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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1
1.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2. 커피 한잔
3. 빗속의 여인
4. 나뭇잎이 떨어져서
5. 어떻게 해
6. 메모만 남기고
Side. 2
1. 늦기 전에
2. 님아
3. 떠나야 할 그 사람
4. 봄비
5. 나만이 걸었네
6. 님은 먼 곳에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2년)
춤바람 열풍이 주도했던 사교댄스용 연주음반들
전통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에서는 가수의 노래가 담긴 보컬음반이 연주음반보다 인기가 많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90년대 이전 음반시장에서 연주음반은 나름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50년대 한국사회는 정비석의 소설「자유부인」열풍이 말해주듯 춤바람 열기가 대단했다. 오아시스레코드 창립자인 고 봉철대표는 2012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1950년대는 춤에 미친 시대였어요. 사람들이 춤출 수 있는 춤곡이 들어있는 연주음반을 많이들 찾았는데 음반이 없어 장사하기가 힘들었죠. 찾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음반을 만들지 못해 팔지 못했을 정도로 사업이 잘되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1950년대 당시 유행했던 춤은 차차차, 룸바, 맘보, 지루박, 브루스, 왈츠, 포크, 탱고 등 각종 사교춤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자연스럽게 각종 모임이나 파티에서 다양한 사교춤을 추기위한 댄스용 연주음반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 열기는 이후 각 시대별로 새롭게 등장한 60년대 트위스트, 70년대 고고 이후 디스코 등 다양한 춤들로 이어지며 각광받았다. 당연 각종 댄스용 연주음반들은 팔려나가며 음반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경음악’ 즉 ‘가볍게 듣는 연주음악’의 등장
1953년 휴전 이후 경제사정이 호전되기 시작하면서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전국 도시들에 무도장과 더불어 다방, 카페, 음악감상실 등 다양한 유흥업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문화가 급속하게 생성되었다. 각종 유흥업소들은 실내 분위기를 편안하거나 낭만적으로 연출할 연주음악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댄스용 연주음반과 더불어 이런 연주앨범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수의 노래가 들어가 있지 않은 연주음악을 ‘경음악’ 즉 ‘가볍게 듣는 음악’으로 호칭하고 표기했다. 경음악 음반의 흥행 분위기로 인해 50년대 허경구 악단을 비롯해 60년대 이후에는 아코디언의 제왕 심성락, 색소폰연주가 이봉조 등에 의해 국내 경음악 음반들이 무수하게 발매되었다.
연주음반으로 시작된 신중현 음악
현재 신중현이 관여한 음반들은 음반수집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화두로 통한다. 신중현의 손길이 닿았다면 경음악 즉 연주앨범도 음악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아이템으로 대접받는다. 2000년대 이전 아날로그 시절을 통틀어 연주 앨범을 발표한 국내 밴드는 극소수였고, 있다 해도 앨범에 연주곡 1-2곡 정도를 수록하는 정도에 대부분 머물렀던 수준이었다. 그런 점에서 신중현과 더불어 보컬과 연주의 비중이 조화로웠던 사랑과 평화(전신 서울나그네)는 가장 많은 연주앨범을 발표한 쌍두마차로 평가할 수 있다.
신중현의 공식 음악활동의 출발점은 연주 음반이었다. 국내가요 LP의 3천만원 시대를 개막한 그의 데뷔음반 ‘히키 신 키타 멜로드 경음악 선곡집’은 보컬곡 하나 없는 순수한 연주음반이다. 수많은 밴드를 결성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반복했던 신중현의 밴드 창단이력은 이번에 재발매된 이 연주앨범이 발표된 1970년에서 1971년까지 2년 동안 절정에 달했다. 당시 펄시스터즈와 김추자를 발굴하면서 히트곡 제조기로 불린 신중현의 사무실에는 기성 가수들과 수많은 가수지망생들이 신곡을 받기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로인해 신중현은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히트곡들을 연주한 경음악 독집까지 발매 했다.
