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예배때에는 설교가 없었다 라는 주제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저는 전제가 잘못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먼저 예배의 정의가 무엇인지 정해져아만 그 다음에 그 예배의 순서에 설교가 포함 되어져야 하는지 아니면 초대교회에서는 설교가 포함되었는지를 논할수 있는데
지금의 논의를 보면 예배시 설교가 행하여 졌다 아니다 또는 일인 설교는 없었고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행하였다등으로 토론이 진행 되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예배의 정의가 먼저 내려지고 나서야 그럼 예배에 설교든 가르침이든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나누어야 하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면에서 먼저 예배의 정의를 내린다고 한다면
이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프로스퀴네오(헬)”입니다
이 뜻은 ~에게 키스하다, 절하다 , 엎드리다 라는 뜻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존경 경의감을 가지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하나님 앞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하며 또 그에게 최상의 성품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라고 죤 맥아더는 정의하고 잇습니다
이런 정의하에서 설교를 바라 본다면 설교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나가는 부분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교훈(또는 축복의 말씀이나 권면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모임을 나타낸 글 중에 설교나 가르침에 대한 표현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설교나 가르침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
그렇다면 그 근거를 어디에서 확인 할 수 있냐 하면은
1) 성경입니다
“안식후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하매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행20:7)
여기서 강조점은 예배 드리러 모였다가 아니라 떡을 떼러 모였다고 표현 하고 있는데
이 날은 안식후 첫날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요일 즉 주일입니다
그런면에서 여기서의 핵심은 떡을 뗌인데 즉 예배=떡을 뗌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2) 초대 교회 신앙문서(일명 디다케)입니다
하늘지기님이 쓰신 글 중에 디다케에서 발췌하여 올리신 글이 있는데
글쎄요 일부러 그 글들만 발췌하여 올리신 것인지
아니면 갖고 계신 자료가 그것 밖에 없어서 그렇신지 모르겠지만
디다케에 보면 “주일 예배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내용을 그대로 올리면
“주의 날에 모여서 떡을 떼고 성 만찬을 드리라 그러나 먼저 너희 잘못들을 고백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희생 제물이 순전한 것이 될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동료와 다툼이 있으면 그들이 화해하기까지 너희와 함께
참여해서는 안되나니,
그것은 너희 희생제물이 더럽혀짐을 피하고자 함이다
이는 주께서 말씀 하신바
‘
어디에서나 항상 나에게 더럽혀 지지 않은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지니
나는 큰 임금이요 열방중에서 두려워 하는 것이 됨이라
주께서말씀 하시도다‘ 하신 예물임이라 “
이상으로 주일 예배에 대하여 라는 글에 나와 있습니다
즉 여기서도 예배는 설교가 아니라 떡을 뗌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3) 하늘지기님이 져스틴의 글을 인용 하셨는데
그의 글들을 보면 그는 모임을 2개의 모임으로 분류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말씀을 나누는 시간 (일명 설교시간 )과
떡을 떼는 시간 (일명 만찬시간)을 구별 하였습니다
이 구별된 시간을 오늘날 예배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예배떄에 설교가 있었다라고
주장 할 수도 있지만 예배의 정의나 (최초의 주일 모습을 언급한)성경구절
그리고 디다케의 내용을 볼 때에 과연 져스틴이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것처럼
설교를 예배의 정의 안에 포함 하여서 모임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예배의 의미속에 설교가 포함 되어야 한다는 분들의 주장은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모일 때에 그들의 모임의 중심은 설교가 중심이었으며
예수님도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의 근원은 유대인 회당모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 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구약의 성전예배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유대인 회당은 성전을 잃어 버린 자들이 필요에 의해 그들의 정체성과 신앙심을 잃어
버리지 않기 위하여 모여진 모임 이었습니다
그 반면 성전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있는 무엇보다도 참다운 제사가 올려진 예배 이었습니다
이런면에서 신양성경에서 예배에 대한 언급이 되어 진 구절 들을 살펴본다면
유대인 회당에 대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구약의 성전 예배에 대한 모습이 라고 여겨집니다
이 후로 카톨릭의 시대를 지나서 종교 개혁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여기서 이들의 가르침의 특징을 언급한다면(로버트 웨버의 예배학 참조)
1)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가 미사를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반복으로 보았기에
미사를 거부 하였다
2)종교 개혁자들은 화체설의 교리를 거부 하였다
그 이유는 화체설의 기저에는 로마 카톨릭의 “오푸스 오페라툼”의 교리
즉 미사를 기계적으로 드려도 그리스도의 임재가 자동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교리
(자유게시판 10840 사효론 참조)가 까려 있기 때문이다
