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앉아있는 순천만. 남쪽으로는 광활한 개펄을 끼고 있고, 북쪽으로는 빽빽한 갈대숲이 자라고 있는 순천만은 동서남북이 다른 풍광을 가지고 있다. 순천만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는 대대동 갈대포구. 철새들이 몸을 숨기고 겨울을 나는 대대포구에는 국내 최대의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순천만을 찾은 날, 종일 안개비가 내렸다. 낮게 깔린 물안개로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산줄기. 갈대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포구에는 갈대밭에 몸을 숨긴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순천만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 소설에서 ‘안개나루’(霧津)라고 표현한 대로 대대포구의 안개에는 세상을 삼키고 토해내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까…’
썰물처럼 안개가 빠지고 나면 갈대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구에서 바라본 갈대숲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부둣가에 있는 돌무더기나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서서 보아야 갈대밭이 얼마나 넓은지 대강 짐작이 간다. 빽빽하게 펼쳐진 늪지대가 무려 50만평. 이중 갈대숲은 15만평 정도로 국내 최대이다. 갈대숲이 이렇게 보존된 것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독특한 지형 때문. 발이 푹푹 빠져 움직이기조차 힘든 개펄지대에 갈대가 뿌리를 내렸다.
갈대가 자라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16년 전이다. 순천만은 순천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남서쪽을 감싸안고 흐르는 이사천이 합류해 바다로 흐르는 종착역.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개펄지대에 갈대가 자라기 시작했다. 수십년 전에도 갈대가 많았지만 당시에는 땔감으로 베어내는 통에 이렇게까지 광활하게 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먹고 살기 편해지면서 ‘잠깐’ 잊혀졌던 갈대숲이 이제는 순천만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갈대숲 앞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가 뻗어 있다. 물이 빠지면 밑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개펄. 밀물때만 물길이 열린다. 지도에서 보면 대대동은 뭍으로 파고든 바다와 맞닿아 커다란 항구라도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지만 수심이 얕아 큰 고깃배는 오가기가 버겁다. ‘무진기행’에서 표현한 대로 ‘수심이 얕은 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백리나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다.
이런 지형 때문에 순천만 대대포구는 뭍과 가까우면서도 개발의 삽질을 피했다. 5년 전 처음 찾았을 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거의 없다. 포구 주변에는 장어집 몇채가 있을 뿐 여관이나 노래방은 물론 요란스런 유흥업소는 단 한곳도 없다. 포구 들머리에 살고 있는 조순임씨(53)는 “이젠 철새 도래지로 지정돼 개발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때묻지 않은 ‘초라한’ 포구. 그래도 갈대포구에 한번 빠진 사람들은 이곳을 쉬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갈대만 그리는 화가 손준호씨는 11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 1990년, 94년 두차례 갈대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다. 순천의 한 작가는 20년 동안이나 순천만을 촬영해 올해 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갈대숲은 대대포구를 중심으로 건너편 습지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제때만 해도 무역선이 드나들 정도였다지만 지금은 강폭이 10~2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포구 아래쪽에 줄배가 있어 갈대숲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순천만은 주요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포구의 둑방길을 거닐다보면 철새 관찰자들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머리 갈매기 등 천연기념물만 11종이 관찰됐다. 뿐만 아니라 6종의 도요새 이동경로라는 것도 밝혀졌다. 순천만에는 국내에서 발견된 전체 조류의 절반 가량인 200여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은 철새들이 많지 않다. 추위가 매서워지면 천수만 등 중부권의 철새들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된다. 순천만 갈대밭이 새들의 낙원이 된 것은 풍부한 먹이와 함께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기 때문. 광활한 개펄에서 나오는 조개류와 논밭의 낟알갱이는 새들의 겨울 식량이 된다. 또 두루미가 좋아하는 염습지의 칠면초도 유난히 풍부하다. 마을사람들이 ‘기진개’라 부르는 칠면초는 1년에 일곱번 색깔이 바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순천만 갈대포구를 찾은 다음에는 동쪽의 와온포구나 서쪽의 화포에 들러야 한다. 대대포에서는 갈대숲과 농경지로 둘러싸여 거대한 순천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와온포구나 화포에 가야 끝없이 이어진 개펄을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약 40㎞의 해안선을 가득 메우는 개펄은 차진 고막과 조개류가 서식하는 천혜의 어장이다. 또한 와온포구에 가면 서쪽 화포쪽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다.
자그마한 포구였던 와온에는 요즘 근사한 카페도 하나 생겼다. 그러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찾는 사람이 드물어 호젓한 겨울바다 여행을 하기에 그만이다. 화포는 원래 꽃피는 포구라는 뜻. 굽이굽이 개펄 사이로 난 아득한 물길이 아름답다.
해안선을 따라 휘돌아가는 모퉁이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포구가 들어서 있는 순천만. 자연과 사람이 갈대숲과 개펄에 의지해 살고 있는 순천만의 겨울이 정겹다.
▲여행길잡이
호남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하거나 새로 뚫린 대전~진주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면 된다. 순천IC에서 진입, 벌교 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스파월드라는 빌딩이 보이는 막다른 3거리에서 좌회전. 고가 바로 밑에서 또 한번 좌회전하면 순천만 대대포구 들어가는 길이다. 계속 직진하면 ‘순천만’ 이정표가 보인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전 6시1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순천행 고속버스가 떠난다. 서울역에서 순천까지 주말에는 9편의 열차가 다닌다. 순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66번이나 76번 버스를 타면 대대포구 앞까지 간다.
대대동 포구 바로 앞에 있는 강변 장어구이집이 유명하다. 10여가지 양념을 한 뒤 구워낸 장어구이 맛이 별미. 구이에 앞서 고소한 장어죽이 입맛을 돋워준다. 1인분 1만5천원. (061)742-4233.
대대동에는 여관이 없다. 시내에서 묵어야 한다. 시내에 호텔급으로는 씨티관광호텔(753-4000), 로얄관광호텔(741-7000) 등이 있다.
여관은 신흥주택가인 조례동 일대가 깨끗하지만 유흥가를 끼고 있어 가족 단위의 숙소로는 적절치 않다.
순천은 관광명소가 많은 곳. 조계산 자락에는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태고종찰인 선암사가 있다.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 등 국사만 16명을 배출한 고찰. 국사 영정을 봉안하는 국사전과 목조삼존불감 등 국보 3점과 보물 13점, 지방문화재 9점 등 모두 26점의 문화재가 보존돼 있다.
1,5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선암사는 승선교를 비롯, 대각국사 진영 등 보물 7점과 지방문화재 11점을 포함해 총 18점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낙안읍성도 찾을 만하다. 조선초에 쌓기 시작한 토성을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중수했다. 넓은 평야지대에 놓인 성으로, 성내에는 지금도 108가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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