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간판, 예쁜 이름들
(전 선 재)
현역에서 은퇴하고 네이버 산하 <에버영 코리아>라는 회사에 다녔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지도영상을 제작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업무다.
블러링이란 작업을 통해 지도영상 중 개인정보를 보호하거나 보안을 목적으로 대상물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주요 부분을 흐릿하게 처리하는데, 개인정보 보호는 사람 얼굴과 차량 번호판을 가리고, 국가중점시설과 군사보안 목표는 전 시설을 가린다.
블러링을 마친 영상은 검수단계로 넘어가 블러링의 상태와 영상의 보정여부를 검수한다. 영상의 보정 중에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하는 것이 스티칭이란 작업이다. 사물의 어긋남, 파임, 절단, 중첩 및 탈락 등 비정상적인 부위를 찾아서 수정 및 보완하여 정상적인 영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거리의 간판들을 접하게 되는데 도심지에서 가장 애를 먹이는 것도 이들이다. 도심의 간판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하다. 외국의 간판은 크기와 부착위치 등이 거의 일률적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간판은 개성이 강하다. 크기, 모양, 색상, 구도, 재질, 부착위치와 형태 등이 너무나 다르고 특이하다.
외국어 간판은 스펠링까지 확인해야 중첩과 탈락여부를 가려낼 수 있다. 간판의 정보기능 중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전화번호가 숫자가 다양해지고 많아짐에 따라 정확히 확인하려면 앞뒤 여러 장을 살펴보아야하는 고충도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고충은 각 단계와 상황 그리고 영상에 따른 수많은 매뉴얼을 숙지하고 신속•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간판은 상호와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집의 기능과 역할, 업무의 내용들을 알려주는 메신저의 요체다.
간판은 기능상 사람들의 눈에 잘 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도, 내용, 칼러가 신선해야 하고 그 위치도 잘 잡아야 한다.
아름다운 간판을 가진 가게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도, 가게를 찾는 사람도 모두 아름답다.
예쁜 이름을 가진 가게는
예쁜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쁜 마음을 전하고 간다.
사람은 한번 이름이 붙여지면 영원히 간다.
사람이 가고 없어도 이름은 남는 것이다.
그러나 간판은 가게의 운명과 생사를 같이 한다.
그러기에 더욱 돋보여야 하고 더욱 치열하게 생존하려나보다.
주 간판을 위해 보조간판들이 외벽에, 입구에, 창문에 줄줄이 늘어서 있다.
작업을 하면서 눈에 확 뜨인 간판의 예쁘고 인상적인 이름들을 모아 보았다.
o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이름들이다.
수수꽃다리(화원), 가르마(헤어샾), 논두렁(오리), 우렁각시(쌈밥), 찰떡궁합(떡), 산너울(산채비빔밥), 텃 밭(야채, 과일), 절구와 시루(떡), 여울목(카페), 달팽이 집(해장국), 휘파람(세탁소), 따숨(세탁소), 장작 향(구이), 댕기꼭지(한복), 아리수(치과), 아서라(중식), 석쇠불판(숫불구이), 시루에 피는 꽃(떡&차), 찹쌀 누룽지, 맷돌 순두부, 국시 한마당, ㅡㅡㅡ
o 시적인 표현을 사용한 이름들이다.
달빛이 돌에 옮고(민속주점), 건반위에 콩나물(피아노), 팥사랑 이야기(팥빙수), 꿈의 대화(화원), 굴마을 낙지촌(식당), 알이랑 술이랑(주점), 모두랑(쌍화탕), 처음처럼(호프), 향유재(향기가 머무는 곳,한식), 달빛 한 수저(고깃집), 도담 도담(팥죽), 미리내, 꽃 가람, 예 사랑, 새소리 물소리, 솔잎향기 ㅡㅡㅡ
o 사투리, 정다운 말을 적절히 사용한 이름들이다.
맵다카이(떡볶이), 나 오늘 머리한다(헤어샆), 나 옷 수선한다(수선집), 딱 한잔만 더!(주점), 여보게 친 구(주점), 꼬매 꼬매(수선), 꼬랑내(신발가게), 돌돌 말아 (김밥), 까까조(이발소), 까꼬 뽀꼬(미장원), 그때 그집 그 할머니(식당), 간판봤음, 드루와(주점), 누들 퐁당(떡볶이), 오! 자네 왔는가(구이), 먹고 갈래 지고 갈래(선술집) ㅡㅡㅡ
o 기능을 강조한 이름들이다.
