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第十一章). 너무나도 흠모(欽慕)하는 사람들.
갑자기 산 모퉁이를 돌아 가자 황량한 모래바람이 일행을 덮치더
니, 누군가가 노기에 가득찬 음성으로 소리쳤다.
"정말로 호랑이의 간담이라도 삶아 먹은 계집이로구나! 감히 우
리를 기만하고 이렇게 달아나려고 하다니......! 후후후, 하지만
너와 같은 계집의 대담함도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이 부근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어느새 수십 명의 흑
의인(黑衣人)들이 다가와 일행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그들의 눈빛
은 얼핏 보기에도 짐짓 흉악(凶惡)해 보였다.
왕산산은 이에 그만 안색이 변했으며 고개를 돌려 제운우를 바라
보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혹시 그 흑사방(黑沙幇)의 사람들이 아닌가요?"
제운우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들은 흑사방의 사람들이로군요."
금몽추가 기이(奇異)하게 웃더니 왕산산을 바라 보며 비아냥거리
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 어째서 저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소저는 이전에 저 사람들
에게 무슨 미안한 짓이라도 저지른 것이 아니오?"
왕산산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대답했
다.
"아니예요. 금공자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이제까지 거의
밖으로 나와 본 적도 없는 걸요. 하지만 만일......"
"하지만 뭐요?"
"만일 저의 아버지가 저 사람들과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저의 아버지가 하
시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제운우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마 그런 것은 아닐 것이오. 내가 보기에는 왕노야(王老爺)는
비록 그만한 재산을 모으기는 했지만 그러나 남들과 심하게 싸운
일이 거의 없었고, 게다가 저 흑사방의 무리와 무슨 원한(怨恨)을
맺었다는 것은 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 흑사방의 무리들 가운데에서 서너 명이 이쪽으로 걸어 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금몽추가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이제 알 것 같소. 으음......, 그러니까 소저는 확실히 저
사람들에게 아주 미안한 짓을 저지른 것 같군."
왕산산이 그의 얼굴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 보자, 금몽추는 다
시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를테면 부자(富者)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점이 있
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오. 부자들이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
지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늘상 그렇게 생각하기가 쉬운 법이
지. 게다가, 흐흐흐! 소저가 아직 저 사람들에게 많은 은자(銀子)
를 선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더 많은 미안한 짓을 저지른 것이
오. 그렇지 않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다른 것은 오직 한 가
지 경우일 뿐이오. 그것은 바로 소저가 그 유명한 말도둑이라는 말
이오."
왕산산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호호...... 내가 바로 그 봉황화(鳳凰花) 남서오(藍
棲梧)라는 말인가요?"
그 흑사방의 무리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다가와 일행을 둘러 보더
니 왕산산을 향해 노기에 찬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가랑이를 찢어 죽일 더러운 년! 네 년이 그렇게 말의 털을
하얗게 바꾸고 돌아 다닌다고 해서 우리가 몰라 볼 줄 알았느냐?
흐흐흐! 우리는 일단 네 년을 죽여서 끌고 간 이후 소금에 절여서
썩지 않게 하고 두고두고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왕산산은 그처럼 악독한 욕설은 거의 처음 들어 보는 것이라 그
만 정신이 하나도 없어져서 망연히 그들을 바라 보고 있다가, 그저
한 마디를 던졌다.
"당신들은 대체 무슨 일로 이러는 거죠? 나를 혹시 봉황화 남서
오로 잘못......"
그 우두머리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순 뒤를 돌아 보
며 크게 소리쳐 말했다.
"너희들도 이미 모두 들었겠지? 이 계집이 이미 그와 같은 모든
사실들을 시인했다. 자, 무엇을 망설이느냐? 어서 이 계집과 그 일
행을 모조리 주살해라!"
흑사방의 사람들은 이미 그와 같은 상황을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
었는지, 그러한 지시가 떨어지자 즉각 일사불란하고도 빠르게 행동
을 개시했다.
우두머리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시간은 제법 걸렸었지만 지금 그
흑의인들의 동작은 거의 한순간에 신법(身法)을 날려 일행을 겹겹
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칠 팔십 명이나 되었는데, 비단 그들의 병장기
(兵仗器)들이 햇살을 반사시켜 눈부시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살벌
(殺伐)한 기세(氣勢)로 말하자면 흡사 파도처럼 일거에 일행을 뒤
덮을 것만 같았다.
