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님 지금 뭐 하세요
-등 장 인 물-
-혜 원 -규 명 -진 원 -정 민 -반 장 -향 미 -영 희
-김영희 선생님 -방학기 선생님 -최기석 선생님 -규 명맘 -도덕선생님
-박후명 -술취한 손님 -몇몇 학생들
@@@ 1 장 @@@
장소 : 3 학년 교실
시간 : 네째 시간
쉬는 시간이다. 진원, 정아 서있고, 반장과 혜원은 앉아 있다.
조명이 들어오자 정아와 진원은 뒤로 오고, 혜원과 반장은 앞으로 간다.
혜원 : 그래, 잘났다. 잘났어. 인문계 갈 사람은 앞줄로 오고, 실업계 갈 사람은 뒷줄로 가라구? 선생이라는게 사람이나 차별하고 잘 하는 짓이다. 어휴, 규명이만 있었어도.... 나도 따라 나가버려?
반장 : 야. 니들이 얼마나 떠들었으면 선생님이 그러셨겠니?
혜원 : 누가 너 반장 아니래?
정아 : 야, 서혜원 넌 인문계면서 니가 왜 나서? 실업계는 골통들이라 말 안하고 있는 줄 아냐?
진원 : 야, 섞어 앉아서 서로 괴로운거 보다 백배 낫다. 실업계는 학교도 다 정해 놨겠다 인문계나 공부하게 뒤에 앉는게 좋쟎아? 차인표한테 편지나 쓰구. 나같으면 이게 웬 떡이냐 하겠다 야.
혜원 : 야, 너 그걸 말이라구 하구있냐?
진원 : 왜, 뭐 잘못됐어?
혜원 : 인문계만 사람이야?
진원 : 그럼 대학 갈텐데...
혜원 : 이게 진짜! 대학 나온 사람만 인간이냐?
진원 : 그게 현실이야.
정아 : 야! 나는 실업계 밖에 못간다고 울엄마가 짐승 취급이야.
진원 : 야! 그럼 대통령하고 청와대 수위하고 같냐?
반장 : 아니 아까 자리 바꿀 때 얘기하지 이제와서 왜 야단이야. 선생님 앞에서는 말도 못하면서.
정아 : 야 고만해. 다시 우리 반에서 앞줄 뒷줄 말하는 년은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니네가 우리 심정 알기나 해?
수업 시작 종이 울린다. 아이들 자리에 앉는다.
진원 : 분위기 썰렁하구나
정아 : 저걸 그냥..
김영희가 들어온다. 아이들 뜻밖이라는 반응.
아이들 : 어, 아니에요! 수학인데... 국어 아니에요.
김영희 : 그래? 그럼 나갈까?
김영희 돌아서서 나가려 한다.
아이들 : 어, 아니에요. 그냥 오세요. 네?
김영희 : 수학하고 시간 바꿨다.
아이들 : 야.
반장 : 조용히 해.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아이들 : 안녕하세요?
김영희 출석부를 본다.
김영희 : 김규명.. 장기 결석이네.
혜원 : 걔 안와요.
반장 : 장기결석이에요.
김영희 : 가난한 사랑노래 할 차례지?
아이들은 저마다 선생님 야외 수업해요. 기분도 안그런데 우리 놀아요... 한마디씩한다
김영희 : 반장, 애들 왜 이러니?
반장 : 자리를 바꿔서 마음이 썰렁한가봐요.
정아 : 성적순으로 앉으래요.
혜원 : 인문계 갈 사람만 앞줄로 오래요.
김영희 : (달래듯이) 그래, 속 상하겠구나. 근데 담임선생님도 마음이 아프실거야. 인문계를 앞줄로 보내서 좋겠니, 실업계를 뒷줄로 보내서 좋아? 선생님도 열손가락 다 깨물었어. 너희들도 철 좀 나, 생각 좀 해!
김영희 : 자, 선생님이 이거 하고 멋지게 야외수업 한 번 해보자.
아이들 : 아이, 선생님! 놀아요. 수업하지 말아요. 놀아요.
김영희 : 얘들아. 이거 마지막 신데 그거 나가고 야외 수업 멋지게 하자
정아 : 맨날 한다고 하구선 안하쟎아요. 야외수업 오늘해요. 네? (아이들도 자꾸 떠든다)
김영희 : 얘들아, 오늘 나 네 시간째야.
혜원 : 우리도 네 시간째에요.
김영희 : 공문처리하느라고 아침도 못먹었어.
아이들 : 그럼 양호실가서 쉬세요.
김영희 : 얘들아! 이 김영희 선생의 두 가지 약속 생각나니?
반장 : 네!
아이들 : 치, 또 시작이야.
김영희 : 뭐지?
아이들 : 첫째, 어떤 경우에도 때리지 않는다. 둘째 영양가 풍부한 공부를 가르친다.
김영희 : 내가 이 두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아이들 : (놀리며) 선생님 말 잘 들어라...
김영희 : 자, 책 펴자.
혜원 : 그런 말은 누가 못하냐? 나라도 하겠다, 야!
아이들 웃는다
김영희 :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진원 : 난 가난한 사랑은 싫어.
김영희 : 이거 교과서에 나오는 시 중에 제일 좋은 시야. 내가 한 번 읽어볼께.
혜원 : 책 안 빌렸는데...
김영희 : (감정잡아 읽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을 모르겠는가? 두시를 치는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멀리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혜원이가 계속 딴짓을 하는게 거슬려서) 서혜원! 앞 보고 앉아.
혜원 삐딱하게 앉는다. 뒷자리 아이들 툭탁대며 차인표 브로마이드를 뺏고 뺏기고 난리다.
김영희 : (못본 척 계속한다) 이 상황을 생각해 보자. 돌식이라고 영등포 공단에 있는 작은 마찌고 바에 다니는 근로자. 지난 시간에 얘기 해서 알지? 그 청년이 밤 11시 야근을 끝내고 자취방에 온거야. 자, 자취방 문 연다, 열어! 라면 먹은 그릇은 윗목에 있고 방은 냉골이고 연탄 살 돈은 떨어지고... 웅크려 자다가 깨었는데, 새벽 2시를 치는 거야 땡땡. 방범대원의 휘각소리. 자신이 초라해 지고 세상이 무서워 지겠지. 여기서 내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고향이
아이들 비명소리
김영희 : 왜 그래?
정아 : 선생님. 차인표가 걸레가 됐어요.
아이들 웃는다.
혜원 : 선생님. 재미없어요. 딴거 해요.
진원 : 선생님. 진도 나가요.
김영희 : 지금 진도 나가고 있쟎아.
혜원 : 진도 나가고 있쟎아 등신아
김영희 : 니네 고만해 더 떠들면 화낸다.
아이들 수그러 든다. 영희 칠판에 필기한다. 아이들 다시 떠든다.
김영희 : 얘들아 선생님이 뭐가 가장 힘든 줄 아니? 쉬는 시간없이 수업에 들어 올 때. 목은 타고 입술은 마르고.. 좀 봐 주라.. 다른 시 할 때 해봤지? 주인공하구 여자친구의 처지를 생각해서 상황을 묘사해 보는 거야. 지금한 뒷부분부터 각자 해봐.
반장 : 얼만큼 써요?
혜원 : 어디다 써요?
김영희 : 공책에다 써.
혜원 : 공책 안 가져 왔는데..
김영희 : 그럼 자습장에다 써
혜원 : 자습장도 없는데...
김영희 : 네 손바닥에다 써!
정아 : 선생님, 그럼 연애편지 써도 돼요?
김영희 : 그대신 돌식이한테 써야된다!
혜원 : 선생님! 꼭 글로 써야 되요?
김영희 : 그림으로 그려도 돼.
혜원 : 그림으로 그려도 되요? 그럼.. 베드신 그려도 되요?
아이들 : 야! 네가 무슨 베드신이냐? ....
아이들 떠든다.
김영희 : 얘들아, 니네 정말 안할거야? 너희들,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못쓰게 만드는줄 아니?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아냐고!
아이들 선생님을 쳐다 본다.
