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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협상술 36계
Negotiating in
제 1 계: 하늘(왕)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瞞天過海 만천과해)
해설: 명백한 것 속에 비밀사항들을 숨겨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때때로 가장 미묘한 속임수는 가장 명백한 곳에 있다. 사람들은 명백해 보이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이 계략은 중국 전국시대에 근원을 두고 있다. 약 2,000년 전, 중국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서로 싸웠다. 진(秦) 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초 나라에 유명한 전략가인 백리해가 살고 있었다.
진 나라의 왕은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백리해를 고문으로 두고 싶어 했다. 문제는, 초 나라의 왕이 진 나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도록 그를 초 나라로부터 빼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사용된 계략은 백리해가 친 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이라고 덮어 씌우는 것이었다. 당연히 초 나라의 왕은 진 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이 자국 내에서 활개 치고 돌아 다니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진 나라 군대가 들어 와서 그들이 말하는 도망자들을 잡아 가도록 허용했다. 도망자 하나를 위해 피를 흘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진 나라 군대는 초 나라에 들어 와서 백리해를 묶어서 무자비하게 끌고 다니다가 친 나라로 돌아 갔다..
초 나라의 왕은 백리해의 가치를 알지 못했으므로, 경내에서 활개 치고 돌아 다니는 도망자 하나가 줄어 들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했다. 백리해가 진 나라에 도착하자 왕이 그를 접견하고, 비단 옷을 입힌 후 그를 최고 고문으로 삼았다.
중국에서 협상할 때에는, 매사가 보이는 것하고 늘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 겉으로 명백하지 않다. 무엇이던지 간에 표면상 나타난 것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아니 된다.
흔히, 중국에 온 서방의 비즈니스맨들은 그들이 본 것에 감명을 받는다. 일례를 들면, 어느 중국 회사가 서방에서 온 방문단을 공항에서 맞이 한 후 무수한 근로자들이 앉아 있는 건설 현장으로 안내해서는, 이곳이 바로 그들이 짓고 있는 초대형 상가와 아파트 단지라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오리들로 가득 찬 들판으로 데려 가서, 이곳도 자기 땅이며, "홍콩의 샤틴(Shatin 역자 주 : 홍콩의 New Territoy에 있는 쇼핑, 음식과 문화 중심지))" 같이 완벽한 위성도시를 건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문단이 진흙 밭을 지나 가자 오리들이 놀라 달아 났다.
그 이후, 중국측은 시 정부 간부들이 참석한 연회를 베풀었고 시 간부들은 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메인 코스로 모두 북경 오리요리를 먹었다.)
외국 방문단은 대단히 감명을 받고 돌아 갔으며, 그 시에서 여러 좋은 프로젝트를 확보한 훌륭한 파트너를 잡았고, 시 정부 관리들도 그 파트너와 그 투자 프로젝트들을 지원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외국 투자자들은 그들이 보았던 근로자들이 앉아 있었던 것은 금융이 중단되어 공사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또한, 오리가 가득 찬 들판도 누구든지 현금만 들고 오면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시 정부 관리들은 그 시에 투자하러 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지원한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실지로, 지방 관리들은 중국측을 서방의 투자를 유치해 오는 중개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투자자들이 들판을 지나 갈 때, 오리들은 북경 오리 요리 신세가 되지 않으려고 달아 난 것이다.)
제 2 계: 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 나라를 포위한다(圍魏救趙 위위구조)
해설: 적의 약점을 공격(말하자면, 적의 대리인을 공격한다)해서
분리/지배(divide and rule)한다.
전국 시대에 위 나라가 조 나라를 공격해서 주요 요새를 포위함으로써 조 나라를 에워 쌓았다. 곤경에 빠진 조 나라의 왕은 동맹국인 제 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위 나라의 군대가 조 나라를 물 샐 틈 없이 포위한 것을 보고는, 제 나라 왕은 위 나라와 직접 맞붙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사실 제 나라 왕은 동맹국을 돕느라 자기 군대를 희생 시키기 보다 자기 힘을 보존하여 두고 싶었다—또 한편으로는, 조 나라가 망하면 위 나라가 바로 자기 코 앞에 마주 하게 되므로 동맹국을 돕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묘책을 강구해 내었다. 제 나라는 전혀 예상 밖으로 나왔다. 제 나라는, 위의 전 군대가 조 나라를 포위하느라고 바쁜 사이, 비교적 수비가 허술한 위의 수도에 군대를 보내 포위하였다. 위 나라는 할 수 없이 조 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제 나라 침략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서둘러 철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신의 적(경쟁 상대)이 당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왜냐 하면, 당신의 적(경쟁 상대)도 최선을 다해 그것을 구하고 보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어느 유럽의 대기업이 선전(Shenzen)에 있는 한 호텔에서 후베이(Hubei) 성에서 온 중방 측과 중요한 산업 프로젝트를 협상할 때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협상 마지막 날, 쌍방은 몇 개 문제에 있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창 분위기가 뜨거워 졌을 때, 중국측은, 놀랍게도(사실, 충격이라고 해야 옳다), 부근에 있는 후베이 요리 전문 식당에 점심을 준비해 놓았다고 선언 하였다. 공격의 초점이 바뀐 것이었다.
유럽 측은, 이것들은 특히 중요한 문제들인 만큼, 협상을 계속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중국 측은 점심이 이미 차려져 있으니(그리고 돈도 지불했으므로) 모두들 식당으로 장소를 옮겨야 한다고 우겼다(그리고 물론, 후베이 식당에 점심 준비가 되었으니 유럽 측으로서는 무례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 측의 고향 요리를 먹지 않겠다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점심은 곧, 중국 측이-외국 측 사람들을 가급적 여러 명, 그리고 가급적 많이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돌아 가면서 외국 측 사람들과 건배(ganbei)하는 경연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연회 중에, 중국 측은 식당의 임시 무대(일반적으로 중국식 결혼식에 사용된다) 위에서, 양측 간에 이미 서명했던 비밀유지 협약을 위배해서, 합작 법인이 세워 질 것이라고 발표해서 유럽 측을 놀라게 했다. (이 또한 충격이라고 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가지 코스 요리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오타이 건배를 한 후에, 외국 측은 무더운 선전의 오후에-에어컨도 없고, 창문을 열어 놓아 바깥의 소음과 먼지가 방안과 취한 유럽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가운데-협상 테이블에 다시 돌아 와 연신 트림과 딸꾹질을 하면서 나머지 문제들에 대한 자기들의 입장을 정리하여야 했다. (그리고 전분이 듬뿍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마오타이에 절은 점심 식사의 몽롱함 속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중국 측은 돌아 가면서 술을 마시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서 중요 협상 대표자들은 별로 마시지 않았기에 조금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작하실까요?" 그들이 물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토의하다 점심 먹으러 떠났지요,,,,."
제 3 계: 남에게 빌린 칼로 죽인다. (借刀殺人 차도살인)
해설: 남의 자원을 이용해서 목적한 바를 이룬다
전국시대 초 나라의 고관이었던 비무극은 승상 낭아가 당시 승승장구하던 장군 백극완을 총애하는 것에 내심으로 질투하고 있었다. 비무극은 백극완을 죽이고 싶었지만 물론 자기 자신의 손으로는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승상 낭아가 백극완의 집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백극완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또한 승상의 이번 방문에 기대 또한 컸다. 그래서 그는 낭아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비무극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에 대해 비무극은 백극완의 검이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접대할 때 가장 중요한 시점에 그의 유명한 검을 보여 주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백극완은 크게 기뻐하여 완전 전투 복장을 한 그의 병사들을 접대실의 양쪽에 차렷 자세로 도열시키고 번쩍이는 그의 검을 앞에 놓고서 낭아를 기다렸다.
한편, 비무극은 낭아에게 백극완이 승상을 살해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백극완을 방문 할 때 미리 조심을 하라고 경고했다. 낭아는 헛소문이라며 백극완을 방문하러 떠났다. 낭아가 당도해서 완전 전투 복장을 한 부대가 백극완의 양쪽에 도열해 있을 뿐 아니라 백극완 본인도 번쩍이는 검을 앞에 놓고 있는 것을 보자, 낭아는 순간, 함정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부대에게 백극완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백극완은 비통에 젖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 이후 낭아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한 비무극의 말만 믿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비무극은 큰 권력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은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면, "내게 칼을 갖고 와!" 라고 소리지르곤 했다. 이 때에는, 댜오위타이 영빈관(그녀가 문화혁명 기간 중에 자신의 사적인 숙소로 사용했다)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성질을 달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만 했다. 장칭은 문화혁명 기간 중 "문화"라는 매개와 왕홍원(Wang Hong Wen), 장춘챠오(Zhang Chun Qiao), 그리고 야오원유안(Yao Wen Yuan)-이들이 "4인방" 중의 3인이다-등의 부하들을 이용해서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대신해 더러운 일을 하도록 했다.
