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김미현
#. 프롤로그 (밤)
후두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밖으로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
진욱(남, 30대 초반) 얼른, 거실을 가로질러 열린 창문을 닫는다.
띵동- 현관 벨소리.
현관문을 무심히 여는 진욱. 어?! 하는 놀란 표정.
이내 빙그레 미소로 바뀌는 순간. 진욱의 안면으로 날아오는 육중한 둔기.
퍽- 소리와 함께 진욱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우르르 콰쾅~ 번쩍!
의식을 잃은 진욱의 몸이 아파트 베란다에 반쯤 걸쳐있다.
가죽 장갑을 낀 손, 베란다 밖으로 힘껏 밑으로 밀쳐낸다.
철퍼덕! 바닥으로 떨어진 진욱의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 바닥을 적신다.
빗물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가는 핏물로... 서서히 만들어지는 타이들.. '폭로'
1. 방송 스튜디오 안.
(모니터 화면) 입자가 거친 촬영 화면... 앳된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남자의 뒷모습.
소녀의 단추를 홱- 뜯어내는 순간, 정지하는 모니터.
조명이 밝아지면서, 방금 보였던 화면이 스튜디오 안의 모니터란 게 드러난다.
스튜디오 중아 벽에 붙은 프로그램 간판 “생방송 폭로”
(부조실) 피디 이 현규(남. 30대 중반), 디렉팅 중이다. “카메라 투 스탠바이, 깟뜨”
모니터 화면 소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 간다.
(소리) : 밤만 되면 그 짐승이 제 방으로 와요. 발걸음소리만 들어도 숨이...막....숨이 막히고...
현규 : (모니터 보며) 아, 좋아. 좋아. 카메라 원 스탠바이 깟뜨!
모니터 속 진행자의 얼굴로 넘어가고...
진행자 : (눈가가 젖어간다) 저희 제작진은 소녀의 말을 믿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현장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규 : (짜증) 아이 쟤 왜 또 저래?
(소리) : 인면수심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이런 장면을 두고도, 은진 양의 양아버지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갓 열여섯을 넘긴 어린 소녀 강 은진! 언제까지 가족 내의 성폭력을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할 것인지...
앞으로 관계 당국의 조속한 조사만이 숙제로 남겨진 셈입니다.
현규 : (뒤를 보며) 엠씨한테 오버하지 말라고 얘기 안 했어?
뒤에 서 있던 순호(남.20대 후반) 주눅 들며 ‘했는데’ 작은 소리로 웅얼거린다.
현규 : (마땅찮은) 진행자가 눈물이나 보이구 지가 시청자야? 하여간 시청률 높이려면 엠씨를 갈아야 돼,
카메라 투 스탠바이 깟뜨!
(스튜디오 안) 방송이 끝나고 난 뒤 불 꺼진 스튜디오 안.
조연출 순호가 소녀의 마이크를 뽑아주며, 감정이 격해진 소녀를 위로하는 뒤편에,
현규, 진행자와 얘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현규 : (스튜디오에서 표정과 상반된 환하게 웃으며) 아까, TCR에서 스튜디오 넘어올 때 말야, 햐, 좋았어요!
눈물이 얼핏 보이니까 뭐랄까, 감정이 한껏 고조되는 게...
진행자 : (만족스러운) 그래? 좋았어? 하..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이거 이 피디한테 한 소리 듣겠구나했지.
현규 : (계속 웃는 척) 아냐, 너무 좋았어요.
2. 교양국 사무실. 낮.
작은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는 현규.
그 뒤로 허 피디(남, 30대 중반)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TV소리) : 어제 정무장관 최천균 씨가 공식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청화대에서는 최천균 씨의 사표를...
허피티 : 저 사람 저가...결국 사표 쓰는구만. 여자 문제도 장난이 아니라는데... (현규 흘깃보는) 한번 가서 찍지?
현규 : (심드렁한) 정치 니 전공이잖아요.
허피디 : (놀리듯) 몰카는 니 전공이잖아, 했으면 진짜 대박 날 텐데 그치 이 피디?
현규 : (얄밉게 받아치는) 늘 상 대박인데...(거들먹대는) 굳이 또...뭘.
허피디 : (현규를 흘겨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면)
현규 : (넌 아직 멀었어하는 얼굴로 피식 웃으며 무심히 고개를 돌리다가) 어허, 자꾸 앉지 말랬지, 의자 닳아!
순호 : (의자를 만지며) 형, 나 입봉하면 이 의자 나 줘.
현규 : 말 같잖은 소리하고 있네. (책상 위에 걸터 앉는) 이게 얼마 짜린대.
순호 : 얼만 대?
현규 : 말하면 너 우울해진다.
순호 : (궁시렁대는) 입봉하면 사수가 선물하고 그러는 거 아냐?
현규 : 그럼 넌 뭐 줄래? (순호 놀래서 쳐다보면) 뭘 놀래, 기브앤테이크! 몰라? 그래, 그거나 줘라.
순호 : (뜨악한) 내가 이거 타려고 4년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현규 : (씨익 웃으며) 새끼...쫄긴. 안 갖는다, 안 가져! (넥타이를 마무리하며) 오늘 꺼 얼마 나왔냐?
순호 : (표정 환해지는) 13프로.
현규 : 지난 주 정피디 꺼 얼마 나왔지?
순호 : 육 프로.
현규 : (거들먹) 걔들은 프로그램 발로한대? (파일을 뒤적거리며) 이게 다야?
순호 : 저...지난번 말한 방사선 페기물...
현규 : (말 끊으며) 야 뭐 좀 섹시한 아이템 좀 없어? 오르가즘이 팍팍 느껴지는 아이템을 찾으란 말야.
지난 번 모텔 몰카 피해자...그거나 좀 더 알아봐. (일어나 나가려는데)
순호 : 어디 가요?
현규 : 좋은 데 간다 임마! 왜.
3. 법원 안. 낮.
민사 소송인 듯, 양쪽 모두 변호사가 앉아있고,
한쪽 변호사석에는 변호사와 귓속말을 나누는 현규의 모습이 보인다.
증인석에 앉아 증언을 하고 있는 한 남자1.
남자1 : (울먹거리며) 전 정말 술도 끊어구, 여편네와 잘 살길 바랬습니다.
변호사 : 그런데, 왜 또 부인에게 폭행을 한 거죠?
남자1 : (앞에 앉은 현규를 노려본다) 저 인간 같지 않은 놈 때문에...
현규, 남자가 자신을 보자, 슬쩍 시선을 외면한다.
남자1 : 저한텐 마누라와 화해하는 모습을 방송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전 긍께 그냥 그런 줄 만 알았죠.
(점프) 증인석에 앉은 현규.
현규 : (헛기침을 두어 차례 하는) 아뇨, 그런...말도 안 되는....함정이라뇨?
출연자 집에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 두는 건, 관행입니다.
변호사 : 선정적인 부부싸움 장면을 찍기 위해 일부러 술을 마시게 한 것 아닙니까?
현규 : (미소 띈 얼굴로 변호사 보는) 어머닌 늘, 제게 말씀 하셨죠.
변호사, 또, 무슨 수작을 하나 싶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현규 :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술을 먹거나 밥을 같이 먹어보고, 잠을 함께 자라구요.
전, 방송을 위해 출연자와 꼭, 술이나 밥을 먹습니다. 때론 같이 자기도 하죠. 그런데 저 분이 (생각하기도 힘들다는 표정)
술을 먹고 평소 습관처럼 부인을 때린 겁니다. (말갛게 보는) 저흰 카메라에 찍힌 장면을 그대로 방송했을 뿐인데...
4. 삼겹살 집 안. 저녁.
지글지글 철판 위에서 구워지는 삼겹살...
국장 위시로 연출, 조연출, 작가, FD들이 둘러 앉아 술을 마신다.
모두들, 술이 들어가 조금 불콰해진 얼굴들.
국장 : (옆에 앉은 현규의 어깨를 두드리며) 니들 이 담에이 현규, 반만큼 해, 응? 반만큼.... 그럼, 이 바닥에서 성공하는 거다.
쳇- 어디선가 흘러나온 실소. 싸늘해지는 술자리.
국장 : (건너편에 앉은 허피디를 노려보며) 너, 왜 웃어? 내 말이 틀려? 너, 지난번에 얼마 나왔어? 4프로 나왔지?