반장 : 거봐, 니네 때문에 선생님 화나셨쟎아!
정아 : 그래, 혼자 잘났어!
영희 창문에 서서 밖을 본다. 아이들 신나서 더 떠든다. 진원이가 수학문제지를 들고 반장한테 물어본다. 이를 본 혜원이..
혜원 : 야! 누가 국어시간에 수학푸냐? 누가 국어시간에 수학푸....
영희 다시 교단으로 온다. 아이들 쪽으로 간다.
김영희 : 얘! 아까부터 뭘 쓰니?
정아가 쓰던 종이를 뺏어본다
김영희 : (종이를 보며) 오빠... (종이를 돌려주며) 너 오빠하고 떨어져 사니?
아이들 죽어라고 웃는다.
김영희 : 국어책이나 꺼내!
정아 화가나서 종이를 쫙쫙 찢어 버린다. 영희 불쾌하다.
김영희 : 반장 ! 나 수업 못 하겠다. 반 분위기 좀 잡아놔!
김영희 나간다.
서혜원 : 안녕히 가세요.
김영희 나가려다가 서서 혜원을 째린다.
김영희 : 누구야?
혜원 일어난다.
김영희 : 너 이리 나와
혜원 나온다.
김영희 : 너지금 내가 어떤 기분 일 것 같니? 니네들 때리는 사람 말은 잘 듣고 안 때리는 사람은 가지고 놀고. 이게 옳은 거야? (혜원은 정아를 돌아보며 또 장난을 친다) 앞에 나와서 까지! (점점 소리가 작아진다) 나는 니 선생이야. 왜 장난질이야. 내가 니 친구야? 수업은 하지 말고 날마다 놀아 줘?
진원 : 선생님. 안 들려요.
영희 기막히다. 혜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영희 화를 참지 못하고 혜원의 어깨를 쥐고 흔든다.
영희 : 니네 왜 이래, 오늘.
혜원 : (영희를 밀치며) 에이, 말로 하세요.
영희 기우뚱하며 밀린다. 영희 때린다. 후다닥 때린 영희 놀란다. 혜원도 놀란다.
혜원 : (갑자기 몸부림 치며) 에이, 씨발. 올해는 안 때리는 선생님 된다고 그러구선. 못 지킬 약속은 왜 해? 이게 우릴 이해하는 거에요?
반장 : 혜원아.
김영희 : 더 해. 할 말 있으면 더 해봐.
혜원 : (말리는 반장을 뿌리치며) 네. 있어요. (울며) 아이들이나 때리고 차별이나 하려면 뭐하러 선생이 됐어요? 왜 선생님을 하는 거에요?
영희 : 너 같은 애 사람 만들려고 한다.
혜원 : 에이 씨발 개같은 소리 하고 있어. (말리는 반장을 뿌리치며) 어른들은 다 똑같아. 때리고 욕하고 협박하고... 우리가 화풀이 하라고 있는 줄 알어? 엉엉... 학교가 뭐 이래. 우리가 죄수야? 선생이 뭐이래!
영희 : (당황하며) 혜원아! 여러분! (고개 숙이고, 울음을 참으며)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고... 어쨌든 지금은 미안합니다.
김영희 나간다. 서혜원 더 크게 운다. 아이들 웅성 거린다.
< 복도 >
천천히 걷는 김영희
"선생님을 위하여"란 노래가 흐른다.
영희 처진 어깨가 무겁다. 점점 몸이 작아져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김영희.
"선생님을 위하여"
이제 투정은 그만 둘래요 / 당신 지친 어깨가 아파요 /
이제 어린 짓은 그만 할래요 / 우리 웃으며 다시 만나요
선생님! 선생님을 위하여 사랑하고 싶어요
길고 긴 나날 베풀어주신 / 그 깊디 깊은 사랑을
아, 얼마나 짧은 순간을 당신을 미워하고 상처 내었나
선생님! 선생님을 위하여 / 이제 사랑하고 싶어요
@@@ 2 장 @@@
장소 : 교무실
시간 : 4교시 수업시간
텅빈 교무실.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하러 들어갔다. 방학기, 기석에게 담배를 권한다.
기석 서류를 보다가 깜짝 놀라며 뒤로 감춘다. 조금 떨어져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김영희 선생.
학기 : 뭐야? 나도 압시다. 최선생 교육방송에 이력서 냈다면서 그거야?
기석 : 햐! 소문 빠르네. 면접이 남아서 준비 좀 할까 하고 보는 거예요.
학기 : 잘 생각했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앞날을 개척하는 거야.
기석 : 아이들 말로, 진짜 썰렁한 말씀 하시네요. 언제는 선생님이 천직이라고 하시더니.
학기 : 최선생! 오늘 차 써? 집에 갈거지?
기석 : 선생님 차는요? 어디 가세요?
학기 : 동창회가 있는데... 하필 호텔이야. 똥차 끌고 가기가 뭐해서 말야.
기석 : 그러세요.
학기 : 교실에서 애들한테 겉치장 보다 속이 실한 사람이 되라고 훈계하면서 사는건 그렇게 못 사니...
기석 : 사범대학 나오셨쟎아요.
학기 : 고등학교. 내가 진주에서 학교를 나왔쟎아. 거긴 시험을 봐서 들어갔거든. 일류지. 다 삐까뻔쩍해. 시장, 은행부장, 작곡가, 의사, 변호사, 경찰서장, 교수, 가장 안 된 놈이 사업하다 망해서 통닭집 하는 놈하고, 나라니까... 평교사.
기석 : 선생님 한다는 자부심으로 못 버티세요?
학기 : 누가 알아줘? 자네는 왜 교육방송으로 튀나? 그래도 요즘은 시세가 있지. 지존파가 날뛰니까. 나만 나타나면 인간성 교육이 어떻고 떠든다고.
기석 : 아이구, 오해 마세요. 선생질이 싫다기 보다 교육제도에 정나미 떨어져서 결심한 거니까. 이건 뭐 창의적인 수업 한 번 할 수 있나. 잡부금이나 걷고. 너무 교과내용이 많으니까 진도 나가기 바쁘고 차라리 학원 선생이 진짜 선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의 시간에는 철저히 공부에 열을 쏟고. 수업받는 학생들은 개길 생각 안하고. 똑같은 아이들이 인간 만든다는 학교에서 더 개판이구. 요즘 일이등 하는 애들 봐요. 학교는 침실이쟎아요. 출석이 내신에 걸리니까 온다는 태도 아녜요?
학기 : 그게 그 말이네. 자부심으로 선생질 한다는 사람은 사라졌네.
기석 : 그래도 제자들이 잘 되면....
학기 : 출세한 놈들 중에 선생 덕분에 잘 되었다는 놈 있어? 뉴스 봤어? 무슨 사건 터질 대 중학교 선생한테 의견 묻는 거 본 적 있나? 사회에 영향력 있는 배역이 아니라구. 으아아! 동창회 갈려니까 영 찝찝하다. 그래도 함께 공부하다 대학갈때는 으시대면서 갔는데. 세상을 너무 몰랐어. 최선생은 방송국 붙으면 그리로 갈거지?
기석 : 붙으면...
학기 : 오만원 있어? 회비 내라는데... 아침에 애들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 교육감, 장학사도 안 오는데 당신하고 무슨 상관있냐는 거야. 거기 나가면 새로 생긴다는 수석교사라도 한 자리 시켜주냐는 거야.
기석 : 그래도 선생님은 시험 잘 집어주신다고 하던데.
