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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텍스트 요약분 | 도마복음 제1부 완결 특강 | 지혜 문서들을 꿰뚫는 맥 |
영생에 이르는 길 | 도마복음 18 (제9절) | 2024.01.16
https://www.youtube.com/watch?v=pEvrxbwT3ZE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모든 문서의 2가지 분류(지혜문서 vs 개인문서)
- 모든 경전과 어록, 기록물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
- 지혜문서와 개인 문서라 명명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물을 이렇게 두 가지로 분류 가능
-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종교도, 도판도, 철학도, 형이상학도, 샤머니즘도,
과학도, 교양 강의도 아니고, 오직 진실의 길, 지혜의 길 그리고 생명 축제의 길임
- 오직 의식, 죽음, 진실만을 탐구
2. 지혜문서 vs 개인문서
1) 지혜 문서(智慧文書)
- 지혜 기록이다.
- 기록 기반은 의식
- Only Consciousness
- 유식(唯識)에 기반
- 무아(無我)에 기반
2) 개인 문서(個人文書)
- 개인 문서다.
- 기록기반은 개인적 동기
- Individual Motive
- Personal Motive에 의한 기록
- 유아(有我)에 기반
3. 지혜문서와 개인 문서의 특징과 열람 목적
1) 지혜문서(智慧文書)
- 동양 이스트 제1분기에서 많이 발견 됨.
- 웨스트 제1분기에서는 많이 발견되지는 않음.
- 도마복음은 지혜문서로 1분기에 속함
- 웨스트 1분기와 이스트 1분기에 속하는 문서를 지혜문서라고 함
- 우리가 공을 들여서 열람, 탐색해야 되는 문서는 지혜문서임
- 지혜문서의 열람, 탐독 이유는 고통과 공포를 없이 해서,
생명축제를 100% 온전하게 즐기게 하기 때문
- 세간과 출세간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하나이기 때문에, 이원성 안에서 그냥 즐김
- 서론, 본론, 결론이 따로 없다
2) 개인 문서(個人文書)
- 웨스트 2분기, 이스트 2분기에 속하는 문서는 개인 문서
- 제2분기 문서인 개인 문서의 열람은 가급적 피해야 할 것인데,
이유는 우리를 더 꿈속으로 최면으로 빠뜨려서 고통과 공포를 만연화 시키기 때문
- 개인 문서들은 서론이 길고, 본론이 있지만 본론이랄 것도 없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지만 결국 퍼스널 모티브에 그침
뭔가 장황하고 긴데 알맹이가 없다
- 알맹이는 없는 책인데 비싸고 잘 꾸며져 있음
4. 서론, 본론과 결론 없는 지혜문서 해독법.
- 지혜문서는 서론, 본론, 결론이 없음
전부 본론이기 때문에 그렇다.
- 대부분 앞부분에 결론을 내놓고 거꾸로임
- 그 다음에 본론이 전부, 즉 서론 없음.
- 본론 결론만 있는데 결론 본론 이렇게 되는 셈
- 우리가 지금 도마복음을 1, 2, 3부로 나누면 전부 본론이 됨.
- 각 절이 어떻게 하나로 처음부터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음
- 도마복음에 힘입어서 지혜문서를 해독하는 자세한 '키'를 선명하게 드러내 볼 것임.
- 특히 7절, 8절, 9절의 비유의 말씀(7절의 사자 비유, 8절의 물고기를 낚는 어부 비유,
9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미스테리한 구절들을
해독하고 읽어내기 위한 ‘키’가 있으며, 이 '키'를 확실히 알 때, 도마복음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모든 지혜문서를 이 '키'로 쉽게 해독(解讀)할 수 있다
- 절대 오류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오류로 빠진다는 것은 제2분기의 해석방법, 즉 개인적 동기에 근거한,
즉 개인 실재에 근거한 꿈같고 최면 같은 교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
- 아마도 대중적인 유명하다는 도마복음 해설서의 많은 부분이 거의 99.9% 개인적
동기에 근거해서 해석, 설명한 것이 많을 것임
- 인류는 오랫동안 제2분기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종교인이든 아니든,
세간인이든 출세간인이든 공히 개인적 동기를 갖기 쉬움
- 지혜의 전승은 매우 희유하고 비밀스럽다.
