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저러나 35세의 사나이가 홀로 자취를 한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러한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정말 고적(孤寂)하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장국집에서 대강 식사를 마친 그는 경찰서로 돌아와 죽은 여자에 대한 서류를
다시 한 번 자세히 검토했다.
음부가 심히 헐어 있고 손톱에 짙은 매니큐어를 했다는 점,
그리고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 등이 그에게 수사범위를 어느 정도 좁혀 주는 것 같았다.
전혀 엉뚱한 경우도 더러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 차림만으로 변사체의 신분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는 그 여자를 술집 작부 쪽보다는 창녀 쪽으로 더 생각해 보고 싶었다.
사창가에서 창녀의 시체가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사인(死因)이라는 것이 거의가 타살이 아니면 자살이었다.
창녀들이 자신의 신세와 성병에 견디다 못해 젊은 목숨을 끊어 버린다든가,
사창가의 기생충들, 이를테면 포주나 펨프(뚜쟁이),
또는 깡패들에게 얻어맞아 죽는 것 따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가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사창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 산부인과와 성병 전문의 병원이었다.
금테 로이드 안경의 그 검시의는 오 형사를 보자,
「어이구, 웬일이십니까? 여길 다 오시구…….」
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커피와 담배를 권했다.
그러나 그 안경 뒤에는 조그맣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이 불청객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는 듯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바로 잘못 틈을 보이다가 의외로 많은 돈을 뜯길지도 모른다는,
그 구역질나는 경계의식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 오 형사는 검시의를 만나러 온 것을 후회했다.
「다름이 아니라…….」
입을 열면서 보니 검시의는 몸을 꼿꼿이 하고 있었다.
「수고스럽겠지만 검시를 다시 한 번 해 주셨으면 하고요.」
「아니, 왜, 어떻게 됐습니까?」
검시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 친구가 진정으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어서 일부러 뚱딴지같은 수작을 거는 건지 얼른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는 투였다.
「어떻게 된 게 아니고…… 검시를 좀 자세히 해 주셨으면 하고요.」
오 형사의 조용하고 분명한 말씨에 상대는 갑자기 정신이 든 듯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어 가운 자락에 닦으며,
「어떻게 더 자세히 하라는 건가요? 뱃속에 들은 것까지 다 조사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고 말했다.
「할 수 있다면 그런 것까지도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허 참. 그 정도의 검시가 필요하다면 연구소(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보시지 그래요.」
「네, 그게 가장 무난하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해 볼 수 있는데 까지는 해 봐야지요.」
「저로서는 검시를 부탁받을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더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시체를 한 번씩 만지고 나면 하루 종일 밥맛이 떨어집니다. 보기는 쉬운 것
같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많이 받고 한다면 또 몰라도…….」
더 이상 부탁해 본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거듭 오 형사는 난처함을 느꼈다.
그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별로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물었다.
「무리한 부탁이라면 그만두겠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오셨을 때 검시 결과에
대해서 혹시 기록에서 빼먹거나 묵살해 버린 점이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 건 없었습니다.」
검시의는 살찐 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 잘라 말했다.
「음독 같다고 했는데…… 무슨 약을 먹었나요?」
「세코날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로부터 뭐 이상한 거라도 발견했나요?
다른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엔 유난히 관심을 보이시니…….」
사나이는 비꼬는 투로 말끝을 흐렸다.
「……직업이 그런 거니까요. 타살된 흔적은 조금도 없었나요?」
「없었어요. 음독자살이라니까요. 신중히 생각해 보는 건 좋지만,
그 때문에 쓸데없이 헛수고를 한다면 우스운 일이죠.」
오 형사는 뜨거워 오는 숨결을 삼키면서 또 물었다.
「그 여자에게 성병 같은 것은 없었나요?」
이 질문에 검시의는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거기가 다 헐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남자 관계가 많았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까 성병이 있을 가능성도 있군요.」
「혹시 과거에…… 그 죽은 여자를 본 적은 없나요?」
「제가요?」
검시의는 놀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네, 바로…….」
「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어떻게 그런 여자를 알 수가 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 말은 이 병원에서 성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니까
혹시 환자로서 그 죽은 여자가 이곳을 찾아온 적이 없나 해서 그렇게
물어 본 것이지 다른 뜻은 없어요. 여기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여자라면
신분을 알아내기가 쉬우니까요. 그리고 이 근방에서 이 병원에 제일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보기와는 달리 단골 손님들 외에는 별로 손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의 얼굴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런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잘 알겠는데…… 무슨 성형수술을 한 자리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눈에 수술을 했더군요.」
3부
「왜 그런 것은 검시 기록에서 뺐죠?」
「별로 쓸데없는 것들이라 그랬습니다.」
「아니죠. 그건 잘못 생각하신 건데요. 기록이란 건 자세할수록 도움이 되는 것이거든요. 앞으론 검시하실 때 이 점을 유의해주셔 야겠어요.」
오 형사가 말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자 검시의는 재빨리 봉투하나를 그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러지 마세요. 정말 싫습니다.」
그는 검시의의 손을 완강히 뿌리치면서 봉투를 도로 내놓았다.