학기 : 그 재주도 강남에 가야 알아주지. (웃으며) 고등학생도 아니고... 진로지도 그거 웃기는 얘기야. 영숙이란 애는 아직도 생각이나. 인문계 갈만한 실력은 없고, 차라리 공고가 맞는데 어머니가 무조건 우기는 거야. 인문계로, 특수지 가라고 했더니 화만 내. 소질이 어떠니 적성이 어떠니, 잠꼬대야, 하품 나오는 말이지. 우겨서 상업고 보냈는데 떨어졌어. 그런데 더 좋은 학교가 미달이 되어 버린 거야. 교무실에 와서 내 딸 인생 망쳤으니까, 손해 배상하라고 아예 드러눕더라고. 힘들게 상업계 야간으로 갔는데 일년 뒤에 다시 원서 쓰러 왔더라구. 심하게 말해서 선생이 찍기를 잘 못한 탓이지. 그냥 진학 상담이 아니고 인생 전체가 달려있는 것 때문에 선생을 하면 골병이 드는 거지. 어찌된 놈의 사회가 기회가 그렇게도 없나. 대학을 안가면 삼류인생.. 가면 성공. 너무 단순해서...
기석 : 선생님은 왜 사범대학에 가셨어요? 다른데 다 놔두고.
학기 : 그래 말야. 눈에 뭐가 씌였지. 아버지가 학비 적게든다고 형도 있고 동생도 있으니까, 가라고. 그러니까 여태까지 버티지 사명감 가지고 왔으면 벌써 떠났을지도 몰라.
기석 : 사명감....
(영희에게 말을 건다) 김선생님! 교육자의 사명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영희 : 사명감요? 애들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기석 : 무슨 일 당했어요?
영희 : 나야 날마다 아이들 한테 당하죠.
학기 : 학기 초에 잡아놓으시라니까 선선하게 하더니...
영희 : 애를 때렸는데 영 기분이 언짢고..
학기 : 저런 설 잡아서 그렇지. 팰 때는 반쯤 죽여야 해요. 제삿날이다 싶게. 여중생들 약하쟎아요.
영희 : 최 선생님 반에서 당했어요.
기석 : 저런 어떤 녀석이...
영희 : 혜원이라고 눈이 선한 놈 말이에요.
학기 : 그 녀석...어디 부딪힐 곳 없나 하고 시비거는 녀석이죠?
기석 : 걔가 요즘 안 좋아요. 부모가 이혼한다고 저녁마다 싸우나 본데 아들은 아버지가 맡기로 했는데 혜원이는 엄마가 가져라, 싫다, 아빠가 가져라, 이런 식이니....
학기 : 그 부모 선생 여럿 잡으시는구만.
영희 : 일 평생 교사를 하다보면 그보다 더한 아이도 만날 것 아녜요?
학기 : 포기하세요. 저 팔자지. 어쩝니까. 공부하겠다는 아이도 다 돌보지 못하는 판에.
영희 : 전인교육?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학기 : 괜히 페스탈롯치 흉내내다 학부형 한테 항의나 듣습니다. 쓸데없이 자기 아이들 실험용으로 쓰지 말고 대학이나 보내 달라고. 나만 안 때리겠다.. 좋은 맹세지. 조금 지나봐. 다른 선생이 다 때리는데 별 수 있어? 맞아야 정신차리겠다고 난리 법석 들인데...
기석 : 정말 죽어라고 반항하면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초보 선생 때는 어떡하면 한 시간 떠들지 않게 하고 수업할 수 있을까... 죽을 맛이었어요.
학기 : 애들은 역시 애들이에요. 어른들 보다 빨리 고치고 감정 오래 안가고.
영희 : 약속 하나 못 지키면서 왜 선생질은 하냐구 대들쟎아요.
기석 : 나쁜 놈들!
학기 : 애들이 뭘. 대들어야 애들이지. 대들지도 못 해봐. 그게 사람이야? 인형이지.
영희 : 방 선생님은 타고 나셨네요.
학기 : 뭘요. 그런 놈이 차 빌려타고 동창회에 가겠어요?
기석 : 아 참, 제가 열쇠 안드렸죠?
기석 일어나며 차 열쇠를 꺼내준다.
기석 : 조심해 쓰세요.
학기 : 걱정마, 이 사람아!
영희 : (종이를 내밀며) 이거 보셨어요? 교장선생님이 낸 것...
학기 : 교장선생님 심심하니까 취미활동 하시나 보다 생각하세요.
영희 : 열네 반이나 되는 중삼 전체를 이 등수 매긴 기준을 보세요. 돈과 관련 안된 것은 출석 밖에 없어요. 방위성금, 폐휴지, 사랑의 쌀.. 이런게 교육하고 무슨 상관이 있죠?
학기 : 그거 꼴등이라고 누가 실력없는 선생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교장선생님 취미 생활이려니 하면 되지, 둥글둥글 삽시다. 전교조 선생들도 입다물고 삽디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린다.
학기 : 점심시간인데 한바퀴 돌아볼까? (나가다가 돌아서서) 교장도 수업을 줘야 한다니까!
영희 : 최선생님! 내가 서혜원이 만나도 괜찮죠?
기석 : 아이구 감사합니다. 저번 날 무단결석 했을때 쓰라고 해놓은 자술서가 있는데 보시겠어요?
영희가 받아들자
기석 : 잘 부탁드립니다.
음악 - "선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석 종이를 꺼내준다.
영희 받아 읽는다.
영희 서서 벽에 기댄다.
학기 회초리를 휙휙 소리가 나게 휘두르며 나간다.
@@@ 3 장 @@@
장 소 : 3 학년 교실
시 간 : 점심시간
진원 : 야! 조용히 좀 해! 문제가 안 풀리쟎아!
반장 : 점심시간에 왠 수학문제?
정아 : 야! 너 왜사냐? 왜 살어?
진원 : 우리 엄마한테 맞는단 말야...
반장 : 내가 풀어줄까?
진원 : 너 알어? 그럼 해줘.
정아 : (돌아서며) 난 괴로운거 하고 입맛하곤 틀린가봐.
반장 : 정아야! 넌 좋겠다. 단순해서..
정아 : 나도 하루 세끼만 먹으면 미스 코리아 감인데... 이러다 나 꽃돼지 되는거 아냐?
반장 : 돼지면 돼지지 무슨 꽃돼지?
정아 : 왜? (얼굴을 가리키며) 꽃! (몸매를 가리키며) 돼지!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오자 다들 천천히 스피커를 주시하며
정아 : 이게 뭐야?
반장 : 룰라 아니니?
진원 : 이건 또 왠 운명의 장난!
아이들 갑자기 비명을 질러대며 좋아라 춤을 추고 난리다. '비밀은 없어'를 부르며 서로 돌아가며 춤을 춘다.
혜원이도 끼어들려 하자 아이들 피한다.
혜원이가 다시 끼어들려 하자 아이들 또 피하며, 진원이가 혜원이를 밀쳐버린다. 혜원 넘어진다.
혜원 :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야! 니네들 왜 이래!
진원 : 몰라서 묻니? 너 국어 시간에 그게 뭐니?
혜원 : 뭐가?
진원 : 그래도 국어선생 정도면 우리한테 캡이야. 우리 말 잘 들어주지, 성적 갖고 안 쪼지, 장난 쳐도 잘 받아 주지.
반장 : 실력도 좋으셔.
혜원 : 야! 대통령도 뒤에선 욕 바가지로 먹어.
반장 : 넌 선생님 앞에서 했쟎아.
정아 : 김영희 선생님 아까 울면서 가드라.
혜원 : 왜들이래? 니네는 뭐 선생들한테 안 개겨봤냐?
진원 : 웃기지마! 국어 선생이 딴 선생하고 같냐?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너 그런 선생님 몇 분이나 만나봤냐?
정아 : 근데 진원이 너 아까 왜 그랬어? (또박또박 띄어서) "안들려요?"
(아이들 웃는다)
진원 : 아니, 그게 아니라... 난 그냥 선생님이 뭔가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아, 왜 그 선생님은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시쟎아. 그래서 잘 들어볼려고 그랬던 거야. 진짜야!
혜원 : 어쨌든 국언 약속을 안 지켰어.
반장 : 선생님도 사람이야.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니?
정아 : 글쎄, 나도 아까 수업시간에 국어가 내 쪽지 읽을 땐 기분이 좀 그랬는데...(분위기를 바꾸며) 야! 너희들 영어 선생 생각해봐. (목소릴 바꿔서) '똥대가리들!' '그래가지고 대학 가겠냐?' '공순이나 되서 무식한 놈 만나는 건 시간 문제야' '서양에서 왜 보이즈 비 앰비셔슨지 알아? 걸스가 아니고?'
