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사회”를 위한 열린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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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취재> “광주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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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면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지금은 외국인 100만 시대를 돌파했다. 그 맨 앞 열에 “노동자의 집”이 있다.
1986년 5월 “노동상담소”를 개설한 게 시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994년 성남주민교회(당시 이해학 목사) 지하에서 “외국인노동자의집”이 뿌리를 내렸고, 2000년 1월 서울 구로동에 본부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광주 외국인노동자의집(이하 “광주”)은 2002년 10월에 개설되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절반이 임금체불 해결이고, 이어 산업재해, 의료보험 혜택, 직장 알선 문제 등이다. 언어 장벽과 무비자 입국(불법체류) 때문에 많은 장애를 받는다. 광주에서는 한국어교육, 무료진료, 컴퓨터교육, 미용봉사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의지할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곳 “쉼터”에 와 머문다. 1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사는 사람도 있다. 보통 스리랑카인 6~10명, 방글라데시인 4~6명, 인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프레스, 가구, 의류 등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필자가 취재하러 간 날에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현장에 봉사활동 나가고 거의 없었다. 충남 태안에서 숙식하며 1주일째 기름을 제거 중이라고 한다.
이곳을 들락거리는 건 자유이지만 앞으로는 ‘쉼터 내규’를 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집’도 개설할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방글라데시인 위주의 쉼터를 한 곳 더 늘려 운영하고 있다. 시내 건물 한 층(약 100여 평)씩 두 곳이다. 중국 노동자들은 수가 많아 다른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숙식은 무료이지만 부담이 많아 한 끼에 1,000원씩 받을까 고려 중이다. 정부 지원은 거의 없고 서울 본부 교회에서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비가 지원되고 있다. 직원은 전에는 자원봉사였으나 2003년 노동부가 “사회적 일자리”라 하여 ‘임금을 지불하는 사회 봉사자들’ 명목으로 만든 15명이 상주 근무하고 있다. 성남, 안산, 광주의 노동자의 집이 콘소시엄 식으로 하여 “사회적 일자리” 인증을 받았다.
최의승 소장(38세)은 한신대 신학과 졸업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사회철학 공부를 6년간 하고 2개월 전에 이곳으로 부임해온 젊은 지도자이다. 그의 업무 추진 방향이 야무지다.
“이제부터 우리나라는 혈통주의를 지양해야 합니다. 혼혈신생아가 20%나 되는 다문화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외국인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정책적으로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스컴도 신중히 보도해야 합니다. 한국인 사업자들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만 대변해선 안 되고 그 역(逆)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현재 우리 쉼터에 있는 사람들 중에 범죄 행위와 관련해서는 거의 신고된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존하는 법을 교육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수상의 조카가 한국에 입국을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성남의 김해성 목사가 그곳 수상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라 망신이니 조카를 귀국시켜 달라고 했는데, 한국의 조카는 거절했다. 그곳에서 월 10만 원인 봉급이 한국에선 100만 원이 넘으니 돌아갈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당장의 숙식이 문제일 정도로 나라가 가난하지만 스리랑카는 일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어를 빨리 배운다. 외국 생활을 많이 한 최 소장 말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언어를 똑바로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말보다 쓰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반면에 그들은 한국인의 정서에 빨리 동화되고 어린이처럼 말하는 습관을 키웁니다.”며 한국인의 뒤쳐지는 영어 실력도 이런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곳에서 만난 란준(35세)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출신이다. 6년 전에 한국에 와서 버클 제조회사에서 월 120만 원의 봉급을 받아 거의 고국으로 송금했다. 고국에는 아내와 8살, 5살 된 자녀가 있다. 현재 일자리가 없어 두 달째 놀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은 거의 긍정적이다. 때로 현장에서 욕먹고 매 맞고 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서툰 한국어 때문에 작업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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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임백호 사장님 따라다니다 이런 데도 취재했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소외받는이의 관심에 감사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