도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관광의 보고라는 점. 독도 탐방이 여의치 않거나, 육지와의 뱃길이 끊겨도 충분히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는다. 해안 절경을 따라 가는 '섬일주', 최고의 트레킹코스로 꼽히는 '행남등대 가는 길' 등 놓쳐서는 안 될 울릉도의 명소를 소개한다.
▶한국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해안 일주도로
울릉도 일주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유람선을 타거나(2시간 소요) 해안선 육로를 따라 절경을 감상하는 육로 일주여행(39.8㎞)이 그것. 울릉도의 해안도로는 동쪽 내수전에서 시계 바늘 진행 방향으로 돌아 섬목도선장에서 끝이 난다.
섬목에서 내수전까지 4.4㎞는 미개통구간.
내수전에서 육로를 따라 20여분 정도 이동하면 저동항이 나선다. 저동항은 울릉도 오징어잡이배의 전진 기지로 어둠이 내리면 집어등을 밝히고 선 오징어, 한치잡이 배가 마치 울릉도 외곽 경비에라도 나선듯 장관을 이룬다. 이른 새벽 저동항을 찾으면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선의 행렬 사이로 장쾌한 일출을 맞볼 수 있다. 저동항 부둣가 횟집촌은 울릉도 토박이들 사이 가장 저렴하게 싱싱한 회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저동항에서 택시로 5분 정도 고갯길을 넘어서면 '울릉도의 명동' 도동항을 만난다. 여관, 식당, 다방, 기념품 가게 등 울릉도의 상권이 집약된 곳이자 울릉도 관광의 시작과 끝을 맺는 곳이다.
포구 광장부터 뒷산쪽으로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도동 거리는 워낙 비좁은 곳에 상가가 형성돼 낡은 시골 면소재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땅값은 서울 상권 부럽지 않을 평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해안 육로관광은 도동항에서 관광버스(3~4시간 소요, 1만5000원)를 타고 시작하는 게 일반적. 가두봉 등대를 지나 거북바위, 사자암, 투구봉, 비파산 등 절경이 쉴새 없이 이어지는데, 파도가 거칠게 이는 날이면 해안도로를 삼킬듯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스릴 넘치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곰바위, 만물상, 공암(코끼리바위), 삼선암, 관음도 등이 펼쳐진 해변은 세계 제일의 해안도로라는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못지 않은 절경이다.
에메랄드, 크리스탈 블루가 적절이 섞인 맑고 푸른 바닷물은 울릉도의 또다른 매력. 울릉도가 국내 최고의 스쿠버다이빙 명소로 꼽히는 이유이다.
▶절경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코스 '행남등대 가는 길'
화산섬 울릉도는 깍아지른 듯한 절경을 구경할 수 있어 좋지만 모든 해안을 차량으로 돌 수 없다는 단점도 함께 안고 있다. 때문에 몇몇 코스는 등에 땀이 꼽꼽하게 밸정도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울릉도의 대표적 트레킹 코스로는 '행남등대 가는 길'을 꼽을 수 있다. 그림같은 해안 바윗길과 오솔길을 번갈아 지나며 저동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행남등대 까지 2㎞, 왕복 2~3시간 걸리는 탐방로는 그야말로 절경의 연속이다.
출발점은 두 곳, 도동 선착장에서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바윗길과 울릉군청 뒤쪽 산길이다. 해안 트레킹코스가 무난한 편.
선착장 뒤 계단을 올라 바윗길로 내려서면 가파른 해안 산책로가 시작된다. 파도와 세월이 함께 빚어낸 수많은 바위굴과 벼랑끝에 매달린 바윗덩이 밑을 통과하면 유행가 소리 요란한 휴게소가 나선다. 목축임을 하며 잠시 해변의 정취에 젖어들 만한 곳이다.
▲ 해남등대 가는 길은 해안동굴을 통과하는 등 절경의 연속이다.
굽이굽이 바위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호젓한 북쪽 산책로를 타면 도동항과 망향봉, 그리고 죽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후 바윗길을 지나 해안경비초소를 거쳐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섬조릿대 숲터널과 곰솔 군락을 만난다.
