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2,660m 낭떠러지에서 ‘세상 끝 그네’를 타다
월간산 2021.08.11
에콰도르 바뇨스
해발고도 2,660m 낭떠러지에 있는 세상 끝 그네를 타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바뇨스를 찾는다.
유명한 볼거리가 없어서 한국인들에겐 조금 낯선 남미의 에콰도르. 바뇨스Baños는 에콰도르 중부에 있는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바뇨스 마을은 걸어서 20~30분이면 끝에서 끝으로 갈 정도로 작아서 모든 것이 눈에 보이니 서두를 것이 전혀 없다. 맛있는 음식과 깨끗한 숙소, 친절한 사람들, 저렴한 물가로 배낭여행자들이 오래도록 머물고싶은 곳이다.
마을 중앙에 있는 메르카도(시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아침식사를 하러 나온 마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싱싱한 과일주스와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길거리에서는 사탕수수 엿 ‘멜코차Melcocha’를 만드는 현지인들의 손길이 바쁘다. 멜코차를 만들다가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시식을 권하기도 한다.
이 작은 마을은 전 세계에서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젊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산으로 둘러싸여서 계곡이 깊고 강물의 수량이 많아서 래프팅뿐 아니라 짚라인, 캐녀닝, 패러글라이딩 등 짜릿한 활동을 다이내믹하게 즐길 수 있으니 액티비티 천국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악마의 냄비 폭포의 뒤태를 보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구름다리.
퉁구라우아 활화산과 마주서다
바뇨스에 도착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서 제일 먼저 간곳이 퉁구라우아Tungurahua 활화산 뷰 포인터. 퉁구라우아 활화산을 걷고 싶은 마음도 무척 컸지만 비용도 시간도 난이도도 쉽지 않아서 통구라우아를 가장 멋지게 조망하는 뷰 포인터를 가기로 했다.
바뇨스 시내에서 병원을 지나 산으로 30분 정도만 오르면 제일 처음 만나는 전망대는 모멘토 아라 비르헨Momento a la Virgen. 바뇨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보니 바뇨스가 정말로 작은 마을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경사도 가파르고 길은 좁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기는 하지만 인기척이라곤 거의 없다.
첫 전망대를 출발해서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화산전망대Mirador del volcan를 지나 화산 뷰포인터에 도착했다. 그렇게도 원하던 퉁구라우아 활화산과 마주섰다. 구름이 많이 껴서 퉁구라우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가끔 정상 부분에 빛이 비추면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매료되어 꼼짝하지 않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 기다리면 일몰은 볼 수 있겠지만 바뇨스 마을까지 내려가기엔 조금 먼 거리다. 산에서 어둠을 맞이하지 않고 하산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빨리 어두워져서 하산은 차가 다니는 길로 들어섰다. 오래 걷지 않아서 마침 같은 방향으로 내려가는 차를 만났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자동적으로 손아 올라갔다. 운전자가 “내려갑니까?” 물었고, 나는 단지 “네”라는 단 한마디 대답만 건넸을 뿐인데 차 문을 열어 주었다. 타는 사람도 태워 주는 사람도 경계하지 않았다.
남미의 산을 걷다 보면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일상일 뿐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휴가 온 가족이었다. 본인들의 숙소는 바뇨스 시내에서 조금 먼 곳임에도 나를 숙소 근처에 내려 주었다. 바뇨스 첫날 느낌이 참 좋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도 즐거운 일들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 끝 그네 옆에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여행객들.
해발고도 2,660m, 세상 끝 그네
모험 가득한 액티비티와 더블어 바뇨스에 오는 여행객들에게 필수코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끝 그네’이다. 세상 끝 그네의 정식 명칭은 ‘라 카사 델 아르볼La casa del Arbol’. 스페인어로 ‘나무집’이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세상 끝 그네’로 부른다. 어제는 걸어서 가려 했지만 오늘은 시내에서 버스로 세상 끝 그네로 향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세상 끝 그네 입구에 내린다.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유사한 그네가 있는데 무려 요금이 3달러였다. 현혹되지 않고 세상 끝 그네로 올라간다. 입장료 1달러를 내고 들어가면 그네는 몇 번이고 탈 수 있지만 줄이 길면 여의치 않다. 무슨 그네를 입장료를 내고 타느냐고 하겠지만 이 그네는 해발 2,660m 언덕의 깎아지른 낭떠러지 끝에 있다. 그래서 마치 세상의 끝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누구의 생각인지 이름을 딱 어울리게 지었다.
