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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0 온누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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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글방 스크랩 백두대간 대간 8차 : 삼봉산구간 - 대간에 기대여 사는 이웃들을 만나다
도덕산 추천 0 조회 198 14.08.24 18:14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8차  빼재에서 부항령까지

 

언제 : 갑오년(14년) 타오름달  스물이틀 쇠날 밤  ~  스물사흘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빼재 - 수정봉 - 삼봉산 - 소사고개 - 대덕산 - 덕산재 - 부항령 

                           20.2 km(접속포함) (상황봉 대장님 공지내용)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8월

그러나 아직은 가을을 얘기하기에는 이르고

여름을 붙잡고 지나간 추억의 그림자 크기를 늘리기에는 이미 짧아져 가는 햇볕

짧아져 가는 추억의 그림자처럼이나 초록도 서서히 지쳐만 가고 있다

마음은 가을을 어서 맞이하고픈 마음 간절하지만 초록이 더 지치기를 기다려야 하는 순리

답답한 그 자리를 엊그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녹아 함께 내려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대간 길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는 희망의 예보이니 어서 대간길로 달려가 보자

 

백두대간 7차 등로

 

 

고산분지인 탓에 권력에 밉보인 조선 선비들의 탈출로요 유배지였으며

1951년 이른바 거창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아픔을 안고 있는 거창과

구천동과 나제통문으로 유명한 무주의 경계를 따르게 된다.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목인 삼봉산 구간에서 작은 삼도봉인 초점산도 만나보고

지리산에서 얘기했 듯 잘못된 경계가 얼마나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는지를 소사고개에서 만나게 된다 

 

뼈재에 도착하고

빼재 신풍령(930m)

고갯마루와 일부 지도엔 빼재를 잘못된 지명인 수령(秀嶺)으로 표시하고 있다.

원래 이 고개 부근에는 사냥꾼과 도적들이 많아 그들이 잡아먹은 동물뼈가 가득 쌓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이 ‘뼈재’라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뼈재가 경상도 발음으로 빼재가 됐는데, 이 고개 이름을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면서 빼어날 ‘수(秀)’자를 썼다고 한다.

 

라곤님의 체조시범으로 출정을 위한 준비를 하고

또 숱한 국난 중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맞서 싸울 때 이곳의 토착민들은 험준한 지형 속에서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고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 널리게 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왜구와 처절한 싸움에 임했던 민초들의 한이 담긴 빼재라는 이름으로 우리들만이라도 불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빼재의 또 다른 이름 신풍령(新風嶺)은 추풍령을 본 떠 바람도 쉬어 넘는 새로운 고개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 다른 명칭인 상오정고개는 고갯마루 북쪽 무주에 있는 상오정마을에서 빌어와 붙인 것이다.

 

좀 이른시간에 출발을 한다

상오정 (上吾井)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상오정은 다섯 줄기의 원천(源泉)을 이루는 발원지(發源地)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오정동이라 불리던 것이 후에 고쳐진 것이다

거창군 고제면은 무명의 도승이 입석마을 서쪽을 흐르는 개명천을 건너기 위해 높이 6m, 11m의 큰 돌다리를 놓았다는 데서 유래하여

높은다리[高梯]라 하게 되었는데 이 다리 이름이 곧 면 이름이 되었다.

 

수정봉에 도착하고

 

호절골재 갈림길 - 선두는 직진하는 바람에 졸지에 후미가 선두가 되고

지도를 보지 않는 바람에 경남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의  된새미기재를 확인치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된새미기골이나 호절골 같이 골짜기이름을 붙인 고개들은 마을사람들의 생활환경에서 나오는 이름이기에

유래를 거의 알기가 쉽지 않다.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진행하면 금봉암 갈림길이 나온다

금봉암(金鳳庵)

절과 산 모두가 나한도량(羅漢道場)이라 하여 기도처로 이름나 있는 삼봉산 기슭 좋은 터에 금봉암이라는 절이 있다.

