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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평초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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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나 - 들이 ♡ 스크랩 남도 여행 3박4일 /1
두타 추천 0 조회 47 14.06.18 13:0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울진 내려가다가 산세 지세가 넘 평화로운 곳이 있어서 잠시 세우고... 본 자운영과...

 바다쪽도 아름답고 평화로왔지만 ...산세가 유려하게 흘러 전답 과수원 형성이 아늑했던 곳이었음

 요로코롬

 김해에서 저녁을 하며 여러 부산친구들이 있지만 갑자기 보잘 수도 없고 마눌과만... '좋은데이'로 한 잔...

 언양떡갈비를 김해에서...

 

 아침을 진짜 맛나게 다 먹고 나서 '사진생각'이 나기에....재첩정식....

 거제도내의 흥남해변... 소변이 마려워서 내려갔다온....ㅎㅎ

 옥포조선소.... 거제도내의 옥포만

 옥포항

 남도의 서정을 풀어온, 재첩과 벚굴과 은어의 섬진강, 하동포구...

 재첩배

 

 

 

 하동 악양의 섬진강 모래사장과 버들숲과 하동포구공원...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려넣던 호랑가시나무의 열매가 신기해서... 아래는 점심으로 벚굴모듬정식.....

 

세월호참사가 근신을 종용하긴했지만 평생에 다시없을 3박4일의 연휴, 이런 기회를 평생의 후회거리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남도여행!

남도 삼백리 붉은 황톳길의 문학투어!

붉게피는 남쪽나라 찔레꽃을 찾아가보는 향기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것이다.

   

딸 혜린이가 예약해준 호텔마저 취소시키고 시간되는대로 마음 내키는 곳에서 민박이든 모텔이든 잘 요량으로 떠나는 나그네길이자 자유여행이라 혹시 몰라 텐트 침낭도 준비했고 어느물가에서의 밤이 혹 있을까싶어 낚시도 두어벌 준비했다.

결국 한번. 써먹지도 그럴 틈도없었지만 ...그렇게 준비해가니 한결 더 여유롭고 흐뭇했었다.

 

5/3일 토요일 30분 일찍은 14:30에 집으로와서 아내를 태우고 장날인 북평장에 들러 튀밥을 사고(요즘 담배를 끊어 입군것질용으로 준비있어야할듯해서 ) ....시원스런 산천의 신록과 푸른 동해바다를 사열하며

삼척을 출발한 시간이 15:50분....

 

중도에 산세 유려하게 흘러내려 전답들이 계단식이나마 수천은 농사로 먹여 살릴만하여 족히 몇 마을이 이루어져 있을듯한 곳인데 마을이 안보여 한 번 살펴도보고 여유로운 밝은 햇살의 바다도 좀 즐기며 가자고 울진 병곡부근에서 한 번 쉬고는  단숨에 포항까지 막힘없이 내려갔고 경주에서 하동을 찍어 나가던중에 좀 막혔지만 한가로운 마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로 양산까지 내려가서 김해로 빠져나가 남해고속을 타다가 해가지고 초승달이 보이는지라 김해에서 숙박하기로하다. 낮에 풍광을 즐기며 해야지 어두운 밤길을 달려나갈 여행이 아닌것이다.

휴모텔에 숙박을 정하고 옆 언양불고기집에서 만족스런 분위기와 서비스에 저녁을 '좋은데이'한 잔과 같이하다. 밤산책도 한 바퀴하고...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대강의 스케줄도 짜고 영화도 보고 한 두세시간 잤나보다.

 

2일차(5/4)

아침을 7시쯤에 불고기집 바로앞에 섬진강 재첩국밥집이 있어 아주 만족스런 해장을 할 수 있었다.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가 주인장이 가꾸었을 남도의 수려한 수목들과 꽃들을 감상하고 '가덕도 등대'를 쳐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가기보다 거제도를 돌아 통영으로의 길을 택하다.

