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작 작가 인터뷰] 김경욱- 암굴에 꽁꽁 숨어 시대의 욕망을 읽다

[이인주]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작 작가 인터뷰]암굴에 꽁꽁 숨어 시대의 욕망을 읽다

• 김태훈 기자

•  조선일보
• '위험한 독서' 김경욱"창작엔 단순한 삶 필요" 외출 안해 '암굴왕' 별명
  

소설집 《위험한 독서》를 쓰는 동안 작가 김경욱(38)은 "영화나 음악 대신 책과 함께 지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집은 "기왕에 발표한 작가의 작품 수준을 뛰어넘는 수작들" "다채로운 상상력에 읽을 만한 정보까지 곁들인 글쓰기"라는 호평을 받으며 '2009 동인문학상' 최종심 결선에 올랐다. 이 소설집은 책으로 여성환자의 마음을 치료하다 그녀의 매력을 읽고 싶어진 독서치료사, 매일 고객에게 시달리다 결국 자신을 유폐시키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는 홈쇼핑회사 상담원, 도색소설에 탐닉하는 재수생 등이 등장해 텍스트를 읽는 행위 속에 담긴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탐색한다. 특정 햄버거로 상징되는 획일적 세계화의 문제라든가 기러기 아빠의 고독 등 한국 사회의 병리적 풍경 내부에 도사린 개성의 상실 문제 등도 함께 다뤘다.

―어째서 제목이 '위험한 독서'인가. 독서가 위험한 행위인가.

"위험하다는 것은 반어(反語)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독서를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전철에서 책을 꺼내 들면 사람들이 마치 폭탄 꺼내 드는 사람 보듯 한다. 하긴, 독서는 자신과 남을 파악하는 행위이고 그것이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 위험할 수도 있겠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경쾌하고 가벼워진 서사와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유머가 곳곳에 배치됐다. '김경욱 소설' 하면 떠오르던 죽음의 냄새가 옅어졌다.

"이전 작품들에 등장하던 죽음은 삶을 얘기하기 위한 역설(逆說)의 음각화로 비유할 수 있다. 이번에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양각화를 채택했다."

―소설가의 아내를 외계에서 온 만화영화 주인공 천년여왕이라고 상상하거나, 인기 TV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여성이 등장하던데.

"어렸을 때 만화영화 '천년여왕'을 재미있게 봤다. 소설 쓰기가 당대를 읽고 해석하는 작업이라면, 대중문화는 당대의 욕망이 집결되는 곳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는 시대를 읽기 위해 현상 뒤에 숨은 욕망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지고 대중문화의 행간을 읽으려 한다. 그런 자세가 종종 대중문화를 편하게 향유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 소설가 김경욱씨는“세상은 책이고, 내 소설은 그 세상을 읽고 쓴 독후감”이라고 말했다./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 지금까지 4권의 장편과 5권의 소설집을 내는 대단한 생산성을 과시했다. 문학평론가 서영채씨는 그런 당신을 '소설 기계'라고 정의했다.

"많이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의식하지는 않는다. '기계'가 된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내 성격이 지나온 것을 돌아보지 않는 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작품이 실망스러우면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끝낸 작품을 잊어버리는 성격이라서 늘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해외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던데….

"서른여섯이 되던 2007년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어 그해 두번 나간 게 전부다. 장편 《천년의 왕국》을 쓰고 나니 그제야 소설 무대였던 일본 나가사키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져서 가봤다."

―그래서 부인이 지어준 별명이 '암굴왕'인가.

"창작을 하려면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강의할 때 빼곤 2~3일에 한번 정도 외출하는데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면 눈이 부셔 당황하게 된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는?

"날이 저물 무렵. 낮에는 투명한 거실 창을 통해 밖을 보지만, 밤에 창은 집안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 된다. 그런데 저물녘에는 거울이면서 창이기도 하다. 소설이란 것도 거울이 되거나 창이 될 텐데, 나는 저녁 어스름의 거실 창처럼 밖을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비쳐지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김경욱은…

1971년 광주광역시에서 6남매의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미술학원에 다닌 적은 없다. 학원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렸지만, 자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서 "서툴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써야 한다"고 믿는다.

운전면허가 없고 앞으로도 따지 않을 생각이다. 이유는 "쉬지 않고 딴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 버릇이 운전대를 잡는다고 해서 고쳐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한다. 서울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93년 등단했고, 현대문학상과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