이 삼봉산은 불심(佛心), 산심(産心), 무심(無心)의 三心이 깃들고 금봉암을 둘러리한 바위무리들은 병풍처럼 둘려쳐 봉황의 산세를 이룬다

세 개의 영험스런 바위 샘물이 솟아나 목을 축일만한 데 모두 신령스럽고 영험스런 샘물이라고 하며

천지인(天地人)을 우러른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인연이 깊다

덕유산으로 달리는 큰 줄기에서 동쪽으로 내린 가지에는 시루봉이 솟아 있으며 남쪽 골짜기는 금(金)이 난다

 

조금 오르면 전망바위가 나오면서 봉산리 방향으로 봉서산 형님 부자분을 인증합니다

 

삼각점이 있는 덕유삼봉 정상

덕유 삼봉산(1245m) 1,2,3봉

무주읍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38km지점에 위치한 삼봉산은 해발 1,254m의 거봉으로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三峰)이란 이름을 붙인 명산이다.

덕유연봉(德裕連峰)의 첫번째 봉(峰)우리에 해당되는 이산은  삼봉산으로 유래가 된 지명인 투구봉, 노적봉, 칠성봉이 능선에 도열하고

그 중앙에 금봉암이 자리잡고 있고, 칼바위, 부부바위, 챙이바위 등이 어울어진 정상부는 칼날같이 솟아있고

거창의 진산으로 덕유산의 첫머리에 있어 덕유원봉라고도 부른다. 2봉이 중심이며 멀리서 보면 연꽃이 피어올라오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제 거창을 지나 아주 멀어져 희미하게 보이는 덕유산 방향의 여명을 잡아본다

1951년 '거창양민학살사건'

영문도 모른 채 제 나라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어간 719명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1951년 2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골에서 84명, 대현리 탄량골에서 102명, 과정리 박산골에서 533명이 희생됐다.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기까지 3년여, ‘빨갱이’라는 딱지를 떼기까지 반세기가 흘렀다. 전쟁은 대간에 피를 뿌리고 이념의 상처를 남겼다.

그해 겨울 국군의 작전명은 ‘견벽청야’(堅壁淸野)였다. 이는 <후한서>에 등장하는 병법으로, 벽을 쌓아 고립시킨 뒤 적을 초토화하는 전술이다.

놀랍게도 그때 국군의 적은 양민이었고 그중 14살 이하 어린이가 359명, 60살 이상 노인이 66명이었다.

군인들은 신원중학교 교실에 주민 800여 명을 감금했고, 면장과 지서 주임이 입구에 서서 군경 가족만 따로 추려냈다.

그날 살 자와 죽을 자를 가려냈던 면장도 아홉 해 뒤 주민들의 손에 처참하게 살해됐다.

 

암봉에서의 청목님의 멋진 포즈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박산골은 한동안 귀신들만 사는 골짜기였다. 지명 그대로 신원(神院)이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피가 신원천을 붉게 물들여 그해 여름 신원면 지역의 가재들은 유난히도 불룩하고 붉었다.

유족들은 부패한 주검더미에서 큰 뼈, 중간 뼈, 작은 뼈를 나누어 묻고 남자합동지묘, 여자합동지묘, 소아합동지묘라 적은 비석을 세웠다.

그중 어린이의 뼈가 묻힌 소아합동지묘가 제일 먼저 훼손됐다. 비문마저 흐릿해진 소아합동지묘에 소주를 붓고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거창 사건 희생자에 대한 국가 배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187.html

 

삼봉산 마지막 봉 직전 우측으로 된비알을 친다

 

밤에 걷는 바람에 보지 못한 삼봉산의 위용을 당겨본다

 

개인 사유지 문을 통과하면

 

초점산과 대덕산이 아침을 연다

 

소사마을 도로로 나오면 좌틀

소사고개(690m)   전북 무주(무풍면)와 경남 거창(고제면)을 잇는 1089번 지방도로

소사라는 마을 이름은 집집마다 마루바닥에 가는 모래가 깔리는데,

일년 내내 미풍이 불어 쌓여있는 모래가 모두 날아가 기쁜 마음으로 소사현(笑沙峴)로 불려졌다 한다.