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이다 그러므로 도마복음 해설을 접하는 데 있어서도,
해독열쇠 혹은 안목을 가져야, 개인적 해설인지, 지혜에 기반한 해설인지를 확실히 알아낼 수 있음
5. ‘키’(Key)를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해독하는 실예
- 도마복음 제7절에서 사람, 사자가 비유,
제8절은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훌륭한 큰 물고기 하나'와 '작은 물고기' 비유,
제9절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씨 위치' 관련 결실 비유를 하고 있음
- 비유 전체가 7절, 8절, 9절 전체가 따로따로가 아니고, 하나의 큰 맥락 안에서
거듭거듭 다른 비유를 통해서 하나의 큰 줄기(가리킴의 에센스)로 순수 지혜를 가리키고 있음
- 도마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열쇠는 제1절에 있고,
세부적 열쇠 역시도 1절의 큰 열쇠를 기준으로 우리가 찾아내야 함
- 제1절에서 '이 가리킴의 이해', '이 가리킴의 이 말씀의 해석을 발견하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라고 언급되었었음
- 이 가리킴의 이해를 해석을 발견하는,
‘사람’ , '훌륭한 큰 물고기', '좋은 땅'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말.
- 즉, ‘영생’(o), '불생불멸‘(o), ’열반(니르바나)(o), '자유'(o), '임팔라처럼 가벼움’(o),
'해방'(o), '올가미’를 벗어던짐’(o)
- 반대로 사자, 작은 물고기,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영생’(x), ‘불생불멸’(x),
‘니르바나’(x), 즉 '죽음’(o), '필멸’(o), 고통과 공포(o), 속박(o), 올가미(o)
- 그렇다면 1차적 결론은 '영생(永生)' = '의식'이고. ‘필멸(必滅)’ = '개인'
- 이렇듯 제1절의 “이 가리킴의 이해를 통한” 황금열쇠로 제1분기 '지혜문서'를 해독 할 수 있고,
- 이 해독의 열쇠는 '웨스트 전승' 뿐만 아니라 '이스트 전승' 모든 '지혜문서'의
해독에도 적용할 수 있다.
- 적어도 제 2 분기의 어설프고 유치원 재롱잔치 같은 유사 지혜를 피해갈 수 있다.
- 쉽게 얘기하면 '의식'이냐 '개인'이냐는 말
- 우리는 장구한 세월을 '개인'으로 살아왔음, '배역', '역할' '캐릭터라는 사용자로 살아옴.
- 우리는 장구한 세월을 연기자로 살아오지 못했고, 창조자로 살아오지 못했고,
꿈과 최면에 빠져있었고, 소식을 들어도 그냥 남의 이야기 같았고,
거대한 부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 이렇듯 제1분기의 길은 걷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학원 박사 과정을 걷는 중이기도 하다.
6. 지혜문서 혹은 그 반대인 경우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달하는 방식
- 지혜문서는 이 부분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고, 비유로 혹은 비교로 이야기한다.
즉, 지혜를 직지(直指) 할 수도 있고 이 지혜가 아닌 부분은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 혹은 비유로서 양자를 비교하는 구절들이 연이어 많이 또는 적게 나올 수 있다.
- 동서양 한결같이 지혜를 직지(直指)하는 부분에서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이야기 함
- 단 정견이 아닌 착각, 꿈과 최면에 대해서는 깨워내야 되니까 거칠게 이야기함
- 크게 경고하고, 심지어 욕과 모욕을 주고, 터프하게 하게 취급 함.
여기서는 “저주” 라는 강도 높은 거친 말 사용
결국 개인의 배역, 역할, 캐릭터로 하여금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도록 이런 방법을
사용해 온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
- 부드러운 권유나 가리킴은 개인의 동기를 부추겨주고 타협하는 것으로
개인은 받아들이기 쉬우므로 동서 제 2 분기가 꼬라지에 빠진 것
7. ‘의식 연기자’와 ‘개인 배역’이라는 해석의 틀
- 의식 연기자와 개인 배역이라는 이 해석의 틀로 제1절을 빠르게 소화해 낼 수 있음
- 제 1 절에서 “이 순수지혜의 가리킨 말씀에 이해를 발견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했고,
이때 우리가 '키'만 가지고 있다면 도마복음뿐만 아니라,
모든 지혜의 말씀을 곧바로 해석할 수 있다.