어디를 가나 이렇게 돈이 든 봉투를 슬그머니 찔러 주는 것이 유행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경찰직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일곤 했다.
눈이 그쳤다가 오후에 들어서면서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 때문인지 사람들은 갑자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이 보였다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점심으로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난 오 형사는 종로 3가 일대에서 성형(成形)과 성병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을 찾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사진관에서 찾은 변시체의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는데, 제대로 선명하게 나온 것이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얼굴을 정면으로 찍은 것이라 해도 시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사진만 가지고 신원을 찾는다는 것은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시체의 사진을 본 의사들은 터무니없는 짓 하지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설설 내둘렀다. 장난기가 있는 어느 성병 전문의 의사는 이런 말까지 했다.
「우린 말입니다…… 환자들의 얼굴보다는 하복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밑을 보면 누군지 알 수가 있어도 위에 붙은 얼굴을 보고는 좀체로 기억을 못해요. 미안합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라구. 오 형사는 홧김에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내친 걸음을 되돌리기가 거북스러웠다.
종로 3가 일대에서 성형과 성병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병원들은 상당수 되었다. 그러나 모두 훑어보았지만 조그만 단서 하나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기분만 잡치고 보니 그는 여간 허탈감이드는 게 아니었다.
그는 양장점 앞을 지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진열장 유리에비친 자신의 몰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열장 안에 걸려 있는 몹시 비싸 보이는 여자용 밤색 털 오버 속에는 부쩍 마른 사내 하나가 눈송이를 허옇게 뒤집어쓴 채 잔뜩 움츠리고 서 있었다. 턱 주위를 거무스레하게 감싸고 있는 수염과 앙상하게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불안하게 치떠 있는 두 개의 큰 눈동자가 영락없이 사흘 굶은 실업자의 모습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눈이 아프고 하루 낮을 꼬박 잠으로 보내야만 겨우 피로가 풀리곤 하는데 그는 아직 낮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가 지나 있었다 저녁 출근까지는 이제 겨우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므로 변두리에 위치한 집에까지 가서 낮잠을 잘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본서(本署)로 향했다. 연말 연시로 접어들면서 각종 범죄 사건이 우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 안은 흡사 장터처럼 붐비고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 형사는 그 검은 제복, 검은 잠바, 검은 구두의 혼잡을 뚫고 숙직실로 들어갔다.
텅 빈 방안에는 낡은 담요 몇 장과 때묻은 베개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누가 갖다 놓은 것인지 맞은편 벽에는 새해 달력이 하나 걸려 있었다. 달력에 눈요기로 박아놓은 수영복 차림의 아름다운 여배우 사진이 침침한 실내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오 형사는 여자의 육체를 생각하면서 달력을 바라보고 있다가 곧 잠이 들었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갑자기 담요를 걷어차고, 휙 돌아눕고, 한숨을 깊이 내쉬고, 허리를 꺾어 깊이 웅크리고, 마침내 소리를 지르기까지 하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봐, 이봐, 무슨 잠을 그렇게 자는 거야?」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바람에 오 형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창문은 어두웠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자면서 헛소리를 하는 거 보니까 너도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구나.」
살이 쪄서 헛배까지 나오기 시작한 동료 김 형사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헛소리를?」
오 형사는 괜히 놀란 체하며 물었다.
「그래, 화장실에 가는데 여기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아. 여자가 애기 낳는 소리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들어와 보니까 네가 혼자서 고생하고 있지 않겠나.」
「뭐라고 헛소리를 해?」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뭐라더라…… 아, 살기 싫다, 그러던가…… 하하.」
경찰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래서 결국 그 뜻을 이루어 만족스러운 상태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김 형사는 이상할 정도로 몸을 흔들면서 웃었다.
「그만 웃고 담배나 하나 줘.」
오 형사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숙면을 못한 탓인지 머리는 더욱 무겁기만 했다.
「이봐, 내가 살 테니까 저녁이나 먹으러 가지.」
김 형사가 담배를 내주면서 말했다.
오 형사는 수사과에 들어가 출근부에 도장을 찍은 다음 김 형사를 따라 나섰다.
경찰서 정문을 나오기 전에 그는 잠깐 뒤뜰로 돌아가 보았다. 눈은 그쳐 있었지만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쌓여 있었다.
여자의 시체는 아직 담 밑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이젠 손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눈을 헤치고 여자의 발끝이라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 이 친구, 재수 없게 그건 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김 형사가 뒤에서 어깨를 잡아 제쳤기 때문에 그는 몸을 돌이켰다.
그들은 경찰서 뒤쪽에 있는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경찰 동기생이었는데, 오 형사는 김 형사를 가까운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으면서도 곧잘 어울려 다녔다. 그것은 이를테면 일상생활의 잔 부스러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김 형사는 만족하게 웃으면서 돈 걱정은 하지말고 충분히 먹으라고 했지만. 오 형사는 식사를 반쯤 하다가 그만두었다.
첫댓글 글을 읽는 여유가 필요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