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인천 가톨릭대학교 신문 '애솔' 2010년 가을호에 게재된 기고문입니다.
친교의 교회 안에서 평신도와 함께 하는 사제 되시기를…
최 홍 준 파비아노/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에서 저는 국별보고(國別報告)를 통해 우리 한국교회는 지난해 2009년 말 현재 복음화율이 인구대비 10.1%로 처음으로 10%를 넘었다고 전제하고, 이와 같은 복음화 현상이 있기까지 평신도들이 공헌한 바가 매우 크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8세기 후반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의 노력으로 출발한 한국 천주교회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으니, 바로 양떼는 목자를 위해서 죽고 목자들은 양떼를 위해서 죽어간 전통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교회 창설 초기,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를 박해자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기 위해 서울의 최인길(崔仁吉) 마티아 회장이 신부로 가장하고 포졸들 앞에 나섰습니다. 역관 집안 출신인 그는 포졸들이 묻는 말에 중국어로 대답하면서 결국 관청으로 끌려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매를 맞는 장살(杖殺)의 형벌을 받아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 후 신유년(辛酉年)에 전국적인 박해가 일어나자 주 야고보 신부는 고국인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신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박해자들 앞에 섰고, 결국 순교의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신자는 목자를 위해서 죽고, 목자는 신자들을 위해서 죽어간 사실이 얼마나 아름답게 비쳐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다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시며 ‘새 계명’을 주셨고, 같은 복음서 15장에서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2-13)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평신도 중에 ‘회장’(會長, Catechista)이 선임돼 사목자를 도우면서 교회 발전에 앞장섰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미 200여년 전 박해시대 서울에서는 도시를 몇몇 구역으로 나누어 회장들에게 지역 관리를 맡겼고, 지방은 공소(公所)별로 회장을 임명해 신부 대신 신자들을 돌보도록 했습니다. 교리교육과 선교를 위해서는 명도회(明道會) 같은 단체를 설립해 회장을 임명했고, 여성 신자들을 위해서는 여회장을 임명해 가르치고 보살피도록 했던 것입니다. 회장들은 대부분 덕행이 뛰어나 신자들의 신뢰를 받으면서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지켰고, 신자들을 가르치고 신앙을 전파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와 같은 전통을 오늘에 이어받을 수 있도록 ‘친교의 교회상’을 제대로 정립(正立)하는 것이 당면한 한국교회의 과제이며, 평신도와 성직자들이 노력해야 할 몫이기도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20년을 지낸 교회와 세계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다룬 1987년의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후속 교황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제2장에서 ‘친교의 교회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물겠다”(요한 15,1.4).
이 단순한 말씀은 “주님과 제자들을 일치시켜 주고 그리스도와 세례 받은 사람들을 일치시켜 주는 친교의 신비를 계시한다”면서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친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하나가 된 가지들처럼 바로 주님의 것이 된다”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일러줍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는 성령의 은총 안에서 성자와 성부께서 일치를 이루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를 그 원천과 전형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성령의 사랑의 끈으로 성자와 일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로써 성부와도 일치하는 것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18). 이 문헌은 또 “평신도들은 본당에서 자기 사제들과 긴밀히 일치하여 활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다. 인간 구원에 관련되는 문제들은 물론, 자신과 세상의 문제들을 교회 공동체에 들고 와서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고 해결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 교회 가족의 모든 사도직과 선교 활동을 힘껏 도와주어야 한다”(27항)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친교를 보장하고 증진하려면, 특별히 직무의 다양성과 보완성이 있는 곳에서, 사목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직무가 근본적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를 위해 봉사하도록(히브 5,1 참조)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평신도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려면 직무 사제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22항)고 이 교황권고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평신도들은 ‘온 세상’을 지칭하는 주님의 포도밭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성직자들과 친교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친교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일치”(19항)를 말합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하느님 백성들,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들이 이와 같은 일치, 곧 성삼위 하느님의 일치를 배우고 실행에 옮기면서 친교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것을 거듭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6년 동안 서울 대신학교 부제반(副祭班)에 출강해 ‘설교실습’을 도와드린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신학교 면회실 벽에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
약자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물질에 신경 쓰지 않는 검소한 사제.
겸손하며 언행(言行)에 예의를 갖춘 사제.
사리에 맞지 않는 독선을 피하며 장상에게 순명하고 동료와 원만한 사제.
성사 집행을 경건히 하고 강론을 성실하게 하는 사제.
편견과 편애를 멀리 하고 후배 사제 양성에 마음을 쓰며 죽기까지 사제 성직에 충실한 사제.”
정말 이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성직자도 수도자도 평신도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평신도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사목자들은 가정들을 잘 돌봐야 하리라고 봅니다. 저희 가정에도 성직자 아우가 있고, 저의 친사촌, 외사촌, 이종사촌이 사제들입니다. 외가 쪽으로 아저씨가 되는 한 사제가 불과 40대에 불치병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 일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 되시는 ‘약수동 할아버지’께서 입관 후 나무 관을 어루만지시며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제 안심이다!”라며 가느다란 안도의 한숨을 쉬시는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사제로 죽었으니 아버지로서 마음이 놓인다는 몸짓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기막힌 광경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초자연적인 고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사제로 죽어가는 것! 이보다 더 값진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사제수업을 받고 계신 세미라니스타(seminarista) 한 분, 한 분이 평신도와 함께 친교의 교회를 발전시켜 나갈 준비를 잘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이번에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를 준비하면서 준비위원회에는 주교님과 10여 명의 사제들, 수도자들, 수십명의 평신도들이 함께 했는데, 사제들이 ‘지도신부’가 아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친교의 교회에는 직위의 높고 낮음보다 직분의 다름이 있고, 함께 하는 데에 뜻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 사업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께서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마태 18, 20)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일을 해나간다면, 틀림없이 그분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 자체에 무게를 두기보다 일하는 과정을 중히 여기면서, 그분 뜻 안에서 함께 잘 할 수 있도록 평신도를 양성하는 사제를 평신도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에 모든 하느님 백성들과 함께 더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는 사제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