- 그 해석의 '키'는 의식 연기자 개인 배역이라는 이 이해의 열쇠다.
- 이 '키'로 열어 저치기만 하면 그대로 드러나 버린다.
사람이 사자를 먹는 게 뭔지,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고 훌륭한 큰 물고기 하나만
건져 올리는 것인지, 씨를 뿌리는 비유에서 위치 따라 열매 맺고 안맺고 하면 되는데,
왜 이리 복잡하게 비교를 하냐?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는 다양한 개인의 의식 양상 때문임.
- 의식은 단 하나이지만, 배역 역할 캐릭터는 다양하게 많음
일인 연기자는 단 한 명이기 때문에 Only Consciousness , 일심반야이기에
하나님이기에, 훌륭한 큰 물고기 하나, A fine large fish라고 함
- 작은 물고기는 굉장히 많고 다양
- 사람은 하나이지만 사자는 많은 종류로 비유되는 많은 동식물. 동물적인 사람 포함
8. 해독의 ‘키(Key)’를 활용하면 도마복음은 물론 모든 지혜문서에 대한
손쉬운 해독으로, 옳고 올바르지 않음을 한 눈에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게 됨
- 1절로부터 9절까지의 도마복음의 말씀들은 하나의 큰 맥락 안에서 산만한 흩어짐 없이
잘 편집되어 있음을 살펴보았음
- 하나의 맥락이 잘 파악될 수 있도록 굉장히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음
- 우리가 이 해독의 '키'를 들이대더라도 매우 유쾌하고 자유롭게 지혜 문서들을
즐겁게 열람할 수 있다.
- 이 해독 '키'는 도마복음을 포함한 제 1분기의 모든 지혜 문서 해독에 유용함.
- 대승기신론, 유식 30송, 중론, 수심결 등에서 모두 해독 ‘Key’가 작동됨.
- 1,700공안, 8만 대장경, 웨스트 타나크, 바울의 편지, 공관복음서든 간에 전부
그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을 이 안목, 이 해석의 '키'로 쉽게 판별 가능.
- 이 '키'를 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이고, 일인 연기자고, 사용자고, 창조주임을
분명하게 자각,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음을 의미함.
9. 단일의식의 자각, 자기 체험, 자기 깨달음과 뿌려지는 씨앗 비유에 대한 설명
- 소위 말하는 씨 뿌리는 비유(제9절 8페이지)
-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자유채널에서는 단일의식이 스스로 자각하시기를, 단일의식의 자기 깨달음으로서~
- 그냥 이렇게 뜻 없는 이게 전부 단일의식의 자기 깨달음이다라는 말.
- 평상시 헛기침을 하던가, 그냥 어, 음, 이렇게 하던가, 뜻없는 발성을 하던가
이 모든 게 바로 의식의 자기 깨달음이다 황당하고 믿기지 않겠지만~.
- 이 해석 틀을 가지고 이 황당해 보이는 메시지를 살펴봅니다.
- 해석 틀을 가지고 자, 아, 아, 아~
이 발성은 아무런 뜻 없는 지나가는 소리
그런데 이게 바로 단일의식의 자기 자각, 자기 체험, 자기 깨달음.
천국의 지혜고, 하나님이고, 부처고,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다 라는 진실을 누가 믿겠냐?
그러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단일의식 하나님 일심 반야의 깨달음이
이렇게 스스로 어떤 소리를 냅니다라는 말.
- “이제 씨 뿌리는 사람이 밖으로 나가 한 줌의 씨앗을 뿌렸다.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주어갔다.
다른 것들은 바위에 떨어져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이삭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떨어져 씨앗이 고사하고 벌레가 먹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었으니 60배, 그리고 120배가 되었다“.