"남에게 빌린 칼로 죽인다"는 전략은 남의 도구를 사용해서 자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중국 내 고위층-그들은 직접 사업에 뛰어 들 수 없으므로-이 후원하는 홍콩 내에 설립된 전진 기업(front companies)이야 말로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완벽한 예이다. 특히, 홍콩의 재벌이 중국 내의 관계(guanxi)를 돈독히 하기 위해 그 비용을 부담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남에게 빌린 칼로 죽인다"는 전략을 아주 훌륭하게 사용한 한 중국인의 이야기이다. 하이난(Hainan)도 출신인 왕(Wang)씨는 1989년(형편이 별로 좋지 않을 때)에 중국을 떠나 1990년에 어느 외국의 여권을 가지고 돌아 왔다. 조국 재건을 위해 거대한 투자를 하고자 하는 백만 장자 화교라고 주장하면서-당시 중국은 외자 투자에 목 말라 있었던 관계로-그는 빠른 속도로 중국의 수 많은 고위 지도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완리(Wan Li), 류화칭(Liu Hua Qing), 그리고 왕전(Wang Zhen) 같은 많은 지도자들과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왕씨는 그 사진들을 가지고 다시 해외에 나가 중국에서의 광범한 '관계(guanxi)를 자랑한 후, 그를 믿고 국가 기초시설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종자돈으로 사용할 돈을 내놓겠다는 화교들을 확보했다.
이제 돈도 확보하였고 프로젝트는 도처에 있었으므로, 그는 그의 홈 베이스인 하이난으로 달려가 지방 관리들과 친구들에게 자기가 중앙 정부의 핵심 권력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현금 지원자들도 동시에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몇 개의 부동산 프로젝트가 곧 나타나자 이들 프로젝트에 종자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대부분 하이난의 갓 시작한 부동산 붐에 편승한 토지 투기였다).
그리고 나서 왕씨는, 중국의 파워 엘리트들과 찍은 사진들과 하이난의 하이커우(Haikou) 시에서 한창 시작되고 있는 실제 프로젝트들을 보여 주면서, 더 큰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외국 투자자들은 이것에 솔깃해 져서 왕씨의 회사를 해외에 상장시키기로 결정하고서는, 증권사, 변호사 및 은행들에게 자기 자신들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제 왕씨는 은행들이 그의 뒤에 있으니(모두들 왕씨의 막강한 '쑟�(guanxi) 때문에 그들이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이난에서는 이전 보다 더욱 더 영향력이 있게 되었다. 그의 명함에는 하이난 옐로 페이지 보다 더 많은 회사이름이 적혀 있다.
제 4 계: 적이 지칠 때까지 편안하게 기다려라(以逸待勞 이일대로)
해설: 인내를 갖고 적을 지치게 만들어라.
전국시대 위 나라의 방연이 제 나라를 공격하러 떠났을 때, 그의 숙적인 손빈-손자의 후손이며 이전에 방연에 의해 양쪽 다리가 잘라진 바 있다-은 "그를 맞아 서둘러 싸움을 하지 말아라. 그냥 기다려야 한다-서두르지 말아라"라고 자기 부대에게 주의를 주었다.
방연을 맞이하러 나가 서둘러 싸움에 말려 부대를 피곤하게 하는 대신, 손빈은 계수나무가 가득 찬 계곡에서 기다리는 것을 택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최정예 궁수들을 가파른 계곡의 양쪽에 배치시키고 나서, "계곡에서 불빛이 보이면 쏴라!" 라고 그들에게 일렀다.
그리고 손빈은 "이 나무 아래에서 방연이 죽을 것이다" 라고 써서 계곡 끝에 있는 나무에 붙여 놓았다.
한편 방연의 부대는 제 나라의 포위로부터 위 나라의 수도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회군해야 했다. 방연은 그 지친 부대를 계속 밀어 부쳤다. 반면, 손빈의 부대는 계곡에서 느긋하게 잠복하고서 방연의 부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연의 부대는 계곡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이 계수나무만 빽빽한 것을 발견했다.
손빈의 부대는 어디 갔는가? 날은 어두웠고 계곡 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빈의 부대는 계곡 양쪽 바위 뒤에 숨어서 방연 부대가 계수나무 사이를 뚫고 무질서하게 지나 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때, 방연이 나무에 붙은 쪽지를 발견하고는 읽으려고 부싯돌을 켰다. 그 불빛을 보자 마자 손빈의 부대가 계곡으로 화살 세례를 퍼 부었다.
"按兵不動(안병부동)" 은, 중국의 아주 오래 된 사자성어의 하나이며 그 뜻은 "부대를 정지시키고 움직이지 않다" 이다.
손자는 일찍이 "이로울 때만 움직여라" 라고 가르쳤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전략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다소 서두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자주 사용된다.
아래 이야기는 한 미국 회사가 첫 번째 합작 법인 협상 때 겪은 일이다. 그들은 타이완 지사에서 한 명을 뽑아 중국에 보냈다. 그들 생각에는 타이완 사람은 같은 중국어를 쓰니까 그 거래를 협상하는데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타이완 사람은 자기가 세운 타이트한 일정 계획에 따라 부지런히 일했다. 그는 자신과 자기 팀에게 엄청난 압력을 넣었으며, 모든 것이 일정 계획에 따라 적절하고 매우 상세하게 준비가 되었을 때, 중국에 도착했었다. 그렇지만 중국 측은 서명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 제안한 합작 법인 제안서에 의하면, 그 계약서는 실지에 있어서 그 공장의 옛 책임자로부터 모든 권한을 박탈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책임자는 생산에 관한 더 명확한 사항이 포함되지 않으면 서명할 수 없다고만 말하는 것이었다.
외국 측은 돌아 가서 요구 조건을 만족 시킬 수 있는 일련의 생산 계획을 준비했다. 또 다시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일정 계획에 맞추느라 지칠 대로 지쳐서 중국에 와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중국 측이 "현금 지분"이 충분히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그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외국 측은 다시 허겁지겁 돌아 가, 자신들의 일정 계획에 맞추기 위해 법석을 떤 후에 계약서를 새로 만들어 중국에 왔지만, 중국 측 책임자는 이번에는, 이 계약서 승인을 담당하는 지방 관리들을 만나서 그들의 견해를 들어 보자고 제의하는 것이었다. 소도시였기 때문에, 지방 관리들은 당연히 그 책임자의 친한 친구들이었다. 지방 관리들은 외국 측이 설명할 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서 그들은 몇 가지 수정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이런 수정이 몇 번이나 되어야 그 계약을 승인해 줄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회사의 계획 대비 실적 측정을 위한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옛 공장 책임자에 대한 컨트롤을 포함해서 많은 부분이 삭제 되는 등 대폭적인 수정이 이루어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는 서명을 했고 바로 승인을 받았다.
제 5 계: 불 난 집을 약탈하라(趁火打劫 진화타겁)
해설: 적이 혼란스러울 때를 적극 이용하라.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과 주유와 대립할 때의 일이다. 조조는 계략에 빠져 전함들을 모두 서로 묶은 탓에, 적의 화공에 자신의 전함들을 모두 불태우고 마침내 패전하게 되었다. 조조는 할 수 없이 다스리던 땅을 혼란 속에 두고 달아 나는 수 밖에 없었다.
제3의 라이벌인 유비는 군사 제갈량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그 땅을 혼란 속에서 차지 함으로서(손권과 주유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 깨닫기도 전에), 조조가 남기고 간 것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이 계책은 영국이 오랜 동안의 협상으로부터, 그리고 영국과 같이 거의 파산 직전의 국가로서는 향후 제2의 세계 경제 대국과 협상하는데 사용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중국으로부터 배운 전략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00년 동안의 영국 식민 지배를 통하여 실지로 한 번도 민주주의를 실시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정부는 홍콩의 민주주의 앞날에 대해 많은 선전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정부가 실제 원하는 것은-홍콩에 어느 정도 혼란을 조성해서-영국 식민주의자들이 홍콩이 보유한 외화를 고갈 시키기 위해 가능한 많은 구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는 국제사회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과거 다른 영국 식민지에서 그들이 했던 것처럼).
비판적인 사람들은 홍콩의 보유 외환을 빼 내기 위해 사용되는 계책은 영국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공항을 건설해 좋은 조건의 시공이나 자문 계약을 별다른 경쟁 입찰 과정이 없이 영국 회사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 공항은 란타오(Lantao) 섬을 따라 바다를 메우는 거대한 간척 사업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홍콩 항의 대부분을 간척 함으로써 방대한 넓이의 땅을 조성해 1997년 이전에 투기적인 현지 투자자들에게 팔아 넘기도록 하고 있다. 이 모든 땅들이 1997년 까지는 "영국 조차지" 이니까 그 돈이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 갈 것인지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제 6 계 : 서쪽을 공격하기 위해 동쪽에서 속임수를 쓴다(聲東擊西성동격서)
해설: 적의 지휘 계통을 혼란스럽게 하고 적을 현혹시켜라.
진(秦) 나라 말에서 한(漢) 나라의 시작 어간에 항우와 유방이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원래친구 사이였다.
어느 날 유방은 부모님들을 모셔 온다는 핑계로 항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 하였다. 항우는 유방이 도망쳐 다른 경쟁국에서 자리를 잡을까 걱정이 되었다. 현명하게도, 항우는 다른 사람을대신 보내 유방의 부모님을 데려와 대신 인질로 삼고, 그 동안에 유방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계책은 실제 의도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면서도, 상대방을현혹시키기 위해 어떤 것을 말하거나 행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마오쩌둥은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이 계책을 수도 없이 사용 하였다. 사실, 츠수에이(홍하)강을, 마오는 네 번 이상 건넜다. 매 번 창카이섹(장개석)이 그가 건너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을 때 마다 그는 그 강을 건넜다. 그리고, 창이 홍군(Red Army)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강 건너 편으로 보내면 마오는 그의 군대에게 다시 강을 건너 오도록 명했다. 이 계책은 극도로 창을 혼란스럽게 했고마오가 그의 군대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 시키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벌어 주었다. 실제로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야 말로 아마도 외교나 사업 협상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도구이다(만약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중미 무역 관계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둘러 싼 협상이 주된 문제였다. 중국 경제가 수출 촉진 단계에 들어 가자 미국은 강력한 노동조합, 기고만장한 산업계, 그리고 현상유지에 만족해서 중국과의 수출 경쟁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국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조그만 카리브 해의 섬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을 재활성화 시키고 방향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의회 내 거의 모든 위원회에서 재활성화가 토의되고 있는 한편, 미국은 가급적 많은 중국 제품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지 않게 하고, 미국 제품에 대해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미국의 무역 협상팀은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했다가는 협상 자체가 이루어 질 수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협상 전략이 바로 "서쪽을 공격하기 위해동쪽에서 속임수를 쓴다"는 聲東擊西(성동격서)이다.