'으음, 이거 약간 난처하게 되었구나. 저렇게 사람들이 많으니
일단 격전(激戰)이 벌어지게 되면 왕소저는 그 와중에 무사하기가
어렵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 보다도 나는 그 위대한 곤륜
삼성인데 정작 이런 곳에 와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금몽추는 문득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즉시 궁구가에게서 내려
웃으며 그 우두머리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하하하, 안녕하시오? 이거...... 아직 인사를 하지 못했소이다.
미안하오! 미안하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겉으로는 이렇게 보여도
속으로는 한 패라고 할 수 있을 거외다."
우두머리는 고개를 약간 쳐들고 그를 내려다 보듯 하며 다소 뜨
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가 한 패라는 말이냐? 네 놈은 누군데 나서는 것이냐?"
금몽추는 상대방의 태도가 차가운 것을 보자 더욱 크게 웃어 보
이며 친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른바 가난한 사람으로 수중에는 거의 은자가 남아 있지
않소이다. 믿지 않으시오? 하하하, 믿지 않으시면 한 번 내 품속을
조사해 보시오. 으허허허......! 게다가 나는 이미 믿을 수 없게도
각고의 노력(努力) 끝에 상당한 무공절기(武功絶技)들을 익혔다는
말이외다. 무슨 말인 지 알겠소? 으흐흐흐, 지금 내가 이토록 가난
하니, 만일 잠시 후에 배가 고프게 되면 누군가의 밭으로 들어 가
서 무나 배추를 슬쩍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한 패
가 되는 것이 아니겠소?"
흑의인들은 이 때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금몽추의 그러한
말을 듣고는 오히려 안색이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금몽추는 이에 그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 알겠소! 알겠소! 아마도 당신들은 내가 그러한 말을 하면
서도 정작 아직 무공절기를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더욱
나빠진 것이구려. 그렇다면 그것은 별로 문제도 아니오. 자, 보시
오! 이 정도면 되겠소?"
금몽추는 곧장 자세를 잡고 장풍(掌風)을 날려 앞에 있는 작은
돌덩어리 하나를 후려쳤는데, 이상하게도 비단 소리도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돌덩어리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고, 아무런 변화
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금몽추가 웃으며 발끝으로 가볍게 건드리자 그것은
흡사 모래가 되어 버린 것처럼 힘없이 부서져 버렸는데, 그것은 그
야말로 소위 장력으로 펼친 검기진상(劍氣振傷)이라고 하는 것으로
절정고수(絶頂高手)라고 해도 시전하기가 쉽지 않은 상승절기(上乘
絶技)였다.
"하하하! 실로 이 정도는 나에게 있어서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
이외다. 게다가, 하하하...... 나는 지금 당신들과 한 패가 된 것
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정보(情報)를 제공하려고 하
는 것이오."
우두머리는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무슨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말이냐?"
금몽추는 그를 향해 다정한 듯이 웃어 보이다가 뒷쪽의 왕산산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은 그녀가 그 전설적(傳說的)인 한혈용마(汗血龍馬)를 훔쳤다
고 해도 결코 그녀 혼자서 저지른 것은 아니외다. 으음, 당연히 그
동조하는 배후가 있어야만 할 것이오. 바로 저 덩치가 커서 밥만
많이 먹는 녀석이 그 일을 도와 주었소. 물론...... 저 말을 하얗
게 만들어 놓은 사람도 역시 그 녀석일 것이외다. 하하하, 저 소화
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의 말은 모두 옳소이
다. 하! 하! 하!...... 하지만 나는 아니오. 나는 사실은 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이렇게 볼모가 되어 끌려 가고 있었던
것이외다. 감사를 드리오! 감사를 드리오! 당신들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자유의 몸이 되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소이까?"
우두머리는 더욱 기분이 나빠진 듯 눈살을 찌푸렸고, 그 옆의 나
이 많은 흑의인 하나가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쳐 말했다.
"이 더러운 녀석아,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
냐? 죽고 싶단 말이냐?"