 

연휴임에도 의외로 막힘없이 시원히 뚫린 길을 따라 말그대로 남도의 풍치를 제대로 누릴 수가 있었다.

흥남해변인가엔 일부러 내려가보기도하고 몇 컷 사진도 찍었다.

옥포해전 기념관까지 갔다가 조선소며 주변 풍광만 즐기고 돌아나오다,

곳곳의 대밭들이 기세좋게 형성되어있고 날로 쑥쑥 자라오를 죽순들이 더러 눈에 띄는 것도 이채로왔다.

 

거가대교도 지났고 해저터널길도 지나 통영을 거쳐 고성의 '공룡이야기' 휴게소에 들렸다가 하동을 향하다.

반짝이는 섬진강 은물결들과 너르고 고른 강변의 백사장들과 곱게 피어난 버들숲들이 장관을 이루는 강변풍광에 지리산자락을 타고내린 청신한 악양골바람들이 또한 한 시절의 풍미를 더해 주었다.

 

차 따러들 모두 출타했을 동매마을을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인심이라 고깃근이라도 전하고 갈까했는데 여차저차직하여 매련없이 다닥다닥 붙어달린 매실들과 누루스럼 익어가는 보리물결들 고운 동매의 풍광만 즐기고 휘돌아 올랐다가 슬로시티 길인가로 돌아나오다.

 

최참판네는 굳이 오르지않고 하동포구 평사리공원과 하동송림공원에서 남도의 젖줄중의 하나인 섬진강 물줄기를 담뿍 기억에다 가슴에다 탑재하다.

도로변 재첩전문점에서 모듬요리로 점심을 하고(강석 김혜영등 여러 유명인들의 사인있는)( 아침으로 김해에서 먹었던 재첩국이 워낙 맛나서 점심에도 재첩의 본고장이니만큼)화개 매화마을을 돌아나오려다 아쉬움두고 광양 백운산 아래 진상면을 돌아올 요량으로 섬진강을 건너다.

 

광양에 들어서서 진상역앞 농협 알뜰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며 '텃밭도서관'을 물었더니 자기네 집이란다.

허 참 세상 재밌고도 좁지... 농부형님 큰아들을 만나고

텃밭도서관을 한 번 휘둘러보고 나오다.

농부형님도 보고 나올 요량이었는데 뵈질않고 아이들만 몰려와 제세상인 천국이더라.

 

나그네 갈길이 그리 여유만만은 아닌 처지라 남도 진짜배기 길은 보성벌교 강진부터라는 생각에 길을 재촉하여 순천 낙안으로 향하다.

산길을 훠이훠이 달려 저녁쯤에 이르니 한 4시30분 ...거진 다섯시가 다 되어 낙안읍성을 둘러보며 '금목서'라는 나무를 알게되다.

 

당종려나무들 외에도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가꾸어지고

심어져 있었는데 명패도 거의없고..물어볼만한 사람도 그렇고

설령 물어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낙안읍성에서 '샤넬5'의 향수원료로 쓴다는'금목서'를 강진 영랑생가에서 '돈나무 ' "꽝꽝나무' 를 영암 도갑사에서 '굴거리' 목포 삼학도 이난영공원에서 태산목등을 새로 알게 되었지만 큐틴질의 반짝이고 잎 두꺼운 낯선 나무들이 많았는데 소귀나무나 굴거리나무들이 구분이 명료치 않은게 많았다.

 

영랑생가와 백련사 미황사등의 오래된 굵은 동백나무들도 인상적인 만남이었지만.

특히나 금목서 은목서는 각기 만리향 천리향으로도 불리며 가을에 피는 꽃의 향기가 일품이라는데 북방한계선에 걸릴듯하여 좀 아쉬웠다.

 

낙안읍성내의 민박들이 많긴해도 협소하고 답답할듯했고 더 길을 재촉해야할 입장이라 벌교로 나온길에 저녁으로 '꼬막정식'을 먹고싶었는데 '1박2일'프로그램을

탔던 맛집이라 젊은 아이들이 줄지어 서있어 해 지기전에 '태백산맥' 조정래선생 문학관을 찾았으나 퇴근시간후라 이미 닫혀있어 분위기만 집사람과 어림잡고 사진 몇 장 남기고 내려오다.