실제 문제는 미국의 무역 적자이지만 협상 테이블에서의 이슈는 중국에 있어서 미국의 지적 재산권 보호와 인권 문제이다. 미국은 타이완이나 한국(두 문제가 모두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같은 다른 곳에서는 지적 재산권이나 인권 문제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중국과 협상할 때는 이 문제에 대단히 신경을 쓴다.
복제 CD는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및 인도의 어느 오픈 시장에서도 살 수 있지만, 미국의 협상 팀은 1995년에 복제 CD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11개의 공장을 폐쇄하도록 중국에 요구했다. 이 요구는 대외경제무역위원회(오늘의 상무부 : 역주)에 통보했는데 사실 이 위원회는 지적 재산 보호나 국유 기업 관리와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당연히, 미국 팀의 이 요구는 받아 들여 질 수 없었다. 그 결과, 이 상황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제재를 가하는 구실로 사용되었다. 미국 협상 팀은-미국의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협상 테이블에서 일련의 요구들을 제출하고, 합리적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 밀어 부침으로써,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고자 하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제 7 계: 무에서 유를 창출하라(無中生有 무중생유)
해설: 구체적이지 않은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라.
진(秦) 나라 시대에 진 황제를 몰아 내기 위한 반역자가 둘 있었는데 진승과 오광이 바로 그들이었다. (역자 주 : 중국 역사상 최초의 농민 반란으로 흔히 ‘진승오광의 난(陳勝吳廣起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 천자를 반대하는 반란을 성공시키는데 필요한 지지자들이 부족하다는 문제에 부딪쳤다. 부족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진승이 천자가 될 것이다"라고 쓴 글자를 물고기 뱃속에 넣은 후 물고기를 강에 방류하였다. 강의 양변에 사는 어부들이 이 고기들을 잡아 배를 갈랐을 때 위에 쓴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어서, 진승이 천자가 될 운명이라는 소문이 곧 시중에 떠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진승이 진황제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명분이 주어졌고 지원자들이 그가 갓 조직한 군대에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 작전은 구체적인 어떤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아무 것도 없는데서 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포함한다.
1988년, 중앙 정부가 하이난(해남)도(당시는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로, 광동성에 속해 있었다)를 독자적인 성으로 승격시켜서 특별 경제구역으로 만들었을 때, 하이난도가 중국내 미래 상업기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온갖 선전으로 떠들썩 했었다.
실제, 당시에는 하이난도는 "내일의 홍콩"으로 알려져 있었고 버려진 모래 해변 때문에 "중국의 하와이"로 통했다(둘의 개발 개념은 완전히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난도가 성급으로 격상되어 특별 경제구역으로 발전시킨다는 선전을 워낙 크게 하다 보니 중국인들조차도 그렇게 믿게 되었다. 중국 전역에서 대학 졸업자들이 있지도 않은 일 자리를 찾아 하이난도로 몰려 들었다.
하이난도를 특별 기술지구와 제조, 관광, 그리고 산업지구로 발전시킨다는 정교한 계획은 있었다. 1988년과 1990년 사이, 하이난 도로 간 수많은 비즈니스맨들은 무엇보다도 그곳의 부정 부패 때문에 비즈니스 거래(중국에도 진정한 비즈니스 거래가 있다면)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하이난도에 대한 폭발적인 열광으로 수많은 무역업자들과 비즈니스맨들이 희망에 부풀어 그곳으로 몰려 들었기에 하이난도는 경제 개혁의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이러한 골드 러쉬의 결과로 하이난도는 투기와 환락 그리고 대형 비즈니스에 따라 다니는 여러 가지 폐해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들이야 말로 중앙정부의 지도자들이 중국 본토에 들어 오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들이었다(그래서 그들은 본토에서 떨어진 섬인 하이난도를 그런 실험의 대상으로 지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이난도는 발전했고 대학 졸업자들은 급여가 많은 일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다"는 것은 외국 투자자들도 중국 투자에 대한 승인을 위해 노력할 때 자주 쓰는 책략이다. "기술 이전"은, 기술 수입 대체 계획에 이어 수출 증진이라는 정책 목표를 추구하는 공무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기술 이전과 그를 통해 중국인들의 기능 수준을 제고한다는 명목 하에 승인되는 프로젝트가 많다(만약 사실이라면, 이들이야 말로 투자자가 아니라 친선을 위한 평화 봉사단일 것이다).
"우리는 정말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 말은 공무원들이 외국 방문객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되었다. 말만 거창하게 하고 실지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지자 1988년 국무원은 영업 허가로부터 3개월 내 등록 자본금의 최소 15%를 예치하도록 (아니면 허가 취소) 함으로써 말만 떠드는 사람들이 무에서 유를 창출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제 8 계 : 한 방향으로 공격하는 척 하면서 실지로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 간다. (暗渡陳倉 암도진창 역주 : "陳倉"은 지금 陝西寶鷄山(섬서보계산)이다)
해설 : 한 방향으로 공격하는 듯이 하여 적의 관심을 끌면서 적이 대비하지 못한 다른 방향을 공격한다.
이 계책은 전설적인 전략가 유방이 그의 대적 항우를 공격하려 할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이 공격을 실행하기 위해서, 유방은 일부 부대가 숲 속에 길을 열어서 나머지 부대가 전진해 항우를 직접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것은 항우가 유방의 실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도록 꾸민 속임수였다.
유방의 일부 부대가 숲을 관통할 길을 내느라고 바쁜 사이, 유방은 주력 부대를 항우가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한 길로 보내 그의 옆구리를 치게 했다. 유방의 군사가 항우를 공격했을 때, 그는 숲에 길을 내는 소수의 군사들에 대비하느라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관계로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전략은 공개적으로는 다른 일을 하는 척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눈치채지 못하게 또 다른 일을 꾸미는 속임수이다. 이제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어떻게 이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
중국은 외국 투자자들이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에 들어 오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에는 흔히들, 신발 끈 하나씩만 팔 수 있어도 13억의 인구를 생각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 결과로 오늘 날에도, 대부분의 세계 기업들은 단지 한 가지 생각만하고 있다.-즉, 판매 시장으로서의 중국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영업 활동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어떤 품목의 수입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시장에서 어떻게 판매를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생산품을 중국에 팔기만 하고자 한다. 반면에 중국은 외국 기업이 중국 내에서 생산할 뿐 만 아니라 투자를 해서 중국으로 하여금 서방 거래 파트너의 기술, 기능과 생산 능력을 배우게 되기를 원한다(미래에는 경쟁 상대가 되겠지만).
그 결과, 서방 회사들은-이제 갓 시작된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합작회사(joint venture) 설립을 통해서만이 시장에 접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합작회사는 기술 이전이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부가가치 생산에 불과 했지만 그들의 생산품들은 시장진입을 허락 받았다.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중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라고 미국 다국적 기업의 고위 간부는 말한다.
한 미국 다국적 기업은 그 최대 관심사는 자기 제품을 중국 시장에 팔아서 소매시장을 뚫는 것이었다(이 글을 쓸 당시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당시, 소매 합작기업(retail joint venture) 설립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대신에, 최소한의 투자와 초급의 기술 투자로 조그만 도시에 생산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실제에 있어서, 그 합작법인은 제품들을 전국에 유통시키기 위한 기지로서, 그저 조립 센터에 지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기술 이전을 통한 최초의 현지 생산 합작법인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엉터리 생산 활동에 불과했고 단지 제품의 유통센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 9 계 : 강 건너 편의 불 난 것을 구경하라(隔岸觀火 격안관화)
해 설 : 상대방이 스스로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면서, 자신은 쉬면서 은밀히 관찰한다. 그리고 나중에 지쳐 빠진 상대방을 패배시킨다.
삼국시대, 원상과 원희(역자 주 : 원소의 두 아들)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을 때, 나머지 한 세력이었던 조조는 그들 중 누구하고도 대적하지 않았다. 그는 군사를 뒤로 물린 채 옆에서 그 둘이 서로를 멸망시키기를 기다리면서 개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협상 할 때에는 상황을 신중하게 관찰해야 한다. 만약 상대방 내부에 조금이라도 의견 불일치나 분란의 기미가 보이면 그 자체로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시간을두고서 기다리면서, 내부 분란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한다.