이곳에서 행남등대까지 약 1㎞ 구간은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어른 키 두 배로 자란 섬조릿대가 서로 고개를 맞댄 터널속으로 해풍이 밀려들며 내는 사각사각 댓잎 소리는 세상 시름을 다 잊게 한다.
섬조릿대 숲을 헤쳐나오면 솔내음 싱그러운 오솔길이 나서고, 이를 지나면 곰솔 고목 아래서 또 한 컷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수직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동해가 남태평양의 산호바다처럼 형형색색 일렁인다.
쉼없이 펼쳐지는 경관에 감탄하며 걷다가 털머위가 깔린 솔숲 길 끄트머리를 벗어나자 드디어 왼쪽 언덕에 하얗게 빛나는 행남등대(도동등대, 1979년 설치)가 나타난다.
행남등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하나. 등대를 지나 동백나무숲길을 조금만 내려서면 아찔하도록 툭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코발트빛 짙푸른 바다 넘어 하얀 잔설을 이고 있는 성인봉 자락이 펼쳐지고, 그 아래 마치 고요속에 파묻힌 철새둥지처럼 저동항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푸른 바다에 궤적을 그어대는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조용한 포구 저동항은 금새 활기 있는 어업전진기지로 변신한다.
도동항으로 되돌아 오는 길은 군청 뒤로 넘어오는 산길 코스가 괜찮다. 쉬엄쉬엄 걸어 올라야 하는 가파른 산길에서 만나는 선홍빛 동백나무 꽃이 산행의 피로를 말끔이 씻어 준다.
◆ 독도, 동도 접안후 600m 산책로 오르면 '한국해' 탄생
▲ 독도 상공을 가득 메운채 선회중인 갈매기떼. 365일 독도를 철통 경계하는 '독도 지킴이'에 다름 없다.
독도는 요즘 외롭지 않다. 일본인들에게 갖은 능욕을 당하느라, 피붙이들에게 진한 위로를 받느라 여념이 없다.
독도 관광이 자유로워지고 우리땅 독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기상상태로는 입도가 힘들어 먼발치에서 주변 선회관광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아쉽지만 독도의 존재를 두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흡족하기 때문이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9.5㎞거리에 있다. 한겨레호 등 쾌속선으로 가면 1시간20분, 삼봉호로는 2시간30분이 걸린다. 하지만 파도라도 심한 날이면 1~2시간은 더 소요된다.
울릉도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면 멀리 독도의 형체가 나타난다. 뱃전에 탄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다. 순회관광일 경우 독도 100m앞 해상을 2차례 가량 일주한다.
독도는 동도, 서도 등 2개의 큰 섬과 약 78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나뉜다.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 면적은 5만6000평에 불과하지만 수면 아래까지 합하면 울릉도의 2배나 된다니 빙산의 일각만 물 위에 솟은 셈이다. 420만년 전에는 한 덩어리였으나 화산폭발로 섬 일부가 바다밑으로 가라앉아 지금의 모습이 형성됐다. 울릉도의 형님뻘로 화산폭발이 200년이나 앞섰다는 대목도 재미나다.
독도관광은 주로 폭 110∼160m의 얕은 물길을 사이에 두고 서도와 마주보는 동도 일대에서 이뤄진다. 섬 정상부가 평평해 독도경비대가 주둔하고 있고, 헬기장, 산책로도 조성이 돼있다. 또 1954년 광복절에 처음으로 불을 밝힌 독도등대,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새긴 '한국령'이란 표시도 이곳에 몰려있다
섬을 한바퀴 순회한 뒤 동도에 마련된 접안시설에 내려, 본격적인 독도관광에 나선다. 접안시설은 길이 80m가량으로 500톤급의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다. 접안시설에서 계단을 오르면 600m가량의 산책로가 나있는 데, 이 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독도입도여행은 마무리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336호)이니, 산책로를 벗어나 나무를 훼손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된다.
해발 168.5m의 서도는 산정이 뾰족한 원뿔형으로 98.6m 높이의 동도보다 크다. 하지만 경사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새들을 제외하고는 접근이 어렵다. 해안 절벽에 뚫린 수많은 동굴은 서도의 매력 포인트.