허피디 : (말없이 소주잔만 비운다) ...
국장 : 칼라 바 깔아도 그 정도는 나와! 그나마 현규가 꼬박 꼬박 10프로 넘겨주니까..
허피디 : (콱 잔을 움켜쥐며) 국장님, 이현규 방송이 방송입니까? 어린애 팔아서 그런 선정적인 장면 나오는 거
저희가 해도 시청률 그 만큼은 나옵니다.
국장 : 그래? 그럼 너도 시청률 한번 올려 봐! 그리고 나서 얘기해.
국장과 허피디가 언쟁을 벌이는 사이,
현규, 잘 익은 고기를 순호 앞에 놓으며 자상한 얼굴로 먹으라며 눈짓한다.
허피디 : (현규 노려보는) 시청률이면 다 해결 되는거냐?
현규 : (잘 익은 고기를 허피디 앞에 놓으며) 잘 익었다. 너 먹어라.
허피디 : (눈을 부라리며) 쪽팔린 줄 좀 알아라!
현규 : (슬쩍 비웃는) 칼라 바는 안 쪽팔리냐?
‘뭐, 이 새끼야’ 그대로 덤벼드는 허피디.
순간, 테이블이 엎어지고, 술상이 엉망이 된다.
5. 거리. 밤.
잔뜩 술에 취한 현규를 부축하며 오는 순호.
현규 : (한쪽 입술이 터진) 너두 쪽 팔리냐?
순호 : 쪽팔리긴... (자랑스럽게) 형, 내가 왜 피디가 되려고 했는 줄 알어?
현규 : (속이 메스꺼운지 인상을 쓴다) ...
순호 : 98년도 할렐루야천국 사건...그거 보고 결심했잖아. (주먹을 불끈 쥐는) 그래! 나도 이현규 피디 같은 사람이 돼서,
이 사회에 정의를 구현....
(소리) : 우웩-
(점프) 가로수 밑에서 순호가 현규의 등을 두드려 준다.
순호 : 형, 아까 낮에 형 나가고 제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등을 두르리며) 애인이 죽었는데... 주위에서 다 자살로 몰고 있대.
죽을 이유가 없는데.
현규 :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증거 있대? (순호 고개 끄덕인다) 경찰에 보내면 되잖아.
순호 : 경찰에서도 이 여자 말을 묵살한대.
현규 : (관심이 가는 지, 살짝 눈알을 굴리며) 경찰에서?
6. 방송국 로비 안 커피 숍. 낮.
현규가 들어와 주위를 둘러본다.
구석에 앉은 순호가 누군가와 있다가 손을 들어 보인다.
현규 : (자리로 가 앉으며) 죄송합니다.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명함을 건네며) 이현규 피딥니...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명함을 받은 선우(여,20대 후반), 소박한 옷차림으로도 감출 수 없는 고혹적 매력이 풍긴다.
현규 : (짐짓 표정을 거두며) 흠....본론부터 얘기하죠. 애인이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확실한 근거가...?
선우 : (조심스레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며) 이거요. 진욱씨와 전, 얼마 전부터 푸른 시민 연맹 부동산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현규 : 푸른 시민 연맹이요? (놀란 현규, 순호를 흘긴다)
선우 : (딱 떨어지는 말투) 이 땅은 연맹 직원들도 모르는 땅이에요. 이 땅을 연맹 이름으로 비밀리에 산 사(람이)...
현규 : (순호에게 눈짓하며) 황피디, 나 좀 잠깐 보지?
7. 화장실 안. 낮.
순호를 끌다시피 화장실로 들어오는 현규.
현규 : (화장실 칸에 사람이 있나 확인하곤) 푸른시민연맹? 너 거기가 어떤 댄 줄 알구나 덤벼?! 회원만 자그마치 20만이야, 20만.
순호 : (화나지만 참는) 회원이 20만이면 비리도 외면해야 되는 거야?
현규 : 시끄러. 너 같으면 시민 단체 비리가 궁금하냐? 리모콘 돌아가기 딱이야, 딱!
순호 : (답답한) 언론의 기능이 뭐야 형....정의 사회...
현규 : (말 가로채며) 정의사회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심한 듯 보는) 임마! 이기면 그게 정의야! 정 하고 싶으면 너 입봉하면 해.
(돌아서며) 난 저 여자 내가 알아서 돌려보낼 테니까.
현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8. 커피숍 안. 낮.
화장실에서 와 자리에 앉는 현규와 순호.
궁지에 몰린 사슴처럼, 불안한 표정으로 선우, 두 사람을 번갈아본다.
선우 : 방송은 언제로 잡히는 거죠? 저쪽에서 제가 여기 온 걸 알면.
현규 : (친절한 표정) 연맹 비리는 어쩌다가 조사하셨죠?
선우 : (잘못 들었나?) 네?
현규 : (표정 굳는) 위원장한테 갑자기 구린내가 진동해서는 아닐 테고,
선우 : 그건 제가...
현규 : (심문하듯) 내부에서 문제 제기는 해보셨나요? 전 상식적으로 좀... 이해가 안가네요.
시민단체라면 자체 자정 작용이 다른 조직보다 빠를 텐데, 굳이 언론을.
선우 : (당황해 순호 보는) 무슨 말씀이신지. (순호, 고개를 떨군다)
현규 : (냉정한) 내부 고발 이면에 혹시 어떤 이권이...
선우 : (표정 일그러지는) 피디님은 일을 할 때, 이해득실부터 생각하세요? (절망하는) 이권이라구요? 우린 그런 거 몰라요.
잘못된 게 있다면, 단지 바로잡고 싶었을 뿐예요. (눈가가 그렁한) 그 장본인이 위원장님이라는 걸 알았을 때...
현규 : (놀라는) 잠깐만요, 위원장이라면 박한영 위원장이요?
선우 : (눈물을 애써 참으며) 생방송 폭로팀이라면, 제 말을 믿어 줄 거라 생각했어요. (일어서며) 제가 잘못 찾아온 거 같네요.
선우,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은 서류,.
순호, 현규를 원망스러운 듯 흘긴다.
9. 방송국 국장실 안. 오후.
싸인 할 서류를 대충 흝어보는 국장. 그 앞에 현규가 서 있다.
국장 : (싸인을 하며) 다음 아이템은 뭐야?
현규 : 아직...고민 중이예요.
국장 : (서류철을 건네며) 이번에 특히 좀 신경써 봐.
현규 : 네... (하며 돌아서 나가는데)
국장 : 아무래도 나 임원 승진 할 거 같다. (현규, 쓰윽 돌아보면) (씨익 웃는) 큰 거 하나 터뜨려 봐.
현규, 덤덤한 표정으로 국장에게 인사를 하며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간다.
(E) 군중의 박수 소리...!
10. 국장실 안. (현규의 상상)
사장에게 임명장을 받는 현규. 임원들 모두 힘껏 박수를 쳐 준다.
임명장을 쓰윽 돌아보는 현규. 책상 위에 놓인 <국장 이 현규> 명패를 쓰다듬는 현규. (DIS)
11. 사무실 안. 낮.
상상에 미소가 절로 번지는 현규, 아이템 파일을 꺼내려다, 책상 위에 놓은 신문을 흘깃 본다.
<신년대담-우리 시대의 거인 박 한영> 기사와 함께 보이는 박한영의 사진.
현규 : (눈빛 빛내며 소리치는) 순호야! 지난 번 그 자료 어딨냐?
12. 방송국 외경. 아침.
편집실 유리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허피디와 현규가 보인다.
허피디 : (밖으로 나오며) 니가 편성까지 다 해 먹어!
신경질적으로 복도를 걸어 나오는 피디 뒤를 현규가 쫒아온다.
현규 : (허피디 붙들며) 야, 허피디, 내가 틀린 말 했냐? 시청률 잘 나오면 너두 좋고 나두 좋고.
흥분만 하지 말고, 좀 합리적으로 생각해봐.
허피디 : (현규를 한심하게 보는) 아주 시청률에 눈깔 뒤집혔구만. 합리적? 자기 합리적인 게 니 방식의 합리냐?
(소리) : 왜들이래? 아침부터.
국장이 무서운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본다.
(점프) 편집실 의자에 앉는 국장.