10. 마가복음 4장을 통해 ‘씨 뿌림 비유’ 해석에 대한 설명
- 위의 내용을 제 2 분기로 이해하면 드디어 계급과 단계가 나오게 됨
- 세간의 무지한 중생, 조금 깨달은 사람, 초지보살을 넘어 많이 깨달은 사람,
아라한. 부처, 이런 식의 계급과 단계 출현
- 그런데 도마복음에 계급과 단계, 그런 건 없다
- 자, 마가 마태 누가에 있는 병행구절을 관찰해 보면. 1 분기 전승이 2 분기에서
어떻게 각색되는지 볼 수 있음
- “들어라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며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며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며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운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며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음으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며 자라 무성하게 결실하였으니 30배나 60배나 100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 물론, 지금 이 구절에 한해서의 이 병행구절은 특별히 도마복음과 다르지는 않지만,
맥락 속의 의미는 많이 달라짐
- 도마복음 안에는 선악, 최후의 심판, 세상의 종말과 같은 것이 없음.
그런데 이 마가 마태 누가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런 비유가 나오니까,
열매 맺지 못하는 이것들은 열매를 조금 맺든, 적게 맺든, 얕든
완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이 악한 무리들은 반드시 심판받아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리라 라는 이런 뉘앙스를 줌.
- 이런 것은 참으로 좋지 않다. 어린이 유치원 재롱잔치에 비유된다
- 특이하게 이 구절에 대한 강독 내지 해설은 사실은
이 마가복음 바로 그 백배가 되었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방금 전에 한 비유에 대한 상세 해설이 마가복음 자체에 나옴.
- 그래서 이 말씀을 그대로 우리가 지금 이해해도 되는데 다만,
이 세상의 종말, 최후의 심판, 의인과 악인의 갈라침, 영원한 지옥의 고통
이 부분만 제외하고 우리가 이 마가 4장의 비유 해석을 본다면,
그렇게 틀리지는 않겠다 라고 말할 수 있음
11. 마가복음과 도마복음의 특징, 예수의 약한 모습과 영적인 메시아의 융합
- 마가복음이 굉장히 특이
- 바울서신에 나오지 않는 예수의 생애, 가리킴, 인간적인 모습,
십자가 위에 돌아가실 때의 상황 이런 것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어떻게 이게 메시야고, 이게 신의 아들이고, 심지어 사람으로 치더라도
상당히 좀 약해보이는 리더, 성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한 모습들을
일부러 드러내는 듯하게 가록해 놓고 있는 최초의 복음이 마가복음임.
- 그 뒤 마태, 누가, 요한이 마가복음에 자신들이 보기에 잘못된 점 혹은
잘못 쓰여진 점을 고치려고 마태, 누가, 요한과 익명의 저자들이 계속
복음서의 기록을 펼쳐나갔지만,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 것은 마가복음임
-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복음이 적혀진 게 AD 90년이니까요.
AD 70년에 유대로마 전쟁에 의해서 에세네, 바리세 등 모든 파가 전멸하고
디아스포라 산지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 지혜 전승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하나가 AD 90년 당시에 이제는 어느 정도 유행하고 있던
바울서신의 영적인 메시아,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을 받아들여
아마 융합된 내용으로 최초 예수전기가 기록된 것이 마가복음이다라고 볼 수 있음
- 이스트 순수 전승, 순수 지혜 전승은 복잡하지 않아 그냥 내용만 전달하면 되는데,
도마복음 강독을 하면서 웨스트 1분기를 언급하려다 보니, 2 분기가 비교를 해야
1 분기가 드러나겠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금 웨스트 2 분기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자주 딱딱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대한 이해가 필요
- 이스트에 비해서 웨스트 1 분기와 2 분기가 매우 복잡하고,
너무 형식화, 위선적으로 되어 있어, 그냥 모른 채 넘어 갈 수는 없음
12. 제 2분기 전승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간과할 수 없는 특이한 점
- 제 2 분기 개인 문서인 신약 성경의 전개를 시간순서로 보면
바울 편지, 4 복음서 순서인데
- 지혜문서가 아니고 개인 문서인데, 신약 제 2 분기 문서 중 마가복음이 제일 특이함
- 도마복음 본문을 일고 지혜의 글 맞게 해석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너무 가볍고,
오히려 시간 낭비도 될 수 있고, 중요한 맥락을 놓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귀찮은 작업이지만 이렇게 자세히 다시한번 들여다보는 이유는
마가복음도 제 2 분기 문서이어서 결론은 엉터리지만,
그래도 마가복음 만큼은 제 1 분기 지혜의 진한 향기가 나지는 않지만,
냄새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점이 특이함
- 제 1 분기 지혜의 냄새를 가장 많이 풍기는 게 마가복음인 셈.