▶가는 길= 울릉도까지는 동해 묵호항이나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간다. 묵호에서는 한겨레호(2시간반 소요), 포항에서는 썬플라워호(3시간 소요)가 하루 각 1회씩 운항 한다. 왕복 뱃삯은 '묵호항~울릉도' 8만5000원, '포항~울릉도'는 10만700원. '울릉도~독도'까지는 매일 유람선 삼봉호(편도 2시간30분 소요), 쾌속선 한겨레호나 썬플라워호(편도 1시간20분 소요)가 출항한다. 각 왕복 3만7500원. 대아여행사(02-514-6766).
▶여행상품= ◇철도전문 비타민여행사(02-736-9111)는 '서울역~고속철~동대구역, 포항까지 차량 이동, 포항항~썬플라워호~울릉도'를 왕복하는 2박3일 상품을 34만4800원에 내놓았다. 육로관광, 해상일주, 독도탐방(선회관광) 등이 포함된 가격. 1박2일 상품은 29만9500원. ◇테마21(02-544-6363)도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보는 2박3일짜리 여행상품을 1인 기준 2인1실 호텔 숙박 30만9000원, 5인1실 여관 숙박 26만3000원. ◇두레관광(054-791-8300)은 독도선회를 포함한 여행상품을 26만5000원에 운용중이며, 울릉도 토속 별식을 제공(1식) 한다.
▲ 홍합밥
▶먹을 거리=울릉도의 별미로는 단연 홍합밥(사진ㆍ1만원)을 꼽을 수 있다. 잠수부가 채취한 자연산 홍합과 야채를 잘게 썰어 참기름 두른 돌솥에 밥과 함께 볶아낸 맛이 고소하면서도 쫄깃하다. 약수식당(054-791-3939), 보배식당(054-791-2683) 등이 곧잘 한다. 울릉도의 또다른 먹을거리로는 한치를 들 수 있다. 흔히들 울릉도에 해산물이 풍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울릉도 인근 해역 산물로는 한치, 오징어, 홍삼(붉은 해삼), 매바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한치물회(1만원)는 선창식당이 유명하다. 약소불고기(200g 1인분 1만5000원) 또한 울릉도의 별미이며, 붉은 빛을 띠는 매바리는 회나 탕으로 즐겨 먹는다. 울릉도는 명이, 부지갱이, 참고비, 취나물 등 산채가 많이 나는 곳이다. 산채비빔밥(6000원)이나 백반을 먹으면 서너 가지 산채가 상에 오른다.
대한민국 땅 최동단 독도가 열렸다. 허가제였던 독도 입도가 신청만으로 가능해졌다. 독도는 그리 쉽게 발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험한 뱃길은 제쳐놓고서라도 너울이 1.5∼2m만 돼도 방파제가 없는 접안시설에 배를 대기가 어렵다. 바다가 입도를 허락하는 날은 많아야 한 해 50∼60일뿐이다. 그럼에도 새들의 고향 독도는 우리를 부른다. 대한민국 땅이기 때문이다.
◆4월, 독도의 하루=요즘 독도를 찾는 나들이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괭이갈매기다. 번식기야 5∼8월이지만 중국 남부 앞바다에서 겨울을 난 뒤 이른봄부터 독도로 돌아와 집단을 이룬다.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해 붙인 이름이지만 괭이갈매기는 독도 인근 어민들에겐 반가운 새다. 물고기 떼가 있는 곳에 눈에 띄기 때문에 어장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추석을 즈음해서 괭이갈매기는 독도를 떠난다.