3)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원래의 옛적의 고유한 예배 위치로 회복 시킬것을 강조 하였다
성례에만 치우친 것은 한 쪽으로 치우친 예배관이라고 그들은 간주 하였다
4)종교 개혁자들은
1> 예배는 각 지역의 고유한 방언으로 드려야 한다
2> 말씀과 성례의 2부 구조는 계속 유지 되어야 한다는 두가지 점에서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쯔윙글리는 단지 말씀에만 강조점을 두었다
이 같은 쯔윙글리의 견해는 칼빈주의 안에서 가장 큰 영항력을 행사 하였으며
이 같은 영항력은 영국 청교도들에 의하여 침례교,장로교, 회중교회와 독립교회로 퍼져 나갔으며 대부분의 미국 개신교에 까지 확산 되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내려 옴으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배 = 설교 라고 여겨게 되어 졌습니다
즉 만찬이 시행되지 않는 예배(?)는 존재 하여도 설교가 없는 예배는 있을수 없다
이렇게 여기게 되어 집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종교 개혁자들은 그 당시 필요에 의하여(카톨릭 교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교리를 심어 주기 위하여)
설교의 역할을 강조 하였으며
또한 미사의 잘못된 모습과 가르침에 때문에
만찬의 참다운 의미와 가르침을 소홀히 여기게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면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예배의 정의에 대하여 생각 할 때에 설교는 이 정의에 부합 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모임에서는 언제나 가르침이나 설교는 존재해 왔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설교나 가르치는 자가 1인이어야 하는지 다수여야 하는지는
이 주제에 맞지 않기에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첫댓글 초대교회 때 날마다 떡을 떼는 참된 실행이... 가톨릭은 화체설에 의해 극단적 실행으로 빗나갔고. 현 개신교는 이것을 참되게 회복하지 않고 가끔 행하는 종교의식으로 퇴색화된 것 같습니다. 떡을 떼는 것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있게 실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동감입니다....
프로스퀴네오는 ~에게 입맞춤하다 의 뜻을 갖고 있다고 하죠? 정확하게 하자면 인사 또는 문안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서구나 중동의 인사법은 입맞춤입니다.
실제 입맞춤이 아니고 포옹하며 양볼을 맞대고 입으로 쪽소리만 내는 인사법입니다.(마 26:49, 막 14:45, 눅 15:20, 눅 22:48, 행 20:37, 눅 22:48, 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1, 살전 5:26, 벧전 5:14,)
(살전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구약의 "제사"를 "예배"로 표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주의 상(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것을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표현했습니다.
출 12장에서 유월절을 먹는 것을 유월절 제사라고 하였습니다.(출 12:26 - 27)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16 - 21)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예배의 본질...성만찬과 말씀의 선포와 기도(단, 1인이 고정적으로 맡는 것이 아니라 그 모임 안에서 머리이신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자들을 통한)이라고 생각합니다. 행2장 42절, 고전14장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 주제에 있어서 말해지는 초대교회란 이런 원형이 보존되고 있을 때까지...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행 2:46,47)
위 두 구절을 볼 때
성전에 모여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집에서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삼천명으로 볼 때 성전에서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두 모이는 것은 가능하였으며,
그 후 몇몇 그룹으로 나누어 여러 집에서 교제하며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눅 9:14)
마가의 옥탑방에서는 남녀 약120명이 모였었습니다.(행 1:15)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29-3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가르침은 한 사람이 주도하지 않았으며 두 세사람이 말했으며 차서를 따라 한명씩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설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문제 제기차체가 예전적인 예배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20장7절에도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강론을 했다고 하지요. 신약성경 전체를 보면 성도들의 모임에는 항상 가르침이 따릅니다. 그것이 예배든 아니든간에 말입니다. 갈수있으면 항상 가르쳤고 갈수 없는 경우는 편지로 가르쳤습니다. 이들 편지가 신약의 서간들이지요. 설교가 예배의 정의상 예배가 아니라 할지라도 예배와 설교는 항상 붙어있는 것이 초대교회입니다. 초대교회의 떠돌아다니는 예언자와 교사들이 언제 가르치겠습니까? 바로 성도들이 모일 때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디다케 전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대하여" 글에서도 설교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설교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일날에 모여서 떡을 뗀다면 당연히 모임에서 가르침이 있었을 것이고 이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다케의 마지막항에는 "너희들이 자주 함께모여 너희 영혼에 유익한 것을 얻기위해 노력하여라" 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바로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것"이고 이것은 "영혼에 유익한 것"과 같다고 봅니다.