'이...... 이런 우라질, 왜 이렇게 다들 나를 보고 인상을 구기
는 지 모르겠군.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하하, 더러운...... 실로 더러운 녀석이오이다. 나는 이미 오랫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으니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외다. 하지만 일단은 그 더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말을 훔친 도
적들을 잡아야만 하지 않겠소? 나는 당연히 당신들의 편을 들어 증
인이 되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우두머리가 문득 시선을 돌려 왕산산을 바라 보더니 표정을 바꾸
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왕소저(王小姐)! 하하...... 알고 보니 다름아닌 그 유명하신
왕노야(王老爺)의 무남독녀(無男獨女) 왕소저이셨구려? 이거 대단
히 실례했소이다. 노부가 그만 사람을 잘못 보아서 그와 같은 실수
를 범하고 말았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수가 있겠소이까?"
금몽추는 느닷없는 그 우두머리의 말에 크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어......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이지......?'
왕산산도 일순 의아한 표정이 되어 흑의인들을 둘러 보다가 약간
웃으며 대꾸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상관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무
슨 다른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또한 여러분이 사과를 했으니 그
것으로 다 지나간 일이지요."
우두머리는 음침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실로 왕소저께서 이렇게 험란한 강호(江湖)를 돌아 다니시다니
뜻밖의 일이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이와 같은 실수를 하
게 된 것이고, 흐흐흐!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왕소저께서 무사하실
수 있도록 보호해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외다. 그렇지
않소이까?"
왕산산은 그 우두머리 등의 시선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다시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호의를 보여 주시겠다고 하는 점은 저도 감
사를 드리는 바이예요. 그런데 혹시 제게 달리 하고자 하는 말이라
도 있나요?"
우두머리는 천천히 제운우 등을 다시 돌아 보면서 음산하게 웃다
가 말했다.
"왕소저께서는 좋은 말을 가지고 계시는 군요.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오해를 하게 되어 이미 수백 명의 인원들을 동원하게 되었
고, 믿으실 지 모르지만 벌써 저 쪽에 매복을 시켜 두었소이다. 게
다가......, 앞으로 우리가 이 험난한 강호에서 왕소저를 보호해
드리려고 한다면 자연 그 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또한 비
용이 많이 들 것이오. 흐흐흐......! 이 일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
도 아름다우신 왕소저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그 고초를 충분히 참
아낼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요즘 장사가 시원치 않은 우리들이 그
비용까지 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소?"
금몽추는 일순 모든 상황을 대략 파악하고 내심 머리를 치며 중
얼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은 일부러 저 왕소
저에게서 은자를 강탈하기 위해 이런 더러운 수작을 부렸던 것이로
군? 으으으, 정말 더럽군 더러워! 하지만 이 훌륭하신 곤륜삼성에
게 그와 똑같이 더럽다고 말을 하다니, 이는...... 이는 실로 억울
한 일이로구나.'
왕산산은 이미 역시 그와 같은 상대방의 목적을 눈치채게 되었으
므로, 다소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랬군요. 제가 생각이 부족하여 미처 그런 것을 알 지
못했으니 다들 이해해 주세요. 사실...... 여러분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저도 아버지께 들어서 잘 알고 있었어요."
우두머리는 음침하게 웃으며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흐흐흐흐! 왕소저께서 이렇게도 마음이 넓으시고 현명(賢明)하
시다니 노부는 그만 감탄하고 말았소이다. 흐흐흐, 그럼 왕소저께
서 그 비용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이오?"
제운우가 다소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전음(傳音)을 날려 왕
산산에게 말했다.
'왕소저, 지금 굳이 이런 녀석들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는 없소
이다. 원하신다면 제가 당장이라도 모두 쫓아 버리도록 하지요.'
왕산산은 미소하며 손짓으로 제운우를 제지하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그와 같은 어려움이 있다니 제가 도움을 드리지 않
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보다시피 저는 이번에 갑작스럽게 강호(江
湖)에 나오느라 미리 준비한 것도 없고, 지금 가지고 있는 은자도
별로 없어요. 따라서 제가 따로 아버지께 사람을 보내 말씀을 드려
볼 테니 그 쪽으로 가서 의논해 보지 않겠어요?"
흑의인 하나가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 쪽으로 가서 알아 보라구? 흐흐흐!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어? 지금 우리를 바보로 보고 있느냐? 만일 지금
네게......"
