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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하 창 식
일본의 기초과학 수준은 세계적이다. 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은 많이 향상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세계적 수준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듯해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노벨상이 제정된 이후로 일본 과학자 수상자 수는 무려 20명이 넘는다. 때문에 2015년, 2명의 일본 과학자(가지타 다카아키 (물리학상), 오무라 사토시(생리∙의학상)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데 이어,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단독으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도 그리 큰 놀라움은 없었다.
그러기에 2017년 10월, 그해 노벨 과학상엔 어떤 일본 학자가 또 포함될까 궁금했었다. 뜻밖에 문학 부문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적지 않게 놀랐다.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포함된 또 하나의 일본식 이름에 짧은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던 기억이 새롭다. 시샘과 더불어 부러움이 섞인 탄식일 게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1994년, 오에 겐자부로 이후 거의 20년 만에 문학 분야에서 또다시 일본계 수상자가 탄생했구나 하는 부러움이었다. 물론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5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영국인으로 살아온 작가이기에 영국 작가로 분류되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의 몸속엔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는 해당 분야에서 최고 등급의 전문가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선정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수상자 선정이 국력에 비례한다는 세평까지 나올 정도이니, 반드시 노벨상 수상자라고 해서 그 분야에서 유일하게 최고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문학 분야도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그레이엄 그린, 에즈라 파운드, R.M. 릴케, 쌩 텍쥐페리 등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세계적 대문호 반열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언제나 그래 왔겠지만, 우리나라 출판계에서는 경쟁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시장에 쏟아낸 다. 사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은 1989년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이미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4월,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각각 스티븐스와 켄턴 양 역으로 주연을 맡은,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됨으로써 뒤늦게 관심을 받아 1994년 세종서적 (황봉득 옮김)에 의해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이후, 2010년 민음사(송은경 옮김)에 의해서도 출간되었고,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다시 주목을 받아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작품이다,
사실 그 당시엔 영화도 보지 않았고 그 책도 읽지 않았다. 하지만 39년이 넘는 세월을 교수로 봉직하다 이제 정년을 한 학기 앞둔 시점에, 우연히 지난날들을 회고하고 앞으로 보내야 할 날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남은 나날들’이란 단어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다보니 2017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 기사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작품 이름이 『남아 있는 나날』이었음이 기억났다.
그 책을 읽게 된 연유이다. 민음사에서 발간된 그 책을 꼼꼼히 읽었다. 원작을 각색한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의 영화도 감상하였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 영국 사회의 격동기 속에서 주인에게 충실했던 영국 집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론 젊은 날의 사랑을 회고한 작품이다.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밑의 심연을 드러낸” 것을 노벨문학상 선정이유로 밝힌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 내용에 맞갖게, 그의 작품은,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중 최고중의 한 명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발표에서, “일상에 대해 매우 정밀하고 민감하며 때로는 정감 있게 접근”하며,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뒤섞은 듯한 소설가’가 이시구로”라고 덧붙였다. 그런 평가에 걸맞게, 『남아 있는 나날』 역시 황혼 녘 인생을 보내는 주인공 스티븐스의 지나가 버린 자신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내밀한 기록을 통해, 독자인 우리들로 하여금 역시 인생의 남아 있는 나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깊은 성찰로 이끈다.
일본어 판이나 중국어 판 제목이 ’그날의 흔적‘인 반면 우리말 제목은 ”남아 있는 나날“이 되었다. 원어 제목에 있는 Remains (흔적)을 잘못 번역하여 ‘남아 있는(Remaining)“이 제목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스티븐스가 과거를 회상하며 액자형 구성으로 쓴 작품이라 더욱 ’흔적‘이 맞을 듯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을 보면, ’남아 있는 나날’이 그런대로 괜찮은 제목이라 생각된다. 주인인 패러데이 어른에게 부여받은 6일간의 휴가 여행 마지막 날, 선창가 벤치에 홀로 앉은 그에게 다가와 앉은 어떤 노인이 한 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은 저녁’이다.
소설 서두에 켄턴 양이 스티븐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 앞에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허공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내일을 잘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소설이 주장하는 바,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저녁”인 것처럼 내 인생 중 가장 좋은 순간은 퇴임을 앞두고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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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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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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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 저녁”
그래도 저는 새벽과 따스한 햇살이 번지는 오전을 좋아합니다.
모든 시간대는 나름대로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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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들..
지금도 불타고 있는 초처럼
우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황금처럼 귀한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잘 쓰자.
회향을 잘 하자
좋은 일을 하며..
흔히 끝이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
특히 죽을 때 좋은 상태에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또 다른 좋은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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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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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