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리 이야기
어제 (음력 10월 9일) 칠곡군 석적읍 반계리에서 21세 극명당(휘 내범) 공과 극명당 선생의 2자 통덕랑 (휘 경기)공의 묘제가 있었다.
어제 묘제에는 40 여 후손이 참석을 했으며 극명당 선생이 노년에 은거하며 제자를 가르친 강학지소였던 반계정사에 모여 집사분정이 있었으며
이어서 병홍 종파 회장의 반계정사의 유래에 대한 배경 설명에 이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안장된 극명당 선생의 묘소로 이동을 했다.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시냇가의 초가에서 한가히 지내나니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달 밝고 바람 맑아 흥취가 넉넉하네.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
찾는 사람 없고 산새는 지저귀고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언덕 위에 책상 놓고 누워 책을 읽노라.
- 閑居 / 吉再 -
이곳 극명당 선생의 묘소는 삭제동과는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작은 산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니 우리 장문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동원서수형의 지세를 택한 길지다.
이곳 역시 멀리 조종산은 팔공산이요 굽이굽이 산세가 서쪽으로 굽이쳐 낙동강을 앞두고 유학산에서 마지막 한점을 찍고 다시 작은 지맥이 이어져 그 용맥의 한줄기가 기반산과 반계리로 흘러 들었으니 그 혈자리가 극명당 선생이 안장된 곳이란다.
안산은 이곳을 마주한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산으로 바라보니 미간 높이 정도로 산의 능선이 포복을 하고 흘러드는 형세요 저 멀리로는 금오산을 택해 바라보았다.
또 출구가 보이지 않은 전착후광의 지세에 우입좌출의 작은 반계천이 마을 앞을 가로질렀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낙동강과 합수를 이룬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극명당 선생이 생전에 추구했던 사엽금단의 삶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온화한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그냥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금새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명당의 기운이 느껴 지는 곳이란다.
我家在洛上(아가재낙상)
내집은 낙동강 윗쪽에 있다네
歸舟幾日裝(귀주기일장)
배타고 돌아가려면 몇일이나 걸릴꼬?
波濤何沓茫(파도하답망)
거친 물결에 물길은 아득한데
津涯難可量(진애난가량)
배댈만한 나룻터는 종잡을수 없네
今來泛此湖(금래범차호)
지금 이곳에 와서 배를 뛰우니
山高水自洋(산고수자양)
산은 높고 물은 깊어 넓기만 하여
度內鴍魚理(도내문어리)
내심 솔개와 물고기 생각이드네
無邊楊柳光(무변양류광)
끝없이 늘어선 수양버들 빛받아 반짝이고
小者眞易解(소자진역해)
젊은이들 그 진리를 이해 하려나
溪山勝滄浪(계산승창랑)
계곡물 보다 창랑의 물결이 더 나은 것을
無寧人不識(무령인불식)
사람들이 차라리 알지못함만 못하니
何不學海長(하불학회장)
어찌 바다의 큼을 배우지 않는가?
- 금호선유시회 중 / 克明堂 張乃範 -
이날 성택 종인의 집례로 진행된 묘제에서 초헌에 석원 대종손이 아헌에는 병홍 종파 회장이 종헌에는 완석 종인이 축에는 재목, 좌우 집사는 성욱.석규 종인이 산신위 헌관에 주환 종인, 축에는 용기 종인이 각자의 소임을 맡아 잔을 올렸다.
그리고 극명당 선생 묘제를 올린 후 선고묘하의 극명당 선생 2자인 통덕랑 (휘 경기)공의 묘소에 잔을 올렸다
통덕랑(휘 경기)공의 묘제에는 집례에 영래, 초헌에 명규, 아헌에 희우, 종헌에 낙규, 축은 성택 종인이 소임을 맡아 잔을 드렸다.
家和貧也好 (가화빈야호)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거니와
不義富如何 (불의부여하)
의롭지 않다면 부유한들 무엇 하랴.
但存一子孝 (단존일자효)
다만 한 자식이라도 효도하는 이가 있다면
何用子孫多 (하용자손다)
자손이 많아서 무엇하랴
- 漢書 -
이야기를 들어 보니 통덕랑(휘 경기)공의 자손은 수천을 헤아리고 전국팔도 방방곡곡에서 명망을 떨치며 지금도 그 이름을 사방에 빛내고 있지만
수년간은 자손의 출입이 끊어져 한 때는 잔을 올리지도 못했다고 하는데 근년들어 다시 묘제를 올리고는 있으나 참제자의 숫자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니 작은 아쉬움 이란다.
또 한 때는 내노라 하는 명망있는 자손들이 앞을 다투어 잔을 올리고 조상님의 유업을 찬양히며 그 음덕에 감사하는 후손이 줄을 이었다하나
근래는 통덕랑(휘 경기)공의 4자인 처사(휘 운 :기장 입향조)공의 후손이 멀리 기장에서 약간의 제수를 준비해서 묘제를 올리고 있다는데 참제자 또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란다.