아이들 : '여자들은 타고난 돌대가리'
혜원 : 사회는 어떻구.. 그것 좀 모른다고 '야! 이 문디 가시나야. 넌 시집가지말고 혼자 살아. 시집 가서 너같은 거 또 낳으면 (머릴 툭툭치며) 빈곤의 악순환이야. 쌍둥일 낳으면 뭔줄 아냐? 대공황이다. 대공황!' 쳇, 그렇게 잘 났으면서 왜 선생밖에 못하냐?
진원 : 도덕선생은 어떻고.. '에또,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 때문에.. 에 또, 민족문화의 뿌리가 흔들렸고.. 에또, ...' 에또가 바로 일본 말 아니냐?
반장 : 할아버지니까 그렇지...
혜원 : (반장을 치며) 얘는 왜 여깄냐? 담임한테나 가봐. 담임 손 붙잡고 알랑방구나 뽕뽕 끼라구!
아이들 : 야-아!
혜원 : 뭐어?
진원 : 너 국어선생님한테 갔다왔어?
혜원 : ......(풀이 죽는다)
진원 : 우리가 왜 인표 오빠를 좋아하겠냐? 외로워서 그런거 아니겠냐? 국어선생님은 우리 이런 마음을 알아 준다고.
정아 : 그 아줌마만큼 우리 마음 알아주는 선생님도 없어.
아이들 : 빨리 가봐-! (서로 입이 맞춰져서 깔깔대고 웃는다)
아이들 : 야! 학기온다. 학기!
아이들 흩어져 앉는다. 학기가 몽둥일 들고 지나간다.
학기 : 야이 문디가시나들! 교실이 이게 뭐꼬? 주번 창문열어!
학기 사라진다.
아이들 : 갔다, 갔어!
혜원 : (한탄하듯) 선생이 뭐길래 열여섯 처녀의 불타는 가슴을 이렇게 졸이게 만드냐?
진원 : 야! 학생이 뭐길래 선생을 울리냐?
혜원 : 알았으니까 그만좀 해! 응?
진원 : (창밖을 보며) 야! 체육강사다. 오빠----
아이들 와락 달려들어 창밖을 내다본다.
진원 : 체육 강사다.
아이들 : 어머, 오빠! (크게) 선생님!
아이들 웃으며 손을 흔든다. 혜원 질겁하는 비명소리!
정아 : 야! 혜원아! 심하다. 재가 곡소리나게 좋냐? 너 가져.
혜원 : 오늘 특활 있쟎아. 사진반!
진원 : 왜?
정아 : 왠지 몰라? 서혜원이 사진반, 담당선생 김영희!
아이들 고소하다고 놀린다.
혜원 : 오늘 서혜원이 또 사고 치겠네..
노래 "선생이 뭐길래" 나온다.
선생이 뭐길래 학생이 뭐길래 / 가슴 졸이나 회초리 드나
선생이 뭐길래 학생이 뭐길래 / 우당탕 뛰나 속이 부그르
@@@ 4 장 @@@
장소 : 특활실
시간 : 오후
아이들 카메라 만진다. 지난 주에 찍은 사진을 본다. 몇몇은 밖을 보며 심란하다.
정아 : (짜증을 내며) 비가 오냐?
향미 : 야. 니네 반에서 국어 선생님이 드디어 인간의 본 모습을 보이셨다며?
진원 : 쉽게 말해.
향미 : 서혜원이 맞았대매?
정아 : 까불지마. (둘러보며) 혜원이 아직 안왔네.
김영희 들어온다. 이것저것 짐이 많다. 아이들 멍청히 본다.
영희 : (명랑하게) 얘들아! 남이 무거운 것 들고 쩔쩔 맬 때가 지금이야!
아이들 짐을 내려 주지만 역시 김영희의 손을 본다. 영희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다.
짐을 내려놓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들 쳐다본다.
영희 : 뭘보니? 열 좀 식히자는데.
향미 : 왜 선생님만 먹어요?
영희 : 뭐? '먹어요?' '드세요' 해야지.
진원 : 맛있어요?
영희 : 너희들 학교 앞에 아이스크림 전문 가게 만드는 것 봤지?
아이들 : 네!
영희 : 오늘 낮에 열었어. 못보던 거지?
아이들 : (침을 삼키며) 네!
영희 : 참아라! 먹고 싶냐? 먹고 싶겠지. 참아라! 저축해라! 나처럼 돈 벌 때 사먹어라.
진원 : 그런 법이 어딨어요?
영희 : (다 먹으며) 그런 법은 없지. 없으니까 선생님 말씀이지.
아이들 웃는다.
정아 : 실컷 드시고 꽃돼지나 되세요.
영희 : (놀라며) 정말 ? 이 몸은 아직 수퍼 모델이니? (아이들 깔깔깔)
정아 : 선생님! 비오는데 특활 어떻게 해요?
진원 : 그냥 찍어요!
영희 : 혜원이는?
아이들 말이 없다. 영희 분위기를 바꾸려고 손뼉을 딱딱친다.
영희 : 사진 찍자.
아이들 어리둥절. 영희 칠판에 적는다. "꿈을 찍자!" 를 쓴다. 아이들 흥미를 보인다.
혜원은 구석에 등장해서 교실을 엿본다.
영희 : 진원이 너 꿈이 뭐지?
진원 : 스튜어디스요.
아이들 야유!
영희 : 그걸 찍는거야. 미래의 너를. 누가 손님할 건지. 비행기 안에서 찍을 건지. 공항에서, 아니면 파리에서. 그러니까 맨 먼저 꿈을 쓰고. 그 꿈을 가장 멋지게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장면을 택하고, 다음 엑스트라를 잘 꼬여서 찍어라, 이 말씀이다. 알았니?
진원 : 애들이 엑스트라 안해 주면요?
정아 : 인간성 보이는 거지 뭐.
진원 : 왜그래?
정아 : 평소에 잘해!
아이들 웃는다.
영희 : 자, 10분 시간을 준다. 준비 잘 해.
정아 : 저 선생님, 저는 꿈이 없는데요?
진원 : 꿈도 없냐?
영희 : 잘 생각해봐. 누구나 꿈이 있는거야.
정아 : 저, 실업계는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죠?
영희 : 정아야, 또 잊어버렸어? 내가 얼마나 많이 얘기했니? 만약에 직업에 귀천이 정말로 없다면 꿈이란 직업이 아니야. 직업은 자기 소질에 맞게 선택하는 거고, 꿈이란... 안돼! 니네들 모여!
아이들 일렬 대형으로 모인다.
김영희 : 꿈이란!
진원 : (화음을 맞추어) 스튜어디스가 되건..
반장 : 파출부를 하건...
정아 : 미스코리아가 되건...
향미 : 꽁치를 팔건...
다같이 :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
김영희 : (정아 머리를 콩!) 어때? 꿈이 날라갔어, 생겼어? 자, 이제 생각해봐!
아이들과 영희 준비하는 중이다. 혜원이 특활실 밖에서 서성인다.
혜원 벽에 기댄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벽에 기대서 쭈그리고 앉는다.
혜원의 속마음을 글로 낭송한다. ( 선생님! 다정한 말이 듣고 싶어요. 엄마 아빠는 야단 칠 때만 말을 걸어요. 공부라도 잘했으면 서로 데려가겠다고 했을텐데... 가출해 보니까 갈데도 없어요. 선생님! 이게 뭐에요? 세상은 이래요?)
영희 : 다 됐니? 첫 지원자!
아이들 : 저요, 저요!
영희 : 진원, 아니 향미!
향미 : (앞으로 나가며) 저는요. 무너지지 않는 다리를 만들 거에요. 그리고 집없는 사람들 한테도 집을 많이 지어서 하나씩 나눠 줄 거에요.
아이들 : 와아!
정아 : 그런 넌 건축공학과 가겠다.
향미 : 그럼!
