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북면 편.
(연혁)
칠북면은 변진 12국의 접도국 이래로부터 칠토, 칠제의 영토였으며 고려 태조 23년 이후 칠원현의 북면이었으나 1895년 5월 현이 군으로 승격되고부터 칠원군 북면이 되었으며 1906년 칠원군이 함안군에 병합되므로써 함안군 칠북면이 되었다.
칠북이란 칠원읍성 북쪽에 위치하므로써 북면이라 하였다가 광무 10년 9월 14일 칙령 제96호에 의해 폐군이 된 칠원의 고지라 하여 칠자를 더해 칠북면이라 하였다. 장춘사 석조여래좌상과 무형문화재를 포함한 6개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으며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거 운서, 운곡 양리의 4개 마을이 칠원면에 편입되므로 현재 7개리 16개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지명유래)
:: 화천(化川) : 칠북면 화천리 화천마을 화천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0.7km정도 떨어진 평야마을로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위치하고 있다. 옛날 이 마을 바로앞에 큰 시내가 흘렀고 시내를 따라 수양버들이 많이 있은 관계로 류천(柳川)이라 불렀다. 그 후 이 시내가 마을 뒤로 흐르고 수양버들이 없어짐에 따라 동명(洞名)을 화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화천마을은 농악이 유명한데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전 동민이 정성껏 제사를 모시고 농악을 앞세워 지신을 밟던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제때 농악이 일시 중지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전국농악경연대회 수상경력이 많다.
:: 성호(成湖) : 칠북면 화천리 성호마을 성호마을은 면소재지 서남쪽 2.1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1962년 제방축조 및 1971년 경지정리로 수리안전답으로 변화하였으며 미곡과 과수를 주로 생산하는 분성배(裵)씨 집성촌이다. 마을뒷산 능선이 월자형(月字形)으로 되어 있고 제방 축조전 침수로 큰 늪이 형성되어 월호(月湖)로 불러왔다.
마을명의 변화가 없다가 1950년대에 와서 성호로 개명(改名)하였다. 마을입구에 3백년생 회화나무와 그 밑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우물 옆에 나무를 심으면 마을이 태평하고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남양(南陽) : 칠북면 덕남리 남양마을 남양은 면소재지 서북쪽 약 2.5km 떨어진 낙동강변에 위치한 연안차(車)씨 집성촌이다. 마을의 역사는 500여년 되며, 동방이라 불렀었는데 유래는 차봉인이라는 사람이 함경남도 영흥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따뜻하고 살기좋은 이곳으로 일가족을 거느리고 내려와 정착하여 동방이라 불렀다는 설과 칠원현의 동쪽이므로 동방(洞方)이라 하였다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해방후 행정구역 개편시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마을명을 최초로 남양이라 했다.
:: 령서(靈西) : 칠북면 이령리 령서마을 면소재지 서북쪽 약2.4km 떨어진 평야마을로서 신라때부터 취락을 이루어 왔다고 전해져 오며 서쪽을 령서, 동쪽을 령동이라 부른다.
령서동을 말에 비유하여 동구(洞口)를 말 입, 마을안길을 말 목구명, 뒷산을 말 어깨라 하였는데 옛부터 말갈퀴에 해당되는 마을중앙에 대밭이 있었다. 일제시 대밭을 가로질러 도로를 만들려고 대나무를 베어 내니까 대나무에서 피가 분수처럼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 멸포(蔑浦) : 칠북면 봉촌리 봉촌리 외봉촌에 있는 지금의 밀포(密浦)라고 생각되며 관개사업(灌漑事業)등으로 지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바닷물의 조수가 낙동강변에 위치한 이곳까지 밀어 부쳤다 하여 밀포라 칭하게 된 것이다. 이 나루는 마산의 해산물과 대구의 농산물을 유통시키는 교통의 요지로써 행상인이 많이 사용했다. 칠원읍지 산천조(山川條)에 이첨(李詹)의 시 한 수가 전한다.
:: 단계(丹溪) 못골(池谷) : 칠북면 검단리 단계마을 단계는 면소재지 동쪽 약 1.4km 떨어진 곳의 평야지 마을로 신라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며, 이 골짜기의 땅들이 대부분 황토라서 이 동네앞으로 황토물이 가득 흘러가는 관계로 물이 붉다하여 단계라 하였다 한다. 단계 본동의 오른쪽에 있는 자연마을이 못골이다.
이 뒷산 감골산(柑谷山)의 칠원윤씨 묘역이 함안의 8대 명산중의 하나라 한다. 이 산의 모양이 소머리를 닮아서 소앞에 항상 물이 있어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못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곳을 못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아산(牙山) : 칠북면 검단리 아산마을 이 마을의 역사는 7 ~ 8백년으로 추정하는데 옛날 선인(仙人)이 기러기 목을 타고 살기좋은 곳을 찾아헤매다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래서 기목이라 부르다가 일제때 아산이라 고쳐 불렀다.
아산동입구 좌편 밭언덕밑에 호박샘이 있는데 여름에는 차가운 물,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는다. 이 샘물은 많이 먹어도 배탈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이 샘물에 세 번정도 씻으면 완쾌된다고 한다.
:: 가연(佳淵) : 칠북면 가연리 가연리는 어연동(漁淵洞)과 가동(佳洞)으로 분동(分洞)되어있다. 옛날 분동되기전에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소멍에처럼 생겼기 때문에 가동(佳洞)이라 했다. 동명이 좋지 않아 '연못에 고기가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잘 사는 동네'란 뜻에서 가연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 장군 바위(將軍岩) : 칠북면 가연리 가동마을 가동마을 옷생이란 골짜기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 이곳에 사는 장군이 이 바위에 앉아 짚신을 삼았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장군이 앉았던 엉덩이 자국, 발자국, 손으로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장춘사(長春寺) 약수 : 칠북면 영동리 동태 장춘사는 신라 현덕왕(815년)때 무염국사(無染國師)가 당시 신라를 침입하는 왜적을 도력으로 물리쳤으므로 왕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국비로 지어준 사원이라 한다. 약수는 장춘사 대웅전 우측계곡에서 나오는 물인데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었다.
당시 무염국사를 수행하던 덕원이란 스님이 등창병과 위염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무염국사께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도하던중 새 한 마리가 심하게 지저귀는 것이 신기하여 지팡이를 찔러 보니 물이 나와 그 물을 덕원스님께 먹였더니 깨끗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