국장, 난감하다는 듯 허피디와 현규를 번갈아 쳐다보다, 결심을 한 듯 허피디를 본다.
국장 : 재개발 현장, 그거 뭐 있겠냐?
허피디 : (버럭) 국장님!
국장 : (귀를 파며) 아이 시끄러. 귀청 떨어지겠다.
허피디 : (흥분한) 거기 주민들이 쫒겨나는 것도 서러운데...방송에서까지 외면하면.
국장 : 야, 시청률 안 나오면 우리가 쫒겨나, 그건 왜 몰라! (현규보는) 대신, 결과는 확실하게 만족스러워야 돼! (편집실을 나가면)
현규, 어깨를 으쓱, 얄밎게 웃는다.
13. 조사 상황 몽타쥬. 낮.
- 양주시 등기소에서 등본을 떼어 나오는 순호.
- 넓은 논둑 앞에서 부동산 업자와 얘기를 나누는 현규.
- 경찰서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호.
- 양주시청 토지과에서 토지 대장을 들춰보는 현규.
- 시청에서 나오며 핸드폰을 받는 현규, 전화를 받으며 이내 표정이 굳어진다.
14. 아파트 주차장. 낮.
현규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급히 들어선다.
15. 선우의 아파트 안. 낮.
마주 앉은 선우와 현규.
거실 벽에 걸린 큰 인물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민주화 투쟁, 시민 운동 상징 등...
현규는 신문 기사를 흝어본다. ‘전직 시민단체 직원, 유서 나와’ 류의 헤드 카피.
현규 : (신문을 내려놓으며) 경찰에서는 뭐래요?
선우 : 국과수에 넘겨서 친필 확인 한다고... (답답한) 유서라뇨!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죽은 이유가 없는 사람이 유서라니.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방송이고 뭐고 다 관두고 싶어요.
현규 : (선우 어깨에 손을 얹으며) 선우 씨, 유서문젠 일단 수사결괄 지켜봅시다.
울음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현규를 보는 선우.
가까이서 본 선우의 깊은 눈, 붉은 입술, 살짝 패인 가슴선...
현규, 숨이 막히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하며 일어선다.
분위기를 바꾸려 벽에 걸린 사진을 본다. 젊은 부모와 어린 여자 아이가 찍힌 빛바랜 사진.
현규 : 선우씨가 엄마를 닮아서 미인이군요...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요?
선우 : (현규 앞으로 와 서며) 파리에서 사진 공부했어요.
현규 : (아!) 어쩐지... (선우, 무슨 뜻이냐는 듯 보면) (농담처럼) 연예인들처럼 너무 미인이시라.
(말 돌리며) 근데, 공부하시다 말고 왜...?
선우 : 엄마가 재혼을 하셔서 떨어져 살았는데...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년에 돌아가셔서 귀국했어요.
현규 : (선우 옆으로 가 앉으며 따뜻하게 보는) 선우씨. (선우 손을 움켜쥐며) 방송 날까지 한번 우리 힘을 합쳐 봅시다. 네?
선우 : (현규를 보며 짓는 옅은 미소) ...
16. 방송국 외경. 저녁.
어둠이 내려앉는 방송국 전경.
17. 분장실. 같은 시각.
분장을 마친 선우, 굳은 얼굴로 텔레비전을 본다.
화면에 박한영이 기자 회견을 하며 웃는 모습. <박한영 위원장 세계 평화상 후보 유력>이라는 자막.
선우 옆을 왔다갔다하는 순호, 슬쩍 슬쩍 6mm 카메라에 선우를 찍고 있다.
분장실로 들어서는 현규, 순호를 보고 눈을 흘긴다.
현규 : (잔뜩 화난) 뭐해?
순호 : 아, 저기... (머리 벅벅 긁으며) 그러니까 그게...
현규 : (눈 부라리며) 방송 앞두고 잘하는 짓이다.
순호 : 아직 시간이...
현규 : (낮지만 무서운) 이럴 시간에 테이프나 챙겨놔.
선우에게 다가가는 현규, 과장되게 너스레를 떤다.
현규 : 야, 화장하니까 몰라보겠어요. 이 바닥에선 얼굴에 분칠한 인간은 믿지말라는 속설이 있는데..
이거 분장이 너무 잘받는 거 아니예요.
선우 : (화면 보며) 방송 나간 뒤에도 저렇게 웃을까요?
현규 : (미소를 지어보이는) 방송 전에 흥분하는 거 안 좋아요. (화제 돌리는) 야, 반지 이쁘네, 진욱씨가 준 건가요?
선우 : (TV를 노려보는) 그 사람이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현규 : (안쓰러운 듯 어깨를 툭툭 쳐주며) 진욱씨도 오늘 방송을 지켜볼 거예요.
18. 방송 스튜디오 안. 밤.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는 진행자에게 떨어지는 밝은 조명.
진행자 : 생방송 폭로! 오늘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한 시민단체의 도덕 불감증을 폭로하려 합니다.
19. 박한영 위원장실 안. 같은 시각.
(TV화면) 진행자와 나란히 앉은 선우.
선우 : (조심스러운 말투) 52만평이나 됐어요. 그렇게 큰 땅을...직원들이 모른다는 게 이상했죠.
그래서 진욱씨와 제가 뒷조사를 했는데... (잠깐 끊고 함숨 쉬는) 한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진행자 : 왜죠? 뭐 때문에...
선우 : 그 땅의 실질 소유주는 (망설이는 눈동자) 박한영 위원장이었습니다.
진행자 : 박한영 위원장이요?
조촐한 위원장 사무실. 무표정한 얼굴로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는 박한영.
(TV소리) : 더욱 충격적인 점은 함게 조사하던 최진욱씨가 얼마 전 의문의 죽음을...
TV리모콘을 끄고 수화기를 드는 박한영의 눈에 분노가 일렁인다.
미세하게 떨리는 버튼을 누르는 박한영의 손.
20. 선우의 방 안. 밤.
인서트 - 불빛이 거의 꺼진 선우의 아파트 외경.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보는 선우, 시청소감을 본다.
“폭로 니들 미친 거 아냐? 윤선우, 그 또라이말을 그대로 방송하냐?” “세계 평화상 후보 얼굴에 똥칠하면 재밌냐?”
“나라 망신이다, 나라망신...니들 폭로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는 선우.
(점프) 방안을 왔다 갔다... 홱, 노트북을 돌아보는 선우. 모니터를 집어 사정없이 바닥에 내려치곤 밖으로 나간다.
박살이 난 노트북.
21. 푸른 시민 연맹 브리핑 룸. 아침.
박한연, 초체한 얼굴로 단상에 선다. 많은 기자들, 후레쉬를 터뜨린다.
박한영 : (원고를 들며) 우선, 저 때문에 이렇게 많은 기자 분들이 힘든 걸음을 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작년, 6월 저는 간부회의를 거쳐 양주시 남동면 일대에 52만평의 땅을 샀습니다. 이 땅은 무주택 독거노인들을 위한
실버타운 건설 예정 부지이고, 자금은 그 동안 연맹 후원금과 기금으로 마련했습니다.
인서트 - 사무실에서 텔레비전 중계를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현규.
원고를 다 읽고 기자 질문을 받는 순서...
기자1 : 부동산 매입을 왜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한영 : 부동산 매입 건은 이미 총회를 거친 내용입니다. 원하신다면 총회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기자2 : 재산 목록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은데, 의향은 있습니까?
한영 : (당당한) 물론 있습니다.
기자3 : 사회단체가 비업무용 토지를 매입할 경우, 세금 감면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영 : (허허롭게 웃는) 세금 감면이요? 내 평생 조국 민주화 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입니다.
지금껏 단 한 푼의 불로소득도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한영 뒤로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다.
22. 교양 제작국 사무실 안. 같은 시각.
(TV소리) : 한편, 청와대에서는 박위원장에 관한 방송은 시청률에 급급한 텔레비전의 황색 저널리즘이 만들어 낸
웃지 못할 쇼라고 논평했습니다.
현규, 열받은 얼굴이다.
그 뒤로 보이는 허피디, 쌤통이라는 표정이다.
허피디 : 시청률, 시청률 하다가, 언제한번 큰 코 다칠 줄 알았다.
현규 : 뭐?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는데)
참담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오는 국장, 현규에게 따라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국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23. 국장실 안. 낮.