그리고 어제 묘제를 드린 두분 선조님의 삶은 임진왜란과 궤적을 같이한다.
부모형제 가족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생사 조차 알지 못하고 끝내는 영원한 생이별이 되기도 했단다.
극명당 선생 또한 그런 안타까운 가족사에 대한 자책과 반성 때문에 종가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반계거사라 칭하며 이곳 반계동천에 초막을 짓고 잘못 없는 속죄의 삶을 살며 제자들을 가르치며 통한의 여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임란 속의 인동은 참혹했다.
일가 친척은 뿔뿔이 흩어져 돌아온 자가 수를 헤아릴 만큼도 되지 않았으며
또 살아남은 자는 끼니 걱정을 해야했고
종가는 무너져 이미 황폐해졌으니 극명당 선생으로서는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일 또한 엄중한 당면한 과제였던 것이다
전언에 의하면 임란 당시 인동에 우리 장문이 40여호 가까이 거주를 하고 있었는데 임란으로 인해 대를 잇고 자손을 보전하기 위해 하처블문 작은 인연의 끈이라도 있으면 그 끈을 붙잡고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니
전후 생존이 확인 되지 않은 자손이 대다수 였으며 임란이 끝나고 인동으로 다시 돌아온 가구 수는 8가구 정도에 불과 했다고하니 그로 인해 종통의 기둥마져 무너져 내린 우리 장문으로서는 최대의 위기 이자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장문의 종통을 다시 세우고 선조의 유업을 받드는 일은 물론 선조의 묘소를 지키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그 중심에 우뚝 서신 분이 바로 여헌 선생과 극명당 선생이셨다.
不堪鄕國戀(불감향국련)
내 고향 못 견디게 그리워
千里策蹇驢(천리책건려)
절뚝대는 나귀 재촉하며 천리 길을 왔네
節古春光滿(절고춘광만)
시절은 예전처럼 봄빛 가득한데
人消境落虛(인소경락허)
사람은 사라져 촌락만 덩그러니
山河風雨後(산하풍우후)
산하는 비바람 몰아친 뒤이며
日月晦冥餘(일월회명여)
해와 달은 어두운 나머지라오
剝盡繁華迹(박진번화적)
번화한 자취 모두 없어지고 보니
渾如開闢初(혼여개벽초)
마치 개벽의 초기인 듯하네
- 旅軒集 / 張顯光 -
여헌 선생은 영남 칠현의 한분으로 추앙 받으며 학문적으로는 그 폭과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뛰어나 그의 사후 인조 임금께서 오산낙수의 정기를 받아 5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큰 인물을 잃었다고 애통해 했다는데 추후 기회가 있으면 다시 설명을 하고자 한다.
극명당 선생은 한강 정구 선생과 여헌 선생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고 한다.
임란을 당하여 김해(金垓)와 함께 창의 하여 김해의 천거로 인동 정재장이 되었으며 사서 전식을 도와 왜구를 무찌르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한 가운데 중후하며 연단술에도 밝아 평생동안 분노를 징계하고 기호와 욕심을 끊었으며 말을 적게 하고 심기를 화평하게 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아 四葉金丹을 복용 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養生金丹契, 家禮儀節과 극명당 실기, 문집이 있으며 유시로는 금호선유시회에서 남긴 시 한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여헌 선생이 족계를 修契 할때 유사를 맡기도 했으며 종가를 다시 창건했다.
吳山書院 원장을 지냈으며 만년에
磻溪洞天(석적읍 반계리)에 번계정사를 지어 은거하며 제자를 가르쳤으며 스스로 호를 반계거사라 했다고 한다.
陜水雷奔匝地囘(합수뇌분잡지뢰)
합천의 물이 세차게 흘러 시끄럽고
倻山鳳舞自天來(야산봉무자천래)
가야산의 봉황이 춤추며 하늘에서 날아온다.
孤雲遺蹟三淸氣(고운유적상청기)
고운(崔致遠)의 유적엔 삼청(三淸)의 기운이 깃들고
梅月文章八斗才(매월문장팔두재)
매월(金時習)의 문장이 또한 다재다능하다네.
壯士燕歌多激烈(장사연가다격렬)
장사가 불렀던 연가(燕歌)는 지극히 맹렬했고
佳人驪曲轉凄哀(가인려곡전처애)
가인(佳人)의 이별가는 참으로 구슬펐다.
風流太守眞僊侶(풍류태수진출려)
풍류 즐기던 태수는 신선과 벗이 되었는데
他日王鳬躡帝臺(타일왕부섭제대)
어느 날 큰 오리 타고 하늘의 누대에 올랐다네.
- 次陜川郡齋韻 / 蔡楙 -
사후에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추증 되었으며 화산서원에 아들인 만회당 선생과 같이 배향되어 있고 소암서원(嘯巖書院)에는 채몽연(蔡夢硯), 채무(蔡楙) 부자와 같이 배향되고 있다.
첫댓글 마치 참석한 듯 합니다.
생생하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첨석했어야 하는데 죄송함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