영희 : 향미가 아주 멋진 꿈을 가졌구나. 우리 한 번 만들어 볼까?
아이들 : 네!
멋지게 찍는 사진 한 장. 사진을 찍다가 영희가 창 밖의 혜원을 발견한다.
아이들 : 혜원아!
혜원이 뻣뻣하게 선다.
영희 : 어서 와! 들어 와! 늦었구나.
혜원 돌아서 뛰어간다.
아이들 : 혜원아, 헤원아!
밖에서 큰 소리로 "사진반 어디에요? 아이스크림 배달왔어요!" 아이들은 "여기요!" 하면서 뛰어나간다.
@@@ 5 장 @@@
장 소 : 거리
시 간 : 밤
김선생의 남편 박후명이 서성댄다. 김선생 발등만 보고 천천히 걷는다. 남편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지나친다.
후명 : 어디가?
영희 : 어? 당신.. 기다렸어요? 우리 진달래는?
후명 : 자.
영희 : 어머니는?
후명 : 편찮으시지 뭐.
영희 : 편찮으세요?
후명 : 뭐, 편찮으세요? 도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야? 지금이 몇시야? 당신 야간 학교 선생이야?
영희 : 길거리서 왜 이래, 사람들 볼라.
영희 앞서서 갇는다. 후명 팔을 나꿔채서 끌고 간다. 집 근처의 놀이터로 데려간다. 영희를 벤치에 앉힌다. )
영희 : (애틋하게) 속 썩이는 애가 있어. 부모가 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후명 : 그래서 애 만나다 이제 왔냐? 올해는 담임 안 맡기로 했쟎아?
영희 : 그래, 담임은 아닌데...
후명 : 아니, 학교 일은 왜 남의 일까지 떠 맡고..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기나 해?
영희 : 뭐? 어머니 생신이야? 아닌데..
후명 : 박경애. 몰라? 당신 하나 밖에 없는 시누이. 스물 셋에 과부된 시누이 말야. 생일인 것도 몰라?
( 영희 할 말이 없다 )
후명 : 어머니가 경애 누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알아, 몰라?
영희 : 그랬구나. 난 오늘 학교에서 큰 일 치뤘어. 아이들 안 때린다고 큰 소리쳤었는데..
후명 : 때렸어?
영희 : 기분이 말도 못해.
후명 : 어떠냐? 정치인들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세상인데.
영희 : 그러니까 더욱 선생은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구.
후명 : 그런다고 밥이 나와, 쌀이 나와? 당신은 왜 직장 일을 집에까지 질질 끌고 오고 야단이야? 난 뭐 할 일 다해서 집에 와서 애 보는 줄 알어?
영희 : 당신도 참.. 오늘 일찍 나가서 자연보호당번으로 쓰레기 주웠지, 모의고사 성적 냈지, 작문 숙제 검사했지, 수업 여섯시간 했지, 십오일까지 교육청에 낼 자료 정리했지, 실업계 아이들 볼 도서목록 골랐지, 거기다 힘까지 빼며 아이들 때렸지... 너무 힘들어.
후명 : 힘들면 관둬. 나 버는 것으로 적게 쓰면 돼.
영희 : 어휴! 양선생은 남편이 의사라도 학교에 나와.
후명 : 그 여자야 선생 체질이지. 당신은 쩔쩔매잖아. 그까짓 중학생들 하나 못 잡아서.
영희 : 관둬. 애들 잡으려고 선생해?
후명 : 꿈꾸지 마. 성수대교도 무너지는 세상에 무슨 가치있는 직업이 있다구. 야! 난 뭐 때문에 직장 다니냐? 무슨 의미가 있어?
영희 : 당신은 컴퓨터하는 재미로..
후명 : 까불지 마. 해커들이나 재밌지. 날마다 하는 짓이 관리 프로그램이나 만드는데.
영희 : 제발, 말 사납게 하지마. 애들한테도 질렸는데 당신까지...
후명 : (소리 지르며) 명령하지마! 내가 너희 학교 학생이냐? 남편이 뭐야?
영희 : 왜 소린 지르고 그래?
후명 : 건방지게 선생이 어쩌니, 저쩌니... 그 따위 소릴 하려면 당장 집어 쳐!
영희 : 아니, 왜 알아보지도 않고 소릴 질러? 자기 부인이 좋은 선생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면 장하다 할 일이지.
후명 : 왜 거기다만 몸부림 치냐구? 손목 아파 쩔쩔 매는 시어머니 도와 줄려구 몸부림 치진 못하구. 그리고 진달래는 뭐 내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이냐?
영희 : (섭섭해서) 당신은... 괴로워하는 아이들 삼십분씩 세명만 면담해도 저녁 일곱시, 여덟시야.
후명 : 이 세상은 너 혼자 애써 봤자..
영희 : 질렸다, 질렸어. 저런 인생관. 어쩌자는 거야. 어차피 다된 세상 함께 엎어지자는 거야? 애들을 그렇게 다뤄? 세상 돌아가는 거 빨리 읽고 빨리 적응하라고? 난 못해. 난 선생이야. 당신도 결혼 초엔 안 그러더니... 비겁해! 기회주의자!
후명 : 뭐?
영희 : 관둬. 얘기가 돼? 화만 내고..
후명 : 끝까지 잘났어?
영희 : 흥! 내 월급 없으면 그 잘난 시누이 생활비도 못 보내. 생일이 대수야?
후명 : 어휴, 이게!
( 후명 때리려 하고, 영희 피한다)
영희 : 왜 이래!
후명 : 더 까불어. 선생 남편이라고 동네 이발소도 못가게 하는 주제에...난 뭐 이렇게 살고 싶어 이렇게 사는 줄 알어?
(김영희의 팔을 잡아 끌며) 일어나.
영희: 이거 놔. 학부형 보잖아.
후명:(돌아서 가다가 뒤돌아보며) 아, 빨리 안와?
영희 : 알았어, 학부형 보잖아.
영희 따라 나간다.
@@@ 6 장 @@@
장소 : 노래방
시간 : 늦은 밤
학기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기계에서 나오는 가사를 따라 부른다. 열받은 모습, 노래는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 아름다운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학기 : (간주가 나오는 동안) 그래, 내 아파트 없다. 무주택 영순위다. 너거들 뭐 보태준거 있나? 나쁜 놈들.. 뭐? 십억만 모으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한국에서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냐고? 그래 잘났다. 씨... (계속 노래 따라 부른다)
똑똑 소리. 문이 열린다. 술 취한 손님 들어온다.
손님 : 아 몇신데 벌써 자리가 없다는 거야. 나도 좀 낍시다. 혼자서 부르는 사람이 있으니까 자리가 없지.
손님도 따라 부른다.
학기 : 아저씨! 난 말에요. 혼자 있고 싶어요. 목이 터져라 부를 거란 말에요.
손님 : 형씨! 좀 합시다. 영업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기계를 만지며) 설운도의 '차차차' 없나? 형씨! 난 말이우. 뭔줄 알우? 미화원... 쉽게 말해서 청소부!
(전주가 흐른다) 가만있어.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 / 잊자 잊자 오늘 밤은
내일은 내일 또 다시 / 뜨거운 바람이 불꺼야"
손님은 학기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손님 : 청소부라 같이 안 논다 이거지! 내가 말에요. 돈이 없어서 늦게 장가를 가서 중학 다니는 아들 하날 두었수. 이놈이 사달라는 것 다 사주고 기른 이놈이 지 애비를 길에서 보더니 본 척 만 척이우. 친구들 하고 가길래 짜장면이라도 사줄려고 했는데... 근데 뭘 하신디야? 넥타이 맨 거 보니까 노가다는 아니구먼.
학기 : 넥타이만 매면 뭐해요? 요즘 선생이 시세 있나요?
손님 : 선생님! 좋지.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악수합시다. 선생 좋쟎유? 방학있고 퇴근 빠르고 정년퇴직 늦게 하고 월급 좋고 실력 없다고 쫓아 내지도 않지 누구든 존경하고.