우두머리가 그 흑의인의 말을 자르면서 왕산산에게 다시 말했다.
"흐흐, 좋소이다. 귀하신 왕소저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당
연히 왕노야께서도 우리들의 고충을 알아 주실 것이오. 헌데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십만 냥의 금액이외다. 왕소저께서는 대체 누
구를 보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달할 생각이시오?"
금몽추는 이미 자신의 입장이 그야말로 난처해 지게 되었으므로
속으로 욕을 하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십만 냥의 은자를 내 놓으라고? 으으, 이건 아주 날강
도 같은 자식들이로군! 그러나...... 그러나 사실 이들은 정말로
날강도들이지.'
왕산산은 은근히 주위를 둘러 보다가, 미소하며 우두머리에게 말
했다.
"지금 이 부근에는 저의 도노사께서 머물고 계세요. 반드시 그
분이 조금 전의 얘기를 모두 들었을 테니, 아마도 저의 아버지께
말씀드리게 될 거예요."
우두머리는 약간 안색이 변해서 역시 고개를 돌려서 주위를 살피
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 유곡객(幽谷客)께서 이 부근에 계실 줄은 몰랐소이다. 하하
하,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왕소저의 말씀을 믿어 드리는 수밖에 없
겠군요. 하하하! 그럼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실례
가 많았소이다."
흑사방의 무리들이 모두 다 그렇게 사라지고 나자, 금몽추는 다
소 어색하게 웃다가 왕산산 등을 바라 보며 말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現實)이오. 그런 날강도와 같은 무리들이
대낮에 이런 곳에서 설치고 있다니, 하 하 하! 만일...... 만일 소
저가 그들과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결코 가만 두지 않았을 것
이오. 내가 아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은 일종의 속임수였
던 것이오."
왕산산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어차피 저의 아버지와 그들과는 일종의 거래가 필요한 시점이기
도 했어요. 여러분이 저를 위해서 수고를 해 주시려는 마음은 고맙
지만, 그러나 일이 이렇게 잘 되었으니 더 이상 그들이 우리를 귀
찮게 하는 일은 없게 될 거예요."
제운우가 포권을 하고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어쨌든 일이 잘 된 것이라니 다행이로군요. 게다가 소저의 그
침착하고 대범한 일처리는 불초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소
이다."
'또 저 녀석이 왕소저에게 듣기 싫은 아부를 하고 있군. 사실 말
이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남들과 협상을 하는 것을 보고 자
라왔을 텐데, 그러한 것에 능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금몽추가 제운우를 바라 보며 기분이 그다지 좋지 못해 보이는
것을 보고, 왕산산은 웃으며 그를 향해 이어 말했다.
"금공자님, 이제 어느 쪽으로 갈 거죠? 저 쪽으로 가면 백리선생
(百里先生)의 댁으로 곧장 향해 가는 것이고, 그리고 이 쪽으로 가
면 낙포(洛浦)현성으로 들어 가게 되는 거예요."
어느새 일행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져 있었는데, 낙포현성
으로 통한다는 길이 좀 더 넓고 평탄해 보였다.
금몽추는 자신의 위엄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 짐짓 크게 거만
한 기색으로 잠시 생각해 보는 척하다가 대꾸했다.
"으음, 나는 지금 일정이 아주 바쁘고 또한 이 백리선생을 만난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오. 그러나 흐으음, 당신들은 도대체 바쁠
수록 돌아 가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말이오? 하!
하! 하! 나는 잠시 낙포현성에 들러야 하겠소. 그 곳에서 우선 해
야 할 일들이 있소. 우리는 일단 움직이기 위해서는 밥을 먹고 또
한 배설을 해야만 하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바로 그러
한 것들이오."
