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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여행 스크랩 (하나패밀리)환상의 여수, 광양 봄여행(11.4.1)
숲길 추천 0 조회 51 11.04.22 18:0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환상의 여수, 광양 봄여행(11.4.1)


여행가기도 쉽지 않은 것이 모객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아무리 여행사에서 좋은 여행상품을 마련하여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3주간 선택한 여행이 모객이 되지 못해 여행을 못갔는데 다행히 좋은 여행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무박인데 향일암갔다가 오동도, 광양 청매실 마을과 화개장터 그리고 산수유 마을을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번에 청매실마을과 산수유 마을을 갔는데 너무 일찍 가서 허탕을 쳤다.


꽃이 거의 피지 않은 것이다.

내년에 다시 와야 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향일암, 오동도 여행에 덤으로 있는 것이다.

TV를 보니 이번에는 날짜가 제대로 잡힌 것같았다.


여행사 연합상품인데 주관은 여행스케치이고 예약은 하나투어로 했다.

우리 가이드는 손승수 가이드인데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였다.

그러고 보면 여행스케치 가이드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향일암 주차장에 새벽 4시 20분쯤에 도착을 했나 차에서 잠을 자다가 5시 20분에 향일암으로 올라갔다.

너무 일찍 올라가니까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아닌 길로 가라고 해서 갔는데 올라가는 길이 순탄해서 좋았다.

날이 흐려서 일출을 보기 어려운 것같았는데 기다려 보기로 했다.

원통보전이라는 편액이 있었는데 그곳이 예전의 불탄 대웅전이라는 것이다.


원통보전이면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인데 안에 보니 수인을 확인해 보니 석가모니불이라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예전에는 대웅전인 것이다.


원동보전 옆에도 관음전이 있고 위에 원효스님 좌선대가 있다고 해서 올라가니 그곳에도 관음전이 있어 웬 관음전이 그리 많나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라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원래 인도 낙가보타산에 거처 하신다고 했는데 여기 향일암도 그곳과 비슷한가보다.

밑에 있는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과 협시로 용왕과 남순동자가 있는데 이 관음전은 용왕전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향일암 주변에는 동백꽃이 많이 피어 있었는데 위에 관음전 옆에는 연리근인 사랑나무가 있었는데 하나는 동백나무이고 하나는 모르는 나무이다.

그 옆에는 해수관세음보살 석상이 서 있었는데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이다.


송승수 가이드와 1호차 가이드도 위 관음전에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행으로 구름사이로 일출이 보이는 것이다.

일출 보기가 정말 어려운데 행운이 온 것같았다.


그곳에 있으니 곤줄박이가 와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새인 줄 아냐고 묻는데 외국 사람이다.

말을 할려다 말았는데 무슨 새냐고 우리 말로 묻는 것이다.

곤줄박이라고 알려 주었다.


생각보다 향일암에는 외국사람들도 많이 오고 내국인도 많이 왔었다.

동백꽃도 보고 일출도 보았으니 정말 여행운이 좋은 편이다.


일출을 구경하고 아래쪽에 있는 관음전으로 내려갔는데 외벽을 보니 사람의 인생을 그림으로 그린 우물속에 칡덩굴을 타고 내려가 그림도 있고 목탁의 기원을 나타낸 그림과 반야용선의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원래 일주문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내려오는 길을 몰라서 올라오던 길로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진달래, 개나리와 생강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고 유채꽃도 보였다.


식당에서 아침으로 해물된장국을 먹고 주차장으로 갔다.

시간이 되어 오동도로 갔는데 오동도 가기전 주차장에서 방파제로 오동도로 걸어가는 길은 우리나라 길 100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길이 그다지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오동도에는 정말 동백나무가 꽃을 많이 피우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꽃이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용굴 내려가는 길에는 팔손이나무가 더러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용굴 쪽에서 보는 바다 풍경도 아주 멋졌다.

지나가다 바람골도 있었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중간에 물개바위도 있어 내려갔는데 어느 바위가 물개바위인지는 알 수 없었다.

등대 앞에는 엄첨나게 만개한 벚나무가 있어 마음을 환하게 피추고 있었다.

등대 전망대에 올라가 전망을 보고 해돋이 전망대로 내려갔다.


드디어 고곳에서 혹시나 만날 지 모른다고 기대를 하며 가지고 간 180 미리 렌즈를 써 먹었다.

새가 울어 어떤 친구인가 살펴보니 바다직박구리 암, 수가 있었다.