사상 최고의 밴드 탄생을 위한 징검다리
한국적 사이키델릭을 실험하기 시작했던 덩키스의 계보를 잇는 진정한 신중현 밴드는 퀘션스였다. ‘퀘션스’는 영어 ‘Questions'의 한글 ‘퀘스천스’의 당대 표기이다.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 이태현, 최고의 재즈드러머로 ‘흑우’란 이름으로 명성을 날렸던 고 김대환, 오르간 김민랑의 4인조 라인업이었다. 퀘션스는 신중현의 결성하고 운영했던 무수한 록밴드들 중 최고로 평가되는 ‘더 멘’, ‘엽전들’의 탄생을 위한 튼실한 징검다리였다. 첫 활동무대는 1970년 3월 실황음반으로 발표되었던 서울 시민회관의 ‘김상희 리사이틀쇼’이다. 이미 덩키스 시절 팝가수 김상희를 사이키델릭 록커로 변신시킨 신중현은 무대에서 한층 무르익은 사이키델릭 연주로 곡에 맛깔을 더해주었다.
활동기반이 조성된 퀘션스는 1970년 5월에 11곡이 담긴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이정화의 <봄비>를 재취입한 박인수는 다이내믹한 창법을 선보여 소울가수의 대부로 떠오르는 발판을 마련했다. 미완의 대기였던 임성훈, 임희숙 등 4명의 객원가수가 참여한 퀘션스 첫 앨범은 대중성을 의식한 보컬위주의 앨범이라 신중현 사이키델릭의 진수를 맛보기엔 2%부족이다. 퀘션스 연주의 진가는 1970년 7월 25일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GO GO GALA PARTY' 공연실황을 들어봐야 알 수 있다. 몰래 녹음한 불법음반이라 음질은 불만이지만 전성기 신중현 밴드의 사이키델릭 공연 실황을 증명해주는 음반으로 자료가치가 높다.
브랜드 파워가 급증하며 3개의 밴드 동시 운영
반세기의 장구한 세월이 지나 재발매된 이 연주음반 ‘시원한 기타 경음악-신중현 작곡 힛트곡 경음악 1집’은 신중현이 본격적으로 사단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1970년에 발표되었다.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기 시작하며 정신없이 바빴던 신중현은 무려 3개의 밴드를 동시에 결성해 필요목적에 따라 운영했다. 메인 밴드인 퀘션스와 더불어 서울 명동 오비스 캐빈 3층의 코스코스 살롱에 고고클럽이 오픈하자 서울대 출신인 정성조를 영입해 라이브클럽용인 ‘신중현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비슷한 시기에 해변 피서지용으로 급조해 결성했던 ‘제로악단’도 있었다. 이 연주앨범의 연주는 스튜디오 녹음을 전문으로 했던 퀘션스가 담당했다.
뒷면을 장식한 반라의 여성 사진으로 화제
이 앨범의 화두는 음악보다 뒷면을 장식한 사진에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반 누드가 담긴 사진은 전국의 음반가게 진열대에 전시되자마자 화제를 모으며 팔려나갔다. 대중적으로는 한계성이 분명한 연주 음반임에도 여성의 반 누드 앨범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재발매까지 되는 인기를 끌었다. 보수적인 당대 한국사회에서 수용하기 힘든 선정적인 여성 사진을 재킷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빽판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당시는 청소년들이 음반가게 진열대를 장식한 금발의 외국 여성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편집 팝송 빽판에 홀려 기꺼이 용돈을 꺼냈던 시절이다. 에드포의 연주음반도 그렇고 실제로 60-70년대에 제작된 국내 제작 연주음반들의 커버를 살펴보면 마치 외국 팝송 빽판으로 오해할 수 있는 선정적인 디자인이 제법 많았다.