낙포현성은 그 곳에서 그다지 멀 지 않았지만, 그러나 일행은 미
처 그 낙포현성에 도달하기도 전에 넓은 초원지대에서 다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견하기로도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괴이한 짐승들과 함께
서로 뒤엉켜 어지러이 혼전(混戰)을 벌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
보면 그들이 크게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저기에도 그 날강도와 같은 자들이 놀고 있군.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으음!...... 나 곤륜삼성(崑崙三聖)의 앞길에 계속
해서 이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다니, 이는 혹시...... 혹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너무나도 흠모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금 전에 보았던 그 흑
의인들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흑사방(黑沙幇)의 사람들이었
고, 거기에 수십 명의 도인(道人)들과 괴인(怪人), 괴물(怪物)들
등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었는데, 본래 그 흑사방 사람들의 상대는
오직 한 사람의 홍의낭자(紅衣娘子)였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홍의낭자를 포위하고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 것
인데, 나중에 괴인들과 괴물들이 다가들어 혼전의 양상이 벌어지
자, 그만 미처 홍의낭자를 추격하지도 못하고 그 괴인들과 괴물들
을 맞이하여 이리저리 난투극을 벌이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일월신교(日月神敎)의 괴인들과 괴물들이 저기에 또 있군요! 그
리고 저 사람들은 전에 본 그 곤륜파(崑崙派)의 사람들 같지 않은
가요? 그런데...... 어째서 저들이 함께 어울려서 싸우고 있는 것
일까요? 아아, 그것은 혹시 아까의 그......?"
제운우가 잠시 그 광경을 바라 보고 있다가 말했다.
"곤륜파의 사람들은 저 일월신교의 악마(惡魔)와도 같은 괴물들
을 상대해낼 수가 없소. 하지만 상황이 저렇게 되고 나니 정작 피
해를 보는 것은 흑사방의 사람들인 것 같소."
곤륜파의 사람들은 괴인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상황이 불리해
지자, 그만 흑사방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유인하여 어느
정도 이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금몽추는 이제 문득 그 수백 명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
난히 돋보이는 두 명의 남녀(男女)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백발(白髮)을 하고 있는 그 청년(靑年)은 아주 용모
가 준미수려하고 괴인들을 여유있게 상대하는 것이 무공(武功)도
상당히 고강해 보였는데 곤륜파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붉은 바
탕에 금빛의 봉황(鳳凰)의 무늬를 수놓은 옷을 입은 그 홍의낭자
(紅衣娘子)는 눈부실 정도의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고 한 마리의 붉
은 빛의 말을 타고 있었는데, 전장(戰場)에서 약간 물러나서 사태
를 관망하고 있었다.
"궁구가야, 너도 저 아름다운 말을 보아라. 정말 훌륭해 보이지
않느냐? 만일 저 말이 전설(傳說)의 그 한혈용마(汗血龍馬)가 아니
고 그 보다 더 훌륭한 말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그럼...... 그럼 저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바로
그 유명한 봉황화(鳳凰花) 남서오(藍棲梧)라는 말인가? 정말 소문
대로 대단해 보이는 구나. 궁구가야! 너도 혹시 저 한혈용마가 탐
이 나지 않느냐?"
궁구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심어전음으로 못마땅한 듯이 그에
게 대꾸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에는 저 멍청한 말보다는 그 주인인 여
자가 더 훌륭한 것 같은데요? 정말 그녀는 대단히 능력이 있고 또
한 엄청난 미인(美人)인 것 같군요. 게다가 나이도 주인님과 비슷
해 보이니, 아예 이번에 그녀를 주인님의 마누라로 삼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금몽추는 얼른 왕산산을 돌아 보고는 다소 안색을 붉히더니 궁구
가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대꾸했다.
"너는 그저 네 할 일이나 해라. 감히 나의 마누라 이야기를 하다
니, 네가 지금 너의 분수를 알고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냐? 게다
가...... 게다가 지금 나의 곁에는 이 왕소저가 있는데 무슨......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왕산산은 궁구가의 그러한 심어전음을 듣지 못한 데다가, 갑자기
금몽추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를 돌아 보며 다소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눈앞의 거대한 혼전은 사실상 괴인들의 능력이 너무나도 대단
하여 쉽게 결말이 지어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괴인들과 괴물들은 정작 한 명의 흑사방의 사람을 잡
아 목숨을 빼앗은 다음에는 무슨 나쁜 짓들을 벌이고 있는 지, 각
기 그 시신을 가지고 머뭇거리며 잠시의 시간을 보내곤 하는 것이
었다.
일행이 그렇게 일단 멈춰서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데, 문득 그
혼전의 와중에서 흑사방의 사람 하나가 놀라고 공포(恐怖)에 질린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는 것이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
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미쳤다! 미친 놈들이다! 사람도 아니야.