오동도를 출발한 버스는 광양 청매실 마을로 갔는데 차가 많아 여행객만 내려주고 시간이 되면 태우러 오기로 하고 주차하러 갔다.


이번에 본 광양 청매실 마을은 온세상이 꽃세상이었다.

이 꽃 세상을 볼려고 사람들은 불원천리 이곳에 오는 것이다.

지난 3주전과 지금은 세상이 다르고 보는 품격이 틀렸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매화가 피다니 꽃 복이 터진 것이다.

지난번 둘렀던 코스로 다시 한바퀴 꽃 구경을 천천히 하며 돌았다.

점심은 이번에는 국밥을 먹었다.


앞으로 광양 청매실 마을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매화에 대하여 언급을 피해야 할 것같다.

매화마을을 떠나 화개장터에 갔는데 지난번 밤깍는 도구 파는 사람은 아직도 열심히 밤을 깍고 있었고 각설이도 계속 노래중이며 대장간의 아저씨도 계속 도구를 만들고 계셨다.


벚꽃은 이제 피기 시작하고 있는데 1, 2주가 지나야 본격적인 벚꽃 축제를 할 수 있을 것같았다.


다시 산수유 마을로 갔는데 이번에는 온 세상이 노란 꽃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돌담길 주변 모두가 노란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세상에 노란 색은 모두 이곳에 온 것같았다.


환상의 세계가 따로 없었다.

모든 일행이 즐거운 산수유 꽃 구경을 했다.


돌아오는 길도 길이 막히지 않아 힘들 지 않게 서울로 오게 되었다.

기사님의 훌륭한 운전 솜씨와 손승수 가이드의 멋진 가이드 덕분에 정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여행 프로그램을 주관하여 운영한 여행스케치와 참여한 하나투어, 하나패밀리 임직원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여행 프로그램 계속 부탁드리며 더욱 발전하고 행복하길 기원하겠습니다.



향일함


향일암(向日庵)은 지방문화재 제40호로 낙산사의 홍연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암과 함께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이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은 여수시 돌산읍에 644년(신라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하였다.


기암절벽 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 수평선의 일출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어 숙종 41년(1715년) 인목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주위의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평일은 물론, 특히 매년 12월 31일~1월 1일에는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각지에서 이곳 “해맞이 명소”에 몰려든다.


2009년 12월 20일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대웅전 등이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오동도 /오동도, 전남 여수시 수정동


여수시 동남단에 조성된 신항(新港)에서 약 1㎞ 떨어져 있다. 1935년에 준공된 연장 1,213m(동쪽 445m, 서쪽 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멀리서 볼 때 마치 오동잎처럼 보이고, 오동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하여 오동도라 했다고 한다. 또한 신이대나무(시누대라고도 함)가 섬 전체에 자생하여 죽도라고도 부른다.


섬 전체가 높이 100m 내외의 완만한 구릉지를 이룬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소라바위·병풍바위·지붕바위·코끼리바위·용굴 등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온난하고 비가 많은 지역으로 다양한 난대성 식물이 자생한다.


동백나무·신이대나무·후박나무·예덕나무·광나무·돈나무 등 총 193종의 수목이 자란다. 해삼·멍게·소라·성게·전복 등과 도미·민어 등이 잡힌다. 이 섬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 연병장으로 이용되었으며, 당시 이순신 장군이 신이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10만 여 명의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여수시박물관을 비롯하여 동백림·죽림 등의 식물경관과 기암절벽의 해안경치 및 해돋이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 1968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었다. 섬 남단에 오동도 등대가 있으며, 관리사무소와 교통부의 표지기지창(標識基地廠)이 있다. 면적 0.12㎢, 해안선길이 14㎞, 인구 11, 가구 4(2003).


청매실농원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고 매실가공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여기, 농원 뒷편 왕대숲, 영화세트장, 매화산책로 등이 있다.


특히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풍경은 방문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산 좋고 물 맑은 고장, 연중 따스한 햇살이 가장 많이 비추는 고장인 광양지역의 특산물을 얘기하자면 밤, 매실, 설록차, 고로쇠약수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밤과 고로쇠약수를 제외하고는 특산물에 대해 이렇다할 기록이 없는 형편이다. 특히 광양매실은 매화나무의 최초 집단재배 시기와 장소가 광양밤과 맥을 같이 하였고, 매실의 상품화 노력 또한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계승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광양밤이 그 유래가 분명하여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데 반하여 광양매실은 새로운 품종의 매화나무가 밤나무와 함께 대량으로 들어왔다는 기록 이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광양매실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광양매실이 가진 전통과 특징을 밝혀 광양이 밤뿐아니라 매실의 본고장임을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이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되어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천 오백년 전에 들어와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이 열매를 식용 또는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다.