예 제글에도 표현 되었듯이 예배의 정의를 내렸을때에 설교가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여겨지지만 이것이 모였을 때에 가르침(또는 설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오늘날에는 주객이 바뀐것 처럼 예배 = 설교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사람들이 예배를 하나님을 경배하며 드리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무엇을 보고 듣는 것이 예배인것 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일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무엇을 받기 위한 시간으로 전락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_-;;
네. 강서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스틴의 변증서를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글들은 모두 성도들에게 전하는 글이지만 저스틴의 그리스도교를 전혀모르는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사람들인지 자세히 설명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전하는 글은 성도들이 익히 알고 있거나 잘 실천하고 있는 내용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서 언급을 하지 않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세세하게 언급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스틴의 글은 2세기초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활을 잘 나타내 준다고 봅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거룩한 나눔(성찬)이고 부활에 대한 증거가 설교였습니다.
성찬이 보이는 말씀이라면, 설교는 보이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 두가지는 상보적이고 동시적으로 행해졌습니다.
로마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중세에는 성찬에 신비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이 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의 갱신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자의 문제는, 사도 외에는 정식 목회 자격을 갖추기 이전의 시대였기 때문에 그때그때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설교자를 세우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설교자를 누굴 세울것인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이기에 여기서 토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설교가 부활에대한 증거라는 것에 대하여서는 동의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만찬에서 "주의 죽으심을 오실때 전하는 것이니라"는 말씀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하여 언급이 되어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만찬(예배)은 주님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부활하심과 다시 오심(재림)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활이라고 말했을 때 성찬에 담긴 의미를 축소한 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죽은 자의 삶과 승천과 재림과 장차 주와 함께 하나님나라에 이를 수 있는 소망까지 아울러 포함합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초대교회의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부활은 설교의 당연한 주제였지요.
"초대교회 설교의 주요 내용이 부활이 아니었다"라고 주장된다면 이건 더 이상한 것이 되겠지요?
물론 부활은 초대교회에서 다뤄진 가르침중 하나일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고전 15장에서 밖에는 중요한 내용으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부활을 무시하거나 그 의미가 축소 되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살아 있었기에 또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을 통하여 직접 들은 자들로서 너무 당연하기에 성경에 크게 언급이 되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설교를 할때에 그 근거는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도 그들이 읽은 성경을 나누었다고 할때에 부활보다는 재림과 교리 그리고 신앙의 삶에 대하여 더 언급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추축일수 밖에없지만)
바울의 목회서신들을 내용으로 초대교회의 가르침이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메시지들을 읽어보십시오. 사도행전의 모임이 초대교회의 원형이 아닌가요?
초대 교회의 출발이 부활이 아니었다고 하시는 주장이 이상하네요.
제 글에 오해가 있으신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출발이 부활이 아니라고 말한 부분은 없는데 -_-;; 오히려 부활은 너무나 분명하였기에 크게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다만 초대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나누었다는 전제하에서 오히려 성경의 내용들은 부활보다는 재림과 교리 또한 교회생활등에 대한 언급이 더 많기에 이런 부분에 대한 가르침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한다고 언급 하였습니다 다시 제 댓글을 확인 해보셨으면 합니다
잘아시겠지만
[ 이 날은 안식후 첫날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일요일 즉 주일입니다 ] 이것은 요일관념으로 볼때에 우리식으로는 토요일 저녁이죠.
안식일은 금욜저녁 시작해서 토욜 오후에 끝나고, 토욜 일몰부터는 안식후 첫날이죠. 그래서 안식일 규례에 따라 안식한 다음 토욜 저녁
밤늦게까지 강론을 하는(다음날 일찍 떠나려고 - 아마 날 밝으면 가야될 상황인듯) 장면이죠.
이건 주일성수 강조 개념으로 잘 이용하는 구절이면서 잘못된 인용의 사례죠.
어쨌거나 예배 모범은 예수님 입으로 언급되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쉽게도 오늘날의 종교의식이 과연 예수님이 바라는 예배의 전형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마 28:1)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눅 24: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요 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고전 16:2) 매주일 첫날에,
위의 구절로 볼 때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이 아닌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사도행전을 누가가 로마나 헬라인 그리스도인에게 쓴 편지임으로 헬라인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썼습니다. 특히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매주일 첫날에"는 그들이 모이는 날이었다는 사실을 볼 때, 사도행전 20장 7절의 "안식 후 첫날"은 토요일 다음날인 매주일 첫날이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