 

낯 선 풍경은 바로 옆에 천태종의 큰 절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일모래가 초파일임에도 이맘때의 다른 절들에서 보던 풍경들과는 사뭇 다르다싶어 의아했다.

그 큰절에 인적은 하나없고 그 넓은 주차장엔 절이름 찍힌 크거나 작은 어떤 차량도 없고 저쪽 한구석에 자그마한 타우스류의 승합이 달랑 한대였고 초파일 행사용 등불이나 행렬물들도 하나 안보이고 얼마안되는 빈 연등들이 조금 걸려있을 뿐이어서 지역민들의 심도를 가늠케했다.

 

그때 요즘 불교대학에 열심인 상록이 전화가 와서 그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특히나 호남에서 요즘 기독교 천주교 인구가 늘어 큰 사찰들마저 운영이 어렵다는 지경이라하는데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다시 돌아가봐도 꼬막집 줄은 그대로라 옆집을 갔더니

손님도 별로 없는데 재료가 다 떨어졌다한다.

부랴부랴 아까 오던길가에 있던 부페집까지 되짚어갔지만 그냥 한식부페일 뿐이고 꼬막요리는 뵈지도않고 음식들이 바닥이라 돌아나오며 보성엘 가보자고 벌교를 떠나왔는데...아뿔싸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보성은 분명 군 소재지임에도 벌교보다도 규모가 안되는 시골소읍같았고 식당이나 모텔이 눈에 띄질 않아 늦었지만 강진 나가는 길을 서둘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강진까지 나갔다간 그나마 식당들이 다 문 닫을 것같아 중간쯤의 장흥에 들러 정남진 한우불고기로 만족스럽지 못한 저녁을 겨우 하다.

한우 무슨 축제가 있었던 모양으로 열려있는 몇 식당이란곳은 다들 고기를 따로 사와서 스스로 구워먹는 곳들 뿐이었기에 귀찮기도하고 번거롭기도하여 단 한곳의 불고기백반집을 찾았더니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점심저녁도 챙겨먹지도 못하게 바빴다가 이제 겨우 문닫으려한다는 집이었으니....

 

대충 때운다고는했으나 먹은것같지도않은 저녁을 먹고 출발하니 비가 온다.

강진에 드니 하나 보이던 모텔마저 불이꺼지고 아무데도 숙소로 할만한 곳이 보이지않았다.

아침에 보니 꽤나 여러곳 호텔 모텔들이 있던데... 인근 장흥의 한우축제등의 영향이었던 모양이었다.

비는 오고 밤은 깊어가는데 잘 곳을 마련 못했으니 난감한 상황이라 텐트를 준비해 가긴했으되 그걸 이 상황에 쓰고싶지도 않아 한 곳의 모텔에 문의하니 외곽지에 나가보란다.

 

물어서 성전이라는 쌩판 첨 들어보는 동네를 내비에 입력하고 우중의 밤을 달려 조심해 가는데도 얼만큼은 지나쳐 되돌아 찾아보니 자그마한 촌동네인데 사학비리로 폐교된 '성화대학'이 있는 곳이었고 장모텔이 하나 보여 들려보니 다행이 방이 있다한다.

 

?25,000짜리 촌 방이나마 집사람이 엄청 고마워한다.

어제의 호텔방에 비하면 말도 아니었지만 달게 잘 잤다는데 난 좀 아니어서 새벽같이 눈이 띄어 빗방울이 좀 있었지만 우산을 받고 마을을 살펴볼 겸 아침운동을 산등성이 캠퍼스로 올라가봤다.

검색해보기론 교비횡령 등으로 폐교처분된 학교인데 나름 시설자원들이 아까워 보였다.