세계적으로 매실의 산지는 동북아시아 즉 한국, 중국과 일본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부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지리적으로 특수성을 지닌 온대과실로써 중부이북의 매화나무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매실의 식품으로서의 가공법과 약리작용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연구 끝에 그 놀랍고 신비스런 약효가 증명되어 전 일본국민의 건강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실주를 수십 년 전부터 상품화해 온 것 이외에는 최근에서야 매실음료가 나오게 되었고, 매실을 이용한 전통매실 반찬은 광양의 청매실 농원에서 1994년 처음으로 상품화 하였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 여사


밀양태생으로 올해 68세인 홍쌍리 여사는 45년 전인 1965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밤나무골 김영감님″의 아들인 김달웅(68세)씨에게로 시집와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가 심기워진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하지만 홍여사는 몇 년 전부터 ″매실박사 홍쌍리″로 통하는 전국적인 유명인사이다. 최근에는 그녀의 명성이 동남아 식품박람회를 통해 홍콩, 싱가폴에도 알려졌으니,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홍쌍리 여사가 매실의 본고장인 광양매실의 자존심이라는 점이다. 광양매실의 자존심 홍쌍리여사의 유명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본다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은 매실식품의 맛이 좋고 약효가 좋기로 유명하고 또한 그 종류가 다양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청매실농원에서는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아찌, 매실고추장 등 매실반찬을 만들고 있다.


홍쌍리 여사가 정식으로 매실전통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은 것은 1994년이고 1995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았다.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종류는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잼, 매실사탕, 매실젤리 등이 있다.


청매실 농원에서는 한결같이 매실식품을 전통제조법에 따라 만든다는 것이 오늘의 홍쌍리 씨를 있게 한 근본이며, 또 하나는 7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대를 이어오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제품을 만들어 상품화하게 되었다는데 남다른 유명세의 원인이 있다. 물론 매실농축액 제조과정에서는 기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조공정중에 반드시 사람손을 거치게 되어 있어 매실농축액 제조도 완전 자동이 아닌 반자동으로 하고 있다.


청매실을 숙성·발효시키는 과정도 남다르다.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선 300여개의 장독들, 숨쉬는 그릇인 전통용기로 구워낸 장독에 매실을 담아 수개월동안 발효하는 전통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청매실을 3개월 이상 보관하지 않고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제조작업을 마침으로써 매실식품의 신선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청매실 농원의 식품이 최고 품질을 갖기까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70년 전통에 보다 큰 근본이 있다.


홍쌍리 여사가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과 시어머니의 매실식품 제조 활용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눈썰미있게 새겨두면서 끊임없이 묻고 연구한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김오천 선생이 밤과 매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1935년부터 74년간을, 홍쌍리 여사가 김씨 집안에 시집온 1965년부터 44년간을 매실 식품 제조에 매달려 온 것이다.


이제 홍쌍리 여사는 매실전통식품 제조자로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95년에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미용 건강 이야기”라는 책을 써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홍쌍리 여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더 좋은 식품을 만들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오늘날 광양매실을 이야기하려면 광양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통했던 밤나무골 김영감님인 김오천 선생이야기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없다. 김영감님이 1931년 일본에서 밤나무 묘목과 함께 들여온 5,000주의 매화나무 묘목으로부터 광양매실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오천선생은 1902년 11월 21일(음력)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일곱살 나던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의 광부생활로 돈을 모았고 1931년(30세때)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들어왔다.


3년동안에 가지고온 묘목을 심고 관리하던 김영감님은 나무 키우는데 필요한 기술과 돈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에 들어가서 10년동안 일본과 광양의 고향집을 수없이 오고가면서 돈을 벌고 나무 키우는 기술을 익혔다. 김영감님은 두 번째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당신이 광부생활을 했던 구천에서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인부를 수 십명이상 많을때는 1백여명까지 썼고 고향마을 사람들도 10여명에 달했다.


1944년에는 완전 귀국하여 다시 밤나무, 매실나무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를 밤산으로 만들었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화나무를 집중해서 키웠다.