모두들...... 모두들 달아나야 한다!......"
하지만 그 흑의인이 미처 일행이 있는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어
느새 뒷쪽에서 괴물 흑호(黑虎) 한 마리가 따라 붙었다.
흑의인은 일순 등의 살점이 한 움큼이나 떨어져 나가며 쓰러지게
되자 피를 철철 흘리면서 황급히 몸을 일으켜 다시 흑호를 향해 쌍
도끼를 휘둘렀는데, 비단 그 흑호가 너무나도 민첩하여 가격시킬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러 운이 좋게 다리나 꼬리 등을 맞추기
는 해도 도무지 흑호에게 별로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금강불괴(金剛不壞)라는 말이 지나치게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지
만, 그렇다면 저 괴물들은 거의 금강불괴와도 같아서 병장기에 의
해서도 그저 약간의 외상(外傷)만 생길 뿐 별로 피해를 입지 않는
다는 말인가?
다시 흑호의 발톱에 의해 왼쪽의 어깨가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뼈까지 으스러지게 되자, 흑의인은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를 갈더니, 즉시 남은 한 손의 도끼로 발악
을 하듯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흑호가 그러한 마구잡이 식의 공격에 당할
리가 없겠지만 흑의인으로서는 최후의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
데, 상황은 당연히 그 때문에 급격히 더 나빠져서 그가 이내 상대
의 종적을 잃고 정신이 아득해 지는 순간 뒤통수에 일격(一擊)을
당해서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 지고 말았다.
흑의인은 자신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자,
그만 더 이상 대항해볼 생각이 없어졌는지 넋을 놓고 몸을 와들와
들 떨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다 미친 짓이다. 이럴 줄 알았다
면 나는...... 나는 으으으으! 저 놈이 나의 몸을 먹으려고 다가오
고 있어......"
비슷한 부류라면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이 일면 당연하다고 생각
되기도 하겠지만, 그 흑호도 역시 일단 흑의인을 완전히 제압하고
나자 오히려 움직임이 느려져서 천천히 다가가더니 그의 가슴의 옷
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저...... 저 괴물이 아아,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혹시 저 사
람의 심장(心臟)을 먹어 버리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흑호가 미처 그 흑의인의 가슴에 대가리를 들이 대기도
전에 문득 누군가에 의해 몸뚱이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바로 제운우였는데, 그는 어느새 그 쪽으로 다가갔는지 그렇게
흑호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린 상태에서 이내 크게 웃으며 말했
다.
"하하하! 알고 보니 바로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로군? 이와 같이
무지막지한 짐승은 역시 그대로 마구 다루어야만 되는 것이었어!"
웬만한 병장기에 의해서도 별로 다치지 않는 괴물이 그저 그렇게
그의 말처럼 단순히 힘만을 써서 들어 올린다고 해서 저절로 가만
히 있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제운우는 다름아닌 흑호의 혈도(穴道)를 제압하고 내공(內
功)의 힘으로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는데, 기실 그러
한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금몽추는 그가 자못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떠들어 대자 즉각 눈살
을 크게 찌푸리며 반박했다.
"겨우 그렇게 한 마리 잡고서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하는 것인
가? 나로 말하자면 전혀 그와 같은 기운을 낭비하지 않고서도 쉽게
그 호랑이를 물리칠 수가 있소. 으음, 어떤 방법이냐구? 그
야...... 불을 이용하는 것이오. 으례 짐승들은 불을 두려워 하는
것이니까."
제운우가 이어 심하게 발버둥을 치려고 하는 흑호의 대가리를 눌
러서 내가(內家)의 중수법(重手法)으로 뇌수를 박살낸 뒤에, 던져
버리며 껄껄 웃더니 말을 받았다.
"그나저나 이제는 이런 구역질이 나는 괴물들을 구워 먹는 습관
도 길러야만 하겠소. 나중에 이것들의 숫자가 불어나서 다른 짐승
들이 모두 사라지게 되면, 그 때는 자연히 그런 입맛이 필요하게
되지 않겠소?"
