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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나니(히11:16)
장코뱅 추천 5 조회 373 23.10.07 09:06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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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07 09:31

    첫댓글 <IVP 성경주석: 서신서>, 히 11:1-12:13 믿음과 인내

    6:4-8의 경고 구절 뒤에 저자는 독자들에게 오래 참으라고 격려하면서(6:9-12), 그들에게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으라'는 격려의 말로 끝맺는다. 10장 마지막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의 결과에 관한 경고 다음에 '약속을 받기' 위하여(10:26-39) 믿음으로 '담대함’과 ‘인내'를 가질 것을 격려하고 있다. 그 다음에 11장에서는 구약으로부터 믿음의 여러 모범을 제시한다. 이 영예로운 믿음의 명부의 절정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12:2-3) 인 예수님의 모습이다. 신자들은 이'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바라보되 특히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는 온갖 대적과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12:1-13).

    11:1-40 이 명확하고 면밀하게 구성된 단위지만, 12:1-13은 이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작성자 23.10.07 09:31

    11장에서 믿음과 인내의 관계는 12:1-13 에서 인내하라는 요구의 근거가 된다. 이미 살펴본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것이 믿음의 최고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전체 단락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를 기다리는 구약 시대의 신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이 비슷함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으리라는 더 큰 확신을 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 23.10.07 11:38

    @장코뱅 주석 내용애 공감합니다.

    구약교회와 신약교회 모두 메시아(=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 작성자 23.10.07 16:23

    @노베 네, 좋은 포인트를 잡으셨네요. 오실 메시아를 믿었던 구약교회, 이미 오신 그리스도(=메시아)를 믿는 신약교회로 구분되지요.

  • 23.10.08 07:49

    @장코뱅 네, 잘 알겠습니다.

  • 작성자 23.10.07 09:37

    <IVP 성경주석: 서신서>, 히11:11-16절

    11-16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둘째 약속은 그에게 수많은 자손을 주셔서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창 12:2; 참고, 13:16; 15:5), 아브라함은'나이가 많아 죽은 자와 같고 '사라도 단산'하였으나, 믿음으로 '그는 아버지'가 될 수있었다(NIV 참고-역주). 그의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는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에 '신실하신'(새번역 개역개정판에는 '미쁘신'으로 번역되어 있다-역주) 것을 믿었다(참고, 10:23). 그러므로 이삭의 출생은 자손에 관한 약속의 성취의 시작이었다(참고, 6:15).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세상에 속한 기업으로서 가나안 땅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을 뿐이다(13절). 그들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을'때(참고, 창 23:4; 47:4, 9), 그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냈다. 만일 그들이 본향 메소포타미아를 사모하였다면, 거기로 돌아가서그 곳을 그들의 본향으로 삼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작성자 23.10.07 09:38

    10절에서처럼, 저자는 이스라엘 조상의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긴밀한 관계를 그린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기업을 얻기 바라고 믿음의 여행을 하는 순례자들이다. 그들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면서 족장들은 세상에 속한 기업 이상의 보상을 기대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본향에 대한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분명한 약속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12:22-24에 언급된 하늘의 예루살렘).

  • 23.10.07 11:48

    @장코뱅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말도 있군요. 주석을 보면 더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 23.10.08 15:36

    @장코뱅 잘 읽고 공부합니다.

  • 작성자 23.10.07 09:58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 히11:13-16

    11:13~16 선조들의 믿음이 고정되었던 유업은 두 가지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고,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며, 또한 미래에 속한 것이고,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1:13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아브라함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실 날을 멀리서 보고 기뻐했다(요 8:56).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우리가 유업으로 받기 위해 기다리는 본향에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까지, 현재 우리는 추방당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벧전 1:1, 4, 5, 17, 2:11), 구원을 약속받은 모든 상속자는 이 땅에서는 마치 집 없는 난민들과 같다 (38절).

    11:16 더 나은 본향: 구약 시대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믿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소망과 약속이 단지 물리적인 것일 뿐 아니라,궁극적으로는 하늘에 속한 실체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이 모든 약속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질것이다.

  • 23.10.07 11:50

    성도들이 추방당한 상태에 있다는 표현이 의미심장 하고요. 명목상의 많은 신자들이 이 세상에 더욱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연약함 때문이지만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 작성자 23.10.07 16:23

    @노베 네, 좋은 분별이십니다.

  • 23.10.08 07:50

    @노베 공감합니다.

  • 23.10.07 11:29

    하늘나라, 예수님의 품이 진정한 우리의 본향이라는 것을 되새겨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거나 죽을 때가 다가 오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어 하더군요. 육체도 이런 본성의 강한 끌림이 있을진대, 영혼의 끌림은 더 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이 땅에서의 삶이 더 즐겁고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진정한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못하거나 소홀한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는 녹록치가 않습니다. 예수께서 부끄러운 십자가를 개의치 않으시고 오래도록 참으시고 수난을 감내하신 것과 같이, 히 11장의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고난을 감내하는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니까요.
    하늘나라의 영광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은혜로운 묵상입니다. 감사합니다.

  • 23.10.07 11:36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특히 이단, 사이비 및 신비주의자들일수록 현세의 축복과 형통에 먀달리고 내세에 대한 소망은 없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가난하고 불행하게 사는 기복신앙 신비주의자들이 많습니다.

  • 작성자 23.10.07 16:23

    @노베 공감합니다.222

  • 23.10.08 15:38

    공감합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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