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꽃창포
물가에 있어도
다가가지 못하고
얼굴 한번
시원스레 씻지 못하는
풍요 속 가난뱅이 꽃
-김석중
언뜻 보면 이 시에 사용된 이미지는 매우 평화로운 풍경이다. 파문도 없는 맑은 물가에 오붓하게 자리한 노란꽃. 물 반 돌 반 딱 , 그 중심에 고즈넉하다.
선비가 도포자락 접고 앉아 흐르는 물에 붓을 적셔 봄을 노래할 것 같은.
그러나 화자는 그런 ‘한량가’를 쓴 게 아니다. ‘풍요 속 빈곤’ 같은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다. 아니다. 그리스 신화 나르키소스를 소환했다.
그러나 그럴까? 화자와 일면식이 있는 관계로 내 나름대로 해석해보았다.
디카시에 입문했는데 메카인 ‘디카시 마니아’를 마주하고 있자니, 보는 눈이 높아져 함부로 발표하지 못하는 심정이랄까? 습작품은 많은데 성에 차는 작품이 없다는 걸까? 물론 화자와 독자 사이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
불편한 진실을 불편하지 않게 드러내는 게, 시 창작이기 때문이다.
디카시는 사진이 절반의 언술이다. 바로 코 앞에 물은 있지만 흙 한 줌 보이지 않는다. 어찌 물만으로 살 수 있을까. 척박한 돌 틈에서 저토록 풍성한 꽃을 피워냈다. 그러므로 향기가 더 진할 것 같다.
글쓰기는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일이고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한 자기 몸부림이다.
저 시내 가운데 피어 있는 노란꽃 포기가 ‘디카시 동호’인으로 보인다.
필자는 자칭 타칭 디카시 전도사다. 여행 다니며, 때론 일상 중에 사진 찍어 시어를 입히는 과정이 주는 잔잔한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편만 남겨도 고급한 앨범이 된다는 것이다.
창포물에 몸을 씻는다는 오월 단오가 다음 주다. 그런데 알고보니 단오에 머리를 감는데 쓰이는 식물은 ‘창포’다. ‘꽃창포’와 ‘창포’는 다른 식물이다. 알면 알수록 나의 무지를 확인하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 는 소크라테스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2023. 6.14.
-디카시 시인 : 손설강
첫댓글 ㅎ
저도 꽃창포를 창포로 알았습니다.
오류가 명시를 낳은
서정주 시인은 영산홍 시를 쓸 때 하늘나리를 영산홍으로 알고 시를 썼다고 하는데
만약 영산홍으로 알았다면 그 시를 못 쓸 뻔 했다고...
한 비누 회사에서
꽃창포 사진을 찍어서
창포 비누 광고를 했으니
대체적으로 혼동할 수밖에 없지요.
김석중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늘 느끼지만
디카시의 묘미는 확장성에 있습니다.
손설강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은 지난 일요일에 만난
창포입니다.
오병훈의 «게으른 식물은 없다» 218쪽에도 오류를 지적했어요^^
헉!
저도 잘못 알고 있었군요.
오늘도 배웁니다 ~
김석중 샘 축하합니다!
손설강 선생님 서평은 감동적인 또 한편의 작품입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 저는 꽃 이름 외우는 것 포기했습니다. 내년에 또 첨 보는 꽃이라며 놀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저 꽃을 보고 저를 생각한 건 맞는데요. 그렇다고 신세한탄 한 것은 아닙니다.ㅎ
우리들이 디카시 열심히 쓰면서 앉아서 꽃 피는 계절을 감상할 수 있으니 좋은데 막상 꽃구경 할
시간조차 제대로 못 내면서 사는 것 같더라구요. 지난 번 장미축제 현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다시한번 손설강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음 다치신 건 아니죠. 풓ㅎㅎ
좋은 작품~공감가는 해설이십니다. 저도 꽃 이름 외우기 포기ㅋㅋ잘 안되더라구요.^^
정사월 선생님 고맙습니다. 바쁠텐데 꼬박꼬박 댓글 달라주시고
그동안 창포로만 알던 것을
덕분에 꽃창포와 창포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만 모르는 줄 알았네요. 용기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6.23 15:16
배웁니다. 멋진 작품, 멋진 해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