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식문화
▲ ①힌두교도는 소를 신성시하며 먹지 않아요. 사진은 인도에서 소 젖을 짜는 힌두교도의 모습으로, 이들은 우유 등의 유제품은 먹을 수 있답니다. ②무슬림은 율법에 따라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소나 양·염소 등만을 먹어요. 이런 것을 두고 ‘할랄(Halal)’이라고 해요. ③유대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코셔 푸드(Kosher Food)’라고 해요. 코셔 인증을 받은 오렌지 주스예요. /위키피디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페르시아만 남서쪽에 있는 국가 바레인에서 지난 5일(현지 시각) 야외 미사를 집전(執典·의식을 집행하는 것)했어요. 중동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레인은 이슬람 국가인데요. 인구의 약 70%가 무슬림(이슬람교도)인 바레인에 현직 교황이 방문한 건 처음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와 무슬림 간 소통을 위해 교황이 바레인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돼요.
통상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고기와 술은 금지된 음식입니다. 예컨대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돼지고기와 술을 전혀 먹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판매조차 하지 않아요. 특히 술을 유통하다 걸리면 엄격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바레인에서는 이슬람 교도가 아닌 경우에 한해 술과 돼지고기를 사고, 먹을 수 있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무슬림은 왜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지, 종교와 식습관이 연결된 다른 국가의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무슬림, 코란 해석 따라 금주
무슬림이 술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이슬람 경전(經典·종교 교리를 적은 책) 코란에 근거한 거예요. 이슬람교도에게 코란은 기독교 성경과 같은 의미를 갖는데요. 이슬람교도들은 더 철저하게 그 내용을 지키려 하는 경향이 있어요.
코란에는 "죽은 동물의 고기나 피, 돼지고기, 신의 이름으로 도살하지 않은 동물의 고기·술 등을 먹지 말라"고 나와 있는데요. 이런 금지된 것을 두고 '하람(Haram)'이라고 해요. 율법에 따라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소나 양·염소 등 허용된 것을 두고는 '할랄(Halal)'이라고 하지요.
이 중에서도 돼지는 "만지면 손을 반드시 씻으라"고 할 정도로 금기시되는 동물이에요. 이슬람교에서 돼지를 특히 불경(不敬)하게 여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양하답니다. 사막 기후에서 돼지고기는 쉽게 변질돼 식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중동 지역의 자연 환경이 돼지를 기르기에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어요. 또 잡식성인 돼지가 인간의 주식인 곡물을 축내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어 아예 키우지 않도록 섭취도 금지했다는 의견도 있죠. 단, 예외적으로 돼지고기인지 모르고 섭취하거나,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상황인 경우는 허락합니다.
코란에는 술에 대한 구절도 나오는데요. 무슬림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을 금하는 내용, 술에는 선과 악이 있지만 악이 선보다 크다고 말하는 내용 등이 있어요. 무슬림은 이 구절들을 맥주나 포도주 및 증류주와 같은, 취하게 하는 모든 음료 섭취를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한답니다.
바레인은 비(非)교도 위해 술·돼지 일부 허용
그런데 바레인에서는 왜 술과 돼지고기의 판매나 섭취가 일부 허용되는 걸까요? 바레인은 33개 섬으로 이뤄져 있는 군도(群島)인데요. 바레인은 이슬람 율법을 중시하는 국가이긴 하지만, 주변 이슬람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고대 시대부터 상업 중심지였던 바레인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요. 기원전 3000년쯤부터 현재 바레인 지역에서는 딜문(Dilmun)이라는 고대 왕국이 번성했습니다. 이 왕국은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인더스 문명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했지요. 그러면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용적인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바레인 인구는 약 150만명인데요. 이 중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해요. 그래서 비(非)이슬람 교도의 문화와 식습관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일부 허가받은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판매하고 있답니다.
바레인 내 보수적인 일부 정치인은 "이슬람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며 2010년과 2015년 각각 술과 돼지고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는데요. 이 법안은 "비무슬림 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고 합니다.
과거엔 소고기 먹었던 인도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힌두교도는 소를 먹지 않아요.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와 달리 힌두교도가 소를 먹지 않는 것은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이에요. 인도의 길거리에서는 소가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그런데 힌두교에서 소를 처음부터 신성시했던 건 아니에요. 기원전 1500년~기원전 600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힌두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 베다(Veda)에는 "유목민이 축제에서 암소를 도살하고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요. 당시에는 소를 신성시하지 않았고, 소고기를 금지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소가 숭배의 대상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인도 최고 신인 시바신이 흰 소를 타고 다닌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설, 소가 농경사회에서 인간에게 비료·노동력 등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는데요. 인도인의 조상인 아리아인은 원래 유목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인도 영토에 정착하고 점차 농경 중심 사회가 되면서 소를 먹지 않게 됐다는 거지요.