13. 마가복음은 제 1 전승 지혜의 진한 향기와는 거리감이 있으나,
아직 제 1 전승 지혜의 냄새를 풍기고 있음
- 신약성경 복음이 전개되는 순서로는 마가 ==> 마태 ==> 누가 ==>
자칭 사도 바울의 편지 ==> 요한복음 ==> 요한 계시록 등의 순서임
-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순서의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엉터리다.
- 그래서 복음서 중 마가복음이 가장 제 1 분기 지혜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음.
- 이렇게 비교를 하는 것은 대조(Contrast)를 통해서 마가복음의 다름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임
- 마가복음에서는 살펴본바 처럼 해석에 있어 별로 고칠 게 없다
단지 종말론, 최후의 심판 맥락을 빼버린다면,
도마복음 9절 강독을 마가복음 4장 9절로부터 20절의 이야기로 그냥 대체할 수도 있다
- 그 이유는 마가복음이 제 1 분기 지혜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
14. 동정녀 탄생 신화에 대한 마가복음 기록
- 예수의 동정녀 탄생 신화도 마가복음에는 없으나, 없던 마태와 누가에는 생겨남
15. 부활, 죽음과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마가복음의 기록
- 마가복음에는 부활, 죽음과 예수의 부활 이야기의 언급이 거의 없음.
마가복음 뒷부분은 뒤에 누군가가 추가를 했다는 것이 정설이긴 함(옥의 티)
16.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인간적 고뇌에 대한 마가복음의 기록
-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고뇌 근심 걱정을 적나라하게 묘사.
17.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마가복음의 기록
- 결정적으로는 십자가 위에서의 말씀, 가상칠언(架上七言)인데,
십자가 위에서의 하신 7개 말씀을 모아, 가장 솔직하고 믿을 만한 이야기를 기록함.
- 그래서 마가복음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딱 두 마디 말을 함.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악” 하고, 이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 두 마디.
여기에는 그 어떤 신격화도 없고, 심지어 사람으로서의 어떤 신성화도 볼 수 없음
위대한 사람이라는 암시도 전혀 없음
- 그래서 마가복음의 다른 내용 때문에 정경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
십자가 위의 말씀은 이게 왜 기독교 정경에 포함됐는지가 의심될 정도임.
-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딱 두 가지의 언행을 하셨는데
첫째는 아람어로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참으로 절망적이고 모든 기대가 수포로 돌아간 일조의 배신감 표출의 절규
- 그리고 그 말씀 뒤에 별다른 말씀이 없이 그냥 마지막 순간에 모든 사람이 마지막,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하듯이 “악”하고 고통 속에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음
18. 마가복음의 기록 종합
- 마가 후일 나타난 마태나 누가 요한에 나오는 굉장히 신격화 시킨 말씀이 있어왔음.
예를 들면, “저들을 용서하라”, 혹은 “다 이루었다”, “나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나 이다”, 등등의 굉장히 종교적, 신학적, 조직화된 이런 말들이 마가복음에는 전혀 등장 안함
- 마가복음에는 적나라한 인간 예수가 나타나고 있음
그래서, 동정녀 탄생도 없고, 죽음 부활도 없고, 십자가위 말씀도, 절망, 배신,
그리고 그냥 고통스러운 비명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그 이후에 이루어진 제 2 분기에, 신학적 구성에 의한 예수가 아닌,
어떻게 보면 제 1 분기에 실제로 있었다면, 있었을 그런 역사적 실제 예수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어 보임
- 신약에 있어서 바울 서신보다 마가복음의 해석이 매우 신뢰도가 높다고 사료됨,
물론 도마복음 해석과는 아직 거리감이 있으나, 도마복음을 이해 한 후
여흥을 즐기는 데는 마가복음 열람도 나름 유익할 수 있다고 사료됨.