(TV화면) JBS 진행자 뒤로 보이는 프로그램 타이틀 <뉴스 따라잡기>
진행자 : 푸른 시민 연맹은 대외비라는 철칙을 깨고 저희 JBS에 내부조사 문건을 보내왔습니다.
푸른 연맹에서는 기금횡령을 조사하고 있었고, 그 장본인은 다름아닌 사망 경위가 의심스러운 최모씨였습니다.
화면, 푸른 시민 연맹의 간부 인터뷰로 바뀐다.
간부1 : 2개월 전부터 저희는 횡령 사건을 은밀히 내사를 해 왔습니다.
(불편한 심기) 자살이던 타살이던, 그건 경찰에서 조사할 문제 아닙니까?
화면, 스튜디오에 진행자로 바뀌는.
진행자 : 우리는 박한영 위원장 사태를 대하면서 이렇다 할 검증도 없이 단지 제보자의 얘기만을 가지고,
방송에 폭로하고 보자는 시청률 우선주의 풍토가...
국장, 리모콘을 눌러 방송을 정지시킨다.
국장 : 오늘 JBS에서 나갈거야.
현규 : (가볍게) 생각보다 빠르네요, 저희도 다음 편을...
국장 : 다음편? 지금 여론이 장난이 아냐. 세계평화상 물 건너가는 거 아니냐고. 항의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되고 있어.
현규 : (성질나는) 걱정 마세요. JBS 자식들 박살내 놓을 테니까. 편성이나 빨리 잡아주세요. (일어나 나가려는데)
국장 : 뭘로 방송 할 건데. (현규, 돌아보면) 윤선우, 오늘 경찰에 소환됐어.
24. 경찰서 조사실 안. 낮.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형사1과 선우.
선우 : (담담한) 자살이라면서요? 제가 왜?
형사1 : 우리가 심심해서 불렀겠어요? (선우를 똑바로 보며) 최진욱이 죽은 7시에서 9시 사이. 위에 음식물이 남아있는 걸로 봐서
저녁을 먹고 난 뒤죠. 근데, 사건이 나던 바로 그 시각 8시, 최진욱 휴대폰에
선우 : (움찔, 표정 일그러진다) ...
형사1 : 당신과 만나기로 되있던데. (얼르듯) 그날, 만났죠?
선우 : (형사, 똑바로 보는) 약속은 했지만, 일이 늦게 끝나서 못 만났어요.
형사1 : 죽은 최진욱이와 최근 자주 싸웠다면서요. 사이가 안 좋아져서 말다툼하다가,
선우 : (지지 않는) 형사님은 애인과 말다툼 한번 안 하세요?
형사1 : (빤히 보며) 애인이 없어서 모르겠시다.
선우 : 약속은 했다가 깨질 수도 있는 거예요. 약속이 있었다는 거 하나로. (답답한) 제가요? 말도 안돼요!
전 그날 분명 사무실에서 있었어요. 절 본 사람도 있다구요!
25. 푸른 시민 연맹 사무실 안. 오후 - 선우의 회상.
(선우) : 그날 전, 사무실에서 연맹으로 들어오는 기금 내역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9시가 다 될 무렵, 박정은씨가 지갑을 가지러 다시 들어왔어요.
책상 위에 전자시계, 오후 8시 50분을 가리킨다.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선우.
이때, 정은이 들어온다. ‘퇴근 안 해?’ 말을 건네며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는 정은, 선우에게 ‘수고’라고 말하곤 밖으로 나간다.
26. 연맹 사무실 복도 안.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형사에게 건네는 정은, 어이없는 얼굴이다.
정은 : (놀라는) 토요일 날요? 전 그 날 사무실에 안 들어왔어요. (혀를 내두르며) 이젠 별 소릴 다하네. 개말 믿지 마세요.
형사1 : 무슨...?
정은 : 애정강박증에 남자 집착증까지. 연맹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윤선우가 깨가 어떤 앤지.
27. 경찰서 안. 낮.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선우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선우를 보는 형사1.
선우 : (갑갑한) 제가 왜 진욱씨를 죽여요? (억울한) 분명, 분명 날 봤는데.. (절규하는) 그 사람은 그날 분명 날 봤다구요!
형사1 : (냉정한 얼굴로) 알리바이가 애매하니까. (조사서 덮으며) 차후에라도 조사할 게 있으면 다시 소환할 거요.
(일어서며)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절망스런 얼굴로 형사1을 올려다보는 선우.
28. 병실 앞 복도. 낮.
병실 앞을 여러 명의 기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각종 단체에서 보내온 화환들.
푸른 시민 연맹 간부들 서너 명이 복도로 들어서자, 우르르 몰려가는 기자들.
“위원장님 상태는 어떻습니까? 세계 평화상 수상을 포기할 거란 얘기도 나오는데 사실입니까?
위원장 자리를 내놓으실 거란 얘기도 있던데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는 간부들.
열려진 문틈으로 보이는 박한영. 침대 위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채 누워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만큼 초췌하다.
누군가 뒤에서 “위원장님! 힘내십시오!” 소리와 함께 천천히 닫히는 병실 문.
29. 지하철 안. 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지하철, 또각또각 걸어오는 발걸음.
사물함 앞에 서는 선우. 13번 사물함을 열고, 그 안에 작은 상자를 꺼낸다.
상자 속에 들어있는 많은 사진과 필름들. 그 중 사진 하나를 꺼내든다.
진욱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사진을 보는 선우의 표정, 점점 행복한 얼굴 미소로 바뀐다.
사진을 몇 장 더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열쇠를 잠그는 선우. 뚜벅뚜벅 지하도를 걸어간다.
30. 교양국 사무실 안. 낮.
빗발치는 시청자 항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되는 교양국 사무실.
순호 : (거의 읖소하듯) 네..네...
피디1 : 선생님! 여긴 폭로 팀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 드려요! 글쎄 제가 만든 게 아니라니까요.
허피디 : (현규를 흘기며 애써 예의바른) 지금 담당 피디가 자리에 안계십니다.
계속 울려대는 책상 위의 전화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현규, 억지로 이 상황을 견뎌내려 애쓰는 중이다.
“야, 누가 전화 좀 받아” 어디선가 누군가의 짜증난 소리가 들린다.
폭발하려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사무실을 나가는 현규,
현규와 어깨를 부딪치며 사무실로 들어오는 퀵 서비스맨, 사무실 안을 둘러본다.
31. 병원 입원실 안. 같은 시각.
한영이 테이블에서 간부와 방송 관계자들과 회의 중이다.
그 뒤로 간부1이 창가를 왔다갔다 부산하게 통화를 한다.
남자1 : 여론이 지금 우리 편입니다. 이때 아예 쐐기를 박는 게.
한영 : (곰곰이 생각하다) 나도 윤피디님 말마따나, 방송을 한 번 더 하는 게.
이때, 통화를 마친 간부1이 테이브로 와 앉는다.
간부1 : 경찰에서 부동산 조사는 일단, 총회 기록을 믿는 눈칩니다.
한영 : (여유로운) 그래?
간부1 : 그런데... (머뭇) 윤선우가 풀려났다는데요. 알리바이만 갖고 계속 붙들고 늘어질 수가 없어서...
한영 : (얼굴이 굳어지며) 뭐... 좀 더 좋은 아이어들 없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한영이 화장실로 들어간 뒤, 관계자들 낮은 목소리로 계속 회의를 이어간다.
32. 방송국 옥상 밖. 낮.
옥상에 서서 생각에 잠긴 현규, 표정 심란하다.
잠시 뒤, 순호가 현규 옆으로 와 선다.
순호 : (서류 봉토를 건네며) 형한테 온 거야.
현규 : (봉투를 뜯어본다)
순호 : 형, 이제 어쩌지? 우리 이러다가 완전히.
현규 : (외치듯) 이거야! (순호, 벙찐 얼굴로 현규보면) (회심의 미소 짓는) 어쩌면 이게 더 큰 기회일지도 몰라. 기회...
순호 : 기회? 무슨 말이야 형!
현규 : (순호를 보며) 징징대지 말고 너 연맹 2편 자료나 준비해.
순호 : 형! 지금 상황이...
현규 : (단호한)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죽을 내가 아냐. (확신에 찬)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할 산이야.
33. 교양 제작국 사무실 안. 낮.
