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순례자처럼

오늘 복음말씀의 주된 내용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가능한한 아무것도 가지거나, 지니지 말 것을 당부하십니다. 저희 수도회에 입회한 형제들은 초기 양성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무전순례를 합니다. 돈 한 푼 없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홀로 세상을 순례합니다. 저 역시 9박 10일과 7박 8일, 이렇게 두 차례 무전순례를 체험하였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난 두 차례의 무전순례체험이지만, 고생스러웠던 두 차례의 무전순례체험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첫 번째 무전순례체험을 떠나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무전순례체험을 떠나기 전날,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풍족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먹을 것, 입을 것, 필요한 것들, 모자람 없이 성장하였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도 해 보지 않고 자라온 제가 이제 무일푼으로 세상에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9박 10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일이 막막하였습니다. 그런 막막함으로 순례를 떠나기 전날,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공동물품방에서 큰 배낭을 하나 구했습니다. 그리고 무전순례체험에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물품들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습니다. 마땅한 잘 곳이 없을 것이고, 빨래를 해 건조시킬 수 없을 것이기에 속옷을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여름 장마가 온다는 소리에 비옷도 챙기고, 우산도 챙기고, 여분의 양말과 신발도 챙겼습니다. 긴 시간을 혼자 지내야하므로, 지루할수 있으니 몇 권의 책도 챙기고, 기도하기위해 성무일도, 성가책, 매일미사책도 챙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물품들은 보이는데로, 생각되는데로, 가능한한 많이 많이 챙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늦은 밤시간까지 물건들을 챙겨넣으니, 배낭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가득 물건을 챙겨넣고, 배낭을 어깨에 매니, 배낭의 높이는 제 키를 한참 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문전순례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평창동 수도원에서 명동성당까지 걷고, 일단 서울을 빠져 나갈 목적으로 지하철 승차권을 하나 구걸하여 동서울 역에서 하차하고는, 하루종일 청평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빵집에 들러 유효기간 지난 빵으로 끼니를 떼우고, 걷고 또 걸으니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 해 졌습니다. 날이 져물어갈 즈음, 저는 조금씩 걷기가 힘들어 짐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발의 물집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국도변 휴게소에 잠시 들러, 신발을 벗고 두 발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루를 걸었을 뿐인데, 이미 양발 발가락에는 심한 물집이 잡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양발의 물집의 원인이 무거운 배낭에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를 위해 무분별하게 챙겨넣은 그 물건들이 오히려 저에게 독이되어 걷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때 난생 처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버려야 하는 구나, 버리고 왔어야 했구나. 나를 위해 소유했던 것들이 이렇게 나를 힘들게 했구나”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를 향해 홀로 순례하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순례의 길을 걸어가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 쉽지 않은 길을 걸으며, 하느님께 왜 내 길만 이렇게 힘드냐고, 왜 내 길만 이렇게 가파르냐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길이 가팔라서가 아닙니다. 길이 울퉁불퉁해서가 아닙니다. 길이 멀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배낭에 짐이 너무 한 가득이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배낭에 쓸데 없는 짐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의 어려움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분에 넘치게 나를 위해 쌓아둔 내 배낭에서 필요없는 것들을 내려놓아 내 배낭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벼운 배낭을 어깨에 메면, 길이 아무리 멀고 가팔라도 우리는 끝까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