1970년 여름시즌을 겨냥한 프로젝트 연주앨범
‘시원한 기타 경음악’이란 앨범 타이틀처럼 이 음반은 1970년 여름시즌을 겨냥해 제작한 프로젝트 음반에 가깝다. 하지만 앨범 디자인과 타이틀과는 달리 수록된 12곡은 당대에 유행했던 여름 시즌송이 아닌 1970년까지 신중현 사단의 핵심가수들인 에드포, 펄시스터즈, 김추자, 김상희, 박인수 등이 노래했던 히트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의 정체성을 ‘신중현 작곡 힛트곡 경음악 1집’으로 명명한 이유이다.
야자수 나무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신중현의 사진으로 장식된 앨범의 초반 커버 앞면에는 ‘신중현 작곡 힛트곡 경음악 1집’ 문구가 없다. 반면 예상외의 판매호조로 인해 제작된 재반 앞면 왼쪽 상단에는 ‘신중현 작곡 힛트곡 경음악 1집’이 추가되어 이 앨범이 신중현의 작품집임을 당당하게 알리고 있다. 재킷 뒷면 여성 사진에는 두 버전 모두 같은 문구가 표기되어 있다. 또한 재킷 앞면을 장식한 신중현 사진 속에 표기된 ‘STEREO' 영문 글자도 초반은 글자를 크게, 재반은 절반 정도 크기가 축소되어 있다.
신중현 창작 히트곡들로만 구성된 첫 연주앨범
앨범의 문은 신인가수 김추자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경쾌한 히트곡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문을 연다. 앞뒷면에는 그때까지 신중현의 음악활동을 망라한 <빗속의 여인>, <님아> 등 각각 6곡씩 총 12곡이 담겨 있다. 수록곡들은 그나마 앨범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대부분 경쾌함을 안겨주는 시원한 편곡으로 녹음되어 있다. 신중현 앨범의 최대 매력인 실험성이 돋보이는 롱 버전의 연주곡이 없는 점은 아쉽지만 모든 수록곡에는 당시 음악적으로 정점을 향해 달려갔던 신중현 특유의 사운드가 유감없이 담겨 있다. 이 앨범의 가치는 에드포 시절에 발매된 기성 히트가요를 연주한 음반들과는 달리 신중현의 창작 히트곡들로만 구성된 최초의 연주앨범이란 점에 있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대중음악자료 수집연구가
쎅스폰의 유혹 LP 23년 2월 16일 입고 예정 가격/44,500원
Side. 1
1. 미련
2. 나무잎이 떨어져서
3. 거짓말이야
4. 님은 먼 곳에
Side. 2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오솔길을 따라서
아니야
늦기 전에
고독한 마음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2년)
냉랭했던 국내 최초의 창작 록 사운드
1962년 신중현이 록밴드 에드포를 결성했지만 록큰롤에 익숙했던 미군 병사들이 수용하기엔 시기상조였다. 신중현은 미8군 클럽무대를 떠나 일반무대에서 창작 록 사운드로 도전하는 음악적 모색을 시도했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당시, 창작 록에 대한 일반무대의 반응도 미8군 클럽무대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도심의 각종 음악 감상실과 KBS 등 방송에서 선보였던 신중현의 토종 창작 록 사운드에 당대 대중은 그저 ‘시끄럽다’는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창작 록음악으로는 더 이상의 음악활동이 힘겨웠다.
돌파구를 모색했던 신중현은 1966년 밴드 액션스의 이름으로 연주앨범 ‘THE ACTION'S 뺀드 경음악 특집’을 발표했다. 자신의 창작곡은 <비속의 여인><THE ACTION'S> 단 2곡이고 나머지 수록곡은 모두 <홍도야 울지마라>, <서울야곡>, <검은 장갑> 등 흘러간 추억의 인기가요들로 구성한 평범한 레퍼토리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연속 발매한 연주앨범 '한국의 벤쵸스 ADD4-신중현 경음악편곡 1집’에도 자신의 창작곡은 한 곡도 선곡되지 못했다. 당대의 빅히트곡인 미8군 출신가수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 최희준의 <우리 애인은 올드미쓰>, 번안 곡 <검은 상처의 부르스>등 동시대 일반 대중이 좋아했던 히트곡들을 위주로 선곡해 연주하는 평범한 구성을 벗어나질 못했다. 야심찼던 신중현의 음악적 실험과 도전과는 거리가 먼 생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음악적 후퇴였다.