"강 건너 편의 불 난 것을 구경한다"는 작전은 상대방이 내부 분란이 일어 나도록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중국은 매년 미국과의 연례 무역회담 때 마다 이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대표단은 중국을 지목하면서 지적재산권 문제와 인권 침해 문제를 거론하지만 실제 문제는 중국과의 무역역조를 해소하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의 사람들이 "만약 중국이 이러 저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 저러한 품목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 라고 위협하면, 중국 측은 중국에 기 진출해 있거나 곧 진출하려고 하는 미국 대기업들에게 미국 정부의 그러한 조처들에 대해 중국도 상응한(실지는 아무 상관 없지만) 대응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은근히(때로는 공개적으로) 암시를 준다. (미국의 대기업들이야 말로 미국 대통령 선거 자금의 돈줄이다!!) 그러면 바로 경고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홍콩, 상하이와 베이징의 미국 상공회의소 대표들은 로비스트를 바로 워싱턴에 보내 미국 대표단이 그러한 위협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미국 상무장관 크리스토퍼 워렌이 베이징에서 그러한 보복관세 위협을 철회하자, 중국 외교부장 치엔 지치엔(Qian Ji Qian) 은, 만약 미국이 미국에 수출되는 중국산 신발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면, 중국은 대미국 신발 수출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 상무장관이 돌아 가서 그러한 상황을 미국
소비자들과 소매상 및 신발 산업 전체에 설명할 수 있도록 해 준것이다.
위의 경우에, 미국 대표단은 미 정부와 미 정부가 지지를 필요로 하는 미국의 경제계 사이의 의견 차이를 극복해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내부 분란이 치열해 지면 질수록 중국에 대한 압력은 약해 지고 그 문제는 다시 일 년 뒤로 미루어져 또 한 번의 협상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제 10 계 : 웃음 속에 비수를 감추어라(笑里藏刀 소리장도)
해 설 : 상대방이 마음을 놓고 당신의 적개심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친절하게 대함으로서 적대심이 들어 나지 않도록 하라
당 나라 고종 시대 조정 내에서 세력이 대단한 이의부라는고관 이 있었다. 이의부는 상급자면 누구에게든지 웃음으로 대하고 또 고분고분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속으로 그들을 누구보다도 미워했다. 황제는 이의부가 언제나 천자를 떠 받들고 웃음을 잃지 않았으므로 그가 그렇게 음흉한 사람인 줄 알지 못했다. 황제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간해도 듣지 않고 그의 웃음을 진심으로 믿었다.
중국어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미소짓는 호랑이(笑面虎)"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파트너의 내부 관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중국 공장의 책임자는 공장 근로자들이 실지로 존경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첨이 심해서 담배 불을 붙여 주거나 차를 따라 주고 칭찬을 끝도 없이 해서 그 책임자로 하여금 누가 진정한 친구이고 지지자인 지 헷갈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그저 아첨을 좋아하고 아첨꾼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도 한다.
이 것은 중국 회사의 구조에서만 일어 나는 문제가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무실을 돌아 보고 누가 아첨을 제일 많이 하는지 알아 보기 바란다.
유명한 당 나라 시인 백거이는 다음과 같이 갈파했었다. "이의부 같은 무리들, 언제나 웃고 있네 그 웃음 속에 감춘 비수, 누가 알리랴"
제 11 계 : 배를 위해 오얏을 희생시켜라(李代桃僵 이대도강)
해 설 : 필요하다면,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덜 중요한 것을 희생시켜라.
전국 시대의 제후 위 나라의선공은 아들 급자를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그리고는 제 나라 제후(역자 주 : 제 희공)의 딸 선강과 그의 아들의 혼인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알고는 위 선공은 그녀를 자기가 차지하기로 결심하고는 아들을 멀리 변방으로 쫓아 보냈다. 후일 그녀는 수와 삭이라는 두 아들을 낳게 되었다. 나중에 위 선공도 새로 낳은 두 아들들을 총애하고 장남을 배척하게 되었다. 그의 젊은 부인은 쫓겨 난 아들
이자 후계 지명자인 급자를 죽이자고 제의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두 아들 중 하나가 친 형제 보다 배 다른 형인 급자와 더 가까웠다. 급자를 살리기 위해 막내인 수는 급자의 옷을 입고 마침내 친 어머니의 측근에 의해 암살되고 만다.
이 고사의 가르침은 더 값진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값진 것을 포기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물론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수 있다.
왕조의 계승권과 마찬가지로 합작법인에 있어서도 통제권(control) 문제가 중국측이건 외국 측이건 가장 관건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1979년에 제정된 중외합작법에 의하면 합작 법인의 이사회 회장(동사장董事長)은 언제나 중국측이 되도록 되어 있었으나, 1990년에 개정된 법은 이를 완화해 쌍방 합의에 의해 어느 편이든 가능하게 되었다. 중국법에 의하면 합작법인의 이사회 회장이 "법적 대표"가 된다. 그의 서명이 합작법인을 구속하는 것이다.
중국측에 있어서는, 이사회 회장은 대개 그 공장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고 기업과 그 기업이 속한 지역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고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이기 때문에 회장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측으로 말하면, 카라오케에서 마오타이나 XO를 정신 없이 마신 후에 법적 대표로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관한 위험과 법적책임 등이 걱정된다.
외국측에게도 통제권은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외국측에게는, 통제권이 바로 품질관리와 수익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 협의를 통해서 타협이 이루어 지는데, 회장직은 중국
측에게 넘기되 총경리직은 외국측이 맡는 것이다. 그래서, 경영권을 이사회로부터 분리시켜, 총경리에게 합작법인의 운영에 관한광범위한 통제권과 감독권을 주는 한 편, 이사회의 권한을 개괄적인 정책과 회사의 경영방향에 관한 결정으로 제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사회 회장은 합작법인을 대표해서 서명하는 것과, 이사회의 표결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것으로 권한이 제한되어 회장의 독자적인 행위는 효력이 없도록 하고 있다. 한 편, 총경리는 합작법인의 실제적인 품질이나 운영에 관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협상할 때에, 합작법인 내부의 중요한 통제권이라는 배(桃)를 확보하기 위하여 외관상의 권력이라는 오얏(李)을 희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제 12 계 : 가는 길에 양을 끌고 가다(順手牵羊 순수견양)
해 설 : 기회가 왔을 때 상대방의 부주의나 무능을 최대한 이용하라
명 나라 초기 주체(역자 주 : 명 영락제를 말하며 시호는 문제)는 그의 전임자 건문제(역자 주 : 시호는 혜제)를 몰아 내고는제위에 올랐다. 소문에 의하면 건문제는 달아나 동남아시아의 정글 속으로 숨었다고 했다. 황제 주체는 건문을 찾아 내 바로 데려 오라
고 명령했다. 그의 유명한 내시 대장 정화는 명령을 받고 거대한 해군 선단을 이끌고 건문을 찾아 떠났다.
정화는 실제 건문제를 결코 찾아 내지 못했지만 황제의 해군 선단으로 동남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여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원래의 임무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다른 일들을 많이 이루어 내었다.
그 때 이 후 이 전략은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상황에 사용되었다.
특히 적이 서두를 때는, 적으로부터 지나 가는 양을 끌어 내는 것은 쉽다.
서방 회사들이 중국에서 거래를 협상할 때, 대부분 매우 부주의한게 보통이다. 중국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도취감에 젖거나 조급하게 시장에 바로 뛰어 들려고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많기 마련이다.
어느 회사의 현지 대표는, "본사의 CEO가 중국에 날아 와서 흥분 한 나머지 나중에 협상할 때 결과적으로 자승자박하게 되는 약속을 쉽게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은 외국 협상단이 협상을 타결하라는 본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즐기는 자들이다"라고 충고한다.
어느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광조우(Guang Zhou)에서 제품을 하루라도 빨리 생산하기 위해서 광동(Guang Dong)의 한 작은 도시에 가족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홍콩회사를 내 세워서 협상을 했다. 그 외국 회사는 홍콩회사의 말을 곧이 곧 대로 믿고서 그 신빙성 여부에 대한 자체 조사를 실시해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곧 협상에서 중요한 지렛대를 이미 날려 버려서 꼼짝달싹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즉, 계획된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외국 측이 최대한 빨리 생산을 시작해야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측은 한 발 더 나아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조건을 담은 계약서와 관련 서류를 외국 측에게 제시했다.
외국 측이 중국측이 제시한 계약서에 서명한 후 6주 이내에 생산을 시작해야만 계획된 생산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에 협상을 맡은 홍콩 회사는 이미 대부분의 협상력을 잃은 상태였다.
외국 측이 중국측과 홍콩 회사에 불만을 제기 하자 대답은 간단했다. "만약 지금 제시 된 대로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그 프로젝트 승인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하루라도 빨리 생산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작자(Mr. Brahm 역자 주)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그들이 서명한 내용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의향서(letter of intent)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돌아 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때로는, 무슨 내용이 포함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중국어로 작성된 협의서에 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측 파트너를 믿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관계가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그들은우리들을 수없이 연회로 초대했고 우리가 비용 부담하는 것을 못하게 했거든요"
어느 서방 비즈니스맨이 중국어로 된 의향서를 번역하러 와서 했던 말이다.
제 13 계 :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打草驚蛇 타초경사)
해 설 : 상대방에게 자기 측 의도나 상황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지 말아라
전국시대, 중산국의 왕에게 인지와 쟝지라고 하는 절세 미인의 궁녀가 있었다. 당연히 둘은 서로 왕비가 되려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인지에게는 친구로서 그 녀를 도와 주는 모사꾼이 있었다. 그 모사꾼은 왕에게 인접한 조 나라의 왕이 인지를 탐내서 데려 가려 한다고 보고했다.
