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2:1~5 성령의 나타남 2024.5.26.
우리의 신앙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자기의 존재를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일종의 생존전략인 것입니다. 길거리에 심어놓은 쥐똥나무는 요즘 향기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그 꽃은 하얗고 작지만 그 향기는 봄을 알리는 라일락에 못지않습니다. 비록 작고 하얀 꽃이 그 향기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서 벌들이 모여들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향기는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생명력이 있는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을 때입니다. 자기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노력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그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신앙생활은 즐겁고 활기차게 됩니다.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력을 얻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도 남는 활력이 생깁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의 생각과 열정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넘어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할 수 있거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냥 실천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이유와 조건과 방법으로 고민하는 것은 성령으로 인도받지 않는 성도의 방법입니다. 성령께서는 확신을 주셔서 모든 가능성과 방법을 넘어서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런 능력을 받읍시다.
1. 성령의 나타남을 힘입어서 하는 사역은 능력이 나타납니다.
1) 바울 사도의 사역을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지혜와 지식으로만 보아도 충분할 만큼 복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말씀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그 시대의 교회들의 형편과 잘못된 교훈과 상황에 따라서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서신들이 시대를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는 것은 성령으로 감동하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자기를 드리고 사역자들과 함께 사역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교회의 일어나는 일들은 신앙만이 아니라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2) 세상이나 믿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상식적인 가치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세상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셨으면 자기 백성에게 대접받고 존귀함을 받아야 하는데 배척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죽으면 멸망당하는 그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대신 형벌을 받은 것이라면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3) 세상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모르고 삽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신전 앞에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에게 너 자신을 아는가 물어봤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모르고 사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과 달리 자기는 자신을 모르는 것을 알기에 더 나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이고, 이 진리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직은 복음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지게 하시는 구원의 결정적인 사역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성령이 일하셔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하나님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입니다.
1) 우리의 수명이 삶의 변화와 과학의 힘으로 급속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120년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죽음과 부활입니다. 대신 죽어줄 수는 있지만 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은 죄인을 대신해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기로 약속하신 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그 성경대로 나셔서 성경대로 사역하시고 성경대로 십자가에 달려 대속하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그 어떤 인간이나 종교도 따라 할 수 없게 하신 것은 유일한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성령의 나타나심은 세상에 없는 이런 진리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하나님이 구원받게 하신 일이 얼마나 완전한 것인가를 알고 믿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시고는 예수를 우리 구원의 주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도 의지해야 합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3) 성령의 나타나심을 경험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육신으로 알던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인간의 부분적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육신으로만 알고삽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기를 아는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고 그냥 살다가 죽는 짐승같은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로 대속해서 믿는 자를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그런 진리를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3.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구원받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임이 증거됩니다.
1)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하심은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전에도 예수님을 믿고 하신 일을 알게 되었지만 성령께서 주신 능력은 그 믿음을 확신할 뿐 아니라 그 믿음만이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그냥 아는 것과 그 진리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종교 사이에서 자기가 알아서 가지면 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라고 하면 편향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론 옳아 보이지만 진리로 보면 잘못 안 것입니다. 구원받게 되는 믿음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2) 유일한 진리를 말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더 헷갈리게 됩니다. 그럴듯한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것이 복음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어떤 재주나 열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전도가 됩니다. 전도할 수 있는 은혜의 마음과 열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정으로 하는 것과 성령의 나타남으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행 17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아덴의 언덕에서 철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철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3) 성령의 나타남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믿는 것이 유일한 구원을 받게 됨으로 알고 믿는 신앙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받을 대상으로 여깁니다. 지금 이단들은 자기 집단이 유일한 구원받는 곳으로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전도하려고 시도합니다. 거짓도 확신이 있으면 힘을 발휘합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서 그런 사람에게도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서 구원받게 하는 증인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