학기 : 아저씨는 애 담임 찾아 보고 존경도 하십니까? 그래요?
손님 : 그러고 싶지만 돈이 있어야지. 요즘은 돈이 있어야 학부형이지. 돈없으면 개유, 개. 멍멍!
학기 : 나도 갭니다. 개, 멍 멍!
둘다 웃는다.
손님: 아무 노래나 나와라.
기계를 누른다. 아무 노래가 나온다. "이제 됐어, 됐어, 됐어, 그런 이야기는..."
학기 : 이게 뭐야? 교실 이데아? 왜 교무실 이데아는 못 만들어? 음악 선생들 다 어디로 갔어? 아저씨! 스승의 노래 아세요? 그것 쫌 불러 보세요. 내가 오늘 무척 몹시 썰렁하거든요. 동창회를 갔는데요. 짜식들이 피둥피둥 살이 쪄가지고 설랑 직업이 어떻네 저떻네... 판, 검사, 의사, 교수, 전무이사, 요따위 녀석들이 배부른 소릴 하고... 아으 선생하는 놈은 어떻게 살라고 야코 팍 죽이고.
손님 : 이제 됐어, 됐어. 잊으슈. 청소부 하는 놈도 살쟎우. 선생 아들이 길에서 아버지 봤다고 도망가겠시유? 그만하면 직업 따봉이지. 아랠 보고 사시라니까.
학기 : 노래 안불러 줄 꺼에요?
손님 : 뭐?
학기 : 스승의 노래.
손님 : 그건 난 모르지. 국민학교 다니다 말았으니까. 대신 이미자의 섬 마을 선생은 어뜌?
학기 : 관둬요. 한 사람 불렀으니까. 약은 놈. 눈치 빨라서 선생 때려치고 떠난다는 놈. 갈테면 가려무나....
손님은 섬마을 선생 부르기 바쁘다. 문이 확열린다. 기석이 얼굴을 내민다.
기석 웃으며 들어온다. 기석도 술을 먹었다. 비틀댄다.
기석 : 아니 왜 삐삐를 쳐요?
학기 : 어서 와. 나한테 노래 하나 불러줘.
기석 : 알았어요. 나도 차 못 가져가는데... 장기 결석하는 놈 기다리는 참인데
학기 : 빨리 노래해. 노래하면 함께 기다려 줄께..
기석 : (손님을 보며) 누구신데...
학기 : 학부형이면서 청소부래.
기석 인사를 한다. 손님 인사를 받는다.
손님 : 이분이슈? 어디 불러보슈.
손님 자리에 앉는다.
손님 : 자, 스승의 노래 시작!
기석 : 뭐요?
손님 : 빨리해. 이 선생아! 빨리하란 말이야. 그렇게 잘났어?
학기 : 그래. 이 고명하신 일급 정교사 찬송가 한 번 들어보자.
손님 : 가만, 가만! (두 사람을 반듯이 세워 놓는다) 차렷! 경례! 왜 안해? 술이 덜 들어갔시유?
손님 뒷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서 한입씩 털어 넣어 준다.
기석 : (곤란해서) 방 선생님!
학기 : 난 꼼짝 못 해. 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쳤는데 이 사람이 그건 틀렸다 하시는 거야. 시켜만 주면 선생을 하지 누가 청소를 하냐는거야.
손님 : 하 이거, 박수를 안 쳐서 빼나...(박수를 친다.) 시작!
학기 기석의 어깨를 잡고 갑자기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엉겁결에 기석도 따라 부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잘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손님은 사잇 소리로 '아주 공갈'을 집어넣는다. 선생들의 노래가 커질수록 손님의 곁소리도 커진다. 손님은 나가고.
기석은 학기를 부축하고 집에 가자고 하나 학기는 2차 가자고 조른다. 기석은 가고 학기만 남아 독백!
학기 : 짜식, 가란다고 가냐? (분위기를 바꿔서) 뭐? 초일류? 일등만이 살아남는 세상? 야! 내가 수업 들어가는 애들만 500명이야. 그래 좋다. 내가 그 500명 다 일등 만들면 될거 아냐? 방학기! 넌 할 수 있어! 네가 최고야!
@@@ 7 장 @@@
무대 안은 두 가지 장소가 만들어진다.
장소 1 : 24시간 편의점(시간은 새벽 5-6 시경)
장소 2 : 학교 운동장(시간은 아침 7-8시경)
편의점의 불빛이 환하다. 운동장은 어스름한 새벽이다. 편의점의 문 열리는 소리. 졸린 듯한 소리 "어서 오세요"
< 편의점 >
기석이 추워하며 들어온다. 술이 취해 혼자 여관에서 자고 나왔다. 사발면을 들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라면과 젓가락을 들고 스넥 바 의자에 앉는다. 기석 앞은 통유리. 오가는 사람, 자동차가 훤히 보인다.
감상용 음악이 흐르는 편의점 안. 기석 라면을 먹는다. 기석 국물을 먹다가 밖에서 남자아이와 왔다 갔다 하는 규명을 본다.
기석 눈을 반짝인다. 규명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기석의 눈. 규명이 혼자 편의점으로 들어온다.
화장을 짙게 한 규명. 새벽이라 많이 지워져 흔적만 남아있다.
이것저것 슬쩍슬쩍 훔친다. 사별면은 돈을 내고 산다.
기석의 옆에 와 사발면을 먹는다. 기석도 먹는다. 잠시 라면을 먹는 두 사람.
기석 : 규명아!
규명 : (기석을 본다. 눈을 깜박이며 생각하다가) 아하! 담임선생님! 안녕하세요?
규명 튈까 어쩔까 생각한다. 기석 눈치챈다.
기석 : 배고프지? 어서 먹자
규명 : (안심하며) 여긴 웬일이세요?
기석 : 그렇게 됐다.
규명 : 혜원인 어디 갔어요? 실업계요?
기석 : 인문계
규명 : 선생님! 나 화장 너무 진하죠? 안 받죠?
기석 : 예뻐.
규명 : "테리우스" 오빠가 자꾸 하라고 해서 했어요.
규명 치마를 자꾸 내린다.
기석 : 규명아! 너 아직 우리 학교 학생이야. 지금 나한테 걸린거야.
규명 : 학교에 한 번 가긴 갈려고 했는데... 엄마가 자퇴서 쓰라고 해서...
기석 : 집에 들어갔니?
규명 : 아니요. 돈 좀 부치라고 전화했거든요.
기석 : 아버지는 아직 안산에 계시니?
규명 : (웃으며) 우리 집은 결손 가정 아녜요. (웃으며) 좀 못 살지. 아니, 찢어지게, 튿어지게 돈이 없지.
기석 : 너 정말 학교 안 올래?
규명 : 나 대학 안가요. 기껏해야 야간 상고나 실업체 학교 갈텐데...
기석 : 학교에 안다니면 뭐해? 나이가 어려 취직도 안돼.
규명 : 왜요? 바빠요. 낮에 자고 밤에 오토바이 타고.
기석 : 돈은?
규명 : 오빠가...
기석 : 오빠랑 사니?
규명 : (웃으며) 몰라요.
기석 : 학교는 대학 갈려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규명 : (노래를 부른다)
기석 : (노래를 꾸욱 참고 듣다가) 그래, 학교는 대학에 가려고 다녀.
규명 : 선생님! 월급 얼마에요? 한 이백? 백 오십? 백도 안돼요?
기석 : 규명아! 내 말 좀 들을래? 난 선생님이야.
규명 : 술집 웨이타가 백오십에서 이백 받아요. 손님 끌어오는대로 받으니까. (씨익 웃고) 나 같은 애 때문에 속 썩고, 돈은 쥐꼬리만큼 받고... 왜 선생님이 되셨어요?
기석 고개를 돌리고 한없이 창문 밖만 내다본다. 창밖은 출근하는 자동차들로 꽉 차있다.
규명 : 아, 썰렁하다! 선생님, 저 그만 가볼께요
기석 : 규명아! (돈을 꺼내주며) 라면만 사먹지 말고 밥 사먹어!