중산국 왕은 당연히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왜냐하면, 조 나라에서 그 요청을 밀어 부치면 아무리 자기가 인지를 곁에 두고 싶다고 해도 군사력으로 조 나라를 이길 방법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사꾼이 한 가지 계책을내었다. 먼저 중산국 왕이 인지를 왕비로 맞이 하면 조나라의 왕이라 할 찌라도 어찌 할 방법이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당시, 다른 나라의 궁녀를 탐해서 데려 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남의 나라 왕비를 요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겨 졌었다. 그래서, 인지는 왕비가 되었고, 그 왕은 순진하게도 이렇게 해서 인지를 자기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옛날에는 이 전략은 기본적으로 적의 위치를 들어 나게 함으로서 궁극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었지만, 오늘 날에는 적(상대방)에게 자기의 의도나 이 쪽의 상황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때때로 중국에서, 이 작전이 계획한대로 맞아 떨어 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전에, 한 스웨덴 회사의 협상 팀이 중요한 통신 합작회사 건으로 난징(Nanjing)에서 온 유명한 전자회사와 어느 베이징 호텔에서 일주일 가량 협상을 벌였다.
협상 첫 날, 스웨덴 측은 합작 계약에 관해 중국 측과 협상하면서 자기 측의 변호사를 옆 방에 대기 시켜 두고 막후 자문을 하도록 했다.
이튿날, 스웨덴 측은 변호사가 중국 측과 직접 협상에 참가하도록 협상장에 함께 가는 문제를 토의했다. 그들 생각에, 중국 측은 자체 변호사를 데려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외국 측이 협상 전 과정을통해 변호사를 옆 방에 두고서 막후 자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틀림 없이 불리할 거라고 믿었다.
협상 제 3일, 스웨덴 측은 중국 측이 변호사가 없으니 만만하다고 확신하고서는 협상을 밀어 부치기 위해 자기 측 변호사를 협상장에 데리고 나왔다. 그 변호사가 중국 팀과 제 3일, 제 4일에 걸쳐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 제 5일, 스웨덴 팀이 이틀 간의 협상으로 녹초가 된 변호사를 데리고 협상장에 도착해 보니, 중국 측 변호사가 아직도 힘에 넘쳐서 곧장이라도 협상 테이블을 세게 내려 칠 것 같은 중국 팀과 함께 중국 측 총경리옆 자리에 턱 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스웨덴 팀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중국 측은 협상을 위해 난징에서 부터 그들의 변호사를 데려 왔으며, 지난 4일 동안의 협상 전 과정에걸쳐서 호텔 방에서 협상 팀을 막후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제 14 계 : 죽은 사람의 시체를 살려 일으키다(借尸還魂 차시환혼)
해 설 :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죽은 것(쓸모 없는 것)을 이용하다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팔선(八仙, Eight Spirits) 중에 철괴이(Tie Guai Li; 鐵拐李)는 본시 인물이잘 생긴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영혼(spirit)이 그의 육체를 떠나 다른 세계를 구경하기 위해 칠 일 정도 돌아 다니기로 했다. 잘 생긴 몸을 떠나기 전에, 그 영혼은 칠일 후에 자기가 돌아 올 때까지 그 몸 곁에서 잘지키면서 기다려 달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그 시체를 화장해 버리고 말았다. 철괴이의 영혼이 칠 일 후에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돌아 왔을 때, 그의 몸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미칠 것 같았다. 그에게는 아무 영혼도 들어 있지 않은 몸 중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몸에 들어 가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방금 죽은 거지의 몸으로 날아 들어 갔다. 그 때 이 후로 중국에서는 철괴이는 못생긴 거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중국 정부 자신도 죽은 국유기업들을 살려 내기 위해서 바로 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살려 일으키는" 전략을 채택했다. 오늘 날, 중국은 국유기업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 (역자 주 : 작자가 이 글을 쓸 때 상황이지만, 오늘 날에도 어느 정도는 그러 하다.)
1950년대, 중국은, 당시 소련의 국가 계획 정책에 영향을 받아서, 상업적으로 타당해서라기 보다는 인민들에게 일 자리를 줘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기업들을 설립했었다. 효율은 떨어 졌고 전반적인 경제 활동 결과는 더 참담했다.
일련의 정책 전환으로 국가 계획은 줄어 들었고 이러한 기업들은 중국 경제에 있어서 날로 늘어 나는 시장 경제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이러한 기업들 중 많은 기업들이 사업을 계속할 상업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 중국에 파산 개념이 도입되면서 많은 국유기업들이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의 시체를 살려 일으킬 수" 있을까? 중국은 국유기업들을 지주회사로 변경시키는 야심 찬 실험을 시작했다. 이들 중 많은 회사들이 상하이와 선전(Shenzhen)에 있는 중국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사실상 중국의 모든 국유기업들이 현재 지주회사로 변모해 상장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홍콩이나 심지어는 뉴욕 시장에 상장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자본 투자와 더불어 외국 기술 이전과 경영 기법이전을 포함하는 합작법인 형태로 외국자본의 중국 내 투자를 장려하는 중국의 정책도 죽은 시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또 다른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전을 통해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은 바로 비효율과 낮은 품질 기준으로 악명 높은 국유기업들이다. 합작법인은 대개 일정 기한 동안 존립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기한이 끝나면 중국 국유기업들은 투자된 자본뿐만 아니라 그
투자 기간 동안의 훈련된 인력, 이전된 기술과 경영기법 등의 이익을 챙기고서 합작법인을 떠나게 된다.
제 15 계 : 호랑이가 자기 산을 떠나도록 유인하라(調虎離山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강한 요소를 버리도록 유도 하라
주(周) 나라 말, 정 나라의 왕이 자기 동생이 스스로 왕이 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는 동생을 제거하려고 마음 먹었다. 왕은 계책을 세우고는 자신이 주 나라의 천자를 알현하러 간다고 동생에게 알렸다. 왕이 수도를 떠나자 동생은 군대를 이끌고 그를 추격했다. 실제에 있어서, 왕은 천자를 알현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함정을 파 놓고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은 자신의 영지는 비워 둔 채 직접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왕은 절묘한 협공작전으로 추격하던 군사를 공격하는 한 편, 비워져 있는 동생의 영지로 쳐 들어 갔다.
마오(Mao; 毛) 주석은 특히 이 "호랑이가 자기 산을 떠나도록 유인하는" 계책을 좋아했다. 아마도 마오 주석 자신이 남들이 유인하지 못하는 자기 산에 있는 호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오 주석은 미국을 "종이 호랑이(紙老虎)"라고 불렀다. 중미 관계가 나빠진 후 한 참이 흘렀을 때, 마오는 키신저(Kissinger)를 먼저 미국이라는 산에서 유인해 낸 후, 닉슨(Nixon)까지 유인해 내었다. 마오는 평생 단 한 번 외국 원수를 만나기 위해 중국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소련을 방문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 후 그는 한 번도 다른 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키신저와 닉슨이 마침내 중국에 왔을 때, 마오가 그들을 부를 때 까지 도대체 언제 그를 만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키신저와 닉슨은 댜오위타이(Diaoyutai) 영빈관에서 그저 기다리면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영빈관이 갑자기 술렁거리면서 홍치(Hongqi) 리무진이 도착하고, 키신저와 닉슨은 마오가 "즉시"(즉, "지금 당장"이라는 뜻이다!) 그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들은 쫑난하이(Zhongnanhai; 역자 주 :中南海를 말하며 중국 정부 지도자들이 사는 곳이다)에 있는 마오의 개인 서재로 안내 되었고, 그는 자신의 호랑이 굴에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적진에서 협상하는 것은 언제나 불리한 법이다. 그러므로, 협상을공평한 장소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호랑이가 자기 산에서 나오도록 유인하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어느 독일 회사가 현지 공장과 협상하기 위해 중부 후베이(Hubei) 성의 조그만 도시로 협상팀을 보내게 되었다. 그 공장은 현지에서는 세금을 자장 많이 납부하고 있었고 사실상 그 공장이 그 마을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들이 협상하러 도착하면 그 공장이 예약한 호텔에 머물면서 공장 책임자가 만나자고 할 때에 만나곤 했다. 식사(주로 공장 내 식당이나 아니면 공장이 소유하고 있는 외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시간도 모두 공장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 매일 밤, 공장이 소유하고 있는 카라오케나 디스코텍으로 안내되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구체적인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다.
마침내, 독일에서 온 협상팀은 베이징에서 협상을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어느 오성급 호텔의 회의실을 예약하겠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공장 간부들의 호텔 방 값도 부담하겠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홈 그라운드에서 불러 내어 중립적인 곳에서 협상을 계속하려 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장 간부들이 베이징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자 독일팀은 자기들이 스케쥴을 장악하게 되었다. 협상은매일 독일식으로 정확하게
만약 협상이 중국측 홈 그라운드에서 진행되었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결과이었다.
제 16 계 : (큰 것을)잡기 위해 일부러 놓아 주어라(慾擒故縱 욕금고종)
해 설 : 적을 너무 궁지에 몰아 부쳐 결사적으로 반격하지 않도록 하라
한(漢) 나라 초, 동호국에 아주 오만한 왕이 있었다. 그는 이웃 훈(Hun) 나라 왕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달라고 요청했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 나라 왕은그 요청을 받아 들였다. 동호의 왕은 더 나아 가 훈 왕의 왕비를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훈 나라의 신하들은 모두 화가 나서 더 이상 양보하지 말도록 왕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훈 왕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상관없다. 그가 내 부인을 원하면 주면 된다" 라고 말하며 실지로 왕비를 보내 주었다.
그 이후로 동호의 왕은 훈 나라 왕이 쓸모 없고 나약하다고 보기 시작했다. 동호의 왕은 그래서 훈 나라 왕은 겁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훈과의 국경 수비 조차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어느날, 자만에 빠진 동호 왕은 훈 왕에게양국 국경 변의 땅을 내 놓으 라고 요구했다. 놀랍게도 훈 나라 왕은, "참을 만큼 참았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군대를 이끌고 아무도 지키지 않는 국경을 넘어 동호 나라 전체를 점령하였다. 신하들이 모두 놀랐음은 물론이다.