또한 김오천옹은 1952년부터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와 금매 수십가마를 만들어 구례, 순천, 하동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매화에 관하여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매화!


만해 한용운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쌓인 눈 찬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니라.


꽃으로서 매화가 된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할 것이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용자가 된다면 행운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 없느니라. 무서운 겨울의 뒤에 바야흐로 오는 새 봄은 향기로운 매화에게 첫 키스를 주느니라."


매화의 그윽한 향은 전국으로 널리 펴져 매년 3월 초순이면 섬진강변 매화마을에서 전국 규모의 봄꽃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1997년 지역 주민의 동네축제로 시작한 광양매화문화축제는 남해성 전국판소리 경연대회, 매화사생대회 등을 가미한 문화축제로 발전되고 있으며 축제를 통해 농가소득 향상에 일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초 10여 년 사이에 축제가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지만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꽃축제로 겨우내 웅크렸던 우리들의 마음을 활짝 열계하는 전국 최초 축제라는 의미를 두고 있어 광양매화문화축제는 대표적인 축제로도 손색이 없다. 매화와 섬진강 재첩 다양한 먹거리 잔치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매실제품과 각종 특산품은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아 관광객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순천 - 완주 고속도로


 


전주-서남원(65.6km) 구간은 지난해 12월 개통됐고, 서남원-순천(47.9km) 구간은 이달 말에, 순천-동순천(4.3km) 구간은 4월 말에 각각 개통될 예정이다.


순천-완주 고속도로는 총 9개 나들목(동전주, 상관, 임실, 오수, 북남원, 서남원, 구례, 황전, 동순천), 3개 분기점(완주, 남원, 순천)으로 설계돼 완공 때까지 총 사업비 2조2천477억원이 소요된다.


순천-완주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 전주와 동순천 간 차량 운행시간은 기존 2시간9분에서 1시간 11분으로 58분 단축되고, 남원과 순천 간 운행시간이 35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연간 924억원의 물류비 절감과 118억원의 환경개선 효과가 기대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및 지역개발 역시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지리산에서 시작한 화개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열리던 전통적인 재래식시장이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최근에는 상시시장이 개장되어 특별히 5일장이 따로 서지는 않는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화개장터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시장이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산나물과 약재, 전라도 곡창지대의 쌀과 보리 등을 거래하였다. 또한 부보상들이 가지고 온 생활용품 및 남해안 일대 어부들이 섬진강을 통해 가져온 미역과 고등어 등의 수산물도 볼 수 있었다.


하동읍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10리 벗꽃길이 시작되는 곳이라 봄이 되면 전국의 물산과 꽃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곳이다. 예전에는 지금의 화개천 다리 아래에서 장이 섰지만 현재는 화개장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과거의 정취가 조금은 퇴색되었다. 몇몇 초가집 상가와 누각으로 과거의 운치를 살리기 위해 노력있는 모습이 보인다.


추천 먹거리로는 재첩국이 재격이며 빙어와 은어회 또한 일품이다.


구례 산수유마을


춘향골 남원에서 고속도로 같은 19번 국도를 타고 밤재터널을 지나면 곧장 구례 땅이다. 때마침 3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이곳을 찾는다면 밤재터널을 나서자 마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샛노란 산수유꽃이다. 길가와 집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산기슭과 골짜기, 논둑과 밭두렁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샛노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지리산의 산머리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아직도 희끗희끗한데, 그 산자락에 등을 기댄 마을들은 눈부시게 화사한 꽃 세상을 이루었다. 사실 산수유꽃은 꽃잎이 2㎜가량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낱낱의 꽃송이는 딱히 아름답다거나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 수백그루씩 무리를 지은 산수유나무가 한꺼번에 노란 꽃부리를 활짝 펼치면 벚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사하고도 아름답다


꽃길 찾아가는 여행.... 몸보다 마음이 앞선다. 지도책을 펼쳐들면 어느새 눈 앞에는 꽃구름 위를 살포시 걸어가는 사람들의 환영이 아른거린다. 지금 전남 구례에 가면 샛노란 산수유꽃이 절정기를 지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지리산 만복대 남서쪽 골짜기에 들어서있는 산동면 위안리와 대평리는 국내 최고의 산수유 꽃단지. 꽃그늘 아래로는 섬진강으로 합쳐드는 실개천이 졸졸 흐른다.