 

항공관련과와 호텔경영 골프 등 특성화학과의 면모를 유추해볼 수 있는 시설배치가 있었고 나름 청춘들이 배움의 터라고 한때 정기들을 쏟아모았을 학교가 아침인데도 적막감으로 쓸쓸했고 대학에 의지하고자했던 몇몇 가게점포들이 간밤을 묵었던 모텔과함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나 나중에 본바로 그 조그만 성전이란 동네는 그 남도에서는 꽤나 여러곳으로 통할 요지였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침 먹을만한 곳도 없었고하여 강진으로 나와 적당한 밥집을 찾긴했는데. 그리 만족스럽진 않은 백반으로 한20%쯤 부족한 남도의 아침을 하게되었다.

손님도 계속 드는 식당이었는데 창에 프린팅해둔 메뉴내용에 비해 좀 부족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멀지않은 곳의 영랑생가는 기대했던 분위기 정서를 잘 간수하고 있는 곳이었다.

비록 모란은 다 져버린 뒤였지만 옛 초가집과 마당가의

아담한 화단들과 옛모습의 우물과 오랜 연륜을 보여주는 살구나무와 뒷편의 대밭과 차나무들과 특히나 몇 꼭지씩 빨간꽃을 달고 선 오랜 동백들이 그러했다.

 

관리인 아주머니가 아주 바지런하게 이곳저곳을 거두고 치우고 깨끗이 생가를 보전하는 모습도 살가왔는데뒤꼍의 차밭에서 차묘목을 여러그루 두 줌 씩이나 솎아서 비닐까지 찾아서 갈무리해주셔서 더 뜻깊었고 의미롭고 고마웠다.

옆의 문학관도 두루 둘러보고 몰랐던 영랑시 몇 편도 새로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다산이 유배에 처해졌을 때 거처하며 저술에 임했던 사의재를 찾았고

연해있는 동문주막도 함께 사진에 담았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는데 이웃 할머니께 무슨나무냐고 여쭤보았으나 모르셨고 나중 생각해보니 팽나무로 생각되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

다산과 초의선사의 다회와 시향이 기대되는 곳으로 동백숲길이 일품이던 곳이었다.

백련사 동백숲길에 게시된 고재종의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도 좋았고

법당에서의 시간도 초의선사의 시대로 돌아가 함께해보는듯하여 남도여행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만덕산 절마당에서 굽어보는 강진만에는 옛부터의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모습이었고 뻘밭에 먹이사냥에 여념없던 새들도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 논의 보리물결들과 함께 또하나의 볼거리를 연출해주었다.

 

다음으로는 두륜산 대흥사와 달마산의 미황사를 찾아보고 싶어 해남으로 길을 잡았다.

도중 두륜산 전에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들르니 해남윤씨가의 종택이며 고산의 시가문학 박물관도 잘 준비되어있어 여행의 실을 더욱 튼실히 채워주었다.

 

놓쳤다면 큰 후회가 될 뻔했던 곳으로 이제껏 보아온 어느집안의 종택이나 저택보다도 넓고 든든한 뒷산에 (덕음산)연해 삼면이 시원히 트인 성벽만 없었지 그대로 성채같은 위용이 느껴지는 훌륭한 터의 고택이다.

 

고산 본인도 제2의 무학이라 할 정도로 풍수에도 일가견이 있었다는데 그 윗 선대 4대조부 대에 잡은 터라 하였다.'삼개옥문 적선지가'로도 명망높은 해남윤씨가의 종가이기도한 고가는 녹우당을 비롯 추원당 어초은사당 고산사당등으로 이루어져있었고 뒷편에 비자림산책로엔 특이하게도 감자가 맥문동등과 화초자라듯 심겨져있었다. 녹차밭도 어초은사당 앞으로 조성되어있고 종손이 지금도 살고있다하였다.

 

유물관에도 흥미를 돋우는 볼만한 옛 시절의 흔적들이  많았지만 마냥 지체할 수가 없어 길을 이어 나오다.

