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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면 그게 무엇이든 아이가 즐거워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돕는 게 좋죠. 예컨대, 남자아이가 인형을 좋아하면 혼낼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관심과 소질을 키워주는 거죠. 두드러지는 적성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분야를 선택해야죠.”
타고난 감성과 소질도 있었지만, 김양의 문학적 능력을 키운 8할은 독서였다. 김양은 국문학을 전공한 부모와 독서왕이던 오빠 덕분에 책을 끼고 살았다. 거실과 방은 물론 화장실부터 현관까지 집은 그 자체로 도서관이었다. 학교 공부의 밑거름 역시 독서였다.
“저는 독서가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문자해독과 독서는 달라요. 부모는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필히 독서에 흥미를 느끼도록 신경을 써야 해요. 아이가 TV, 컴퓨터에 길들여지기 전에 책부터 접하게 해야 자율적인 독서가 가능하니까요. 함께 책을 읽고 질문으로 이해도를 확인한 뒤 사고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줘야죠. 유아 때부터 수준에 맞춰 차분히 독서를 해나가면 기초 이해력이 높아집니다.”(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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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 보면 정보 소화 능력이 빨라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과목을 공부해도 시간 대비 집중력이 좋더라고요. 책을 통해 여러 방면을 접하니 공부도 즐거웠고요. 영국에 있을 때는 시험 스트레스가 없고 주변에 도서관도 많아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었죠.”(김양)
정씨는 독서와 함께 글쓰기 습관도 강조한다. 소소한 일상이나 그에 대한 단상을 적다 보면 생각도 그만큼 자란다는 것. 김양 남매는 유치원 때부터 일기뿐 아니라 여행, 공연, 영화 등에 대한 감상을 토론하고 얘기했다. 정씨는 “경험은 일회성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자녀와 함께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눠야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고 강조한다. 푸른샘이 썼다는 기록장에는 간단한 감상과 함께 영화 ‘포카혼타스’‘미녀와 야수’‘프리윌리2’ 등의 입장권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바람직하거나 배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독려
귀국한 뒤 김양의 생활은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중학교 2학년부터 5년간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인턴을 했다. 대충 흉내만 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직접 수준별 수업을 계획하고 발품 팔아 현장조사를 하며 열정을 다했다.
이런 노력으로 국가인권위 실천사례 최우수상 및 인권논문상, 대한민국인재상, 중고생 자원봉사대회 친선대사상 등의 인권·봉사 관련 상을 받았다.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은 입시를 향해 내달리기 마련. 김양이 대외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정씨의 영향이 컸다.
“공부를 너무 일찍 시작하면 지칠 것 같아 초등학교까지는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했어요. 불안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며 쌓은 내공이 분명 발휘될 거라 믿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 둘 다 다행히 공부는 잘했고요. 공부방 활동도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제가 권했어요. 제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푸른샘은 영국에 다녀왔으니 영어를 가르치면 좋겠다 싶었죠. 동생들이 열심히 따라 하는 모습이 좋았는지 직접 수업계획표를 짜며 열심이더군요.”
고1 여름방학부터는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일했다. 장애인 인권 침해사례가 필요해 연구소에 방문했다가, 관심이 생겨 인턴으로 활동하게 됐다. 지하철·백화점 등 공공기관의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한 뒤 개선해야 할 부분을 진정했다. 김양은 “당시 연구소의 조병찬 선생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며 “어머니도 ‘바람직한 일이니까 열심히 하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장애인이라는 개념은 사람 몸이 아닌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거예요. 환경이 그 사람 위주라면 장애인이 아닐 테니까요. 부당한 부분을 찾아 진정활동을 많이 했어요. 한번은 남자화장실 깊숙이 자리한 장애인 화장실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부모님께 보여드렸는데, ‘이건 장애인과 여성의 이중 차별’이라며 열심히 하라고 독려해 주셨어요.”
김양은 한국외대부속외고 유학반에서 입시를 준비해왔다. 영국에서 귀국할 때는 국내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니 영국과 시스템이 너무 달랐다. 적응을 하긴 했지만, 다른 활동 없이 암기와 시험의 반복인 수업방식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서 외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SAT 준비는 고1 말부터 준비했어요. 2주에 한 번씩 학원 주말반에서 공부했고, 영문법은 체계적으로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힘들어 따로 한 달 동안 지도를 받았고요. 인문·사회 쪽 과목은 다 좋아해서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하니 재미있었죠.”
김양의 꿈은 작가, 변호사, 기자, 활동가 등. 김양은 최근 공익변호사 모임인 공감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인권에 관심이 많아 관련자료를 찾고 번역을 하며 변호사들을 돕는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한다. 8월 출국 전까지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김양의 신조는 “후회 없이 살자”. 이런 김양의 미래에 대한 정씨의 바람은 “사회학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 뒤 문학으로 그것을 담아내 누군가에게 이바지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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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두요
스크랩..^^
좋은 게시물이네요 모셔갈께요~~!
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