규명 : (갈려다 돌아서서) 선생님! 저 혜원이 한 번 만나도 돼요? 나 나쁜 년 아니에요.
기석 : 혜원인 왜?
규명 : 혜원이 만나면요, 나처럼 샛길로 빠지지 말라고 얘기해 줄려구요.
규명 돌아서서 뛰어 나간다. 기석 돌처럼 서있다.
< 학교 운동장 >
운동장이 밝아온다.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온다. 선생님들의 자동차가 학교로 들어온다.
도덕 선생이 쓰레기 봉지와 집게를 들고 온다. 도덕선생(할아버지)는 쓰레기를 줍고 있다.
음악 "떠난 너를 그리며" 흐른다.
텅빈 운동장 그늘진 은행나무 아래 / 살랑이는 바람 맞으며 너를 그려본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 길을 잃은 작은 새 한 마리 몸을 떨고 있네
떠난 아이야. 울며 떠난 아이야 / 그리움 묻어놓고서 차마 그 이름 부르지 못해
떠난 너를 그리며 그 자리에 선다.
아 - 아 텅빈 교실은 널 그리며 우는데 / 아 - 아 우리 사랑은 어느 먼 하늘을 헤매나"
< 운동장 >
쓰레기를 줍는 선생. 교문을 들어서다 선생을 보는 아이들
정아 : 아이, 재수없어. 또 있네
반장 : 저 할아버지 왜 이러니? 저러니까 수업시간에 졸지.
정아 : 웬 모범? 한 십년하면 존경할까? 오래 해야 한 학기!
반장 : 글쎄, 눈요기로 보여줄 걸 왜 하냐구. 노인네가.
정아 : 도덕 가르치쟎아. 반장, 우리 돌아가자.
반장 : 정아야! 뭐하러 다리 아프게 돌아가! 이리와!
할아버지 선생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선생 : 안녕하세요?
아이들 :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아 : 선생님! 저쪽에 쓰레기 많아요.
지들끼리 웃는다.
아이들 : (지나가며) 선생님! 그럼 수고하세요!
아이들 나간다. 할아버지 선생님 쓰레기를 봉지에 넣는다.
편의점을 나와서 거리에 황망히 선 기석과 운동장 쓰레기 더미 앞에서 황망히 선 윤리 선생.
움직일 줄 모르고 있는 두 사람.
@@@ 8 장 @@@
장소 : 교무실
시간 : 오전
영희 늦어서 급히 들어온다.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는다. 뒤가 이상하다.
영희의 뒤는 정학 중인 아이들이 앉는 구석자리다. 나무 널판지를 간이의자처럼 붙여놨다.
거기에 무릎 꿇고 앉아서 반성문을 하루종일 쓴다. 혜원이 두 팔을 들고 꿇어앉아 있다.
영희 : 또 장난쳤니?
혜원 : (볼멘소리) 너무 움직인다고, 정신없다고...
영희 : 누가?
혜원 : 학기가... 아니, 방학기 선생님이요.
영희 : 왜 다른 사람만 미워하니? 니 행동은 반성안하고.
혜원 :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영희 : 얼른 갔다 와. 나 수업 들어가야 해.
혜원 : 저, 휴지 좀...
혜원 비실비실 나간다.
학기 : 김선생! 좀 따끔하게 하세요. 선생은 권위하나 믿고 사는 거 아닙니까. 최기석 선생처럼 사표낼 배짱 없으면 세월 따라 흘러야 편한 거 아닙니까?
영희 : 사표요? 교육방송에 취직됐나보죠?
학기 : 다음 주 부터 출근이라죠, 아마.
영희 : 그럼 3학년 7반 담임은 어떻게 되나요?
학기 : 에이그, 재수없는 비담임 하나 걸리겠죠, 뭐! 아, 근데 괜찮아요? 교장선생님이 뭐라고 안해요?
혜원 들어온다. 학기는 검지와 중지를 세워 벌받는 자세를 하라고 명령한다.
학기 : 저 녀석 며칠째죠?
영희 : 열흘이요.
학기 : 짜식! 애는 애다. 금방 잊고 장난을 치니...
혜원 팔을 든 채 눈은 말똥말똥 뜬다. 어떤 여자 씨근벌떡 들어온다. 김영희 앞으로 다가온다.
규명모 : 저, 실례합니다만, 3학년 7반 담임 선생님이...(혜원일 발견하고 표정이 돌변)
혜원 얼굴을 가린다. 규명모 달려든다.
규명모 : 혜원이, 이년! 너 잘 만났다. 친구는 그 지경에다 몰아넣고 너만 빠져 나와? 너만 살겠다구? 우리 규명이 찾아내, 이년! 가자! 따라와!
영희 잡고 말린다.
영희 : 왜 이러세요? 얘가 뭘. 내가 잘못했어요.
규명모 : 아니, 선생님이 무슨 상관이라고 이래요?
영희 : 제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습니다.
규명모 : 아, 김영희 선생이시구만. 아니 선생님은 우리 규명이 담임도 아니면서 왜 그 일에는 나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요?
영희 : 사실은요, 혜원이가요 규명이가 여관으로 오란다고 했다고... 담임한테는 연락도 안되고 해서, 혼자 가기 무서웠겠죠. 그래서 제가 같이 갔어요.
규명모 : 선생님, 선생님은 이년 친구가 아니예요. 선생님은 명색이 선생님이예요. 여관이 거기가 어디 라고. 애가 여관에 끌려 갔다고 하면 경찰을 데리고 가던가, 하다 못해 남자 선생이라도 함께 가야 할 것 아녜요!
영희 : 어머니. 화나시는거 압니다. 화나시겠지요. 그래도 고정하시고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규명모 : (뿌리치며) 듣긴 뭘 들어요. 우리 규명이, 규명이는 이제 어떻게 된데요? 제적이라던데 (다시 영희를 보며 사정조로) 선생님. 우리 규명이 좀 어떻게 안될까요? 네? 선생님... 아이구 선생님 어떻게 좀 해주세요. 걔 그렇게 되면요, 나 죽어요.
학기 : 아주머니! 규명이 어머니신가 본데... 좀 조용히 하세요! 다 끝난 일입니다. 교장선생님 결재도 다 끝났어요.
규명모 : (학기에게로 다가가며) 아이고, 선생님... 우리 규명이 좀 살려주세요, 네? 걔 나쁜 애 아니에요.. 친구를 잘못 사귀는 바람에... 네? 선생님..
학기 : 이제 와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연락을 드렸을 때 진작 찾아오셨어야죠.
규명모 : 죄송합니다. 한번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다 하면서도 벌어 먹고 살다 보니까... 이제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니 한번만 어떻게 안될까요? 네? 고등학교는 나와야 사람 노릇을 하지요.
학기 : 다 끝난 일입니다. 이제 와서 이러셔도 소용없으니 나가주세요. 여긴 교무실입니다. 자꾸 이러시면 안되요.
영희 : 아이고 선생님.. 다른 학교 전학이라도, 전학이라도.. 안될까요? 네?
학기 : 전학은 무슨... 이미 제적이 됐다니까요.. 애도 안 나타나는 판에 무슨 전학! 이러지 말고 돌아 가세요.
규명모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며)저,이거 변변치 않지만 제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받아 주세요.. (주머니 에 억지로 집어 넣는다.)
학기 : (봉투를 확인하고선 내던지며) 아니, 이 아주머니가... 이게 무슨 더러운 수작이야.누가 이런 것 받자고 이러는 줄 알아? 신성한 교무실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규명모 : (초라하게 봉투를 다시 주으며) 신성해? 신성해서 내 돈은 더러워서 못받겠다? 그래 신성한 교무실에서 무슨 똥 쌀 짓을 했길래, 중 삼 여자애 하나 사람 못만드냐! 철없는 것이 오빠 따라간다고 보내? 구렁텅이로 밀어내? 그래 넣고 이제 와서 책임 못지니까 뭐, 짤라버려? 이 지랄로 책임 회피하니까 선생 똥은 개도 안먹어!
학기 벌떡 일어난다. 규명모를 힘으로 민다.