구례로 출발하기 전에 곽재구 시인의 < 산수유꽃 필 무렵> 이라는 시를 미리 감상하고 여로에 오른다. 시인박목월 아니면 조지훈님의 서정과 유사한 느낌을 갖게하는 짧은 시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리


시인은 노랗게 채색된 그 세상에서 설움을 보았단다. 행여 보릿고개 있던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허기진 아이들은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에 와서 산수유꽃 유람은 봄을 환히 밝히는 즐거운 나들이길이다.


여행자들은 실개천변을 따라 피어난 산수유 군락을 만나는 순간 그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외마디 감탄사를 지르고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잰걸음을 떼며 군락 속으로 몸을 던진다. 누구 하나 돌봐주는 이 없어도 저 혼자서 봄이 온 것을 알고 새색시처럼 곱디곱게 노랑저고리롤 갈아입는 산수유.


숨막히도록 화사한 정경을 저마다 가슴에 담기 위해 여행자들?느 그림 그릴 채비를 하고 카메라 션터를 누른다. 해도 길어졌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산수유를 만나고 저마다 가슴에 노란 꽃 한송이를 심어오면 족한 것이다.


꽃은 4월 중순까지 그 아름다운 자채를 유지한다. 구례는 산우유의 고장답게 오늘날 우리 나라 산수유(열매) 생산량의 60%가 이곳에서 나며 구례 지방 생산량의 85%는 지리산 만복대 기슭에 자리잡은 산동면에서 생산된다. 이 작은 면에서 생산되는 산수유의 양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절반쯤이나 되는 셈이다.


산수유가 이 지방특산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년 전쯤이었다고 한다. 지리산 험한 준봉에 둘러싸여 있어 논이 적고 밭이 척박하였기에 산수유 나무를 곳곳에 심어 생계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산수유꽃하나로 전국 가지의 여행자들을 불러오으는 위안리는 한국전쟁 전만 해도 1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여순 반란사건(1948)으로 많은 주민 대다수가 목숨을 잃으면서 지금은 40여 가구만 그 땅을 지키고 있다.


그토록 청초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산수유꽃은 산동면뿐만 아니라 천은사로 들어가는 광의면 마을 길 주변, 화엄사로 이어지는 마산면 민가 담장, 호남 3대 명당의 하나라는 운조루, 노고단 아랫마을 문수리로 들어가는 계단식 논둑, 연곡사와 피아골로 들어가는 토지면 연곡천변과 계곡을따라 줄줄이 피어나서 구례 땅의 봄을 화사하게 물들여 놓고 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향일암의 아래에 있는 관음전의 내부 모습이다.

 

 

위 관음전의 내부 모습이다.

 

 

우측의 연리근과 해수관세음보살이다.

 

 

구름사이로 해가 뜬다.

 

 

대웅전이 불타고 임시로 원통보전인데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여기가 오동도이고 저 길을 건너왔다.

 

 

오동도 용굴로 내려가는 길이다.

 

 

물개바위라고 하는데 어느 바위인지 모르겠다.

 

 

저 다리가 돌산대교 2이고 그 오른쪽이 돌산대교이다.

 

 

바다직박구리 암컷이다.

 

 

오동도 등대를 뒤돌아 본다.

 

 

2주만에 다시 온 광양 홍쌍리 청매실 마을은 온통 매화 천지가 되었다.

 

 

온 세상이 매화 꽃이다.

 

 

매화가 정말 대단하다.

 

 

문학공원 주변도 매화가 대단하다.

 

 

섬진강 쪽을 본다.

 

 

화개장터 벚꽃은 아직 조금 더 있어야 하나 보다.

 

 

산수유 마을의 산수유가 한창이다.

 

 

대단한 산수유꽃이다.

 

 

온통  산수유 꽃 천지가 되었다.

 

 

왜 산수유 마을을 찾는 지 이해가 된다.

 

 

온통 산수유꽃이다.

 

 

산수유 열매 조형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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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4.23 06:23

    첫댓글 항일암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숲길님 덕분에 잘봅았습니다.
    매화마을을 한해에 두번씩 다녀 오셨군요.
    산수유 마을도...
    힘든 하루의 여정이셨겟습니다.
    덕분에 저는편히 즐감했습니다.^-^

  • 작성자 11.04.24 17:36

    고맙습니다. ㅎ

  • 11.04.23 17:49

    한바퀴 휘돌아보았습니다.
    즐감햇습니다.

  • 작성자 11.04.24 17:36

    고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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