조금전에 흑호에게 당할 뻔했던 그 흑의인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즉시 몸을 일으켜서 우선 자신의 뒤통수를 어루만져 본 다음에, 황
급히 다시 달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심이 앞으로 천천히 나서며 불호소리와 함께 말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근본적으로...... 근본적으로 좋지 않소이
다. 지금 짐승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일단 채식으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오. 채식을...... 채식을 한다는 것
은 좋은 일이외다."
금몽추가 이에 다시 못마땅한 지 공심을 향해 말했다.
"소화상의 말은 또 틀렸소! 만일 세상의 장애(障 )가 많은 사람
들이 채식을 하고자 한다면, 그야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비록 좋은 일이라도 당신과 같이 보다 깊은 수행(修行)에 들어 가
고자 하는 사람이, 비슷한 동료에게 굳이 그렇게 말하며 고집한다
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오. 이른바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다
는 식의 발상은 유아기적인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른다는
말이오?"
공심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내 길게
탄식을 하고 합장을 하며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실로...... 실로 금시주의 말씀은 이번에도 옳소이다. 아미타
불! 나는 비단 제시주를 향해 그렇게 말하지도 말았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런 것에도 얽매이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외다. 아미
타불, 이는...... 이는 실로 나의 어리석음이었소."
금몽추는 공심을 바라 보다가, 문득 잠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하지만 사실 당신과 같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그
리 흔하지 않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고 고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낙심할 필요는 없는 것
이오."
왕산산이 두 사람의 대화가 모처럼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을 보고, 웃으며 끼어 들어 말했다.
"금공자께서 그렇게 쉽게 저 호랑이들을 물리칠 수가 있다면 어
째서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호호, 그건 흑사방의 사람들이
평소에 나쁜 짓만을 저지르고 다니기 때문에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요?"
금몽추는 그녀를 돌아 보며 약간 머뭇거리다가 이내 크게 대소하
며 말했다.
"사람이란,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를테면 그러한 것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외다. 하! 하! 하! 지금
이 곳에 불을 놓게 되면, 그것을 본 사람들은 나중에 다 잠을 자다
가 오줌을 누게 되지 않겠소? 하 하 하, 다 큰 남자나 여자가 침대
에서 오줌을 누다니, 그것은...... 하하하, 그것은 안 될 일이외
다."
왕산산은 이에 다소 얼굴이 붉어 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불구경을 한다고 모두가 다 오줌을 누게 되는 걸까? 하지만 모
두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금공자는 나를...... 나를
희롱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제운우가 죽여서 던져 버린 흑호를 발끝으로 건드려 보다가, 이
윽고 다시 금몽추 등을 바라 보며 앞 쪽을 가리켰다.
"자, 이제 구경은 그만 두고 우리도 나서서 함께 어울려야 할 것
이 아니겠소? 만일 계속 구경만 한다면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우리를 적(敵)으로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오."
"이미...... 그렇게 되었소이다! 아미타불, 그대들은 잠시 나의
이러한 무공(武功)을 보도록 하시오."
말과 함께 공심이 느닷없이 신형(身形)을 날리며 제운우의 앞쪽
으로 나아갔다.
조금전에 흑호 한 마리가 제운우에게 죽음을 당한 것을 눈치챘는
지, 이미 그 혼전의 와중에서 다시 서너 마리의 흑호들이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공심이 그 흑호들을 향해 무공을 펼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금
몽추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구나! 매우 좋다! 이 광경은 제법 그럴 듯하구나. 이럴 때는
기분이 매우...... 매우 좋아진다. 아, 나는 어째서 이다지도 감성
(感性)이 풍부하여 이런 메마른 벌판에서도 곧잘 흥취가 도도해 지
는 것일까......?"
왕산산은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금몽추의 옆모습을 훔쳐 보다가,
속으로 다시 생각을 굴렸다.
'혹시, 혹시 그렇다면 금공자는 지금...... 지금 바로 이 살벌한
상황에서 또 그 시(詩)를 지으려는 것이 아닐까?'
공심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그녀도 불과 얼마 전에 느
낄 수가 있었던 터였다.
이 흑호들의 움직임은 무공을 알 지 못하는 짐승들이라고는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날렵하고 변화막측하여, 본래 일반사람들의 눈
에는 그저 수십 덩어리의 검은 구름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과도
흡사할 지경이었으며, 물론 그러한 것도 기실은 잘 분간이 되지 않
는 다고 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