"때로는 추격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얻으려고 다투어서는 안되는 땅도 있다" 라고 2000 여 년 전 손자가 갈파했다. 손자는 적을 막 다른 골목에 몰아 넣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손자 병법에는, 퇴로 없이 강을 배후에 둔 적과는 싸우지 말도록 권하고 있다. 적들이 퇴로가 있다고 생각하게 한 후에 공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중국에 오는 서방 비즈니스맨들은 매 사를 너무 강력하게 추진하고는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가 마치 만리장성을 뚫기와 같다고 투덜대곤 한다. 중국에서 복잡한 계약을 협상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첫 번 째 교훈은 그 좌절감을 겉으로 나타내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 째는 당신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을 때는 중국 측에게 빠져 나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때때로 두 가지의 선택 방안을 작성하여 협상 테이블에 제시하고는 중국 측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중국 측을 밀어 부치는 것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많다. 마찬 가지로, 항상 중국 측에게는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에도 좌절감을 겉으로 내 뱉어서 는 안 된다. 협상 테이블에서 심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하거나, 중국 측이 어느 한 문제에 관해서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면 그들 그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 측에게 단순히
몇 가지 선택 안을 주고 고려해 보라고 하거나, 또는 몇 가지 입장들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면 피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것을 해결하기 위해 몇 주(때로는 몇 달)가 그냥 날아 가게 되곤 한다.
제 17 계 : 옥을 얻기 위해 벽돌을 던진다(抛磚引玉 포전인옥)
해 설 : 큰 것을 얻기 위해 (비슷해 보이는) 미끼를 사용하라
당 나라 태종은 전설적인 서예가 왕희지가 쓴 유명한 서예품을 탐내었는데 그 작품은 어느 스님이 아주 신경을 써서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 태종은 꾀를 내어 한 신하로 하여금 다른 왕희지의 작품을 갖고 가서 서로 비교해 보도록 했다.
비교가 끝난 후, 신하는그 스님에게 스님이 보관하고 있는 작품은 가짜이며 왕희지의 진짜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실망한 나머지 별 신경을 쓰지도 않고 그 작품을 그냥 놔 둔 채 다른 일을 보러 나갔다. 신하는 그 틈을 타서 그 진짜 작품을 슬쩍 해서 가버렸다.
이 계책은 홍콩 재벌들이 중국 시장을 파고 들 때 흔히 쓰는 방법이다. 그들은 상당 기간 동안 아무런 반대 급부도 요청하지 않고 여러 가지 기회를 이용해서 중국에 기부를 한다. 그리고 나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에 행동을 개시해서 그들의 투자를 위한 필요한 조건들을 요청하게 된다. 중국 관료들은 오랜 동안 받는 입장에 있었기에, 심리적으로나 실지로나 도와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다. 나머지는 다 알만한 것이다.
홍콩의 가장 유명한 현지 재벌 리카이싱(Li Kai Shing)을 예로 보자. 오랜 동안 리카이싱은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거절해 왔다. 실지로 그의 투자는 대부분 홍콩에서 이루어졌으며 나중에 카나다에도 투자를 했었지만 중국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투자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첫 행보는 기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주로 학교에 기부를 했다. 이 곳 저 곳에 기부를하면서 언제나 호의와 친선의 이름으로, 어디를 가던지 친선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다급한 손들은, 내일 무엇을 그들에게 요청할지 오늘은 당장 모르는 것이다.
그의 다음 번 행보는 정치권에 호의와 친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989년, 6.4 사건이 나자 홍콩의 다른 재벌들은 중국을 소리 높여 비난하기 바빴지만 리카이싱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국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어 1990년 대에 들어 와 붐이 일어 나자, 1989년 여름 그렇게 중국을 비난했던 기업가들은 중국에서의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을 때, 리카이싱은 이미 중국에서 존경을 받는 위치에 굳건히 서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문제에 관해서 중국 당국과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의 신용은 이미 확고했다. 1994년, 그는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는 유명한 창안(Chang An) 가와 베이징의 5번 가인 왕푸징(Wangfujing)을 마주 보고 있는 베이징 중심의 방대한 땅을 요청했다. 베이징 시 정부는 미국의 패스트 푸드 체인인 맥도날드가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베이징 호텔 건너 편 코너-사실 상 가장 가치가 높은 땅-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리카이싱은 자기 방식을 고집했다. 그로서는, 그렇게 많이 중국에 기부를 했고, 또 그렇게 많은 각종 관계를 위해 투자를 해 왔으니-그것도 아무런 반대 급부도 요청하지도 않은 채-즉, 그렇게 많은 벽돌을 던졌으니 이제야 말로 옥(玉)을 찾아 올 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는, "(맥도날드가 차지 하고 있는)그 코너를가질 수 없다면 중국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겠다" 라고 베이징 시 정부 당국에 말했다고 한다. "맥도날드는 반드시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고 그는 밀어 부쳤다. 그래서 베이징 시 당국은 맥도날드에게 그들의 20년 사용 계약을 수정해서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점포를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에서 떠나 가도록 요청하게 되었다. 국제 사회가 이 일에 대해서 모두 비난했지만, 리카이싱은, 지나 간 시절 무보상으로 그가 베풀었던 자선과 기부를 이용해서,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요청해서 마침내 얻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제 18 계 : 적을 칠 때는 대장부터 먼저 잡아라(擒賊先擒王 금적선금왕)
해 설 : 사람을 잡으려면 그가 탄 말을 먼저 쏴라
삼국시대, 조조는 아주 총명해서 한 나라 천자 헌제를 이용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조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에는 천자를 이용해서 칙령을 내리곤 했으므로 아무도 감히 조조에게 도전하지를 못했다.
중국에서는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 간의 네트웍인 '관계(guanxi)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쑞챨� 어떤 리더의 결정권을 더욱 더 강력하게 만들곤 한다.
알다시피, 리더들은 또 자신의 상사가 있고 지휘계통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강력한 사람이 더 강력하게 보이기도 한다. 만약에 지휘계통 상의 최 상급자로부터 승인(그 승인 받은 내용이 아무리 엉터리라 할지라도)을 받게 되면 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따르게 된다. 최소한 그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리더쉽 역할이야 말로 중국에 있어서 복잡한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상의 권력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해방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확고한 지도자로서 그는 비현실적일 만큼 불가침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여러 상황에 따라서) 특정 사건(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같은)에 무한한 권위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밑에서 정치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마오의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그리
고 최종적인 해석이 나올 경우 누가 유리할 것인가 등이 중요했다.
그리고는 덩샤오핑(Deng Xiao Ping) 도 역시 그와 유사한 위치를 차지했다.
덩은 모든 공식적 자리에서 물러 났었지만, 군, 당 그리고 관료 사회에서의 그의 경력을 고려 할 때, 또한 모두를 이어 주고 연결해 주는 상하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의 다양함을 감안해 볼 때, 덩은 개괄적인 원칙만 말해도 명실공히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미쳤을 뿐 만 아니라, 밑의 사람들은 그의 말에 기준해서 모든 일을 하곤 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국영기업들의 이사회 회장이나 책임자 중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정치적 기반을 갖추고 상사관계(또는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갖추어서 그 회사의 의사 결정에 대단한 지도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때로 중국에서는, 특히 대기업이 실제적으로 한 마을 전체를 차지하는 농촌 지역에서는 그 기업의 이사회 회장은 하나의 "지역 황제(Tu Huang Di : 역자 주 : 土皇帝)나 마찬가지이다.
텅(Teng) 회장도 바로 그러한 지역 황제의 한 사람이었는데 중부 중국 후베이(Hubei) 성의 조그만 도시를 이루고 있는 직원 1,500 명의 화학 공장의 지도자였다. 그 회사 운영에 관해서는 텅 회장이 말하는 것은 바로 법이었다.
어느 유럽의 다국적 기업이 합작 회사 설립을 위해 그 화학 공장과 협상을 시작했을 때, 매 번 협상 때 마다 유럽의 협상 팀을 상대한 것은 텅 회장의 예하 직원들이었다. 협상은 중요 사항들에 대해 하나도 해결되는 게 없이 마치 양쯔(Yangtze)강의 바지 선처럼 진척 없이 질질 끌었다.
해결을 더욱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중국 측 핵심 협상 팀 내부의 파워 게임이었다. 누구는 텅 회장과 인척 관계인가 하면 또 누구는 다른 동료들 보다 텅 회장 밑에서 오랜 동안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한 편, 텅 회장은 공장 본부의 푹신한 가죽 소파에 깊숙이 앉아서 직원들의 보고를 받거나 그저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협상을 막후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나아 질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자, 유럽 측은 쌍방의 금융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인근 도시에 마련했다. 양 측의 협상 인원들이 4성급 호텔의 맨 꼭대기 층에 모두 틀어 박혔을 때, 유럽 측의 사장은 이 책의 저자와 함께 차를 타고는 그 공장을 방문해서 텅 회장과 직접 담판을 벌였다. 문제들이 하나 하나 협상 테이블에 올려 졌고 텅 회장도 기본적 인 걱정 사항들을 털어 놓았다. 텅 회장은 유럽 측의 관심사들에
대한 자기 수하 직원들의 보고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바로 휴대폰으로 공장의 경리 책임자를 협상 중에 불러 내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지시했다.