독도는 이름과 달리 두 개의 섬과 30여개의 크고 작은 돌섬으로 이루어진 화산 군도다. 동도와 서도는 약 200m 떨어져 있다. 그 사이로 수심이 2m가 채 안 되는 바다에 섬들이 모여 있다. 서도가 동도보다 더 크고 봉우리도 높지만 경사가 급해 독도경비대와 독도등대, 어민대피소, 접안시설은 동도에 자리 잡았다. 관광은 동도에서만 가능하다. 접안시설에서 독도를 밟은 뒤 계단으로 오르면 정상의 평지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올해로 독도등대가 생긴 지 만 50년이 훌쩍 넘었다. 등대에는 3명의 근무자가 일한다.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고, 한 달마다 뭍의 근무자와 교대한다. 30여명의 독도경비대와 3명의 등대지기들이 언뜻 한가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독도에서는 바닷물을 걸러 식수로 사용하는 등 섬 생활에 따른 부가 업무가 많다. 용천이라 불리는 샘이 있지만 지금은 식수로 활용되지 않는다. 등대 근무자는 밤에 등댓불을 밝히기 위해 충전도 해야 한다. 독도 주변에서 조업하는 어선은 종종 눈에 띄지만 어민대피소에는 태풍 등 기상이 급변하지 않는 한 발길이 뜸하다.
◆독도의 자연=동도와 서도 사이의 삼형제굴, 동도의 천장굴 등 독도에 있는 굴은 파도의 침식작용을 받아 생긴 해식동굴이 대부분이다. 주상절리와 단층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독도는 강한 해풍과 부족한 토양,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 때문에 약간의 식물이 자랄 뿐 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우연찮게 독도에서 소나무와 동백나무를 발견한다면 푸른 독도를 가꾸기 위해 뭍에서 모종을 옮겨 심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독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대부분 200리 남짓 떨어진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종으로, 씨가 가벼워 바람에 실려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국화과(왕해국, 방가지똥, 구절초 등)나 백합과(날개하늘나리, 참나리 등), 볏과(돌피, 강아지풀 등)가 많다. 해풍에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뭍의 동일 종보다 잎의 두께가 좀더 두껍다고 한다.
집단으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나 바다제비, 슴새 등 희귀새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에는 독도가 천연기념물 제336호 해조류 번식지로 지정됐다. 바다제비와 슴새는 알을 깨고 나온 괭이갈매기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는 7월쯤 독도를 찾는다.
약 460만년 전 깊은 바다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생긴 화산섬 독도는 생성 시기로 치면 제주도(약 120만년 전)나 울릉도(약 250만년 전)의 맏형 격이다. 처음 형성될 때에는 지금의 울릉도 크기였다가 풍파(風波)에 시달려 현재 크기로 깎여 나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인근 동해의 수심이 2000m 정도라고 하니 서도 최고봉(168.5m)의 높이를 더하면 실제 독도의 크기가 얼마나 웅장한지 짐작하기 힘들다.
동도 동쪽에는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해식아치 형태의 독립문바위가 있다. 독립문바위에서 섬 중심부로 시선을 조금 옮기면 여름이면 초록 풀빛이 한반도 지도를 닮은 경사면을 확인할 수 있다. 독도는 이렇게라도 한반도의 막둥이 땅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일까.
독도=사진 이종덕, 글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독도의 식물 구절초.
야생식물 채취등 자연훼손 마세요
독도경비대 인근시설물 촬영 제한
현재 독도에는 경비대 근처의 화장실 1동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도 전 배에서 용무를 해결해야 한다. 입도 전까지는 휴대전화 통화가 가능하지만 일단 동도에 들어서면 대개 서도에 가려져 통화가 불가능하다. 독도에 상주하는 사람들도 바닷물을 걸러서 식수로 이용하니 약간의 식수를 가지고 내리는 게 좋다. 4월 이후 입도하는 관광객은 산란기에 가까워져 예민한 괭이갈매기를 쫓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식물을 몰래 캐가는 것은 물론 훼손해서도 안 된다. 독도에 들어서 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입도신청서에는 촬영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지정통로 이 외에서 촬영할 경우 문화재청장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쓰여 있다. 독도경비대 인근 시설물의 경우 촬영이 제한된다.
정재영 기자
◇동도를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왼쪽에 아치 모양의 독립문바위가 보이고 중심부로 시선을 옮기면 한반도 지도를 꼭 닮은 경사면을 확인할 수 있다.