하얀(세탁소), 손다림(세탁), 미소크린(세탁) 실,바늘(수선), 신들린(짬뽕), 팔딱(오징어), 쌈 도적, 제누 네(안경), 구슬치기(당구장), 빨리빨리(빨래방), 악어새(청소업체), 숲속공기(새집청정), 맵꼬만(명태찜), 밤이슬(막걸리), 벌집(삼겹살), 도토리마을(묵밥), 좋은 인연 만들기(카페), 알콜 충전소(주막), 진수성찬(한 식),막 썰어(횟집), 밥심, 밥이 보약, 해산물과 전한판 酒-, 눈물 떡볶이&눈꽃 빙수, 누룽지 위에 엎드린 닭ㅡㅡㅡ
o 사람, 지형지물을 이용한 이름들이다.
친정 엄마(건강차), 할매 정성(밥상), 친구야 반갑다(호프), 장금이(야식), 대장금(해물 칼국수), 할머니 (손칼국수), 느룹나무(순대국), 아빠의 밥상, 동강 맑은 송어, 수미 뽈테기ㅡㅡㅡ
o 한자의 뜻을 활용한 이름들이다.
담소정(칼국수), 죽마고우(주점), 목로주점, 味親구이, 주주클럽(맥주), 소반(돈까스), 다예(전통 차), 예다원 (전통찻집), 간이역(호프), 실신(떡볶이), 묵향기(묵집), 감동(국수), 酒食膾射(술,밥,회를 쏘다), ㅡㅡㅡ
o Global 시대에 부합하려는 이름들.
Jan Beer(맥주집), Forever (헤어샾), Pink Ribbon(케익), Evezary(이브자리), Bubble Clean(세탁소), The 맛(쪽갈비), Design(광고), Star King(팬션), 얌스 Yam’s ( 김밥), wara wara(맥주), Kids Brain, 헤어 스케치, Mom’s Touch,ㅡㅡㅡ
o 적당히 줄인 말들
소담所澹(소중함을 담겠습니다, 한식), 자담떡(자연을 담은 떡), 아름찬(아름다운 반찬), 컴 & 폰 (컴퓨터&핸드폰), 떡순튀(떡볶이, 순대, 튀김), 진맛 추메장(추어, 메기, 장어), 돈치호(돈까스, 치킨, 호프) 꼬냉(고기주는 냉면집), ㅡㅡㅡ
o 그 외 이름들
너 라면 나 김밥(편의점), 늑대와 여우(컴퓨터), 오빠닭(오븐에 빠진 닭,치킨), 참새 떡방아간, 깐풍기 브라더스(중식집), 맛있나 봄, 여기가 본점(카페), 내차안의 변호사, 다 본다(블랙박스), 24:ing(편의점), 니손 내손(네일아트), 한누리, 새누리, 쑥쑥 리더스 , 뜨끈이 집, 날마다 대박ㅡㅡㅡ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려는 듯 외국어를 사용하고, 영어와 우리말, 숫자와 영어를 혼합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로 제작된 간판이 훨씬 더 친근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있어 보인다. 정형적인 것을 따르기보다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고 문자와 그림의 혼합 또는 그림만으로도 원하는 내용을 충분히 표현한 간판들이 재미있고 익살스럽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가치와 정보, 진심어린 정성, 신뢰와 친절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고객이 필요한 것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자세와 진실성은 간판이나 광고 이상의 효과를 충분히 달성하리라 생각된다.
간판도 시대상황과 조류, 유행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간판 뒤에 숨어서 사기와 혐오, 외설 따위를 조장해서는 안 되며, 아무리 간판이 훌륭하고 매력적이라 해도 이것들이 고객을 끌어당길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회사에서 이들을 처리하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알이 팽글팽글 돌고, 눈물까지 주르륵 쏟아내던 시절이 생각난다. 덕분에 비록 영상을 통해서 이지만 일 년에 한번 정도는 전국을 일주하고, 직접 가기 어려운 구석구석까지도 돌아볼 수 있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