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uffy (플루피)
플러피라는 그룹이 처음 결성된 것은 94년이다. 당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던 아만다 루츠와 앤지 애덤스는 자신들의 아지트격인 한 카페에서 그곳에 출연하는 한 가수가 너무나도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룹을 만들기로 결심을 했다. 즉각 이들은 실행에 옮겼다. 아만다 루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음악인인 집안의 자식으로 이미 어렸을 때부터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앤지 애덤스는 드럼을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나머지 멤버로 오스트리아 태생인 기타의 브리지트 존스를 영입해 일단 그룹의 형태를 갖추고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실은 아만다 루츠의 거실이었고 그곳에는 낡아서 소리도 제대로 안나오는 앰프 몇 개 뿐이었으며 마이크조차 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한번 결심한 바를 이러한 상황이라고 해서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어 판도라 옴스비 고어(Pandora Ormsby-Gore)라는 베이스 주자를 구했다.
멤버가 모두 갖추어지면서 이들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펑크록으로 잡혀나갔다. 멤버 각자가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으로 생각해보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면서 동시에 지역클럽을 중심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미숙한 실력이지만 싱글앨범을 제작해 발표했다. 95년 9월 파크웨이 레코드(Parkway Records)를 통해 [Hypersonic]을 타이틀로 총 3곡('Hypersonic', 'Crossdresser', 'Psychofudge')이 담겨있는 앨범을 내놓았다.
이 앨범은 판도라 옴스비 고어의 베이스를 들을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앨범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앨범자켓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실린 사진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렵지만 영국 지방신문에 1면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플러피 멤버들은 단순한 재미를 위한 시도였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 앨범으로 플러피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당시 약물에 중독 되어 있던 판도라 옴스비 고어는 단체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탈퇴의사를 밝히고 그룹을 떠났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나머지 멤버들은 미련 없이 그녀를 보내고 자신들과 어울리는 베이시스트를 찾아다녔다.
결국 맨체스터 출신의 헬렌 스토어를 새로운 식구로 맞아 들였다. 전열을 가다듬고서 두 번째 싱글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이듬해 1월 이들은 같은 레이블을 통해 3곡('Husband', 'Deny Everything', 'Cheap')이 담긴 앨범 [Husband]를 발표했다. 이것 역시 영국을 비롯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플러피는 유럽을 도는 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인그룹으로서 모험이었고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플러피는 자신들의 성급함을 깨닫고 방향을 돌려 최대시장인 미국을 공략했다. 미국을 자국에서 자신들을 보는 신기함의 눈길이 아닌 실력으로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벌이자 예상하지도 못한 반응이 왔다. 가는 곳마다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각 매체는 물론이고 여러 레이블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자신을 인정해줬다는 보답으로 이들은 96년 7월 뉴욕에서 녹음한 실황을 [5 Live]라는 미니 라이브앨범으로 미국에서만 발표했다.(이 앨범에는 'I Wanna Be Your Lush', 'Deny Everything', 'Psychofudge', 'Bed Of Vomit', 'Scream' 등 5곡이 담겨져 있다.)
확실히 미국투어는 효과가 있었다. 싱글앨범을 발표했던 영국의 파크웨이에서 정식으로 계약하자는 요청이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영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지역의 배급권을 가진다는 조건으로 이미 음악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A&R인 톰 자타우트(Tom Zataut)와 5만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톰 자타우트는 게펜(Geffen)에서 근무할 당시 건즈 앤 로지스, 스톤 로지스 등을 담당했던 베테랑으로 독립하면서 마이너 레이블인 인클레이브(The Enclave)를 설립해 신인이라 할 수 있는 플러피를 첫 번째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영국 런던에 있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프로듀서는 섹스 피스톨즈와 건즈 앤 로지스 앨범을 담당했던 빌 프라이스(Bill Price). 오랫동안 활동을 안하던 그가 이 앨범 때문에 다시 음악계에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기대를 걸었던 앨범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정식 데뷔앨범은 이런 과정을 거쳐 96년 9월에 발표되었다.
펑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난폭함이나 거친 맛을 이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타 그룹에게는 없는 섬세함이 이들에겐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공을 많이 들였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공을 많이 들였다는 뜻이다. 녹음도 깨끗하게 잘 되었고 곡 각각마다 성격을 살리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어눌한 아만다 루츠의 보컬도 이들에 대한 느낌을 좋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뒤로 갈수록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데뷔앨범으로 이 정도라면 성공이다.
현재 이들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국은 자신들이 활동하기에 알맞은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