힌두교도 중에는 소뿐만 아니라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많은데요. 기원전 500년쯤 인도에 등장한 불교와 자이나교 영향으로 살생으로 얻어지는 고기를 불경하게 보기 때문이에요. 또 계급사회인 인도의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들은 심지어 생선도 육류로 간주해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지하고 있지 않은데요. 하지만 많은 수의 힌두교인이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겨서 먹지 않는다고 해요. 특히 인도에서는 돼지가 보통 우리에 버려지는 음식을 먹기 때문에 돼지를 온갖 세균을 갖고 있는 동물로 여기고, 가장 낮은 계급만 먹는 음식으로 치부하고 있지요.
지느러미·비늘 없는 해물 안 먹어
이스라엘과 같은 유대교 국가도 종교에 따른 엄격한 식(食)문화를 갖고 있어요. 유대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코셔 푸드(Kosher Food)'라고 하는데요. 유대교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 유형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또 재료뿐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고 검사하는 방식도 법으로 정해져 있고요.
음식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은 유대 경전인 토라(Torah)에 적힌 내용을 따른 거예요. 예를 들면 토라에서는 소·양·염소와 같이 발굽이 갈라져 있고,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고기만 식재료로 허용하고 있어요. 돼지는 발굽이 갈라져 있긴 하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대교에서도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금지돼 있습니다. 우유·버터·치즈와 같은 모든 유제품도 경전에서 허용된 동물에게서 나온 것만을 먹습니다. 조개·게·새우 등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바다 생물은 허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지요.
[무슬림과 어류]
코란에는 "바다에서 취해진 음식은 너희와 여행자들을 위해 허용한다"고 나와 있어요. 그럼 무슬림은 바다에서 취한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요? 이를 두고는 이슬람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데요. 예컨대 바다에 사는 모든 동물을 할랄로 여겨 갑각류·두족류·장어 등을 모두 먹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학파가 있고, 갑각류나 장어는 금지하고 다른 어류만 허용하는 학파도 있답니다.
[고지도 이야기] 지도 중심에 다뉴브강… 갠지스강을 지상낙원으로 그려
현재위치마운틴뉴스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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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20
1450년경 동판에 새겨진 보르자 세계지도(출처: The John Rylands Library)
18세기 후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되었으나, 제작자나 제작 목적, 시기 등에 관해서 알려진 바 없는 이 지도는 소장자의 이름을 따서 ‘보르자 세계지도Borgia World Map’라고 불린다. 스테파노 보르자Stefano Borgia는 1731년 이탈리아 벨레트리Velletri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페르모의 주교主敎인 숙부 알렉산드로 수하에서 교육받았으며, 젊은 시절부터 역사와 고대 유물에 관심이 많아 19세 때는 고고학 분야를 연구하는 코르토나 아카데미Academy of Cortona에 입학할 정도였다.
성직자 보르자가 발견
보르자는 1756년 로마의 라 사피엔차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위 성직자에 취임했다. 1770년 포교성성布敎聖省 차관이 된 이후 그의 컬렉션은 더욱 풍부해져 고향 벨레트리에 보르자 박물관을 설립했다. 1787년 이 박물관을 방문한 괴테Goethe는 다양하고 희귀한 유물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보르자가 이 세계지도를 손에 넣게 된 것은 교회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1789년 추기경樞機卿에 서임된 이후인 1794년인데, 그 경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이 지도를 보르자 추기경이 ‘1794년 포르투갈의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했다’는 자료도 있고, ‘1794년 이탈리아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했다’는 자료도 있으며, 심지어 1774년에 구입했다는 자료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의 지질학자 노르덴스키욀드A. E. Nordenskiöld가 1891년에 쓴 논문 <15세기 세계지도A Fifteenth Century Map of the World>에는 “프랑스의 고고학자 세로 다쟁쿠르Seroux d’Agincourt가 1794년 이탈리아 골동품 가게에서 이 지도를 처음 발견했고, 그해 보르자 추기경이 박물관용으로 구입한 각종 미술품 중에 이 지도가 포함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구입할 당시 이 지도는 양피지나 종이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동일한 크기와 두께의 2개 동판에 조각engrave된 것으로, 장식용 대갈못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원형의 크기는 직경 63.4cm이다.
이 지도 동판은 1804년 보르자 추기경이 프랑스 리옹에서 선종한 뒤, 신앙 전교를 위해 어느 수도원의 서고에 보관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곳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르자 박물관의 1만1,000종에 달하는 필사본과 희귀도서는 19세기 중반에 바티칸 도서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양피지 대신 동판에 조각
이 동판 세계지도는 1797년, 보르자 추기경의 조카인 카밀로 보르자Camillo Borgia가 원본 크기로 인쇄해 배포했다. 현재 이 세계지도 사본은 10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확인되는 곳은 바티칸박물관, 맨체스터대학 존 라이랜즈 도서관John Rylands Library, 미시간대학 도서관 등이다. 또한 이 세계지도의 축소판(23cm×35.5cm)은 다쟁쿠르의 저서 <Histoire de L’Art Par Les Monumens>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1823년 파리에서 인쇄되었다.