유럽 측 사장은 다음 날 점심 시간 겸 마지막 협상 시한에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텅 회장이 그저께 미리 결정했던 대로 주요 사항들이 그 회의에서 해결되었음은 물론이다.
중국 옛 말에, "황제가 ‘죽어라’ 라고 명령하면 신하는 죽을 수 밖에 없다" (君要臣死, 臣不得不死) 라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일을 성취해 내려면, 때로는 지도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쉬울 때
가 있는 법이다.
제 19 계 : 솥 밑의 타는 장작을 제거하라(釜底抽薪 부저추신)
해 설 : 적을 공격하기 전에 그 자원을 먼저 고갈시켜라 그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서 재발을 방지하라
송 나라 때, 금 나라는 송 나라를 정복하고자 하였지만 송에는 그들이 이기기 곤란한 유명한 장군 악비가 있었다. 금 나라는 악비를 먼저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송 나라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반간계를 써서 악비를 암살한 후에 송을 정복하였던 것이다.
서방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중국에서의 협상은 마치 오래 끄는 게릴라전과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대부분의 서방 비즈니스맨들이 조급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확정된 시간 계획을 가지고 중국에 오게 된다. 호텔과 비행기 표는 모두 사전에 예약되어 있다. 회의는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미리 약속이 잡혀 있다. 최소한 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까지는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그들은 정말로 중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때 차관이었던 리차드 H. 솔로먼이 1975년 베이징의 수도 국제 공항에 내렸을 때 겪은 내용인데 당시 그는 어떤 코뮤니케를 협상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다른 국무성 관리들과 마찬 가지로 내리자 마자 바로 업무에 들어 가서 온갖 "좋은 내용들"이 포함된 그러한 코뮤니케를 협상하려고 서둘렀다.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솔로먼의 첫 번째 일정은 협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를 서쪽 왕릉으로 소풍을 데려 갔습니다. 키신저는 미치려 했었지요" 라고 솔로먼은 후일 당시에 대해 말했다.
중국 측은 미 국무부 사절단이 다음 일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안절 부절하게 만들었다. 미국 측은 일정 내내 실질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국 측은 매사에 질질 끌었지요" 라고 솔로먼은 회상했다. 중국 측은 미국 측이 미국 측 스스로 설정한 시한에 쫓겨 먼저 양보할 때 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 한 밤중에 받아 들일 수 없는 협상안을 키신저에게 전달한 겁니다."
서방 비즈니스맨들을 보면, 왕왕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너무 떠벌리거나 계약서에 서명하겠다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 중국에 오는 경향이 있다.
중국 측이 외국 측이 정해 놓은 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싸움의 반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저 시간을 끌면서, 중국 측은 외국 측을 몰아 부쳐 외국 측 스스로 자신이 정해 놓은 시한에 몰리게 만든다.
일례로 어느 미국 다국적 기업이 중국 측에게 어느 때까지 생산이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고 순진하게 말했다. 중국 측은 바로 그 때부터 계약 조건들에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표준 중국어 계약서 초안을 미국 측에게 전달하였다.
미국 측이 그 서류에 대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중국 측은 팔짱을 낀 채, 만약 미국 측이 스스로 정해 놓은 시간 계획대로 생산을 개시하기를 원한다면 그 초안을 받아 들여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미국 측은 깜짝 놀랐고 중국 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기고만장 떠들었다.
제 20 계 : 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기가 쉽다(混水摸魚 혼수모어)
해 설 : 혼탁한 물에서는 고기가 방향을 잃고 당황하게 된다 따라서 쉽게 잡을 수 있다. 혼란스럽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하라, 적은 이 상황에 대처할 만큼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거나 깊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삼국시대, 유비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금주를 차지했다. 나아가, 유비는 적 진영의 내부 투쟁을 틈타 또 다른 전략 요충을 점령했었다.
미국의 대기업 AT&T는 중국 시장에서 10년 넘게 혼란 속에서 고생을 했다. 그 회사의 문제는 1980년대 초 중국이 선진 디지털 교환기 시스템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중국은 기술 이전을 위해 미국을 찾았지만 AT&T는 중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거절했다.(현재는 세계에서 제일 큰 전화와 교환기 시장이며 향후 30년간 계속 그러할 것으로 전망된다)
놀랍게도 AT&T가 최신 기술을 중국에 이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이에, 프랑스의 Alcatel, 독일의 Siemens, 그리고 일본의 NEC가 시장에 뛰어 들어서 중국 내 3대 장비 공급상이 되고 말았다.
중국이라는 "혼탁한 물"에서 고기를 잡은 것은 바로 Alcatel, Siemens 그리고 NEC였다.
1980년대 중반, AT&T도 미국 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장이나 중국인들의 전화 사용 습관에 대한 연구 조사도
하지 않은 채 중국 시장에 뛰어 들었다. 당시 중국은 전화가 아주 귀했고 서비스도 비교적 열악했다. 사람들은 공중 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려야 했고, 차례가 와도 라인이 연결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교환기는 중국 시장에서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특수하게 제작되어야 했다.
AT&T는, 그러나, 미국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는 재고품을 그대로 중국에 실어 보냈다. 우한(Wuhan)에 설치 된 첫 번째 교환기는 곧 과부하가 걸려서 중국 내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중국 소비자들과 전화 사용자들은 전화통신부에 항의했고 전화통신부는 홍콩에 있는 AT&T 사무실을 통해 AT&T에 항의하게 되었다. 중국 사업을 하겠다는 AT&T가 중국 내에 사무실 하나 조차 없었으니 또 하나의 전략적 실책이었다. 홍콩 사무실은 당연히 그 문제들을 처리할 수 없었으므로 부품들과 기술자들을 모두 미국에 요청해서 중국으로 실어 보냈다. 몇 달 동안 AT&T는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시간만 가고 중국 내 다른 곳에 설치된 AT&T 교환기도 문제가 생겼다. Alcatel이나 다른 경쟁자들은 이미 중국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원도 대기하고 있어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현지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처리하였지만 AT&T는 중도에서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 회사를 잘 아는 사람이 말했듯이, "AT&T는 마치 아이오와에
교환기를 파는 것처럼 생각했다"
AT&T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AT&T는 매 번 거래를 순수한 상업거래로만 생각했지만 중국은 장기간의 사업 관계를 위한 기초를 놓는다고 생각했었다. AT&T의 태도에 실망한 중국은 1980년대 말에 마침내 그들로부터 교환기 구매를 중단하고 말았다.
1990년에 들어 와서, AT&T 부회장 랜디 토비스가 비싼 비용을 들여 2년 동안 뉴욕과 베이징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한 후에 겨우 AT&T의 소동들을 해결하였다. AT&T는 마침내 중국에서 디지털 교환기를 생산하는 합작 법인을 포함한 잠정 합의를 베이징 당국과 체결하였다. 그 법인은 중국 내 400여 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원해서 문제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제 21 계 : 도망할 때에는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하라 (金蟬脫殼 금선탈각)
해 설 : 도망할 때에는 겉으로 들어 내지 말고 은밀히 해야 한다.
적이 추격하지 않도록 가짜의 요새를 만든 후 껍데기만 남긴 채 조용히 철수한다
삼국시대, 여포는 원소의 수하에 있었는데 원소는 여포를 결코 신임하지 않았다. 후일 여포는 원소를 떠나기로 했으나 원소는 군대를 보내 그를 죽이려 했다. 여포는 원소가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침소에 사람이 아직도 자고 있는 것처럼 만든 후 살며시 빠져 나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손자는 일찍이"강할 때 약한 척하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가끔 자기가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정장한 미국의 상업 은행원이나 발끝까지 차려 입은 홍콩의 비즈니스맨들은 회의장에 노타이 차림이나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중국 측 사람들을 가끔 무시하곤 한다.
오늘 날의 중국은 지난 날의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청바지나 슬리퍼를 신고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들은 휴대폰은 물론 벤츠를 타고 다니며, 세계 최고의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는 제 3의 세계 경제 대국에 걸맞게 최 첨단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전 세계 주식 시장에 상장했을 뿐 아니라 채권도 발행하는 등 중국 기업들은 이 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담배 연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고 회의실 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커피잔과 찻잔에 담배 꽁초가 수북하게 쌓이고, 협상 쌍방이 주요 쟁점에 관해 접점을 찾지 못하게 되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 명백해 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것을 타개할 간접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장소를 바꿔 모든 것을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전환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방 투자자들은,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서 협상장을 빠져 나와 식당이나 카라오케에서, 소위 "우호적인 토론과 상호 이익"의 정신으로 간접적인 협의를 한 후에 가끔 협상이 타결되는 것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장소를 바꿔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것은 협상 쌍방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게임 방식이다. 협상이 도무지 진척이 없게 되면, 외국 측은 토의를 끝내고 중국 측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카라오케를 같이 가는 것이 협상 테이블에서 계속 밀어 부치는 것 보다 어느 정도 그 쟁점에 대해 상호 이해를 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중국 측은 집단을 이뤄 협상을 한다. 조금씩 다른 여러 의견들이 있을 경우, 팀 압력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진하기가 힘들어 진다. 이러할 때, 장소를 바꾸게 되면 훨씬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디어를 상대 팀에게 개인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고, 상대 팀의 생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모두가 협상 테이블에 다시 돌아 왔을 때에는 상대 팀이 점차 다른 입장에 근접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 협상하러 가게 되면, 중국 측은 자기들이 가난하고 개발 도상 국가인 만큼 여러분들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전에 일본도 가난하다고 엄살을 떨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어느 협상 전문가가 말했다.