사무실로 들어오는 현규를 보고 다가오는 국장.
현규 : 드릴 말씀이
국장 : 내가 먼저 할게.
현규 : (환한) 네!
국장 : (씁쓸한) 사과 방송하고, 대기 발령 선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현규 : (믿어지지 않는) 대..대기..발령이라뇨? (다급한) 국장님! 저 못 믿으세요?! 다음 주에 편성 잡히면..
국장 : 소나기 올 땐 우선 피하는 게 상책이야. (한숨을 내쉬며) 그냥 좀 쉰다고 생각해. (국장실로 들어간다)
닫힌 문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다 돌아서는 현규. 그 뒤로 들려오는 텔레비전 뉴스 로고송.
(TV소리) : 정오 뉴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위스의 세계 평화상 운영회는 오늘,
박한영 위원장을 여전히 평화상 후보로 염두해 두고 있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이는 위원회에서 여전히...
34. 대 회의실 문 앞. 낮.
회의실 마치고 나오는 임원들과 사장.
회의실 앞에서 기다리던 현규, 사장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우뚝선다.
35. 사장실 안. 낮.
의자에 깊숙이 앉는 사장, 현규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현규 : (초조한 얼굴로 의자에 앉자마자)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십시오. 이대로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건...
사장 : (서늘한 표정으로 보는) 좋은 기회?
현규 : 그동안 생방송 폭로는 우리 QBC 간판 프로그램임에도, 평균 7,8프로밖에 시청률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위원장 방송 이후 15프로까지 치솟았죠.
사장 : 그건, 단지 역풍 아닌가.
현규 : (반가운 듯 사장에게 다가가는) 맞습니다. 바로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음 주 폭록에서 뭘 내보낼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을 때, 우린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사장 : (말 막아서며) 너무 위함한 발상일세.
현규 : 아뇨, (손에 쥐고 있는 용지를 사장 앞에 펼쳐놓는다) 이건 윤선우 알리바이를 부인하던 증인의 통장 사본입니다.
알리바이를 부인한 며칠 뒤, 거액이 입금됐어요.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누가! 왜 이런 제보를 하는 걸까요?
이건, 물러서지 말고, 진실을 파헤쳐 달라는 또 다른 이들의 열망입니다.
(사장의 눈을 똑바로 보며) 사장님! 시청자들이 알고자 하는 소망을 외면하는 건, 직무 유깁니다.
사장 :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
현규 : (사장 앞으로 사표 봉투를 내미는) 시청률 20프로 올려놓지 못하면, 그때 수리해 주십시오.
사장 : (현규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
36. 선우의 아파트 안. 저녁.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인 카메라와 필름들, 그리고 진욱의 찢긴 사진들이 보인다.
어수선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현규, 순호, 건너편에 선우가 앉았다.
순호 : (안쓰러운) 많이 힘드시죠?
선우 : 그만 태워 버리려구요. 사진 주인도 그걸 원하는 거 같고.
현규 : 우리 폭로팀에서 연맹 2편을 준비 합니다. (확신에 찬) 박 위원장 법정에 세워야죠.
선우 : (서글픈 눈빛,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 그런 날이 올까요?
순호 : 그럼요, 우리를 믿으세요.
현규 : (통장 입출금 용지를 내밀며) 혹시, 이 이름 들어 본 적 있어요? 박정은 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사람인데...
선우 : (다가가 흠칫 놀라는) 오광호요?! (놀란 현규 보는) 진욱씨가 죽기 전 계속 찾고 있던 사람이예요.
37. 어느 주택가. 오후.
모퉁이에 숨어, 골목을 지키고 있는 현규와 순호.
현규, 지루한 지 하품을 쩍 한다.
이때, 대문이 열리면서 아이와 함께 나오는 정은.
정은 앞으로 다가가는 현규, 통장 사본을 내보인다.
38. 집 근처 공원 일각 차 안. 낮.
공원 주차장 차 안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현규 : 당신 통장에 돈을 넣은, 오광호가 누굽니까?
정은 : (백밀러로 순호와 딸이 공원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비밀로 해 주실 수 있어요?
현규 : (고개를 끄덕이며, 호주머니 속에서 작은 녹음기 버튼을 누른다)
정은 : 진욱씨랑 전 두 달 전까지 가깝게 지냈어요. 근 2년을 사겼으니, 길면 길다고 할 수 있죠. 선우 걔가 꼬리치기 전까지.
현규 : (!!)
정은 : 문제는... 박위원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고개를 숙이며) 그걸 미끼로
현규 : 그럼, 오광호란 사람은...?
정은 : 박위원장은 선우를 많이 좋아했어요. 선우가 진욱씨와 사귀는 걸 알고, 진욱씨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죠.
기금횡령 사건이 터진 것도 그 즈음이구요. (담담한) 전 제 가정을 지키고 싶어요. 제가 드릴 말씀은 이거 뿐이예요.
현규 : 어려운 결정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을 여는데)
정은 : 피디님! (현규, 돌아보면) 선우를 조심하세요.
현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차에서 내린다.
39. 도로.
운전을 하는 순호, 보조석에 앉은 현규는 차창 밖을 보며 생각에 빠져있다.
현규 : (한숨처럼 토해내는) 왠지 감이 안 좋아. (혼잣말처럼) 이거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거 아냐?
순호 : 말도 안 돼. 선우씨가 박한영 위원장하고? (에이!)
현규 : (중얼중얼) 삼자대면을 해 볼 수도 없구. (문득 뭔가 스쳐간다) 야, 차 세워.
순호 : 네? 예. (급히 인도 옆에 차를 세우는)
현규 : (차문을 열며) 넌 최진욱 사건담당형사 만나서 오광호란 사람 좀 알아 봐.
차에서 내린 현규,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아탄다.
40. 푸른 시민 연맹 위원장 사무실. 낮.
전화통화 중인 박한영.
한영 : 언론은 내가 책임을 진다니까. 그쪽에서 빨리 신도시 껀을 통과시켜야...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사무실로 현규가 뛰어 들어온다.
한영 : (누구지? 하는 얼굴로 현규를 바라보는) ...
현규 : (짐짓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롭게) QBC 이현규 피딥니다.
한영 : 할 말이 있으면 언론홍보실에
현규 : 제가 좀 다이렉트 한 인간이라서요. 윤선우씨와 사귀신 적 있죠?
한영 : 이따 다시 통화합시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이때, 위원장 실로 현규를 쫒아 들어오는 직원 둘.
한영 : (직원들을 향해) 괜찮소. (직원들 나가고)
일어나 블라인드를 내려, 사무실 안을 차단하는 한영.
그 사이, 현규는 소파에 앉으며 사무실을 쭉 둘러본다. 장식장에 놓인 아내의 사진이 보인다.
역겨운 얼굴로 한영을 보는 현규.
한영 : (의자에 앉으며) 잠깐, 아주 잠깐, 선우와 가깝게 지낸 적이 있소. 난 마음을 잡았는데, 선우는 그렇지 못했네.
(시선을 떨구는) 그 애 집착에 나도 지칠대로 지쳤어. 이런 식으로 나한테.
현규 : (말자르며) 오광호라고 아시죠?
한영 : (물끄러미 현규의 얼굴을 쳐다본다) 오광호?
한영, 책상 서랍에서 통장 하나 꺼내와 현규 쪽으로 툭 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통장을 집어 드는 현규.
한영 : 내사팀이 공금횡령 사건을 조사하다 그걸 찾아냈네. 최진욱이 횡령한 기름을 이 통장으로...
현규 : (단호한) 아뇨, 최진욱은 죽기 전까지, 오광호를 찾고 있었습니다. 오광호는 아직 푸른 시민 연맹 안에 숨어 있죠.
한영 : (눈에 순간 차가운 빛이 돌며 보는) 무슨 뜻이지?
현규 : (빙그레 웃는) 글쎄요, 최진욱의 입을 막고, 윤선우에게 살인죄를 씌울 만큼 힘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오광호 통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추측할 뿐이죠.
한영 : (서늘하게 웃는) 이피디라고 했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오.
현규 : 눈에 보이는 걸 믿어라... 제 인생 신좁니다.
천천히 일어나 현규 앞으로 서는 한영.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한영 : 자네가 교복입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난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차디찬 감옥에서 청춘을 보냈어!
