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분단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 온 미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은 한층 더 소원해 보입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무고한 인명 피해를 보고 있는 한국 국민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화를 위해 북한에 건네었던 평화의 손길들이 오히려 남한을 향한 적의의 총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는 더 이상의 평화의 땅이 아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와 감리교단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더이상 예언자적 소명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는 탄식의 소리가 이곳 저곡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파가 분열되며, 대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연합기관이나 각 교단들이 자리다툼으로 인한 싸움으로 얼룩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비도덕적 삶의 행태를 보여 많은 사람들의 믿음의 길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감리교회는 어두운 영혼의 깊은 밤을 지나고 있습니다. 감독회장 선거의 문제로 인해 분열된 이래로 교단이 감당해야 할 막대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선장없는 배와 같은 형편입니다. 심지어 감리교의 미래가 사법부의 결정에 맡겨지게 되는 수치의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1,200만이 넘는 크리스천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삶의 자리이지만 도리어 이전보다 더 많은 분열과, 더 많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십자가의 정신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의 욕심에 이끌려 서로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속에는 세대간의 부조화, 계층간의 힘의 충돌이라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과 교회, 감리교단, 성도들의 삶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소통(疏通)의 부재(不在)'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20세기 최고의 영성작가-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삶을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즉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추방된 인간'이라 명명하며 그들의 삶의 형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내적 자아로부터 추방당한 인간은 자기 외적인 것에서 하나님과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 친다. 사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자신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실과 점점 더 멀어지고 셜국 하나님을 닮은 내면의 모습을 잃고 하나님의 성소인 자기 집에 들어갈 자유를 잃었다.'
하나님과 소통되어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그것은 참된 방향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과의 소통, 연합해야 하는 인간의 방향은 오직 하나님깨ㅔ로 향해 있어야 합니다.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 죄로 인해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 입니다.
'마음'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렙(leb)'이며, 영어로는 'Heart'라고 표현됩니다.
또한 희랍어로는 '카르디아'입니다. 특히 '카르디아'라는 이 단어는 의학용어로서 '심장'에 관한 각종 병명을 지칭할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심장을 지칭할 때 '카르디아'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심장이 생명과 직결되는 것처럼 '마음'은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심장'이란 인간의 '지', '정', '의'가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생명체 그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심장은 깊은 생각/사유의 자리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희랍세계에서 '마음'이라는 말은 '인격'과 통하는 뜻으로 썼습니다. 즉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감정의 상태가 아닌 인격과 생명 전체를 포함하는 전인적인 것으로 사람들은 이해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마음'이란 사람의 심장처럼 중요한 것이고, 깊은 생각과 사유의 자리이며, 인격과 생명 전체를 담아 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교회'라는 목회 방향의 의미는 분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2011년 수표교교회가 꿈꾸는 수표교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교회'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장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품으신 생각(뜻, 섭리)을 우리도 품으며,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 우리의 전인격으로 응답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교회의 목회와 성도의 생활에 쌓여 갈 때 하나님과의 소통의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2011년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교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그에 대한 대답은 2011년의 주제 성구인 빌립보서 4:8절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4:8절의 말씀을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친구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존경할 만한 것과 믿을 만한 것과 바람직한 것과 품위 있는 것을 마음에 품고 묵상하십시오. 최악이 아니라 최선을,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저주할 만한 일이 아니라 칭찬할 만한 일을 생각하십시오'(빌립보서 4:8 메시지 성경)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성도들은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존경할 만한 것, 바람직한 것과 품위 있는 것을 늘 마음에 품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선택의 순간 앞에서 죄악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고,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모든 순간 저주할 만한 일이 아니라 칭찬할 만한 일들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토져(A.W. Tozer)는 「이것이 성경이다.」에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성경의 내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에 신패했다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말 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집중'과 '포기'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즉 '집중'하기 위해서는 '포기'라는 아픔의 과정을 수반해야 이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내가 우너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삶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잣니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읻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2011년의 수표교교회의 목회와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교회'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응답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기쁨의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역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수표교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삶의 기준이 되어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 서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 세상이 주는 넓은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좁은 길이기에 그 길을 함께 걷는 모든 수표교교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월에 담임목사 김 고 광 |
첫댓글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들을 알게 되어 반갑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