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좋은 관계는 행복한 삶의 핵심 요소이다. 타인과의 좋은 관계가 행복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사회변화로 인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단절되고 고립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단지 노년층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과 아동청소년 같은 전세대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고립으로 보고 실태 및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의 개념과 등장 배경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부족하거나 지원체계가 거의 없으며, 자기 스스로도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외부적 고립과 내부적 고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외부적 고립은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없거나, 가족·친구·이웃과 연락이 없거나,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부적 고립은 외로움(loneliness)과 고립감(perceived social isolation) 같은 주관적 인식을 의미한다. 사회적 고립은 하나의 정교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우산개념에 가깝다. 사회적 고립과 혼용되고 있는 은둔은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아동청소년기는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은둔이라는 개념으로 아동청소년기의 고립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고 사후적인 접근일 수 있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은 최근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현상이 되었지만,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관계망이 끊어지고 교류할 사람이 없는 노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점차 연령을 낮추어 중장년, 청년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이 아직 일반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는 이르지만, 최근의 지표들을 살펴보면 아동청소년들에게도 이러한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인 사회변화와 관련이 있다. 공동체가 변화하고 개인화되고 있는 사회문화적 흐름 속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비대면적인 관계의 증가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소속되고, 교류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연결망이 약화된 상태로 지내게 만든다. 사회적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공동체의 변화, 사회적 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고립 현상은 맞물려 있다.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의 실태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아직 없으나 사회적 관계망과 외로움의 측면에서 실태를 살펴볼 수 있다. 통계청 국가승인통계인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사회적 관계망과 외로움에 대한 문항을 추가했는데, 이 조사에서 10명 중 1명(9.5%)의 아동청소년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응답했다. 7명 중 1명의(13.9%) 아동청소년들은 자기 스스로 타인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자신이 ‘항상’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동청소년은 100명 중 1~2명(1.4%) 가량이었다.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기간을 물어봤을 때 절반 가까이(43.5%)가 6개월 미만이라 응답했고, 2년 이상이라고 응답한 아동청소년도 4명 중 1명(25.3%) 꼴이었다.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비율은 청년 대상 조사에서 나타난 비율과 같거나 약간 높은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아동청소년기의 사회적 고립 문제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외로움의 양상은 코로나19 이후 변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외로움 경험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거의 3명 중 1명의 아동청소년이 이유 없이 외로웠던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외로움 경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관계망의 변화가 저연령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 ‘이유 없이 외로운 적이 있다’에 대한 초중고 학생들의 연도별 추이 변화
비고: ‘그런 편이다’와 ‘매우 그렇다’의 합산비율
출처: 유민상 외(2023). 아동청소년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이행연구: 아동청소년 인권실태.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지표들을 요약하자면, 아동청소년 10명 중 1명꼴로 외부적인 관계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7명 중 1명꼴로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100명 중 1~2명꼴로는 자신이 항상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아동청소년 4명 중 1명꼴로는 이러한 감정을 느낀 지 2년 이상 되었다고 응답하였다. 외로움은 아동청소년 3명 중 1명꼴로 나타나고 있었다. 어느 기준으로 실태를 파악하느냐에 따라 그 규모와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의 다양한 범주 혹은 범위는 일종의 스펙트럼(spectrum)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의 범주를 단순화하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서 심도가 깊은 대상과 얕은 대상으로 분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데 어느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대상자의 규모나 정책 비용을 과다·과소 추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책설계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기반으로 아동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과 특수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 함께 필요하다.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 대응 방향
아동청소년기 사회적 고립에 대한 대응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안과 밖에서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 정책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는 대략적인 정책 방향에 대해서만 제안하고자 한다.
- 생애전반기 취약성에 대한 대응
첫째는 아동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고립 취약성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아동기 부정적 생애경험과 지나친 경쟁에 관한 것이다. 먼저 아동청소년기 부정적 생애경험(adverse childhood experience)은 아동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성인기의 사회적 고립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학교폭력, 부모의 부재나 부적절한 양육환경 등에 대한 대응을 체계적으로 한 역사가 길지 않다. 또한 아동청소년이 이러한 부정적 경험 속에서 받은 상처들이 잘 회복하는지에 대한 관심 또한 낮다. 이러한 경험들은 생애 동안 반복해서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고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업스트레스와 경쟁에서 기대보다 낮은 성취 역시 사회적 고립을 촉진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 은둔 사례들을 보면 중산층 이상 가정의 사례들도 있는데,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면서 점차 외부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아동청소년기 고립에 대한 대응은 아동청소년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어른들에 대한 교육과 상담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고립 ‘상태’와 ‘과정’에 대한 체계적 대응
청년기 사회적 고립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회적 고립은 한 개인에게 고정된 특성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태라는 것, 다른 하나는 사회적 고립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둔 청년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된 계기를 보면 아동청소년기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학교 부적응으로 인한 학업 중단 등의 사건이 있었던 경우가 있다. 가정과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교류하고 소통하기보다는 단절되고 괴리감을 느끼는 상태로 성장하게 되고, 자신이 속할 곳과 해야 할 역할이 사라지면서 점차 사회와의 연결도 줄어들고, 단절되고, 고립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립 상태는 한순간에 나타나기보다는 개인의 삶에서의 경험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누적되면서 발생한다. 취약성이 쌓이면 사회적 관계로부터 멀어지거나 자기 스스로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현상들이 발생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취약성은 또다른 심리정서적 취약성과 결합되어 점차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가게 된다.
장기적으로 고립된 청년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마음의 문을 열고 도움을 청했을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에게 자신의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거나, 선생님을 찾아가 문제를 토로하거나, 상담센터나 정신의학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약 처방을 받은 경험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도움 요청이 제대로 된 도움과 연결되지 못한다. 도움 요청에 대한 실망은 다시 고립된 생활로 들어서게 하며 재고립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상태로 장기화의 경로에 들어서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하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손을 잡아줄 수 있는가 고민이 필요하다.
- 지지체계 강화 및 회복력 증진
마지막은 지지체계를 강화하고, 회복력을 증진시켜 주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의 해소는 결국 관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가벼운 관계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지지받을 수 있는 관계까지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지체계는 사적으로 구성될 수도, 공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도 함께 사회적 고립을 빠져나올 수 있는 내적 역량이 필요한데, 이는 기초적인 사회성 역량과 함께 회복탄력성으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고립된 당사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은 매우 중요하지만, 상담만으로는 사회적 고립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문화, 스포츠, 놀이, 사회참여 활동 경험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교사 혹은 활동가와 동료 혹은 친구들을 만든다면 이들이 외부적 충격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해주고, 사회성 역량도 증대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립의 완화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 해소될 수 없으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혹은 관계 역량)을 기르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가며
아동청소년기 고립은 사전적, 예방적 접근을 통한 생애주기적 고립의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아동청소년기의 고립이 청년기 고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립으로 들어서는 악순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다시 사회와 연결되어 성인기 자립을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회정책으로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은 남아있다. 사회적 고립은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으나 매우 개인적 차원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 학교 안과 밖의 환경이 이러한 문제에 잘 대응할 수 있는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아직 이에 대한 사회 정책적 대응은 매우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할 필요가 있다.
- 필자 : 유민상
- 소속 :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출처 : 교육정책 네크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