작년 아내가 죽던 날도 단식 투쟁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나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도 부끄럼 없이 살아온 인생이야.
현규 : 그러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41. 어느 지하도. 저녁.
계단 밑에 엎드려 있는 걸인. 앞에 놓인 바구니에 떨어지는 지폐 한 장. 벌떡 일어나 돈을 집으려는데...
현규 : 오...광호씨죠?
걸인 : (바구니서 손을 떼며 불안한) 네? 나 세금 꼬박꼬박 내고하는거요.
현규 : 당신한테 주민증 빌려 달란 사람 있었죠? (호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걸인에게 보인다) 누가 왔었죠?
푸른 시민 연맹 직원들 - 박한영, 최진욱, 박정은, 윤선아 - 이 함께 찍은 사진.
걸인, 사진을 쭉 흞어본다. 시커먼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킨다.
순간, 굳어지는 현규의 얼굴. 다시 잘 보라는 듯 걸인을 노려본다.
또 다시 걸인이 가리키는 손끝, 윤선우다.
현규, 한숨을 내쉬며 일어선다.
42. 선우의 아파트 안. 밤.
콩알 렌즈로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선우, 현규의 모습이 보인다.
(점프) 차를 담은 쟁반을 들고 현규 앞에 앉는 선우.
현규, 그런 선우를 물끄러미 본다.
현규 : 지금 연맹 쪽에서 JBS와 2편을 준비 중이예요. 당신이 모든 사건 꾸미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거라고...
선우 : (현규 앞에 찻잔을 놓는 손이 바르르 떨린다) ...
현규 : 위원장과 어떤 관계였습니까?
선우 : (담담한) 관계라뇨? 무슨...
현규 : 남자관계가 무척 복잡하시더군요.
선우 : (놀라는) 제가요?
현규 : 위원장과도 가까운 사이셨죠? 왜 그런 말을 우리한테 숨겼죠?
선우 : (감정 상한) 뭘 숨겼다는 거죠? 우린 서로... 잠깐... 그치만 진욱씨를 만나고 그 관계는 정리... (말을 멈춘다)
(화난) 내가 왜 이런 말을 피디님한테 해야 하죠?
현규 : 오광호란 놈은 벌써 돈 먹었는지. 민증 빌려간 사람으로 당신을 찍었어요.
(안타까운) 갈수록 당신에 대해 들리는 얘긴, 모두 부정적인 얘기뿐이고... 난, 난 진실이 듣고 싶은 겁니다, 진실.
선우 : (비애감에 젖는) 어떤 진실이요? (점점 감정 격해지는) 제가 정신이 이상하다는 거요? 남자 문제가 복잡하다는 거요?
아니면 박위원장 스토커였다구요? 그래서 복수하는 거라구요? 시시각각 날 둘러싸고 나오는 소문들...그걸 다 말할까요?
이게 피디님이 원하는 진실인가요!
43. 방송국 편집실 안. 밤.
FD가 자료 화면을 보고 있는 방으로 현규가 들어온다.
‘오셨어요’ 인사에 대꾸도 않고, 괜스레 편집기 데트 앞 테이프들을 들었다놨다 한다.
현규 : (짜증섞인) 야, 너 편집실 이 따위로 밖에 못 써?
FD : (쫄아드는) 지금 좀 바뻐서.
현규 : (성질내는) 바쁘면 너만 바뻐?
이때, 순호가 편집실로 테이프를 안고 들어오다 이 광경을 본다.
순호 : (웃으며) 형, 쟤 지금 정신없어, 내가 이따 정리할게 그냥 놔 둬.
현규 : 나둬? 넌 늘 그런 식이야, 임마! 조연출이란 놈은 편집실에 틀어박혀있고, 출연자는 갈수록 모르겠고.
도대체 뭘 가지고, 방송을 하란 거야!
FD :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밖으로 슬그머니 나간다)
순호 : (속상한) 왜 그래 형?
현규 : JBS에서는 이번 주에 2편 나간대. 걔들은 앉아서 취재하는 줄 알어? 여기저기 좀 쑤셔보고 들춰보고,
쌩 난리를 쳐도 이길까 말깐데, 편집실에서 화면만 보고 있으면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그 따위 정신 상태로 언제 입봉하고 언제 인정받을래?
순호 :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
그런 순호를 보는 현규, 말을 해놓고도 속이 상한 지 편집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44. 재개발 현장. 저녁.
어둑어둑해지는 재개발 현장.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순호, 저 만치 서 있는 낯선 남자에게 다가간다.
순호 : 박한영 위원장과 관련된 얘기란 게 뭡니까?
남자 : 그게... (괜히 주위 살피는)
45. 선우 아파트 근처 놀이터. 밤.
급히 나온듯한 차림의 선우. 그네에 앉아 있는 순호에게 걸어온다.
환하게 웃는 순호 옆에 무심히 앉는 선우.
선우 : QBC에서 다신 연락이 안 올 줄 알았어요.
순호 : 2편 하려면 자주 만나고, 얘기도 해야...
선우 : 어제 이현규 피디 다녀갔는데, (순호 보는) 말...안 해요?
순호 : 이 선배 말,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속마음은 안 그런데... (은근히 자랑스레) 방송일이 빨리 잡힐 거 같아요.
(목소리를 낮추는) 위원장의 숨겨진 비리를 잡았아요.
선우 : (흠칫) 비리요?
순호 : (뿌듯한) 모레 브로커한테 증거물을 받...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받으며) 지금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봐야 될 거 같아요.
뒤돌아보는 순호, 주먹을 불끈 쥐며 힘내라고 웃어보인다.
그 웃음 속에 순호의 수줍은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46. 술 집 안. 밤.
여러 명이 앉을 법한 넓은 테이블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현규, 꽤나 취했다.
술집으로 들어선 순호, 현규 옆으로 와 앉는다.
순호 : (잔을 뺏으며) 뭘 이렇게 많이 먹었어?
현규 : (잔을 도로 자기 자리에 놓는) 하루 종일 어딜 쏘다녀?
순호 : 누굴 좀 만났어요.
현규 : (취한 얼굴로 누굴? 하는 표정으로 보면) ?
순호 : (현규 잔에 술 따라 주며) 정보 브로커....박위원장 정보가 있대서...
현규 : (혀 꼬부라진) 그래, 그래...그렇게 배워가는 거야. 잘한다! 황순호,
순호에게 술을 따라주는 현규, 낄낄거리며 웃다가 왠지 서글픈지, 이내 웃음기 거둔다.
현규 : (취한 눈으로 보는) 순돌아! 너 할렐루야천국 사건보고 피디 되고 싶다고 했지? 그 프로 시청률 몇 프로로 나왔는 줄 아냐?
(쓴 웃음) 5프로. 딴엔 한다고 죽어라 만들었는데....(제기랄!) (비애감에 젖는) 너, 시청률 그렇게 나오면,
얼마나 외로운 줄 아냐? 그 드러운 기분 알어? (술잔을 비우며) 너한테 나쁜 거만 가르쳐서 미안하다.
그치만 난 시청률 안 나오는 거 안 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현규.
순호, 술값을 계산하고 뒤따라 나간다.
47. 푸른 시민 연맹 빌딩 앞. 오후.
한영에게 몰려드는 기자들.
‘민한당 서울시 후보 얘기, 사실입니까?’ ‘입당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쏟아지는 질문들.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기자님이 나보다 내 일을 더 잘 아시네’
여유롭게 답변을 해 주며 미소를 잃지 않는 박한영.
빌딩 앞에 대기 해 놓은 자동차에 타려는 한영.
‘그럼, 정계 진출은 정말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질문한 기자를 돌아보려 고개를 돌리는 한영, 얼굴색이 조금 굳는다.
저멀리, 한영을 지켜보는 선우가 보인다.
한영 : (애써 웃는) 조국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면... 하지만, 아직은...(선우를 흘깃 쳐다보곤 차에 올라탄다)
48. 건물 지하 주차장 안. 저녁.
차량 움직임이 거의 없는 주차장.
그 구석에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은 한영과 선우.
감정을 숨기는 둘의 말투는 화나 있지만, 소리 지르거나 격해지지 않는다.
한영 :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며) 이제와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
선우 : (피식 웃는) 이제와서? 그렇게 말하면 맘이 편해요?
한영 : 나도 이젠 지쳤어. 너라면 신물이 난다.
