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9 하늘에 소망을 두라 벧전 1:1-7 /서충주한빛교회 윤 석 목사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성경통독 팀이 지난 주에 욥기서를 마쳤습니다.
욥이 병들자 그의 친구들은 자기 자신의 자대를 들이대며 욥을 위로하다가 나중에는 정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욥은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서 바닦으로 떨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욥 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고백으로 이 땅에 사는 삶이
어떠한 부요함도, 어떠한 행복도 인간의 어떠한 의지나 노력으로 유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과
천국을 향하는 순례자의 삶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욥기를 마치고 난 후에 차를 마시며 숙연한 모습으로
김두완 작곡의 “본향을 향하네”의 성가곡을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베드로전서의 내용은
어쩌면 욥이 당하는 것처럼 인생의 환난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알아차린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신앙을 끝까지 지키며 믿음으로 이기라는 내용의 서신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로마의 5대 황제 네로는 술을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여인을 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원형극장에서 결투하는 모습을 보아도 만족을 하지 못하는 그는 AD 64년이 저물어가는 어느날
인생 최고의 감동을 만끽하기 위한 괴상망칙한 계획을 세웁니다.
병사들을 시켜서 도시 곳곳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을 합니다.
자기는 황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도시 전역에 피어오르는 불을 보면서 스스로 높아지고 /
활활 타오르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최고의 감동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로마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났고, 네로는 병사들을 시켜서 기독교도들이 불을 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기독교도들을 붙잡아다가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때 15살의 소년이 붙잡혔는데
로마 군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네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라 그러면 살려서 돌려보내 주겠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끌려가서 사자 우리에 던져짐을 당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베드로는
고난이 로마 식민지 전역으로 확대될 것을 예감하고
소아시아에 있는 다섯 개 교회에 편지를 써서 장차 올 환난을 대비하라는 당부를 하는 내용입니다.
벧전 1:1-2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리네 인생은 모두가 이 세상 사는 날이 나그네의 삶과 같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아서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가야하는데
ㅡ네로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하고픈대로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ㅡ사울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살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ㅡ진시황은 권력을 누리며 죽지 않기 위하여 신하들을 제주도까지 보내어 불노초를 찾고 있다가 죽었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돌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하늘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영혼의 종말로 이어지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Ⅰ 우리는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적이 있는 자와 목적이 없는 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인도에 선교여행을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소가 길거리를 방황하는 소를 보았습니다.
목적이 없는 자의 발걸음은 인도의 소와 같습니다.
인도의 소는 사람들로부터 숭배의 대상이요 목적이 없고 할 일이 없으니
길거리를 배회하며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아무데에서나 똥을 싸고 다니며
네로와 같이 순간의 환락을 위하여 불을 지르기도 하고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적이 있는 사람은 느시렁거리며 살 수 없습니다.
하루의 삶이 걷는 듯 뛰는 듯 24시간이 부족합니다.
목적 있는 사람은 뛰어가는 그 길에 장애물이 있으면 그것들로 인하여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훌쩍 뛰어넘어서 가거나 /그것들로 인하여 해를 당하여도 그곳에 머무를 수 없기에 참고 인내하며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베드로가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주는 내용이 바로
너희가 고난을 당하나 천국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달리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없는 자를 시편의 기자는
시편 10편에서 나그네 의식을 상실한 악인이라고 서술합니다..
ㅡ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며 멸시하는 자요
ㅡ악인은 스스로를 언제나 견고하게 생각하여 주의 심판이 미치치 못한다고 생각하며
ㅡ악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여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으며
ㅡ악인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린다고 하였으니
그들은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지 못하고 할 일 없이 인생을 배회하는 인도의 소요, 가치없는 인생입니다.
