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미래
2021.10.2.
이 세상에 의식주 등 일상생활을 같이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조직은 가족이다. 이 가족은 두 남녀가 혼인이라는 절차를 통해 가정을 이룸으로써 시작된다. 그런데, 이 가족이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4~5인으로 이루어졌던 가족이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족 간의 유대도 예전 같지 않다. 그 뿌리에 가족의 토대를 이루는 결혼 관계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이혼율이 높을 뿐 아니라 황혼 이혼, 동거, 졸혼 등 혼인 관계 자체가 변하고 있다.
한 쌍의 남녀로 이뤄진 부부를 토대로 한 가족은 너무나도 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에 인간 사회에 언제나 존재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결혼을 기반으로 한 가족은 농사를 짓지 시작한 신석기 이후에 등장한 제도라 한다. 50~150명가량의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집단 공동으로 생존을 의지했던 수백만 년 된 인류의 생활 방식은 정착 생활로 중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소유 제도가 시작되었다. 성인 남자는 자기만의 재산을 소유하고, 자기의 여자와 아이를 책임지고 부양해야 하게 된 것이다. 즉, 종족 번식과 양육의 책임도 집단 공동에서 한 쌍의 성인 남녀를 기본으로 하는 가족에게 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은 부양책임을 지기 전에 아이가 자기 혈통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이 부계불확실성(父系不確實性, paternal uncertainty)을 해소할 장치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성적 독점권을 보장하는 결혼이었다. 이러니 일부다처제가 흔하고, 정조 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제도도 생겨났다.
이 결혼 제도는 부와 권력을 다투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가문과 세습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러니, 초기에는 좋아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할 수도 있었지만, 점차 힘과 권력으로 여자를 차지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 가문의 유지와 번성, 다른 종족과의 평화를 위해 결혼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략결혼도 시키게 되었다. 이것이 중매 혼인, 신라나 로마의 왕족이 하던 근친혼의 이유라 본다.
이렇게 보면 결혼은 혈통을 유지해 가문의 존속과 번영을 추구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집단 전체의 협동을 통한 공동 부양 방식이 무너진 상황에서 결혼은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는 사회 복지 제도가 되었다. 이런 결혼 제도의 기원을 생각해 보면 결혼은 원래 남성을 우위에 여성을 하위에 두는 수직적 관계로 시작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불과 수십 년 전까지 그렇게 유지되어 왔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전통 사회에서 능력 있는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이었던 현상에 대한 설명이 된다.
혼인이란 흔히 두 명 이상의 성인이 하는 사회적 계약이라 정의하지만, 많은 계약이 그렇듯이 사실 불평등한 관계를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결혼은 한국은 1980년대까지, 그리고 서구 선진 사회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인생의 통과의례였다. 누구나 결혼해야 하고, 이혼을 죄악시하는 전통적 사회 가치관은 지독히 불행한 결혼 생활도 감내하게 만드는 제약이었다. 페미니즘이 등장해 여권이 신장하고,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성취하게 되면서 이혼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혼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감옥 같은 끔찍한 결혼 생활을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여기에 사회 복지 제도의 발전과 미혼과 이혼에 대해 사회 인식의 변화는 이런 경향을 증폭시켰다.
설문 조사와 유전자 검사 결과는 1/3가량의 아이가 가족의 아버지의 친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각종 법적 처벌에도 불구하고 결혼의 순결의무, 정조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자료는 인간의 유전적 바람기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얼마나 쉽게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다른 이에게 끌리는지도 보여준다.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 본성에 딱 맞는 것만은 아니고, 일종의 족쇄 기능도 한다는 점을 뜻한다.
혼인이 갖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이제 여성이 경제 활동에 남성 못지않게 참여하면서 그 중요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가문의 유지나 혈통의 유지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혼인을 어쩌면 생물학적 본능이요, 인습의 굴레, 자유의 구속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혼자 살아도 불편함이 별로 없는 현대 사회의 편의성도 독신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 복지의 확대와 노후 설계는 노후에 자녀 봉양의 필요성을 급감시켰다. 이미 현재도 자녀에게 크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노부모는 별로 없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도 줄어들고, 자아 성취를 우선시하는 시대사조 덕분에 이제는 적어도 선진 사회에서는 결혼은 필수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 되어 간다.
이렇게 보면 결혼은 근본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생물학적 요구나, 노후나 생계 보장이라는 기능은 퇴색하고 있다. 그래서 늦깎이 결혼, 법적인 혼인 신고 없이 같이 사는 동거, 동성 간의 결합, 자녀 없는 부부, 애를 낳고도 홀로 키우거나 입양해 키우는 가정, 독신 가정 등이 더욱 늘어나면서 결혼은 점점 비공식적이고 비전통적인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또, 결혼과 이혼에 대한 법적,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 제약은 갈수록 느슨해지므로 배우자(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지 못하면 결혼 관계는 오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자유로운 결합(비공식적 결혼)과 이별(이혼)의 빈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혼은 가족의 기반이기에 가족 제도도 중대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가정의 전통 기능이 급격하게 약화하고 변화된 현 상황에서 볼 때 과연 앞으로 결혼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오래도록 지속하는 친밀한 관계와 정서적 안정이 아닐까? 오랫동안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부부라고 다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로(偕老)하는 부부는 같이 함께하면서 쌓아가는 신뢰와 의지, 상대방에 대한 헌신을 통해 그야말로 정신적 동반자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것이 두 영혼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앞으로의 결혼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참고 자료
https://namu.wiki/w/%EA%B2%B0%ED%98%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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