19. 마가복음 제 9 절의 음미
- 마가복음 9절 중간 쯤,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 첫째 구절,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 앞에서 언급했던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사람과 사자 역시
지금 이 해석에 의거 유추 적용 가능
-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은 가리킴의 직지니까, 가리킴을 직지하는 ‘의식’을 말한다.
즉, 메시아 붓다를 말함이다.
- 둘째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 씨는 순수 지혜를 가리킴
- 씨 뿌리는 자. 어떻게 가리키나? "컵이 의식"이고 “나무가 하나님”이듯.
이렇게 씨를 뿌리고 있음
- 뿌린 씨가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
- “곧 말씀을 들었을 때,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라고 마가복음은 되어 있음
- 도마복음은 이 부분을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주어갔다”고 함
이 순수 지혜의 가리킴을 "새들이 즉시 주어갔다"고 도마복음은 얘기 함
- 마가복음에서는 이 새를 "사탄이 즉시 와서 주어갔다"고 함
- 이 새와 사탄의 정체는 바로 개인 과 개인적 동기임, "Personal motive“다,
- 또 "사자", "작은 물고기"는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들을 의미
개인적으로 중대한 문제들이다.
- 사탄, 새라는 것은 귀가 열리기도 전에, 지혜의 순수지혜, 즉 영생을 가져오는,
단일의식에 대한 가리킴이 귀에 닫기도 전에, 개인과 개인적 동기가,
이걸 물리쳐버린다는 말
-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하면서 물리침
- 의식이 공간에 있지 않고, 몸 안에 있음, 이는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다.
- 새들이, 사탄이 와서 즉시 주워가 버리니 씨가 열매 맺을 리가 없음
아니, 열매 맺기는커녕 씨가 땅에 꼽히지도 않음, 들을 귀가 닫혀있음.
이는 동쪽 전승에 상사, 중사, 하사 이야기를 떠 올리게 함
20. 동쪽전승 상사, 중사, 하사 이야기
- 동쪽 전승에는 상사, 중사, 하사가 언급되는데,
이는 깨달음의 진리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3 가지 반응을 구분함
- 도마복음 9절도 이와 같은 내용임.
- 진리의 말씀을 듣고, 직지 했을 때의 반응을 3가지로 크게 분류
- 하사들은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비웃는다.
중사들은 의심한다. 긴가 민가 한다
상사는 기쁨의 법열을 느낀다.
- 동서고금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진실의 말씀을 이야기 했을 때
하사인 개인 대중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라고도 함
- 컵이, 나무가 의식이고, 이것들이 의식 이외의 다른 것일 수가 있느냐고 하면,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몸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무변 공간에 있고,
따라서 영혼은 단 하나다 이렇게 얘기하면 비웃는다는 말.
- 중사는 긴가 민가 의심하고 일단 듣기는 듣지만 곧 하사로 돌아가 비웃는다.
처음에는 기쁜 듯이 듣고 최고다 하다가 곧바로 돌아서서 달라진다.
- 상사는 항상 기쁨의 법열로 듣는다.
- 길가에 뿌려지는 씨의 비유는 동쪽 전승의 하사, 중사, 상사 이야기와 같음.
21. 마가복음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부분 음미(#2)
- 길가에 뿌려지는 것은 개인 대중들이 비웃는 것.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도 않고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함.
- 그 다음은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22. 마가복음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부분 음미(#3)
- 마가복음에서 “돌밭에 떨어지매" 라고, 즉 돌밭에 뿌려졌다고 함
- 도마복음에서는 “바위에 떨어져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이삭을 맺지 못했다”고함
- 마가복음은 이 부분을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로 기록하고 있음
결국 뿌리를 못 내리기는 마찬가지.
- 이것은 진실의 가리킴을 듣기는 들었는데, 듣고 심지어 기쁨으로 들었어요.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는 곧 넘어져 버림
- 즉, 바위에 떨어져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삭을 맺지 못했다는 말은
이 가리킴의 이해를 들었고 기쁘듯 들었으나 잠깐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 개인적 동기가 발동하면,
즉시 습관적인 개인에 사로잡혀 곧바로 넘어져 버림.