도 경계선이 대간의 마루금을 벗어나 북사면(무주 쪽)으로 약간 처져 있다. 마루금을 도나 군의 경계로 삼는 일반율을 벗어난 것이다.

소사동, 지경내, 부흥동 등 세 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두 동강난 상태다

소사고개(680m)는 경상남도 거창 땅이며 고갯마루에서 전라북도 무풍 방향으로 10여분 걸어 내려간 '도계'(道界) 마을이 경계 지점이다.

따라서 고개 이름을 전라도 쪽에서는 '도마치'라고도 부른다.

 

도로를 따르다 소사마을 직전 들머리 이정표

“부흥동에는 재 넘어 소사동(거창)에 땅을 갖고 게서 농사지으며 세금을 거창군에 내는 출입경작민도 여러 사람 된다”고 말했다.

도경계선이 지나는 부흥동(무주군 무풍면)의 버스정류장을 보면 더 답답하다. 거창과 무주의 시내버스가 각각 예까지만 운행하고 모두 차를 돌려 돌아간다.

삼도화합을 기원하는 기념탑을 세운 삼도봉이 그리 멀지 않고 매년 10월이면 삼도화합 행사까지 열지만 행정은 이렇듯 거창과 무주를 단절시킨다.

동아일보 2005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89693

 

소사마을에서 식후경

 

단체사진 후 출발 - 잡스님 작품

 

대간꾼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마루금을 과감히 버리고

지금 한참 자라고 있는 소중한 땅에서의 생명들을 위해 임도로 우회를 선택하신

대장님의 큰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마루금에 있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대장님의 판단에 따라 임도를 이용하기로 하고 도로따라 내려간다

 

사실 정맥이나 대간길에서 멀쩡한 마루금을 놓아두고 약간의 어려움을 핑계로

마루금을 포기한 다는 생각은 아무리 대장이라고 해도 포기하기 힘든 결정인데

대간길은 마루금이 아니라  대간에 기대어 사는 우리 이웃들의 땅을 잠시 빌려가는 것이기에

당연히 우리 이웃이 그곳에 생활하는 터전을 가꾸고 있다면 보호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소사마을 정류장을 지나 지경마을 정류장도 담아보고

 

초창기 수없이 반복됐던 마루금을 고집하는 대간꾼들과 농장주인들과의 해결키 어려운 싸움들이

곳곳에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있고 서로 믿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철책으로 마음을 닫아 버리는

서로에게 마음의 문까지 닫아 버리게 하는 현실에서 대장님의 결정이 더욱 돋보이는 대목이다

좀 서운했던 부분이 있었던 산우님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는 말이었으면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극복해야할 대상은 멀쩡한 마루금을 출입금지라는 글자 넉자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마을의 경계를 뜻하는 지경마을에서 사과골로 우틀하면서 진행

여기에서 한참을 더 내려가면 부흥동마을까지가 거창군 고제면에 속해 있다.

부흥동사람들은 소사마을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 세금은 거창군에 내야하고 시내버스도 이 마을까지만 운행한다고 하니(2005년자료)

같은 행정구역안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불편할지 답답한 마음이다

 

봉계리 주민들에게 큰 선물을 안긴 고냉지 사과와 삼봉산

 

사과는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자란 사과를 일품으로 알아주는데 이곳도 해발 690에 가까운 고산지역으로  고제사과골로 불리워지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사과를 주제로 한 태마파크가 형성돼있어 이곳 사과의 인기를 실감나게 한다

금방이라도 하나 꺽어 먹어봄직하게 빨갛게 익은 사과가 우릴 자극한다

거기에 삼봉산의 우람한 자태까지 한몸으로 안아보고 있음에 오랜만에 만나는 대간길 풍성한 풍경이다

 

안내판에서 우측길

 

헤어졌던 마루금과 상봉지점

 

우리가 말하는 산이란 이렇게 생긴 것이다라는 명제를 알게 해 준 구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모여 산세를 이루는 대부분의 대간길에서

