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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한영씨의 생가 모습. 『한국의 차와 선』을 쓴 모로오까 다모쓰가 백운 옥판차를 조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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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처럼 꽉 찬 압박감이나 겨울다운 예리함 없이 그저 군더더기 없는 수행자를 닮은 것은 역시 가을이다. 이런 청명한 가을,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뜻하지 않은 청복(淸福)을 누리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인 모로오까 다모쓰(諸岡存1879~1946)· 이에이리 가즈오( 家入一雄1900~1982)가 공저(共著)했던 『朝鮮の 茶と 禪(조선의 차와 선)』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 책은 소화(昭和) 15년(1940)10월에 일본의 다도사(茶道社)에서 간행된 초판본으로 1991년 김명배 선생에 의해 초역(初譯)되었다. 특히 초판(初版) 고본(古本)은 희귀본으로 한국 차에 관심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장서(長書)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까지 남아 있었던 한국 차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하지만 이 자료의 객관성과 타당성 문제에 있어서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다. 우선 자료의 타당성 문제는 객관화와 합리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다분히 통치의 대상인 식민지를 파악하려는 목적에서 조사 연구되었고, 그 목적은 통치 대상국에 대한 예비적인 사전 조사, 통치를 위한 자료 수집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객관성과 합리적인 시각에서 출발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우가끼 가즈시게(宇垣一成)는 “조선의 차도 개발한다면 다업국책의 열매를 맺어 식산흥업의 노선에 따라 세계의 상품이 될 것이다.”라고 밝힌 것에서도 그 의도와 목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조선의 차와 선의 조사와 연구는 일본 차 산업의 전진 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초보 단계의 차 문화사를 연구하기 위해 이 자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요즈음 항간(巷間)에 일제 강점기 백운 옥판차를 만들어 팔았던 “이한영의 생가”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이 유산이 지니는 상품적인 가치를 극대화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전자와 후자가 이 유산을 보존하려는 목적과 의미는 이미 현저한 관점의 차이가 있다. 문화유산의 공공적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자의 정당성은 이미 확실하다.
실재로 한국의 차 문화사에 있어서 문화유산의 성격을 충분히 갖춘 사료는 매우 드물다. 근대 차산업화의 초기 단계를 연구할 수 있는 유산으로 이만한 가치를 지닌 것도 없는 현실에서 이한영의 생가 보존은 꼭 필요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의 정의를 “유산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 우리가 그것과 더불어 현재 살고 있으며 미래의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이라 하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맨 땅에서 갑자기 돌출된 문화는 있을 수 없다. 하찮은 돌이라도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고, 오랜 세월이 지났다면 이것은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한영의 생가는 공공의 문화유산이며, 보존하고 연구할 충분한 가치와 현장성이 있으며, 생활 경관이라는 문화유산의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박동춘-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