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논과 논 사이 물길엔 녹색 뱀들이 가득했지 길고 가느다란 녹색 뱀들은 징그럽지도 않았고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았고 물 속에서 얌전히 놀고 있었지 논에서 출렁대던 물이 마르는 동안 녹색 뱀 한 마리 사라지고 돌담 아래 웅덩이가 마르는 오후에도 녹색 뱀 한 마리 사라졌지 나락이 자라는 논을 따라 내가 심부름을 갈 때도 녹색 뱀 한 마리 사라지고 누나가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누를 때마다 녹색 뱀들은 한 마리씩 사라져갔지 마침내 녹색 뱀들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