1,000이 넘는 봉우리가 소사고개를 사이에 두고 삼봉산과 대덕산 초점산이 보여준 위용은

우리 산객들에게는 힘겨운 오름과 내림을 주는 힘든 구간이 되고 말았지만

 

높은 마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냉지 채소, 이것도 이곳 주민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큰 산에 기대어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황금의 땅이었는지 모른다

큰 만끔 받을 것도 줄 것도 많기에

오늘 지경마을 사과골에서 보았던 삼봉산과 초점산을 배경으로 활짝 피었던 사과가 얘기하고

버려진 땅을 옥토로 바꾼 고냉지채소들의 파릇함이 곧 생명의 아름다움을 얘기 하고 있었다

 

이제 초점산으로 계속 올라야 한다

 

국사봉 이정표가 있는 수도지맥 분기봉

수도지맥(修道枝脈)은 분기봉인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국사봉, 봉산, 수도산, 두리봉까지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도계를 지난다. 

깃대봉, 우두산(의상봉),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까지는 온전히 경남 합천과 거창의 군계를 이루고, 

매화재에서 만대산, 솜등산까지 다시 경북 고령과 경남 합천의 도계를 지난다. 

이어 온전히 경남의 합천 땅으로 부수봉, 성산을 끝으로 청덕면 말정마을 황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의 최고봉은 단지봉(1,326.7m)이나 지맥의 이름은 수도산(修道山 1,317.1m)에서 땄다.

 

 

분기봉에서 좀 더 오르면 수도지맥과 수도산에서 갈라지는 금오지맥 줄기가 계속 이어가고 있다

 

작은 삼도봉으로 알려진 초점산에서의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삼도봉(초점산)(1176m)

나무가 별로 없고 억새밭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초점산은 동쪽은 경북 김천시와 서쪽은 전북 무주군, 남쪽은 경남 거창군과 이웃하고 있어 또 다른 삼도봉으로 불린다.

매년 이웃한 주민들이 모여 화합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초점산에서 덕산마을로 내려오면 우는 아기를 업고 달래는 엄마 모습을 한 '모자바위'와 효자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수리봉을 볼 수 있다.

 

초점산에서 본 호랑이를 잡았다는 수리봉

 

봄부터 서서히 물들어 왕성한 시기를 지나 이제 서서히 생을 다하여 가는 신록

여름 정점의 길목에서 우리는 단풍으로 물들어 가게 될 가을풍경을 생각해 본다

여름과 가을 그 사이에 서서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만나게 되는 경계점

사계절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일과 일 사이에도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갈 뿐

 

대덕산으로 진행하다 뒤돌아 본 초점산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을 것이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을 터

가고 오는 것 사이의 경계가 인생이라는 것을 우린 계절에서 배운다

성급하게 가을을 얘기하지만 아직은 여름임을 느끼며 방황하는 시간들이 인생이며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가을을 준비하는 8월 여름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얘기이다

 

초점산에서 대덕산으로 가는 길중에서

 

뜨거운 햇살을 품은 여름 하늘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 하늘의 색깔이 점점 더 푸른 하늘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높아져만 가는 가을 하늘로 가는 과정을 느끼게 한다

그 아래 무심한 듯 흐르는 구름마저 더 하얗게 변해있음을 느낀다

 

잡스님의 작품으로 삼봉산을 배경으로

 

논의 벼이삭들은 여름이 지나 가을 초입의 햇살을 머금어야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생육을 위해서는 짧고 강렬한 힘을 느끼게 하는 여름의 햇볕이 필요하지만

속속이 내면까지 파고드는 낱알의 충만을 위한 조건이 초가을의 긴 햇살인 것이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헬기장을 지나고  헬기장이 다시 나타나면 대덕산

대덕산 (1290m)

무주군의 최동단에 위치한 1,290m의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분기점,

즉 해발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상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이곳으로 살러오는 사람들마다 모두 큰 재산을 모음에 따라 산의 덕을 입었다는데서 연유됐다.