사이키델릭 록에 전통가락을 접목하는 실험
첫 밴드 에드포를 해산한 신중현은 1966년 후반에 일반무대를 떠나 미8군 클럽무대로 돌아갔다. 미8군 클럽의 패키지 쇼를 위해 급조한 밴드 조우커스에 이어 1968년부터는 미8군 클럽 하우스밴드였던 5인조 블루즈 테트를 결성했다. 창작앨범은 엄감생신. 다행스럽게 급속하게 유입되었던 팝송 덕분에 조성된 경음악 음반 열풍을 등에 업고 살롱과 다방용 연주음반을 발표하는 소모적인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어느 날, 미8군 방송 AFKN 출연했던 신중현은 사이키델릭 기법으로 촬영한 화면에 매료되었다. 이후 사이키델릭 록에 한국의 전통가락을 접목하는 실험을 꿈꾸며 5인조 밴드 덩키스를 새롭게 결성했다.
월남공연단 참여를 염두에 두고 전쟁터로 떠날 생각까지 했던 당시 신중현의 음악활동영역은 매우 협소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신중현은 덩키스와 더불어 펄시스터즈 데뷔음반의 세션 녹음을 맡아 일반무대 활동을 재개했다. 예상치 못했던 펄시스터즈의 대성공으로 인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어 발굴한 육감적인 김추자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인기가수 김상희를 변신시켜 일반무대에 야심차게 재도전했다. 이전에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던 신중현의 시이키델릭 소울 사운드는 월남전 참전 등으로 답답했던 당대 젊은이들의 꽉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며 뜨거운 관심을 불러왔다.
사단을 구축한 신중현의 상업적 성공시대
덩키스 이후 퀘션스를 거친 신중현은 1971년 초부터 정성조와 손을 잡고 '신중현과 그의 캄보밴드'를 결성했다.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포크음악과 자웅을 겨루며 명동의 살롱가를 휘어잡았던 상업적 성공시절이었다. 이 시절 신중현은 가수 관리를 위해 20여명이 넘는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실을 운영했을 만큼 호황을 누렸다. 함께 음악생활을 했던 정성조는 '돈을 쓸어 담았을 정도였다“고 생전에 당시를 회고했었다. 신중현 문하의 수많은 가수들은 이때부터 ‘신중현 사단’이라는 특별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음악적으로 정점의 밴드로 평가받는 더 멘
1971년 말 정신없는 바쁜 나날을 보냈던 신중현은 자신이 지향했던 음악적 색깔이 선명했던 5인조 록밴드 더 멘(THE MEN)을 결성했다. 오리지널 멤버는 리드기타 신중현, 베이스기타 이태현, 퍼커션과 드럼 문영배, 오르간 김기표, 그리고 보컬 박광수로 구성된 5인조 라인업이었다. 새로운 밴드 결성과 별개로 신중현은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1972년 3월에 첫 개인연주음반인 ‘신중현 소울 리듬 퍼레이드-힛트송 경음악’을 먼저 발매했다. 앨범에는 <커피한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그의 창작 히트곡들이 대거 수록되었다.
더 멘은 수많은 신중현 밴드 중 엽전들과 더불어 음악적으로 최절정기의 밴드로 평가받는다. 1972년 10월 유신정권의 계엄령 속에서 발매된 더 멘의 첫 앨범 ‘장현과 더 멘’에는 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이 수록되어 있다. 이선희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된 <아름다운 강산>은 김민기의 포크송 <아침이슬>과 함께 금지의 아픔을 간직한 70년대를 상징하는 국민가요로 평가받고 있다.