선우 : 나야말로! 당신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한영 : (싸늘한) 그래서? 기껏 한다는 게 방송이었니?
선우 : 당신도 나처럼 아파봐야 돼.
한영 : (노려보는) 그게 목적이었다면, 지금까지 충분해.
선우 : (이게 아닌데 싶은 맘에 화나는) 당신 진짜 마음을 모르겠어. 진심이 듣고 싶어요.
(한영에게 다가가는) 날, 왜! 왜 연맹으로 불러들였죠? (애틋하게 한영의 뺨을 쓰다듬으려) 당신도 아직 날...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한영 : (선우 손을 부리치며 안으로 들어가는) 연맹 안에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 했을 뿐이야.
선우 : (싸늘하게 식는 눈빛) 정말, 정말 그 뿐이예요? (울먹거리는) 아직도 날 사랑하잖아요!
안쓰러운 얼굴로 선우를 보는 한영. 이윽고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누를 길 없는 선우, 엘리베이터 문을 주먹으로 세차게 친다.
꽝꽝꽝- 주차장 안에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49. 재개발 장소. 밤.
브로커(씬44남자)가 건네는 봉투를 열어보는 순호.
<2006년 하반기 신도시 계획>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순호 : (문건을 빠르게 뒤져보다가 고개를 드는) 양주시 남동면?
50. 차 안. 밤.
운전 중, 통화하는(핸즈프리)
순호 : (상기된 목소리) 박위원장 진짜 목적은 탈세가 아녔어. 투기야, 투기! 하반기 신도시 계획에 양주시 남동면이 들어 있었어.
신도시가 되면, 사들인 땅이 100배는 뛰어 올(하는데...)
쿵 소리가 나며 몸이 크게 쏠린다.
51. 서울 인근 소도시 마을. 저녁.
**부동산 거래소 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현규, 통화 중이다.
현규 : 왜 그래?
순호(F) : 어떤 멍청한 게 샛길에서 튀어나왔어... 형, 들어가서 얘기하자.
현규 : 알았어, 나 박한영 친인척 땅, 한 군데만 더 확인해 보고, 들어갈 테니까, 안에서 봐.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현규.
위에서 퍽-소리와 함께, 주위가 조금 어두워진다.
위를 올려다보는 현규, 부동산 앞을 밝히던 네온사인 조명이 나갔다.
52. 어느 국도 주변. 밤.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순호, 질질 끌려가는... 차에 태워진다.
가죽 장갑을 낀 손, 시동을 건다. 막대기로 힘껏 악셀을 누른다.
곤두박질치며 가로수에 그대로 박히는 차량, 깜빡깜빡 점멸하는 비상등.
53. 병원 입원실. 그날 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있는 순호.
병실 안으로 국장, 허피디, 현규가 들어선다.
현규, 순호의 모습을 보자 문 앞에 멍한 얼굴로 선다.
간호사(E) : 보호자 되세요?
현규 : (돌아보는)...
간호사 : (한규에게 건네는) 응급실에서 온 환자 소지품이예요.
비닐 봉투엔 보이는 순호의 소지품들.
현규, 봉투를 꽉 움켜쥔다.
54. 자동차 안. 밤.
허피디, 운전하고 조수석에 현규, 뒷좌석에 국장이 앉아 있다.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
국장 : 살아날 수 있대?
허피디 : 의사 말로는 일주일 안에 깨어나면 사는 거고 아니면 식물인간이라는데...
국장 : 순호, 불쌍해서 어쩌냐?
허피디 : 집안 형편도 그렇고...국장님, 돈 좀 거둬서 주죠.
국장 : (입이 쓴) 사무실 들어가면 니가 알아서 거둬라. 근데, 거긴 왜 간 거야?
현규 : (무거운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본다) ...
국장 : 자동차란 게 편리한데, 편리한 만큼 무서워. 니들도 차 조심해서 몰아, 삐끗하면 황철길이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현규, 어둠에 잠긴 국도 변....
55. 거리. 밤.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거리를 걷는 현규. 빌딩 계단에 웅크리고 앉는다.
멍하니 앞을 보는 현규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눈물을 참으려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현규, 뭔가 잡힌다. 병원에서 받은 순호의 소지품 봉투!
비닐 봉투를 꺼내 무심히 보는 현규, 그 속에 반지를 발견한다.
순호(E) : 내가 이거 타려고 4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현규(E) : 새끼... 쫄긴 안 갖는다, 안 가져!
슬픈 눈으로 반지를 보던 현규의 눈이 조금씩 경직된다.
비닐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똑같은 금반지!!
반지를 꺼내드는 현규.
56. **대학교 교무 행정 사무실 안.
인서트 - **대학교
교정으로 걸어가는 현규.
반지 안쪽에 적힌 글자를 유심히 보며 비교해 보는 교무과 직원, 컴퓨터로 뭔가를 찾아보더니,
뒤에 서 있던 현규에게 뭐라고 설명을 한다.
선행되는 박수 소리...
57. 푸른 시민 연맹 강당 안. 낮.
연맹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으로 나서는 박한영.
무대 옆에는 <축 박한영 위원장 서울시 후보 당선>이라는 플랭카드.
박한영 : 무엇보다 우리 식구들이 나보다 더 기쁘게 받아줘서.
이때 사람들을 헤치고 단상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오는 현규, 박한영에게 시위하듯 손에 낀 반지를 내보인다.
제지하며 달려드는 당원들.
끌려가면서도 필사적으로 반지를 들어 보이는 현규.
박한영의 얼굴이 굳어진다.
58. 박한영 위워장 방. 낮.
문을 닫고 돌아서는 한영.
현규는 앉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다.
한영 : (책상으로 가 앉으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현규 : 위원장님이 산 양주시 땅, 신도시 예정지더군요. 신도시만 되면 앉은 자리에서 수십억을 번다는 거, 알고 계셨죠?
한영 : (현규를 빤히 보다가) 음. 알고 있었네.
의의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나오는 한영의 태도.
현규, 순간 당황한다.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푸는 현규, 넥타이핀이 반짝 빛이 난다.
현규 : (미세하게 떨리는) 이 반지는, 위원장님이 대학 졸업식에서 받은 겁니다.
한영 :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듯 눈빛이 흔들리고) ...
현규 : (호흡 점점 거칠어지는) 이 반지가 황순호 피디 사고 현장에 무슨 이유로 떨어져 잇었는지 말해주시죠?
한영 : (자포자기한 듯 마른 세수를 하며) ...그래,...내가 그랬네.
‘이런 개새끼’ 순간적으로 테이블을 넘어 한영의 멱살을 쥐어흔드는 현규.
현규 : 왜? 왜!
한영 : (낮지만 무거운) 나와 연맹을 건드리면서 그 정도도 예상 못했나?
현규 : (버럭) 뭐, 이깟 푸른 시민 연맹이 뭐라고!
한영 : (현규의 멱살을 부리치며) 이깟?
현규 : (힘이 균형이 깨지면서 현규, 순간적으로 비틀한다)
한영 : 푸른 시민 연맹은, 내 평생의 열정을 쏟아부은 곳이야.
현규 : (부들부들 떠는) 부동산 투기가 열정이라구?
한영 : (서늘하게 웃는) 너같이 누릴 거 다 누리고 자란 놈들이 뭘안다고 떠들어! 시민운동가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되는 줄 아나?
니들이 해외여행이니, 웰빙이니 할 때, 얘들 분유값 걱정해야 되는 게 시민운동가야. 권력 가진 놈들, 돈 쌓아놓은 놈들,
비리는 점점 지능화되고, 소송이니, 조사니 할 일은 점점 늘어 가는데... 몇 푼 안 되는 정부 지원금조차, 받기 어려워...
(목이 메는 듯) ... (당당하고 격한) 이 나라 발전을 위해 부동산 투자 좀 한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격앙된) 난 말이야, 평생, 내 한 몸 먹기 위해 단 한 푼도 돈을 모아본 적 없어.
현규 : (울분 섞인) 그렇다고 당신 행동이 정당화될 거 같아!
한영 : (몸을 창가로 돌리며) 이만 나가주지.
뭔가 더 말하려다 꾹 참고 돌아서며 나가는 현규.
무너지려는 자신을 애써 힘겹게 버티고 선 한영, 어금니를 악다문다.