 

대덕산에서의 단체사진 - 잡스님 작품

경상남·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丁酉再亂)때에는 전라병사(全羅兵使) 이광악(李光岳)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며,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亂)의 난 때에는 이 지역의 의병들이 반란군을 물리쳐 국난이 있을 때마다 고장을 지켜 주었던 명산이다. 

대덕산 자락은 역사적으로 은신처이자 구원의 땅이었다.

조선 명종 때의 예언가 남사고는 대덕산 아래 무풍 땅을 이르기를 “국난이 닥칠 경우 이주하는 땅”이라고 했다.

실제로 조선 말 위기에 내몰린 명성황후를 모시기 위한 행궁이 들어서기도 했다.

민병석이라는 이가 지은 99칸에 이르던 행궁, 명례궁은 일제강압기를 지내면서도 무사했지만 해방 뒤 이리저리 팔려나갔다 한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187.html

 

대덕산을 지나 조금 진행하면 우측으로 진입하는 길주의 구간이다

 

얼음골 약수터

 

된비알은 끝나고 오솔길 같은 길이 이어진다

 

덕산재에 도착

덕산재(644m)       

무주 쪽으로 내려서는 무풍 지역은 호남 속의 영남으로 불려왔다.

생활권이 김천이다 보니 말씨도 경상도에 가깝고 생활풍습도 무주 토박이와는 차이가 난다.

무풍을 지나 설천에 이르면 비로소 전라북도 산골 분위기가 제대로 나타나는데, 두 고을 사이에 무주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경 나제통문이 있다.

신라와 백제가 오가던 굴로 알려져 있는 나제통문은 1910년께 일제가 인근 금광의 금과 임산물 등을 가져가려고 인공적으로 뚫은 굴이다.

당시만 해도 ‘기넘이굴’로 불리던 굴은 1963년 무주구천동을 관광지화하면서 명승지 33곳을 지정할 때 나제통문의 이름을 얻고 제1경 자리에 올랐다.

나제통문이 있는 산의 이름은 석모산이고 그 산을 넘나드는 고개의 이름은 기넘이고개였다. 백제와 신라의 깃발이 넘나들던 고개라는 것이 이름의 내력이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187.html

 

김천(金泉)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으로 불린다.

'삼산'은 황악산(1,111m)`대덕산(1,290m)`금오산(977m )을 가리키고 '이수'는 감천(甘川)과 직지천(直指川)을 일컫는다.

그런데 김천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금릉'이다.

예전 김천 사대부들이 중국에 대한 모화(慕華)사상이 높을 때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이태백과 최호를 흠모해 지명을 빌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김천에는 금릉 이외에도 삼산이수. 봉황대, 황학산 등의 지명이 있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무풍면茂豊面)

대덕산은 운장포호두(?莊包虎頭)라는 길지로 명당있다는 풍수지리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구름속에 호랑이가 감춰져 있다”라는 전설때문인지 이고장에서는 대덕산의 정기를 받아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정표가 있는 833봉 직전 갈림길에서 좌틀 - 60m정도 오르면 833.7봉이다

 

김천시 부항면 어전마을로 내려가는 어전재 부근 이정표봉 - 부항령 2.4km

임진왜란 때 피난 온 허인(許仁)이 마을 앞 들판의 형상이 물고기와 같음을 보고 어전(魚田)이라 하였다.

옛날 마을을 지나던 한 도인이 마을 뒤 계곡 폭포 속에 많은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산비탈에 둘러싸인 앞들의 형세가 부항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을 따라 헤엄쳐 나가는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다.

자료 : 디지털 김천대재전

 

삼각점이 있는 853.2봉

 

우리가 내려가야 할 삼도봉터널 위에 있는 봉

 

대간 마루금에 있는 부항령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를 연결하는 고개

가목마을에 있는 고개여서 마을 이름을 따서 가목령 또는 부항령(釜項嶺)이라 하였다.

가목은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의 형상이 가마솥과 같아서 가매실·가매목이라 하던 것이 줄어든 이름이다.