신중현밴드 더 멘의 유일한 연주음반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한지 1달이 지난 1972년 11월에 더 멘의 유일한 연주앨범 ‘쌕스폰의 유혹’이 발매되었다.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 재발매된 바로 이 앨범이다. 이 음반의 녹음에는 새롭게 영입된 색소폰과 오보에 등 관악기 전문연주자 손학래가 참가했다. 그의 참여로 인해 음악적 표현영역이 확대된 신중현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앨범에 수록된 총 9곡은 밴드 덩키스 이후 작곡한 신중현의 창작곡들이다.
앨범의 문은 임아영이 처음 발표했지만 장현의 목소리로 익숙한 히트곡 <미련>이 연다. 오르간 전주에 이어 곡 전개 내내 중심을 잡고 흐르는 서정과 열정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손학래의 색소폰 연주가 5분 넘게 청자의 마음을 유혹한다. 이 앨범의 타이틀이 왜 ‘쌕스폰의 유혹’인지 첫 곡에서부터 확실하게 알려준다. 김추자의 히트곡 <나뭇잎이 떨어져서>는 독특한 기타 리프가 긴장감이 감돌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어지는 김추자의 대표곡 중 하나인 <거짓말이야>는 신중현의 기타, 김기표의 오르간, 문영배의 드럼 비팅과 어우러지는 손학래의 오보에 연주가 경쾌하다. 이어지는 역시나 김추자의 대표곡 중 하나인 <님은 먼곳에>는 <거짓말이야>에서 상승된 기분을 손학래의 낭만적인 색소폰 연주가 편안한 분위기로 진정시켜준다.
팔색조의 환상적인 색채를 그려가는 손학래의 색소폰 연주
2면 첫 곡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김추자의 데뷔곡이자 대표곡 중 하나이다. 경건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이 곡은 군가 풍의 반복적인 비트가 흥을 높여준다. 이 앨범의 편곡에서 최대 화두인 색소폰은 중반이후부터 전면에 등장해 신나는 분위기를 주도한다. 수록곡 중 가장 짧은 김정미의 히트곡 <오솔길을 따라서>는 간결하게 임팩트를 안겨주는 색소폰 연주가 중심을 잡고 진행된다. 이어지는 김정미의 히트곡 <아니야>에서는 색소폰 연주가 중심을 이루지만 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김기표의 오르간 연주가 화려하다.
앨범에서 가장 긴 5분 48초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늦기 전에>는 영화로도 제작된 김추자의 데뷔 히트곡 중 하나이다. 역시나 팔색조의 환상적인 색채를 그려가는 손학래의 색소폰 연주가 김추자의 목소리를 대신하듯이 시작부터 곡의 중심을 이루며 리드한다. 곡 중간에는 오보에 연주가 치고 들어와 색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앨범의 문을 닫는 엔딩곡 <고독한 마음>도 화려한 손학래의 색소폰 연주가 주도한다. 이 곡은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평가받는 김정미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금관악기를 편곡의 중심에서 둔 환상적인 사운드
신중현의 활동금지로 얼룩진 비극적 운명과 함께 더 멘의 멤버들도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찍히며 음악활동에 통제가 뒤따랐다. 역설적인 것은 신중현은 이 통제의 시절에 <아름다운 강산>, <햇님>, <바람>, <봄>, <잔디> 같은 수많은 명곡을 창작했다는 사실이다. 더 멘의 유일한 연주앨범인 ‘쌕스폰의 유혹’은 신중현이 색소폰, 오보에 등 금관악기를 편곡의 중심에 놓고 시도한 첫 앨범이자 매력적인 사운드가 담긴 완성도 있는 연주앨범이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 연주 음반이기에 대중적으로 큰 조명과 소통이 없었기에 반세기만의 재발매는 의미가 각별하다. 더 멘 해체이후 한국 록 역사상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는 엽전들을 결성한 신중현은 통제와 감시가 극심했던 1974년과 활동 금지된 1975년에 불후의 연주 명반으로 분류되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경음악’ 앨범 2장을 더 발표하게 된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대중음악자료 수집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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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섹스폰의 유혹 1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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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모두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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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1장씩예약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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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10 15:37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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쎅스폰의 유혹 예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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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1장씩이요 허리가 휘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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