섬에 들어가려면 울릉군에 신고…기상상태 꼭 확인을
■ 독도 관광방법과 상품
독도의 관문 격인 울릉도로 가는 배는 강원 동해의 묵호여객선터미널(033-531-5891)과 경북 포항여객선터미널(054-242-5111)에서 뜬다. 묵호항에서 뜨는 한겨레호(4만2000원, 정원 445명)는 울릉도 도동항까지 약 2시간30분 걸리고, 포항항에서 출발하는 썬플라워호(4만9500원, 정원 445명)는 3시간 정도면 도동항에 닿는다.
썬플라워호는 차량 20여대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정확한 운항시각은 울릉여객터미널(054-791-0803)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울진 후포여객터미널(054-787-2811)에서도 9일부터 울릉도행 여객선이 운항할 예정이다.
◇독도에서는 바위에서 쉬는 괭이갈매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왔다 추석을 즈음해 떠난다.
울릉도에서 출발해 독도 땅을 밟기 위해서는 섬에 접안할 수 있는 삼봉호(3만7500원, 정원 215명)나 한겨레호를 타야 하지만, 기상과 선박을 운항하는 회사 사정에 따라 입도가 취소되기도 하니 꼭 확인해야 한다.
기상이 좋으면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삼봉호보다 규모가 큰 썬플라워호는 독도를 2번 정도 순회하고 돌아온다. 독도에 입도하려면 울릉군에 신고해야 한다. 팩스(054-790-6399) 또는 군 홈페이지(www.ulleung.go.kr)에서 신청을 받는다. 입도신청서에는 기상이 나빠 배가 뜨지 못할 경우 순연한다고 돼 있으나, 삼봉호를 운행하는 독도관광해운(054-791-8111∼2)에 직접 전화해 확인하는 게 좋다.
◇북쪽에서 바라본 주상절리를 이루고 있는 서도의 최고봉과 탕건봉(오른쪽). 왼쪽으로는 멀리 장군바위와 삼형제굴바위가 보인다.
여행사들은 동도 개방과 함께 울릉도·독도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독도 입도가 가능한 상품은 아직까지 선박회사와 문화재청의 이견이 많아 30일 이후에나 생길 것으로 보인다.
테마21은 서울에서 전세버스로 출발해 묵호항에서 한겨레호로 울릉도로 이동한 뒤 4시간 정도 울릉도 관광과 독도 선회가 포함된 2박3일 상품을 내놨다. 울릉대아리조트 2인1실 기준 30만9000원. 서울 시청역에서 매일 출발. (02)549-9889
울릉닷컴도 서울 덕수궁 정문에서 출발해 묵호항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보는 2박3일 상품을 내놨다. 울릉도 육로관광, 나리분지 등이 포함돼 있다. 독도 선회 상품. 일반장급여관 2인1실 기준 25만6000원. 1544-7644 비타민여행사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한 뒤 포항항에서 썬플라워호로 울릉도를 둘러보는 2박3일 상품을 판매한다. 독도 선회 상품. 울릉대아리조트 2인1실 기준 33만9000원. (02)736-9111
◇울릉도 도동항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독도. 멀리 동도의 등대가 보이자 나들이객들이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고 있다.
인터넷여행사 넥스투어는 서울에서 묵호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울릉도에 들어가 독도를 관람하는 2박3일 상품을 선보인다. 화·목·토 출발. 독도 선회 상품. 일반장급여관 2인1실 기준 27만9000원. (02)2222-6683 투어익스프레스는 서울에서 버스로 묵호항까지 이동해 울릉도와 독도를 돌아보는 2박3일 상품을 판매한다. 독도 선회 상품. 장급여관 4인1실 기준 27만1000원. (02)2022-6600
네 얼굴이 사무치도록 그리워 불원천리 울릉도를 찾았건만 수평선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무정하게도 사흘이나 발을 묶어 놓더구나. 계절을 거슬러 오르는지 때 아닌 진눈깨비가 행남등대의 동백꽃을 유린하고 집채 만한 파도는 울릉도를 단숨에 삼켜버릴 태세로 밤새 포효하더구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댓불에 의지해 산더미 같은 검은 파도와 맞서야 하는 네 걱정에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부질없는 짓인지 알면서도 이튿날 독도전망대에 올랐단다. 하지만 너는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해무에 둘러싸인 채 침묵만 지키고 있어 더욱 애타게 하더구나.