 

두륜산 대흥사는 그냥 지나치고 두륜중학을 끼고 북평면으로 나와 완도로 가는 4거리 식당에서 부페로 점심을 하다. 예까지 왔으니 땅끝마을도 들려가자고 휘돌았던 것은 황금연휴임에도 예상외로 차가 막히는 곳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하기도했다.

 

사구미 해변의 바람도 쐬며 땅끝 조각공원과 해양자연사박물관을 거쳐 땅끝동네를 대충 훑고 한바퀴 남도를 달려 달마산 미황사에 이르렀다.

내일이 초파일인 절은 옛적 우리네 설명절을 맞는듯한 설레임마저 감도는듯하였으니 병풍같은 기암봉들에 둘러쌓여 녹림에 안도하고 있는 미황사가 고왔다.

 

대웅전에 올라 국태민안과 집안가족 친지 친구들 모든 중생들의 평화와 구복을 한 후 옆단에 마련된 세월호희생자들의 제단에서 명복을 비는데 솟구치는 눈물을 어쩌질 못했다.

바쁜 사찰사정을 생각하고 악양동매도 상면없이 지쳐왔기에 굳이 금강스님도 따로이 찾아볼 생각을 않고 하산해서 영암골을 향하다.

 

도선국사의 도갑사를 가는 길에 무위사도 들려 국사의 아련한 옛 정취를 흠향해보았다.

오고보니 어제 묵었던 성전이란 동네의 지척이더라.

월출산 도갑사엔 다 저문 저녁에 올라가 공양미를 시주하고 향을 사루고 아쉬운 걸음으로 내려왔다.

 

맛집을 검색해서 월출산공원내의 '기찬랜드'를 찾아  품격과 분위기의 맛집  떡갈비정식에 드디어 '잎새주' 한 잔을 곁들이고 야경의 계곡을 한참 산책후 시내로 나와 월출산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침 운동겸 어제 영랑생가에서 얻은 녹차묘가 걱정되어 남도의 흙을 좀 더 보충해주러 차를 끌고 외각으로 나오니 '낭주골' 간판들이 눈에 띄더라.

낭주는 바로 영암의 옛지명이라는데 이미자의 '낭주골처녀'라는 노래 덕에 '낭주골'이라는 지명이 정겹게 다가왔고 느껴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암아리랑이란 노래도 가요로 이 고장 출신 가수 하춘화가 부른 노래였다.

옛가락의 아리랑으로 전래된 것인 줄 알았는데...

 

목포가 가까운 곳이니 들려가기로하고 아침을 달려 내비를 따라 영암호와 대불산단을 지나 목포에 들어 우선 삼학도를 찾았다.

 

소규모로 조성된 이난영공원이 있어 그의 애조띈 '목포는 항구다'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난영나무는 그녀의 수목장 나무라는데 한시절을 풍미해간 가인의 사연이 항구를 배경으로 아련하였다.

 

돌아나오며 삼학도오일뱅크에서 주유후 선창가 항동시장의 식당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을 못 찾아 그냥 유달산으로 올라갔다.

초행길인 목포에서 교과서에 나오던 노적봉에 올라 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몇 컷의 사진을 찍고 예전엔 커피숍이었다는 '하얀풍차'에서 백반으로 여전히 몇 프로 부족한 아침을 먹다.

 

초파일인데 어제 여러 곳의 절에를 다녀오곤 정작 오늘은 한군데도 못 가볼 일정인가 싶다.

아침에 월출산을 떠나오기전에 도갑사를 다시 다녀올까도 하였지만 그러면 목포는 못 나갔으리라.

 

남원을 찍고 나오다 담양에 내려 죽녹원은 소쇄원 대밭으로 대신한다는 기분으로 소쇄원에만 다녀오다.

남도 딸기를 두 상자나 샀고 면앙정과 고경명의 자취를 소쇄원에서 만나다.

담백 검소한 풍류정원으로 조광조의 제자였던 제주양씨 양산보가 당쟁소란스런 벼슬길을 포기하고 음풍농월하던 곳이라한다.