『핸리 모리슨 부부는
아프리카에서 40년 간의 선교를 마치고 뉴욕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사냥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항국에 도착하자 붉을 카펫이 깔리고 군악대의 팡파래에 맞추어 많은 인파가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지나가고 카펫도 걷어지고
이제 핸리 모리슨 부부가 나가는데 어느 누구도 그 부부를 맞이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청춘 40년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바쳤는데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료 하고 말하며 슬픔에 젖어있을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단다♬.』
네가 천국에 도착하는 날에는 천군천사가 너를 마중하고 너는 금으로 된 카펫을 걸으며 환영을 받으리라 ...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둔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천국에 소망을 둔 자는
Ⅱ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5절을 보면
천국 백성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 구원에 이르는 자가 통과해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벧전 4:1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불 시험이란 하나님이 성도를 믿음과 인격으로 단련시키시기 위하여 실행하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감당못할 분량으로 시험하지는 않으시며,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능히 이길 힘도 주십니다.
그리고 벧전 4:18절을 보면 구원받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디 서리요? 의 말씀을 읽으면 우리는 구원이란 아무에게나 바겐세일 하듯이 무가치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게 됩니다.
계 7장을 보면 인치심을 받은 144000명의 명단에 이스라엘의 단 지파의 이름이 빠져있습니다.
단 지파는 불순종의 대표적인 지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동떨어진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구원의 명단에서 빠진 것이 아닐까요?
불순종의 사람에게는 구원이란 머나먼 이야기 일 것입니다.
불순종은 또한 믿음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 사실을 더욱 곤고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마 5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여덟 가지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소금으로 살아라 / 빛으로 살아라 / 노하지 말라 / 간음하지 말라 / 원수를 사랑하라 /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실천 명령을 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베드로 사도에 의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성도를 가르칩니다.
그러한 실천의 모습은 우리 주변의 삶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외부로부터의 핍박을 받을 때에는 강하게 저항하다가도
막상 자기 스스로가 권력자가 되었을 때에는 그의 생각이나 사상이나 신앙이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ㅡ국회를 보면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도 있겠지만 / 하나님 섬기는 일은 악세사리 정도로 여기는 자들도 많습니다.
ㅡ어떤 법안을 만들 때에 그 법안이 신앙에 위배 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당의 정책을 따라가는 것은 믿음을 상실한 자의 모습입니다.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할까 염려되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땅에서 공천을 받아 영화를 누리는 것이 천국에서의 영화보다 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ㅡ법조인이 무슨 사건을 맡았을 때
의뢰받은 사건이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붙들고 끝까지 변호하거는 모습도 마찮가지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줄 알면서도 수입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우리는 모두가 진리 안에 거할 때에 진정한 자유함을 얻습니다.
믿음 있는 자의 삶이란
세상의 이권 앞에서 굴복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양심대로 사는 것으로서
거짓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올바름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로마 병사에게 붙잡힌 15살 소년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타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니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니 나는 이제 구원받은 의인입니다. 라고 말하며
온갖 죄를 짓는 사람은 믿음의 원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구원받을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이지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의인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등생이 수학의 어느 공식을 알았다고 갑자기 대학원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칭의를 받은 사람이 결코 의인으로 행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고무 풍선처럼 둥둥 띄우고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사람일까요?
진정한 믿음이 아니면 그 풍선은 금새 터지고 말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생각한 것이 오전이 지나기 전에 무너지지가 일쑤입니다.
내가 굳은 마음의 결심을 하고서 이제부터 신앙생활을 잘 해야지 라고 백번은 다짐했지만 또 무너지는 것이 인생이 아닙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정말로 믿는다면 믿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는 것으로서
날마다 나를 주의 말씀 아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요
성화 단계를 지나는 성도가 타고 갈 천국으로 향하는 마차이니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려면
Ⅲ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주 쉬운 방법이지만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믿음의 마차를 얻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성도에게 주어지는 힘이요
어떤 어려움이 밀려와도 능히 극복하고 이길 힘이요
성도의 천국에 대한 소망이요 찬송입니다.
지난 주에 통독 식구들과 함께 들었던
“본향을 향하네” 성가곡의 가사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
환난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네
이 세상 지나는 동안에 괴로움이 심하나 / 그 괴롬 인하여 천국 보이고
기쁜 찬송 은혜로 이끄시네 / 생명강 맑은 물 가에 백합화 피고
흰 옷 입은 천사 찬송가를 부르실 때 /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아쓰겠네
이 가사가 저와 성도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고백이요 찬송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