막내야!
울릉도 도동항에서 갈매기들의 환송을 받으며 일엽편주 유람선에 몸을 싣고 이백리 바닷길을 달려 듬직한 네 얼굴을 대하니 매슥매슥하게 하던 멀미조차 씻은 듯 가라앉는구나. 철옹성처럼 우뚝 솟은 서도를 하얗게 뒤덮은 갈매기들이 새들의 고향답게 멀리까지 마중 나오는 것을 보니 녀석들도 어지간히 외로웠던 모양이구나.
국토의 막내,독도야!
못된 이웃이 내 자식을 자기네 자식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어찌 바다에서 태어나 460만 년이나 흐르던 뜨거운 피까지 속일 수 있으랴. 아비를 그대로 빼닮은 동도의 한반도 모양 초지가 오늘도 일본 땅을 향해 ‘나는 다케시마가 아니다’고 외치는 모습이 너무나 늠름하고 당당하구나. 동도 정상의 해안포 옆에서 동쪽 수평선을 향해 두 눈을 번뜩이는 독도경비대원들도 믿음직스럽고?.
사랑하는 아들아!
누가 너를 ‘외로운 섬’이라고 노래했더냐. 자리돔과 돌돔 오징어 대구 명태 등 온갖 어종들이 수정처럼 맑아 자연수족관으로 불리는 해저에서 떼 지어 유영하고,척박한 화산암에 뿌리를 내린 별꽃과 섬기린초 땅채송화 괭이밥 등이 철따라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해양 동식물의 보고가 어찌 외롭더란 말이냐.
어디 그 뿐이랴. 쪽빛 하늘엔 괭이갈매기와 흑비둘기 멧비둘기 솔개 쇠가마우지 노랑지빠귀 등이 화려한 군무와 노래를 선보이고 물질하는 해녀들과 어선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해녀대합실이 어찌 외로운 섬이란 말이더냐.
그리운 막내야!
해식동굴인 천장굴을 메아리치는 파도는 네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이고,서도의 물골에서 용솟음치는 맑은 물은 한민족의 뜨거운 피라. 파도가 만든 동도와 서도의 독립문바위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동도와 서도 하늘에서 온갖 비행술을 선보이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자유를 노래하는구나.
탱크바위와 권총바위,그리고 동도에서 보면 손가락을 닮은 촛대바위이지만 서도에서 보면 출전을 앞둔 장군의 얼굴을 한 장군바위는 이웃의 야욕으로부터 너를 지켜주기 위한 하늘의 선물이 아니더냐. 78개의 바위섬 중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고 의미 없는 것이 어디 있더냐.
독도야!
그 많던 물개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탐욕스런 이웃이 물개바위에서 서식하는 물개들을 한 두 마리씩 몰래 잡아갔다더니 이젠 씨 한마리 남겨놓지 않았구나. 참으로 무례한 이웃이로다. 참으로 용서받지 못할 이웃이로다. 그런데 지은 죄를 뉘우치기는 고사하고 이제는 해저에 묻힌 하이드레이트에 눈독을 들여 너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린다니 기가 막혀 할 말이 없구나.
아들아!
네가 내 아들인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이 땅의 백성들이 따스한 손길로 네 육신을 직접 어루만져 보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나 물양장을 넘는 거친 파도가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도 않을 뿐더러 행여 잘못 손대 잘생긴 너의 얼굴에 생채기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서 나는 오늘도 멀찌감치 물러서 너를 바라만 보는구나.
내사랑 보물섬,독도야!
수백만 년 비바람과 폭풍우에 시달리면서도 오늘까지 꿋꿋하게 자라주니 정말 고맙구나. 누가 뭐래도 네가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사실을 신라장군 이사부가 알고 세종실록지리지가 증명하지 않더냐. 다시 수백만 년,아니 수천만 년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네가 내 아들인 것을 물새들도 대를 이어 구전 하리라.
네가 존재하기에 내가 있고,내가 존재하기에 네가 있는 것을,그리고 뱃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이 나라 백성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한 너는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란다.
