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그룹에서 요직을 맡고 있던 신춘호는 어느 날 형인 신격호 회장의 그늘을 벗어나 독립했다. 농심라면이란 회사를 차리고 롯데라면과 차별된 제품을 출시하였으나 신통치 않았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고 있던 그는 일본에서 잘 팔리던 바삭바삭한 스낵에 눈독을 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비스켓, 과자 등이 주류였고 스낵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일본 회사에서 기술을 이전해 주지 않자 독자 개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능력 있는 연구원들을 투입하여, 부드러우면서 값이 싸고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스낵, 바삭바삭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도 변질되지 않고 본래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스낵을 개발하라 독려하였다. 그러나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바라는 제품은 잘 나오지 않았다.
튀김 온도를 맞추기 위해 수없이 태우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먹기에 적정한 강도를 유지하는 게 새로운 스낵의 최대 난제였다. 신춘호 회장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며 계속 연구원들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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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춘호 회장>
어느 날 점검을 해 보니 4.5톤 트럭으로 80대분의 밀가루가 투입되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바라는 결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농심 신춘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집념과 지루한 시험 끝에 마침내 1971년, ‘새우깡’이 탄생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전혀 새로운 개념의 과자 ‘새우깡 스낵’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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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는 2016년까지 77억 봉이 팔리고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출시된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심심찮게 매출을 올리는 효자 종목이다.
농심은 새우깡 개발의 기세를 몰아 매운 맛의 ‘신라면’을 개발, 라면 시장의 돌풍을 일으키고 이어 두꺼운 면발의 ‘농심 너구리’로 연속 히트를 쳤다.
R&D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끊임없는 신제품의 출시는 기업의 생명이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한 기업가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