그네를 탔던 기억이 가무가물하다. 몇 십 년 만에 처음 그네에 올랐다. 놀이터가 아닌 남미의 해발고도 2,660m의 낭떠러지에서. 세상 끝 그네에 앉아 두 발을 힘차게 구른다. 더욱 힘차게 하늘로 올라가라고 누군가 뒤에서 밀어 주었다. 바뇨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창공을 가로질러 저 멀리 퉁구라우아 화산까지 단숨에 날아갈 것 같다.
더 멀리 더 높이 오르려고 발을 구르며 안간힘을 썼다. 안전장치라고는 허리에 매는 벨트가 유일해서 처음엔 조금 무서웠는데 점점 재미있어졌다. 초록빛에 풍덩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남미의 오지라고 부르는 이곳, 바뇨스. 이젠 바뇨스에 온 이유가 확실해졌다. ‘나’라는 사람 참 단순하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구름에 싸여 끝내 민낯을 보여 주지 않았던 퉁구라우아 활화산
악마의 냄비 폭포
‘악마의 냄비 폭포pailón del Diablo’? 악마의 목구멍 폭포? 번역하는 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 된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악마의 냄비 폭포 입구에 내려준다. 입구에서 내리막 산길을 20여 분 걸어가야 하니 가능한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신고 가는 게 좋다.
입구까지 걷는 길은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있는 이끼식물들이 영롱한 청록색으로 반짝거렸다. 열대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주황색 꽃이 나무 높은곳에 피어 있었는데 유난히 투명하고 예뻐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른 아침이어서 이슬을 머금은 공기가 더 산뜻하게 어깨를 감쌌다.
계곡에 놓여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가서 계단을 따라 오르니 폭포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마지막 지점은 악마의 바위. 이곳에서 바위 속으로 뚫린 터널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터널 통과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악마의 냄비 폭포를 감상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바위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니 엄청난 폭포수가 계단으로 쏟아졌다. 옷도 신발도 폭포수에 젖었지만 스릴 있게 악마의 냄비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그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야만 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폭포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니 폭포수가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구아수폭포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무섭게 떨어지는 폭포가 참으로 장관이었다. 80m 높이에서 떨어진 폭포는 폭포전망대 앞에 있는 큰 웅덩이로 수직낙하했다. 무서운 힘으로 떨어진 물은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마치 커다란 냄비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보여서 이곳을 악마의 냄비 폭포라고 부르나보다.
계곡 사이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폭포 웅덩이 바로 곁에 악마의 냄비 폭포를 조망할 수 있다
스릴만점 래프팅과 계곡에서 즐기는 클라이밍, 캐녀닝
오늘은 오전에는 래프팅, 오후에는 캐녀닝.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날이지만 래프팅은 남미에서 벌써 3번째여서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강물에서도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투어회사 사무실로 갔다. 래프팅 장소는 파스타사강Rio Pastasa. 래프팅하는 동안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주는데 투어사에서 별도의 추가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물에 젖어도 빨리 마르는 소재의 옷을 입는 게 좋고, 수영복을 입으면 최상이다. 신발은 발목을 거는 부분이 있는 샌들. 슈트와 헬멧은 별도의 비용 없이 대여해 준다.
래프팅 시작 전에 강물에 빠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 노 젓는 방법과 기본적인 자세들과 용어를 숙지했다. 앞으로 젓기는 ‘아델란테adelante’, 뒤로 젓기 ‘아트라스atras’, 정지 ‘두로duro’. 그리고 가이드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는 법도 연습했다, 래프팅은 혼자서 하는 액티비티가 아니라 보트에 탄 사람 모두 한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드디어 실전, 코스가 엄청 스릴 있다. 보트를 삼킬 듯이 포효하는 물살에 힘차게 노를 저으며 강물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다가 공중부양까지 살짝 하면서 다이내믹하게 즐겼다. 조금 위험할 정도로 물살이 센 곳에서는 보트에서 내려 다이빙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 번 더!”를 외치고 싶었다. 물살이 그리 세지 않은 곳에서는 보트에서 강물로 다이빙도 하고 절벽에서 내려오는 폭포수를 맞기도 했다. 바뇨스에 간다면 꼭 래프팅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가이드의 지도에 따라 래프팅에 앞서 기본적인 자세와 용어를 숙지하고 있다.