■여행메모
쾌속선인 한겨레호(445t·정원 445명)가 내달 5일부터 매일 독도 선회관광을 한다. 오후 2시에 울릉도 도동항을 출항해 독도를 선회한 후 오후 5시30분에 도동항으로 되돌아온다(토요일은 선플라워호 출항). 요금은 일반석 3만7500원,우등석 4만1500원. 지난해 첫 선을 보인 대아리조트는 울릉도 유일의 호텔로 숙박요금은 한실 7만원,양실 8만원. 선편과 숙박 예약은 울릉도 대아리조트에서 받는다(02-518-5000).
독도관광해운의 삼봉호(106t·정원 210명)는 동도 물양장 접안을 목표로 하루 1∼2회 출항하나 악천후로 인한 결항률이 높은데다 파고가 2m를 넘으면 접안이 불가능해 대부분 선회관광에 그친다. 왕복 5시간에 요금은 3만7500원. 독도의 동도 정상을 밟으려면 독도관광해운의 삼봉호 통째로 빌려야 한다. 용선료는 계절별로 600만∼1000만원.
울릉도·독도 전문여행사인 테마21은 내달 5일부터 매일 울릉도와 독도로 떠나는 2박3일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오전 5시30분 덕수궁 앞에서 전용버스편으로 묵호로 이동한 후 한겨레호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해 독도박물관 등을 둘러본다. 둘쨋날엔 울릉도 일주도로 버스관광을 한 후 독도 선회관광을 한다. 마지막 날 유람선으로 울릉도 해상일주를 마친 후 오후 11시30분 서울에 도착한다. 요금은 왕복승선료와 숙식비 등을 포함해 대아호텔 숙박 28만5000∼30만9000원,장급여관 숙박 26만3000∼27만9000원(02-549-9889).
"독도에 올라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목이 터지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
24일부터 독도가 일반인에 개방되면서 바람은 현실로 바뀌었다. 벌써부터 경북 울릉군청의 독도계는 폭주하는 문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울릉도.독도 관련 상품을 준비한 여행사들은 두 배 이상 늘어난 상담을 소화하느라 즐거운 비명이다.
독도의 전초기지인 울릉도로 가는 배편은 경북 포항과 강원도 동해에서 매일 출항한다. 동해에서 출발하는 한겨레호는 445명, 포항을 왕복하는 선플라워호는 815명이 정원이다. 2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경북 후포항에서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배도 있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독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울릉군에 입도 신청을 해야 한다. 전에는 미리 신청서를 내고 상륙허가를 기다려야 했지만, 이젠 배에 타기 전에 신청서만 내면 된다. 천연기념물인 독도에 1회 상륙할 수 있는 인원이 70명. 하루 두 차례 상륙할 수 있기 때문에 140명이 입도할 수 있다.
여행사들은 "입도 인원이 200명을 넘어야 수지가 맞는다"며 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도동항에서 독도까지 가는 배는 삼봉호(승선인원 270명, 매일 출항, 2시간30분 소요)와 한겨레호(수.금.일요일 출항, 1시간 소요). "3만7500원의 뱃삯을 낸 손님 중 누구는 독도 땅을 밟고 누구는 바다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래서 울릉군청은 200~300명까지 독도에 오르되 탐방로는 불허하고 선착장 주변만 관광하는 내용의 조례제정 방안을 문화재청과 협의 중이다.
그러나 많은 인원이 휘젓고 다니면 천연기념물인 독도를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게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그동안 많은 식물을 이식하려 노력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지금의 식물마저 사라지면 독도는 불모의 섬이 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문화재청은 서도는 제외하고 동도만 개방하고, 또 4월 30일까지 독도의 제반시설을 안전하고 깔끔하게 정비해 탐방객을 본격적으로 맞이하기로 했다.
여행사들은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70명 가까이 탑승하면 운항에 나설 채비다. 비용도 5000~1만원 올릴 계획이다. 울릉도 2박 패키지 상품도 준비 중이다. 본격 독도 관광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돌을 집어온다거나 야생초에 손을 대는 것은 금물. 탐방로에 서서 눈으로 보듬는 것이 독도 사랑, 아니 국토 사랑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