59. 방송국 회의실. 그날 저녁.
국장, 허피디, 조연출, 작가, 현규...폭로 스탭들이 회의 중이다.
국장 : 디렉팅은 허피디 니가 해.
허피디 : (현규를 슬쩍 본다) ...
국장 : 디렉팅 하라는 데, 왜 거길 쳐다봐. 하라면 하는 거지. 이번 생방송은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돼.
60. 스튜디오 안. 그날 밤.
어두운 스튜디오 안에 조명 켜지면서 진행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행자 :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 푸른 시민연맹 그 후 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주인공 이현규 피디 모셨습니다.
카메라 옆으로 옮기자, 이현규가 보인다.
현규 : 저희 제작진은 푸른 시민 연맹의 부동산을 조사하면서 이것이 단순한 탈세 가 아니라, 부동산 투기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용지 하나를 들어 카메라 쪽으로 들며) 이 문건은 2006년 하반기 건교부 신도시예정집니다.
진행자 : 이 문건에 대해 박한영씨에게 직접 답을 듣고 오셨다구요?
61. 푸른 시민 연맹 사무실. 같은 시각.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는 박한영.
화면에는 박한영의 사진 띄워져 있고, 그 위에 목소리만 들려온다.
현규(F) : 이 반지가 황순호 피디 교통사고 현장에 왜 떨어져 있었는지, 말해 주시죠?
한영(F) : 그래, 내가 그랬네. 나와 연맹을 건드리면서 그 정도도 예상 못했나? 이 나라 발전을 위해 부동산 투자 좀 한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화면 스튜디오로 넘어오고... 현규의 얼굴 클로즈업된다.
현규 : 목적이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치 않다는 식의 논리!
이권을 위해 갖은 비리를 저지르는 부패권력과 도대체 뭐가 다른지, 박위원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한영,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나 책장 위의 사진을 집어 든다.
아내와 환하게 웃으며 찍은 그 사진을 슬픈 얼굴로 바라본다.
62. 방송국 스튜디오 안.
부조실 모니터. 진행자가 인사를 하고, 불이 서서히 꺼지는 스튜디오.
촬영, 녹음, 편집 등등 올라가는 스탭 스크롤. 맨 마지막 연출 황순호! 이름이 뜬다.
그 모습을 부조실에서 지켜보던 국장, 만족스러운 듯 모니터의 현규를 쳐다본다.
비로소 웃어 보이는 현규.
63. 방송국 사무실. 아침.
사무실 사람들, 저마다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을 지켜본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소리 : 검찰은 오늘 박한영 위원장을 QBC 피디 살인죄 미수 및, 부동산 투기혐의 로 긴급 체포,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양주시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 련해 건교부 국장 ***씨를 소환해 신문을 벌일 얘정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현규를 보는 사무실 사람들.
국장, 현규에게 다가간다.
국장 : 수고했다. 사장님이 오늘 직접 한 턱 쏘신대.
현규 : (테이프를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서는)
국장 : 어디가? 한잔 해야지!
현규 : 이거 데크에 걸어 놓고만 올 거예요.
국장 : 애들 시켜.
현규 : VHS 떠서 순돌이 보여주려구요.
국장 : (따뜻하게 웃는) 텔렙 이름 보면 순호 자식 벌떡 일어나는 거 아니냐?
현규 : (말 대신 따뜻하게 웃는) ...
64. 개인 편집실 안. 낮.
테이프를 넣고, 의자에 편안하게 앉는 현규.
-편집기 화면- 빅 클로즈업을 해서 잡은 사람의 얼굴, 눈, 귀, 입술...
잘못 넣었나, 테이프를 배려는 순간, 잡음처럼 들리는 목소리들.
현규(E) : 이 바닥에선 얼굴에 분칠한 인간은 믿지 말라는 속설이 있는데... 이거 분이 너무 잘 받는데요.
선우(E) : 방송 나가고 난 후에도 저렇게 웃을까요? 그 사람이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선우의 모습을 줌, 아웃 빅 클로즈업으로 잡아 낸 화면들.
순호 짓이란 생각에 피식 웃으며 화면을 보던 현규, 갑자기 스톱 버튼을 꽉! 누른다.
선우의 하얀 손을 클로즈업해 들어간 화면 속 손가락의 반지!
반지와 함께 현규의 눈앞으로 무수한 말과 화면이 지나쳐간다.
(플래쉬백)
# 선우의 집, 벽에 걸려있던 가족사진 속 엄마.
# 연맹 사무실의 박한영 부부의 사진 속 아내.
두 사진, 분활 화면처럼 한 화면에 붙으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다!
# 분장실서 반지를 움켜쥐며 텔레비전 속 박한영을 보던 선우의 모습.
선우(E) : 엄마는 재혼했는데...작년에 돌아가셨어요.
한영(E) : 작년, 아내가 죽던 날도 단식 투쟁으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나요.
선우(E) : 방송 나가고 난 후에도 저렇게 웃을까요? 그 사람이 내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65. 지하철 안. 같은 시각.
지하철 사물함 13번으로 걸어오는 여자의 구둣발. 정은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물함을 연다.
상자를 꺼내 내용물을 확인하는 정은. 대부분 정은과 진욱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과 피름들.
상자를 봉투에 담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66. 달리는 차 안. 같은 시각.
속도를 내며 달리는 현규의 차. 현규, 입술을 깨물며 악셀을 밟는다.
67. 선우의 집 안. 낮.
쓰레기통을 들고 현관을 나가는 선우. 전화벨이 울리자, 쓰레기통을 놓고 거실로 들어온다.
선우 : 여보세요?
정은(F) : 이거 말고 또 다른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선우 : (베시시 웃는) 그게 다예요.
정은(F) : 다신 이 일로 연락 하지마.
선우 : (웃다 표정 굳는) 바람은 남 몰래 피우라구. 그래야, 또 연락할 일은 없지.
수화기를 놓고 돌아서는데, 선우, 조금 놀란 표정이다.
어느틈에 현규가 들어와 서 있다.
현규 : (떨리는 눈빛) 양아버지를 살인자로 몰고나니까 행복해?
선우 : (말 가로채며 표정 굳는) 누가 양아버지란거죠? (버럭) 아저씨를 안 건 내가 먼저였어요.
나 때문에 알게 된 아저씨를 엄만 내 허락도 없이 결혼했다구요.
현규 :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미친 년!
선우 : (침착해지는) 엄마가 재혼을 한 뒤, 10여년을 고통 속에 견뎌왔어. 엄마 돌아가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눈빛 천천히 변하는) 그깟 사회적 명예가 뭐라고 날, 날....
휙- 돌아가는 선우의 턱. 현규, 선우의 뺨을 갈긴다.
현규 : 니 복수 때문에 순호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놔? (경멀하는 눈으로) 박위원장은, 모든 걸 너무 쉽게 다 털어놨어. 웬 줄 알아?
(소리치듯) 그 반지!
선우 : (고개를 들어 현규를 본다)
현규 : 현장에 떨어진 그 반지. 진짜 주인을 보호하려구.
선우 : (눈빛이 흔들린다) ....
현규 : (안타까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눈에 보이는 게. (돌아서는)
선우 : (담담한) 당신 뭔가 착각하고 있어.
현규, 돌아보면 말갛게 웃으며 현규를 본다.
선우 : 방송을 결정한 건 내가 아냐.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그만 두려고 했을 때...
시청률 때문에. 그 시청률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건 바로 당신이야!
선우를 뚫어지게 보는 현규. 자괴감에 시선을 떨구며 쓸쓸히 돌아선다.
68. 아파트 주차장. 낮.
허탈한 표정으로 주차장으로 걸어와 차 문을 여는 현규.
쿵- 뒤에서 들리는 육중한 소리.
돌아보는 현규. 아파트에서 투신한 선우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천천히 바닥을 적신다.
정신이 어찔해지는 현규. 고통스럽게 얼굴이 일그러지면 고개를 든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그리고 구름들.
#. 에필로그. 병실.
산소호흡기를 떼고 침대에 누워있는 순호.
그 옆에 앉아 있는 현규, 오랜 망설임 끝에 순호의 손끝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현규의 얼굴에서 회한의 눈물이 흐르고.
(점프) 현규가 떠나고 난 순호의 침대 옆에, ‘현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