나름 정감 가는 곳이었다.

 

죽녹원을 스쳐지나온 것이 좀 아쉬웠지만 섬진강 상류

임실의 정취를 보러 가던 길에 '혼불'문학관을 들려볼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혼불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작가적 위상을 가히 짐작케했고 반가운 일이기도했다.

글 한번 써 볼 만 하다는 생각도 들게했던 걸음이었다.

 

1930-40년대를 살았던 민중들의 생활상을 완벽하게구현해내었다는데 한국의 세익스피어로 표현해 놓은것을 보았다. 17년에 걸쳐 12,000매,5부10권의 대작을 엮고 미혼인 채로 51세에 암으로 영면했다는 작가의 오롯한 삶이 외로워보이기보다 온화하면서도 장엄하게 느껴져옴은  나만의 감상이 아니리라.

 

내 나름 즐겨하는 스토리는 아닌듯하지만 꼭 한 번이라도 읽어볼 요량이다.

읽고 난 후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엔 좀더 시간여유를 갖고 전주에도 있다는 문학관과 공원도 함께...

 

하여튼 이번여행 아니라 이때까지 본 문학관 중 단연 최고의 시설규모이면서도 거슬리거나 과장이 하나도 느껴짐 없이 아름답고 작가는 위대하게 느껴졌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임실로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돌려 귀가로 회차한 시간이 오후 2시50분 경이었다.

남원을 나와 88도로(12)를 달려 함양 거창 고령을 거쳐 대구로 나오다.

 

길은 확포장 중이라 1차선 뿐이었고 해인사부근 합천부터는 차가 밀렸으나 내심 여유가 절로 나 어느새 대구도 통과하여 포항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포항에서도 빨라야 두시간 거리인대도 집에 다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쉬엄쉬엄 달리는 길에 해는 저물고 7시쯤에는 영해 인근 생선구이백반집에서 저녁을 먹고 함께 1,200여km(3000리)를 달리며 고생한 애마에게 감사를 표하며 밤 9시경 집에 이르다.

 

붉게 피는 찔레꽃은 이제 꽃망울들이 나오는 이른철이라 구경 못했고 지천에 자생할듯했던 춘란들도 흔하게 보진 못했지만 대나무나 동백들 굴거리 당종려 등속의 남도 풍광들은 역시나 이국적 정취들을 자아내기도했지만 돌고돌아 이곳저곳 살펴보면 다른모습과 생각들로들 살아갈 것 같은데 여지없이 같은 감성들이고 같은 밥상들이란게 때로는 믿기지않을듯도 하였다.

 

다 못 들르고 스쳐와 아쉬운 곳들이 많긴해도 일정에 비해 누리고 얻은 바가 많아 흐뭇한 여행이었다.

 

최명희와 그녀의 혼불을 속 깊이 캐볼 수 있게된 것도 그렇고 섬진강과 동매 벌교등지의 지리산 자락들과 영랑의 시심이 피어나던 생가 부근 등 여러 곳 남도의 서정들을 가슴에 담아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했다.

 

특히나 호남의 대표적 정신적 고향이라할 목포를 들려온 것은 전라좌수영의 답사가 없었을지라도 이순신과 그시대의 정확치못하여 의아스런 편벽한 고증들마저 바로 잡아주는듯 하였고 이난영씨의 노래들과 동류의 가요들의 색다른 매력에 빠지게되는 계기도 되었다.

 

낭주골의 하춘화네에대한 이해도 깊어졌고...

남도의 옛스런 애환들은 기대만큼 그렇게 눈에 띄이진 않았지만 남도의 흙과 물과 바람들에서 어느정도 전해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값지고도 유쾌한 여행이었다.

 

2014.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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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19 15:10

    첫댓글 담양에 더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을텐데, 소쇄원만 다녀왔구나.
    발길 닿는 곳이 머무르는 곳이라 생각하고 떠났으니 조금은 불편이야 있었겠지만
    나름 낭만적인 여행을 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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