한자로는 ‘부항’으로 표기한다. ‘가목’을 다시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면목(面目)’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자료 : 디지털 김천대재전

 

삼도봉 터널 방향으로 탈출

부항령 釜項嶺 과 무풍 5일장

부항령은 경상북도와 전라북도를 연결하는 옛길로, 작게는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오가는 지름길이다. 

일제 강점기 부항령 남쪽의 덕산재에 도로가 나기 전 김천과 무풍의 주민들 대부분은 부항령을 넘어 무풍장을 이용했다고  

경지가 부족한 해인리 사람들은 봄이면 머리에 보리를 이고, 여름이면 감자를 이고, 가을이면 호두를 이고 무풍장을 향했다고 

해인리 사람들이 이용했다는 무풍장은 김천의 부항면 사람들을 비롯해 경상남도 거창과

전라북도 무주, 충청북도 영동의 4개 지역 사람들이 어우러진 이 일대 최대의 5일장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 임도와 산길을 반복한다

높이 400m가 넘는 곳에 자리한 무풍장이 인근에서 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산준령 자락에서 생산된 부산물,

특히 호두와 담배, 산채와 각종 약재 및 고랭지 채소 등이 많이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김천 지역을 비롯해 무주와 영동 등 4개 도민의 잔칫날과도 같았던 무풍장에는 무주읍장에는 없는 생선은 물론이고, 

진주에서 거창을 거쳐 온 싱싱한 해산물이 무주에는 안 가도 무풍에는 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항령 이정석이 있는 삼도봉 터널에 도착 오늘의 구간도 마무리를 한다

김천시의 지방도에 개설된 터널로는 삼도봉터널이 있다. 삼도봉터널은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에 위치한다. 연장은 390m이고, 총 폭은 11m 높이는 6.8m이다.

삼도봉터널은 1999년에 준공되었다. 삼도봉터널이 생기기 전에 이곳의 부항령이 교통로 역할을 하였다.

부항령은 예부터 김천시 부항면과 무주군 무풍면을 연결하는 통행로 구실을 했던 곳이다. 고개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지방도 1089호선이 개설된 뒤 국도 30호선이 지나는 덕산재와 함께 소백산맥을 넘어 김천시와 무주군을 잇는 고개 기능을 수행하였다.

자료 : 디지털 김천대재전

 

오늘의 뒷풀이 장소인 늘봄 식당

 

이렇게 하루의 피로를 풀어본다

 

이제 가을의 전렁사인 코스모스가 아직은 수즙은 듯

하나 둘 얼굴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내밀고 가을의 꽃잔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는 8월에 보았던 대간길에서의 신록은

확실히 가는 계절의 아픔을 얘기해 주 듯 신록에 점점이 박혀있는 주름살이하나 둘 보이고

그렇게 걸었던 8차 대간길에서 만난 풍경들이

다시 눈앞에 스크린 자막을 형성하며 지나갑니다

 

아무리 가을로 가는 길목이라 하지만 봄부터 여름까지 차곡차곡 생명을 가꾸어 온

잡목과 잡풀들의 질긴 생명력이 앞길을 자주  막아서며 힘들게 했지만

좀 걷기 힘든 산의 높이가

오랜만에 준 맑음 덕분에 오히려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앞을 버티고 서 있는 큰산에서 느꺼지는 풍경을 담으러 애쓰는 산운님들의 표정에 녹아있었고

대간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마을속으로 들어가

한참 수확에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대간에 기대어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었던 기회가

왜 우리가 대간 마루금만을 강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 같아

정말 소중한 하루의 대간길이었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함을 안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이제는 한장의 사진으로만 남아 있을 우리가 걸었던 대간길

순간순간 대간길에서 보며 느꼈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의 사진첩을 만들고

억새와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담고자 했던 

한순간의 울림을 벗삼으며

걷고 또 걸었던 대간길에서의 잔잔했떤 순간들의 만남이

이제 다시 되돌아와 지나고 나니 물거품같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마음이 너무 공허한 탓일까?