학기 : 나가요. 이 여자가 어디 와서 행패야! 딸년 제대로 못 가르친 죄나 빌어. 그런 년을 우리한테 맡기고, 누구 보고 책임 따져! 당신은 그런 딸년 하나 기르지만 우리는 수십 수백명 상대해! 뭘 알어?
규명모 : 그래, 나 못배웠다. 돈 없다. 그렇다고 사람을 이렇게 깔봐!
규명모 몸부림치며 말리는 영희의 머리칼을 잡는다.
규명모 : 야, 이년아. 내 딸 찾아내, 내 딸 데려와.
영희 : 왜 이러세요!
학기가 규명모를 떼어내면 규명모 몸부림치며 절규한다.
규명모 : 대학 나온 잘난 너희들이 내 딸 사람 만들어봐! 내가 괜히 심심해서, 뼈골 빠지게 번 돈 학교에다 홀랑 갖다바쳐! 난 못배워서 이렇게 밖에는 못살아도 규명이는 대학 보낼라고 했어. 근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 (영희를 노려 보며) 니가 선생이면,선생이면...
영희 : 선생이 뭐.... 하느님이에요?
규명모 : 그래, 하느님이라도 돼야지. 돼야 혀!
영희 : 어머니! 아이들은 학교 진절머리 내고 떠나지만, 선생은요, 선생은요. 가슴에 남아요. 그런 아이들, 가슴에 남아서....
규명모 : 왜 짓밟는거야, 왜! 나같은 년은 대학 사각 모자 쓰고 사진 좀 찍어 보면 안되냐, 안되? 규명이 아버지. 그년 하나 낳고 도망간 놈이여. 그래도 난 규명이 걔 시집 못갈까봐 이혼도 못하고 살았어.
영희 : 나도 그래요. 선생 노릇 잘 하려구, 남편한테 매 맞아도...
규명모 : 다 듣기 싫어. 끝났어, 다 끝났어.내가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데, 그 설움,그 수모를,그 적막강산 을 어떻게 살았는데. 물어내, 어떻게 물어낼 거야? 뭘로 물어낼거야? 난 이제 어떻게 살어. 규명아, 규명아! 차라리 날 죽여라, 날 죽여. 이년아! 이 선생아! 아이구! (영희의 멱살을 잡는다)
혜원 : (뜯어 말리며) 그만해요. 그만해. 어른들은 도대체 왜 이래요? 왜!
영희 : 혜원아!
혜원 : 선생님! 이러지 말아요. 엉엉
영희 : 혜원아, 그래! 책임질께. 내가 책임질께. 규명이도 내가 책임질꺼야.
<규명이가 사라지던 날 장면 16mm 필름으로 보여준다 >
허름한 여관 앞. 김영희와 혜원 여기라고 손짓한다. 둘 들어가려 한다.
늙은 남자 가로 막는다. 김영희와 늙은 남자 옥신각신한다.
혜원 눈치를 보다 안으로 들어간다.
여관 안. 방문을 연다.
규명 속옷만 입은 채로 화투를 떼고 있다. 혜원을 보고 들어오라고 한다.
둘 꼭 껴안는다. 규명 담배를 준다. 둘 담배를 피운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 오빠가 후다닥 뛰어 들어 온다.
여관 뒷문.
늙은 남자를 밀치고 영희가 뛰어 들어온다. 여관 방에서 오빠 손에 이끌려 옷가지를 들고 끌려가는 규명
따라나오는 혜. 영희 붙잡으려 한다. 오빠 규명을 끌고 가다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던진다.
질질 끌려가는 규명. 가다가 뒤돌아보는 규명 얼굴 close up. 에서 화면 정지.
@@@ 9 장 @@@
장소 : 교무실 -> 운동장
시간 : 오전
영희 책상정리를 한다.
짐을 싸는 동안 교장의 오디오 들린다.(김선생! 이게 뭡니까? 신문좀 보세요. 문제아, 인신매매단... 아 양천구 K 여중이면 어딥니까? 우리 학교에요. 정년 2년 남겨두고 나원참 챙피해서... 김선생!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요?)
최기석이 잘 뽑아 입고 들어온다.
영희 : 웬일이세요?
기석 : 아이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서요. 오늘 졸업식이죠?
영희 : 네. 지금 마지막 조회하러 다들 들어가셨는데...
기석 : 선물을 안 사와서 말에요.
영희 : 학교 떠나니까 어때요?
기석 : 현대 그만두고 삼성가는거 같진 않던데요. 선생이란 직업.... 묘해요.
학기 들어온다.
학기 : 어, 왔어? 축하해. 최선생, 아, 최PD. 아, 참 최선생! 교문앞에 새 차 최선생이 끌고 온거야?
기석 : 네
학기 : 애들이 최선생 그만두더니 새 차 타고 왔다고, 그거 긁으러 가자고 와 몰려갔어.
기석 : 네? (퇴장)
학기 : (영희를 보며) 김 선생님! 이 짐 다 뭡니까? 사표.. 쓰신거에요? 규명이 때문입니까? 김선생님! 선생님은 하실 만큼 다 하셨쟎아요. 이리저리 안 뛰어다닌데 없고... 이런 일로 사표 쓰시면 학교에 남아 있을 사람 누가 있겠어요?
영희 : (돌아서서) 아이들은 한 살씩 나이를 먹고 한 학년씩 올라가는데... 난 뭐했죠? 난 뭘 했을까?
정아 : (급하게 뛰어들어오며)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정아, 김영희의 손을 잡아 마구 흔든다 .
영희 : (화를 내며) 왜 이래! 말 해! 내가 끌 려다닐 줄 알어! 언제까지나!
정아 : 혜원이가요.
영희 : 혜원이가 뭐.
정아 : 운동장에서요. 눈싸움하다 미끄러졌는데 기절했어요.
영희 : 뭐?
정아 : 못 일어나요.
영희 : 혜원이가? 혜원아, 혜원아...
영희 뛰어간다. 가다가 혜원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간다. 온 교정안이 혜원이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로 가득찬다.
<운동장>
혜원이 벌렁 누워 있다. 아이들 주위에 둘러 서있다. 영희가 달려와 혜원을 끌어 안는다.
영희는 혜원이 깨어나라고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부른다. 뺨도 때린다.
그래도 기척이 없자 혜원이 가슴에 귀를 댄다. 이 때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지르며 김영희 옷 속으로 눈을 넣고 퍼 붓고 난리다.
혜원은 일어나서 김영희의 두 팔을 잡고 눈 위를 굴린다.
아이들 : 선생님!
영희가 놀래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혜원은 "속았죠" 하며 웃고, 영희는 그런 혜원을 잡으려고 하고 도망치던 혜원은 멈춰 서며
혜원 : 쟤가 시킨 거에요. 쟤가 시켰어요
영희 : 왜그래... 왜그래..
혜원 : 선생님, 가지 마세요
정아 : 선생님! 떠나신다는 거 거짓말이죠? 네?
아이들 영희를 애타게 쳐다보고 영희는 말이 없다. "내가 가는 길" 전주
혜원 : 선생님! 가시기만 해봐요. 우리 가만있지 않을 거에요. 우린 선생님 못 보내요.
아이들 : 안보내요!
영희는 혜원을 끌어안는다. 사진 찍고, 커튼 콜.
"내가 가는 길"
처음엔 너를 위해 사는 줄 알았어 /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내가
니가 있어 모든 걸 쉽게 했지 / 하지만 배우는 건 너만 아냐
네 속에 싹트는 뜨거운 희망 우릴 하나로 묶었지
정말 후회없이 살고 싶었던 거야 / 내가 가는 이 길이
두려움 없이 가는 건 / 내 곁에 나를 지켜주는 너희들
두려움 없이 가는 건 / 네가 있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 끝 @@@
첫댓글 네^^선생님!!제가 좋은 생각이 있는데 아직 대본을 다 못만들어서 제가 대본을 완성해서 선생님 메일로 보내드릴게요!!선생님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jmscanto@hanmail.net
네 감사해요!!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