- 죽음조차도 이게 깨달음이다 라는 말을 도무지 믿지를 않음
그래서 죽음의 기미 비슷한 것만 찾아와도 곧바로 쓰러져 버림
- 하사는 아예 희망이 없으니까 그렇다 처도, 중사는 안타깝다,
처음에는 기쁨으로 들었는데, 곧바로 돌아서 버리니까
- 결국 중사는 올바른 길을 가다가 좁고 험난한 길이 발생하면,
그냥 편안한 대중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임.
23. 마가복음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부분의 음미(#4)
- 마가복음의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에서,
-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말은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를 말함
- 가시덤불에 떨어지면 깨달은 자가 탄생 함,
견성도인, 체험자가 되어 진정한 영생에 이르는 이 말씀을 개인적인 생존과 번식으로 받아들인다
- 깨달은 사람, 견성도인, 체험자는 여전히 개인적 생존과 번식에 뿌리 두고 있다
즉,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사람인 척 하지만 결국 아직 사자다"라는 말
- 창조주가 된 개인, 하나님이 된 개인, 부처가 된 개인, 중생이었다가 부처가 됐지만
여전히 부처가 된 개인에 방점이 찍혀있음.
-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보는 하사, 중사의 사람과의 판별이 쉽지 않음
그러나 그 속을 캐 보면 재물의 유혹,기타 욕심, 돈과 권력, 명예, 여자와 남자라는
개인적 생존 조건이 감추어져 있기 쉬움.
- 결국 감추어진 위선이고, 바리새파와도 같고, 현대 도판이라 불리기도 함
- 기존의 나쁜 점을 박차고 나와 혁명이나 개혁을 한다 해놓고는,
그자들이 다시 새로운 바보 멍텅구리가 되고보면, 이전보다 더 나쁘게 변한 것임
- 그래서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로,
결국은 결실맺지 못하는 엉터리다로 분류된다.
24. 마가복음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부분의 음미(#5)
-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데, 씨 하나에 120배가 되었다" 라고 함
- 좋은 땅은 훌륭한 큰 하나의 물고기, 사자가 아닌 사람,
즉 단일의식의 자기 자각, 자기 깨달음을 말 함.
- 상사, 중사, 하사에 비긴다면 2번(#2)의 말씀이 하사에 해당하고,
3, 4번(3#, #4)이 중사에 해당하고, 5번(#5)이 상사에 해당함
25. 마가복음 ‘씨 뿌리는 비유’ 간단 요약
- 진실의 가리킴을 웃고, 비웃고, 비방하는 것.
- 진실의 가리킴을 처음에는 듣다가 곧바로 뒤돌아서 개인의 길로 가는 것.
- 진실의 말을 듣고는 그것을 잘 소화한다 보이지만 결국에는 개인적 동기에 사용하는 것.
즉 오용, 남용하는 것.
- 상사는 좋은 땅에 떨어져 훌륭한 좋은 물고기가 되어. 120배로 자기 복제를 한다.
즉 중생을 구원하되 한 중생도 구원된 바가 없다 라는 것이 실현되는 것
그러면 씨 뿌리는 자의 입장에서는 즉 말씀을 뿌리는 것이 됨
26. 말씀을 뿌리는 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선택이 가장 효율적일까?
- 2번(#2)은 전혀 아님
- 3번(#3)의 선택도 전혀 아님.
- 4번(#4)의 선택은 얼핏 보기에는 그럴싸 하지만 씨 뿌리는 자가 속기 쉬움.
오히려 3번, 4번에 대해서는 속을 수 있지만, 결국은 비효율적
- 가장 효율적인 것은 5번(#5)의 선택, 하나의 훌륭한 큰 물고기의 선택임
- 자기 자각이 일어나면 피어난 꽃이 스스로 향기를 풍겨져 나가듯,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120배의 자기 복제가 가능, 훌륭한 사도가 될 수 있다.
- 훌륭한 사도는 길가에, 바위에, 가시덤불에 수천, 수만의 씨를 뿌려봤자
즉, 개인, 대중이 수천만명 수백만명 모인 것보다 5명이든 10명이든 진정으로
단일의식의 자기 자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120배, 12,000배의 자기 복제의 가능성의
위력을 가지게 됨
- “모든 중생을 구제하지만 한 중생도 구제된 바가 없다”라는 금강경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매 순간 일어나게 됨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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