 

대자연의 품속에 안기고 대간식구들과 재잘댔던 순간들이 있꼬

지금 혼자서

대간산우님들에게 한장의 추억의 페이지를 남기기 위한 시간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하루 걸었던 대간길을 반추하는 이 산행기가

대간산우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산꾼    도    덕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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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8.24 22:15

    첫댓글 수고 햇시요...^^*

  • 작성자 14.08.25 20:06

    감솨. 마지막 구간까지 짱~~

  • 14.08.25 08:30

    ㅎㅎㅎ 도덕산 대장님 보기 좋네 그려~~... 지송하게도... 스케줄이 불확실혀~~... 9월까지 참석이 어려울 듯합니다...~~.... 조심혀 산행하시구여~~... 삼도봉 지나,, 잡목에 카메라 분실한 지점인데 ㅠㅠㅠ.~~.. 건강 잘 챙기세요..~~봉서산님도 있고,, 인연지기님도 보이네~~ 10월 경에.... 5산 종주할 때나 초대하겠습니다.

  • 작성자 14.08.25 20:07

    그려 불러주기만혀... 보고싶으니께. 일 잘 마무리 하고 관심에 감솨

  • 14.08.25 20:27

    근~~두달만에 날씨가 맑아서 참좋은 산행이었읍니다.새벽바람에 가을도 조금느끼고 ~~
    뜻하지않게 차가막혀 늦어서 속을끓이고 출발했지만 이것도 좋은경험이라 앞으로 미리미리 잘준비하고 다녀야겠다는 다짐도하고..
    함께하신 산우님들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후기남겨주셔서 걸어온길 뒤돌아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수고많으셨어요^^

  • 14.08.25 21:22

    ㅎㅎㅎ 언니 덕분에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아메리카노. . 너무 잘 먹었어용~^^
    다음 지각하시는 분 무지 부담되서 이젠 지각 못할 듯. . ㅋ
    늘 환한 웃음으로 함께 해주어 너무 고마워요. .다라실 언니~^^

  • 작성자 14.08.25 22:06

    정시에 출발하면 더 빨리 세벽에 출발하느니 다라실님 덕분에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니 오히려 좋았습니다.ㅎㅎ
    챙겨주는 것 들고 나오는 남자들도 시간맞추는 것이 쉽지 않은데 여자분들이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우리들이 감사하지요.
    다라실님 같은 분이 계서 산방에 활기도 넘치고 하니 넘 고맙다는 마음뿐입니다. 항께 어울리며 산행하시는 모습 또한 보기 좋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오랜만에 댓글을 장문을 올려 주시니 산행기 한번 도전해 보시죠?

  • 14.08.25 21:23

    잡목들이 막아서고. . 풀들이 발목을 잡고. .
    그래도. . 가야하는 그 길. .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인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구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 . ㅎ

    힘들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맑은 하늘이 있어서 행복했던 산행이었습니다.
    도덕산 대장님께서 올려주시는 후기글 보면서
    다시 함 8차 대간길을 되짚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4.08.25 23:33

    한편의 시를 남기시니 제가 할 말이 없네요. ㅋㅋ 그렇죠?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기에 ...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살아가는 과정을 산길에서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잠시 힘들 때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서 행복을 찾는 여유,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신 정이총무님의 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간 식구들이 다음 산행에 하늘 만 처다보면 어떻게 되지요?

  • 14.08.26 09:26

    서로를 뒤돌아보게 하는 도덕산님의 훌륭한 후기글에 덕담으로 댓글을 이어주시는 산우님들의 글을 보니 마음은 벌써 풍성한 가을안에 있는것같아 좋습니다.
    매번 모두를 아우르는 후기글 남겨주시는 도덕산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구간은 추석 명절 잘 지내시고 가을 산행길에서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작성자 14.08.26 13:22

    그렇게 되네요. 담 구간이면 가을의 냄새가 삼도봉에 피어오를 것 같네요
    좀 긴 기간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대간길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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