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뱃전에 섰다. 서서히 뒷걸음치며 매무새를 가다듬는 몸체에 엄숙하고 느린 미학이 서린다. 떠나는 자가 바라보는 건너편 산꼭대기에는 불빛들이 빛난다. 뱃머리가 완전히 틀어지는가 싶더니 시모노세키항을 향해 나아가는 뱃전에는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붐빈다. 그들은 불빛이 경쟁하듯 화려한 고층빌딩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상향이라도 되는 양 손짓한다. 나도 저 높은 곳에 살고 싶다. 불빛이 화려한, 신기루 같은 고층빌딩 안으로 당당히 들어서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숨긴다. 물욕과 명예욕, 권력욕 등을 소박한 가면 속에 숨기고 산다. 그나마 명예욕이나 권력욕에서는 좀 너그러워 스스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욕에 관해서는 나는 전혀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를 친다. 모두가 하나같은 은폐증상이다. 소위 글을 적는다는 문인들도 비움과 안빈낙도를 비행하지만,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태반이다.
나 역시 그렇다. 많은 글 속에서 욕심은 쏙 빼고 유유자적하고픈 바람들을 많이 적는다. 욕망과 욕심들은 가면의 안쪽에 붙여두고 무심한 척 산다. 몇천만 원씩 웃돈이 붙는 아파트에 당첨될까 하고 청약을 한다. 집을 가지면 상가를 가지고 싶고 그것마저 가지면 세컨드하우스 하나쯤 가지려는 욕심이 붉은 혓바닥을 내민다.
사람들은 왜 돈을 벌려고 할까. 그러면서 사람들은 돈을 향한 마음을 왜 숨기려 할까. 아마 돈이 권력인 세상이 두렵기 때문 아닐까.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할 수가 있고 돈이 있어야 가장의 권위가 서고 돈이 있어야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 믿음에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성공하려고 버둥거린다.
영화 (베테랑)은 몇 년 전 있었던 재벌 2세의 실화를 모티브로 소위 맷값이라는 말이 유명해졌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류승환 감독은 이 영화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라도 바위가 더럽혀지기라도 하지 않느냐는 말을 던졌다.
그들의 횡포는 놀랍다. 사냥개로 여직원을 협박하고 폭행을 일삼는다. 자신의 회사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시위자를 야구방망이로 매질한 후 수표를 집어던져 준다. 입안에 휴지를 뭉쳐 넣고 폭행하고 경찰에 무마 압력을 넣는 행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행해지는 재벌가 2·3세들의 마약 파티나 연예인 스폰서 등의 사건까지 합해지면서 재벌들의 돈에 대한 욕망은 더욱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당연히 구속될 줄 알았던 가해자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피해자였던 시위자는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되었다는 후문이다. 그 후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그룹의 총괄로 들어가게 되었다니 사실이라면 분노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악할 일이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돈이 많다는 것은, 죄악이요 돈이 없다는 것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인식된다. 기업가나 정치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지금껏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추구한다. 기업과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은 미국 억만장자들에게 최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자는 켐페인을 벌인다. 얼마 전 애플 최고경영자 팀쿡은 전 재산 기부를 약속했다. 신흥 부유층들의 기부문화 동참도 점점 느는 추세이고 연예인이나 저명인사들의 기부문화도 정착되어 간다.
영국의 구호재단(CAF)이 조사한 ‘세계 기부지수 평가’에서 한국의 기부 규모는 조사대상 153개국 가운데 81위다. 라오스와 시에라리온(11위)보다도 못한 수치라고 했다. 경제적인 규모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순위다. 간혹 한국기업들 기부 행사가 대서특필되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면 세금 문제나 경영권 승계 문제 혹은 정치적 궁지와 부정적 사건으로 인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돌리려는 방편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한다고 이미지가 회복될까.
그런 가운데서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책임 있는 경영을 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잊지않는 기업이 있다. 백억 이상 기부한 가수, 나눔을 실천하는 부부 연예인들도 있다. 자신의 욕망을 들어내며 더불어 밝은 사회를 이루려는 꿈은 성공한 사람이나 부자들만의 것일까. 풀뿌리 같은 사람들이 더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미담도 들려온다.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이 따뜻한 곁불이 되는 예를 알려 주는 행동이다.
생명체는 욕망 덩어리다. 남보다 나아지려는 마음, 잘살려는 의지가 웅크리고 있다. 비탈마을 산꼭대기에서 평지로의 하향을 꿈꾸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고층빌딩으로 들어서는 부촌 입성을 꿈꾼다고 나무랄 수만 있을까. 꿈틀대는 욕망 들이 우리 사회에 생동하는 발전의 힘이 된다. 단지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는 일은 아니 했으면 한다. 누군가의 피눈물을 자신의 부와 명예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영화 (베테랑)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손가락질받는 재벌이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된다면 부(富)는 더이상 악의 얼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지개를 닮은 아파트촌의 불빛이 뱃전의 출렁임에 맞추어 흔들린다. 욕망의 가짓수만큼 수많은 불빛이 찬란하다. 돌아오는 항구에서 바라보는 대낮의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첫댓글
지당하신말씀!
두번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