캐녀닝Canyoning은 폭포나 계곡에서 와이어를 연결해 하강을 즐기는 스포츠. 기본적으로 클라이밍 하강코스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스릴 만점이지만 몸으로 혼자 부딪쳐야 하니 물을 무서워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은 절대 접근 금지 액티비티다. 강력한 물줄기에 속절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져도 로프가 안전장치로 잡아 주어 부상 입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캐녀닝을 함께하게 될 사람들은 한 가족이다 나만 남인 셈이다. 엄마, 아빠, 13세, 10세의 두 딸. 베네수엘라에서 왔다고 했다. 어른들도 힘들고 위험한데 아주 작고 여린 여자아이들이 어떻게 캐녀닝을 하지? 부모들도 걱정을 하지 않는데 왜 내가 걱정이 될까? 우리네라면 아이들이 한다고 해도 모두들 말리겠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슈트도 맞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겨우 찾아 입었다.
캐녀닝 장소는 블랑코강Rio Blanco. 클라이밍으로 내려갈 구간은 총 4구간이다. 물살이 보기보다 세고, 수량도 꽤 많았다. 솔직히 나도 조금 떨리는데 제일 어린 막내아이는 너무 즐거워했다. 두 딸은 암벽도 아주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수량도 풍부하고 강폭이 넓은 파스타사강에서 다이내믹하게 래프팅을 즐기고 있다.
첫 번째 단계,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와이어를 팽팽하게 유지하고 한 발씩 계곡을 내려갔다.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 폭포수에서 다리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아주 자연스럽게 줄을 당기면서 안정적으로 계곡을 내려갔다.
오히려 엄마는 무서워하고 불안한 스텝으로 계곡을 내려갔다. 나도 즐기며 편안하게 계곡을 내려섰다. 두 번째 단계. 폭포도 더욱 거세고 거리도 길다. 폭포 사이에 발을 놓고 서기도 힘들 만큼 물이 세차게 흘러내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편안한 자세로 즐겼다.
세 번째 단계는 두 번째와 비슷했지만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공중낙하를 해야 했다. 살짝 긴장되었다. 30m 이상 되는 수직절벽에서 그대로 하강해야 한다. 자세를 취하고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그냥 계곡 아래로 몸을 던지면 되는데 말이 쉽지 대부분 발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웃고 즐기면서 여유 있게 하강을 했다. 엄마는 발을 떼지 못하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야 성공했다.
나도 계곡에 서니 긴장이 되어서 온 몸이 조금 굳어졌다. 온 몸의 힘을 빼고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계곡으로 몸을 던졌더니 어느새 폭포 아래 물속에 내가 서 있었다. 공중에 내 몸이 떴을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짜릿했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긴장했음이 틀림없었다. 아래에서 위를 보니 더 아찔했다. 멋진 가족이다.
블랑코강 계곡에서 열 살 소녀아이가 줄넘기를 하듯 캐녀닝을 즐기고 있다.
바뇨스의 명물, 치차론 포차
남미의 다른 나라에 비해 길에서 돼지껍데기를 튀긴 음식인 치차론Chicharon을 파는 포장마차가 유난히 많았던 에콰도르. 그중에서도 바뇨스의 교회 주변에 돼지껍데기를 파는 포차가 줄지어 있는 모습은 홍대 포장마차 행렬을 방불케 한다. 밤늦은 시간에도 불야성을 이룬다.
숯불에 구운 돼지껍데기를 종이봉투에 담고 그 위에 콘과 샐러드를 올린 다음 다양한 소스로 마무리를 한다. 봉투에 담아 놓은 모양새가 참 먹음직스럽다.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즐긴다. 남미 음식은 대부분 먹었지만 꾸이와 치차론은 도전하지 못했다.
바뇨스는 액티비티 외에도 온천이 유명한 마을이다. 이미 남미의 여러 곳에서 노천욕을 즐겼는데 바뇨스는 스파 개념의 온천이라서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온천욕 대신에 조용하고 편안한 바뇨스 마을의 골목골목을 만끽했다.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골목을 거닐며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과는 ‘올라’로 인사를 나누며 배낭 여행자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여행지와는 다르게 호객하는 이들도 별로 없고 편안한 시골마을에서의 보낸 3박4일이야말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에콰도르와 페루의 길가에는 전통음식인 ‘꾸이Cuy’를 굽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