이 세계지도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1402년 카스티야Castile의 식민지가 된 카나리아제도가 그려지지 않아 1410년 이후라고 보는데, 자료에 따라서 1430년경, 1450년경, 1453년, 1458년 등 다양해 1410년에서 1458년 사이로 보기도 한다. 지도에 표기된 문자는 남부 독일어인데, 당시 이곳은 독일 왕이 다스렸던 신성로마제국시대이므로, 지도제작자는 독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지도는 지명 이외에 각국의 지리, 역사, 민족, 종교 등이 강조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사용되었던 지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세계지도는 동판에 조각해 그 홈에 니에로niello 기법으로 검은색을 채워 넣어 지도의 선과 문자를 드러나게 한 것으로, 특이한 점은 지도상에 37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지도의 크기와 비례해 계산한 결과 직경 약 9mm 크기인데, 이탈리아의 지도사학자 로베르토 알마지아Roberto Almagia는 이 구멍에 도시나 군주의 작은 메달을 걸어 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의 방위는 위가 남쪽이고, 중심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다뉴브강 하구이다. 예루살렘은 지도나 방위적으로도 전혀 강조되지 않았으며, 흥미로운 것은 지상의 낙원이 갠지스강 하구에 위치해 있고, “경이로움과 보석이 있는 땅”으로 묘사되어 있다. 도시는 성곽으로 표현되고, 지도의 공간에는 각종 그림과 함께 역사적인 사실과 전설로 가득 차 있어 지리적인 지도라기보다는 판타지와 같은 장식적인 목적이 강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육지 가장자리는 환해環海에 둘러싸여 있고, 지도의 위쪽은 아프리카이고, 왼쪽은 아시아, 지중해 아래쪽의 유럽은 다른 대륙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의 남단은 작열하는 태양열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고, 상단의 오목한 만입은 에티오피아해이다. 아비니치벨Abinichibel은 에티오피아 사라센의 왕으로, 그의 백성들은 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태양 열 때문에 벌거벗고 다닌다고 하며, 그 오른쪽 해변에는 털이 많고 매우 야만적인 여자들이 수컷 없이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나일강은 ‘7형제’라고도 하는 달의 산Montes Lunae에서 발원해 미사해Mare Missa에서 동ㆍ서로 분리되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중간에 끊겼다가 남쪽과 북쪽으로 흐르고, 서쪽 대서양으로 흐르는 강은 폭 8리그(약 40km)의 ‘황금강’이라고 한다. 낙타가 지나는 사막에는 바다처럼 길이 나 있어 사람들은 바람과 모래를 피해 덮개를 쓰고 다닌다고 한다. 아프리카 북쪽의 거대한 아틀라스산맥에는 ‘네그레스Negres’, 즉 흑인의 땅으로 가는 고전적인 통로가 뚫려 있고, 리비아에는 밤에는 끓고, 아침이 되면 미지근해지는 ‘태양의 샘’이 있다고 한다.
지리적 지도라기보다는 판타지
아라비아반도의 큰 성전은 메카이고, 페르시아만으로 흐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구에는 72개의 언어를 지어낸 바벨탑이 서있다. 인도양에는 7,000개의 섬이 있으며, 인도에는 4피트 길이의 뿔을 가진 거인과 황소를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거대한 뱀이 있다고 한다. 갠지스강 하구에 그려진 나무에서 비단을 모으는 먼 세레스Seres는 중국을 가리킨다. 지도 왼쪽 끝에 장방형 산줄기에 둘러싸인 곳은 페르시아 왕 아르탁세르크세스Artaxerxes 시대에 유대인이 봉쇄된 곡Gog과 마곡Magog의 땅으로, 이 두 종족은 악행으로 가득 찬 거인들이라고 한다.
‘제3의 지역’인 유럽의 지리정보는 미지의 아프리카나 아시아보다는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섬과 흑해, 아조프해 등의 모습은 매우 정형화된 모습이다. 흑해 왼쪽은 카스피해이고, 흑해 위쪽 아르메니아의 산Mt. of Armenia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 유럽에는 주로 역사적인 사실이 적혀 있는데, “이탈리아는 아름답고 비옥한데,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군주가 없어 정의롭지 못하다”고 쓰여 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왕국 옆에는 아일랜드가 없고, 유틀란트반도와 발트해,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지도 아래쪽 가장자리는 산이 많은 북극이라 너무 추워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표현되고, 발트해 왼쪽에 사람의 머리가 매달린 그림은 스스로를 신성시하는 종족으로, 그 자신을 희생물로 삼아 머리를 장대에 매달고 그것이 떨어질 때까지 무릎 꿇고 절을 계속한다는 전설이 있다.
각종 그림과 수많은 전설, 역사적 사실이 뒤섞인 다소 조잡하고 불안해 보이는 보르자 세계지도는, 지리적 발견이란 큰 물결에 앞선 시기에 지리학과 지도학 연구에 있어서 뜻밖의 의미를 지닌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술적인 관점에서도 그 불완전한 묘사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걸쳐 유럽 교양계층의 사고방식을 매우 잘 드러내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