제 22 계 : 도적을 잡기 위해서는 그 문을 꽉 닫아라(關門捉賊 관문착적)
해 설 : 약하거나 숫자가 적은 적을 철저히 전멸시키기 위해서는 도망 갈 구멍을 남겨 둬서는 안 된다. 만약에 약한 적이 도망가게 놔 두면 나중에 골치거리가 되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역자 주 : 여기의 적(賊)은 게릴라 같은 적을 의미한다. 지금은 세력이 약하지만 놓아 주거나 그냥 놔두면 기습 공격과 같은 골치 아픈 일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뿌리를 뽑도록 철저히 대처해야 된다는 뜻이다.)
BC 260 년, 진(秦) 나라가 조 나라와 전쟁 중에 있었다. 진 나라의 장군 백기는 적은 군대를 준비해 조 나라의 사령관 조괄을 유인해 내라고 명령했다. 조괄이 진 나라 군대를 추격해서 창비(Changbi)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백기가 쳐 놓은 포위 망에 걸려 들고 말았다. 조괄의 군사들은 보급과 증원을 받을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전멸하게 된다.(역자 주 : 유명한 진 나라와 조 나라 사이의 ‘창평 대전 Battle of Changping’이다.)
중국 측의 홈 그라운드에서 협상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든다. 중국 측의 경영 팀은 아무 때라도 회사 일로 협상이 중단 되고, 이러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명분 하에 아무 때나 협상장을 떠나곤 한다. 때로는 외국 측으로 하여금 그들이 협상장에 돌아 올 때 까지 꼼짝없이 협상장에 며칠 씩 그냥 쳐 박혀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일례로, 어느 외국 협상단이 한 겨울에 중국 측과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추운 회의실에 쳐 박혀 있은 일이 있었다. 협상은 매일 아침 식사, 점심 식사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한다고 중단되곤 했다. 저녁 식사는 언제나 독한 현지 독주를 끊임 없이 간베이 하곤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공장 소유의 카라오케에 가서 시시콜콜한 얘기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외국 팀은 중국 팀을 중립적인 도시, 즉 베이징으로 초청해서 협상을 계속했다. 외국 측은 중국 측의 호텔 방을 예약하고 식사도 예약했으며, 협상이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협상 시간 계획을 미리 확정해 놓았다. 이 번에는 중국 측이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외국 측이 호텔 방 값과 식사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중국 측은 별 수 없이 협상장에 머물러 그 거래를 끝내야 했던 것이다.
제 23 계 : 이웃 나라는 공격하되 먼 나라와는 친선을 맺는다(遠交近攻 원교근공)
해 설 :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잠정적인 동맹이 될 수 있다. 너무 많은 적을 동시에 만들지 말아라. 다른 표현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물은 불을 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화급한 위험은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장기적인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전국시대 때, 유능한 책사였던 범수는 진나라 왕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도록 건의했다. 진 나라 소양왕은 책사 범수의 계책을 옳다고 판단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진 나라는 그 후 한, 조, 위, 초, 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나라를 패배시키고 마침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2 km에 이르는 국경 분쟁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중국은 베트남 정부와 군부에게 대단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를 통해서 베트남의 고급 관료들은 베이징에 자주 왔었으며, 중국 기술자들이 후방에서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베트콩을 지원하였다.
인도 차이나 반도에서의 오랜 동안 반미 전쟁 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 및 남 베트남의 진지에서의 삼국 공산당 관계가 너무도 긴밀하였기에 호 치 민(Ho Chi Min)은 한 때 그들의 관계를 "순치지간(脣齒之間)"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1979년,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이공이 베트콩에 의해 안전하게 해방된 후 호치민 시로 이름이 바뀌고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의 장악 하에 들어 가게 되자 인도 차이나의 공동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베트남 공산당과 크메르 루즈는 경제 개혁과 영토 문제 등의 정책에 있어서 더 이상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다.
폴 포트가 "대 원년정책" (Year Zero ; 역자 주 :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은 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 달력의 Year One을 본 따서 만든 정책. Year Zero 이전의 모든 역사와 인민들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모두 숙청하고 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750,000명에서 많게는 1,700,000명(당시 총 인구의 26%)에 이르는 인민들이 학살 당했다.) 을 도입하고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대학살(나중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까지 확대 되었다)하게 되자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악화 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 베트남과 긴장 관계에 있던 중국은 크메르 루즈에게 손을 내 밀었다. 폴 포트가 캄보디아의 정글에서 나와 최초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이 1970년, 바로 베이징의 수도 국제 공항에서 화 구오 펑(Hua Guo Feng)의 영접을 받은 것이었다.
1979년 크메르 루즈가 남쪽 베트남 국경을 침공하자 베트남이 반격에 나섰다. 캄보디아에 진격해 가면서 베트남 군은 무수한 집단 학살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캄보디아에서 자행되었던 만행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 군은 프놈펜까지 진격하여 폴 포트를 태국 국경 쪽으로 축출하였다.
중국은 멀리 떨어 진 크메르 루즈와 친선을 맺은 후 "베트남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 위해" 이웃에 있는 베트남을 공격하게 된다.
1979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전쟁으로 쌍방 모두 무수한 사상자가 났으며 양국 간 협력 관계도 깨어 졌다. 중국은 크메르 루즈가 태국 국경 부근에 있는 정글에서 계속 투쟁하도록 엄청난 지원을 계속했다.
베트남은 전선이 양 쪽으로 전개 돼 막대한 자원이 군사비로 지출 되었다. 더 이상 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베트남은 마침내 캄보디아에서 철군을 단행했다. 1992년에는 중국과 베트남 양국의 당 대 당의 관계가 복원되었고 현재는 엄청난 국경 무역이 이뤄지고 있다.
제 24 계 : 괵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안전 통로를 빌려라(假道滅虢 가도멸괵 역자 주 :道(도)대신 途(도)를 쓰기도 하고 滅(멸)대신 伐(벌)을 쓰기도 한다)
해 설 : 약자가 위협적이지 않으면 약자를 도와 그들의 지원을 얻어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와야 한다
춘추시대, 진(晉) 나라는 늘 괵(虢) 나라와 우(虞)를 정복하려 했다. 진 나라의 모사 순식은 우 나라 왕에게 뇌물을 줘서 괵 나라를 치기 위한 통로를 빌려 주도록 제안했다. 우 나라는 탐욕 때문에 어리석게도 그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괵 나라를 침략한 후 진 나라는 군대를 돌려 우 나라도 멸망시키고 말았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와 당 대 당의 관계를 분리하는 외교 정책을 써 왔다.
이런 관계로, 중국은 여러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유지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 나라의 공산당을 지원하곤 하는데 그 나라 공산당의 정책은 가끔 그 나라 정부의 정책과 다른 경우가 많다.
바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그러한 케이스인데 중국은 이들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정부에 반대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공산당을 지원하였다.
또 다른 경우에 있어서, 중국은 제 3 세계와 개발 도상국들에게 혁명과 경제 개발을 위한 원조를 제공해 주었다.(역자 주 : 오늘 날에는 혁명을 위한 원조는 거의 없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이 전쟁을 도발했을 때, 중국은 엄청난 손해를 무릅쓰고도 북한을 도왔다. 당시 상황에서는 형제 사회주의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었고 이는 그 이후 중국의 주요 정책 기조가 되었다. 물론 그러한 원조를 통해서 중국은 그 국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찬 가지로, 중국은 베트남 전쟁 중에는 많은 고문단을 북 베트남에 보냈을 뿐 아니라, 북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때와 남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되는데 엄청난 규모의 원조와 지원을 보냈던 바 있다. 중국은 라오스 독립을 위해 파테트 라오(Pathet Lao; 역자 주: 라오스의 공산주의 운동)를 지원했고 나중에는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까지 지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한 나라들을 도와 준 결과, 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서 전략적 접근권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대단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제 25 계 : 보와 기둥을 몰래 썩은 나무로 바꿔 치기 한다(偸樑換柱 투량환주)
해 설 : 적의 중요 지원을 제거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한다
송 나라 진종 시대, 황후는 임신이 되지 않는데 궁녀 하나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것을 알게 된 황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약 궁녀가 사내 아이를 낳으면 황후의 자리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계략을 세워 베개를 옷 밑에 넣고는 자기도 임신한 것처럼 꾸몄다. 마침내 궁녀가 사내 아이를 출산하자 황후는 심복을 시켜 그 아이를 몰래 훔치고는 고양이를 대신 갖다 놓았다.
영국은 곧 넘겨 줄 식민지에 이러한 계책을 쓰기로 유명하다. 인도, 피지, 말레이지아 및 싱가포르에서 그들이 독립하기 직전, 재정을 고갈시키고 현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식민지 유물이었다.
홍콩 반환 직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를 마감할 때의 전형적인 방법이었다.
주변 국가들의 식민지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영국 식민 당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전에 홍콩 정부의 "기둥을 바꿔 치기 해서""썩은 나무로" 대체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 정부가 중국과 협상하면서 가장 중시한 것은 거대한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홍콩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섬에 위치한 관계로 연결 도로와 연결 철도를 건설하는데 엄청난 투자가 필요했고 따라서 누가 봐도 이 것은 애물단지였다. 중국이 보기에 기존의 홍콩 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카오, 선전, 주하이, 광조우에 이미 국제 공항이 있기 때문에 신공항의 필요성이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그 프로젝트를 밀어 부쳤다. 남들이 보기에, 그 의도는 공사를 영국 건설회사들에게 맡겨 홍콩의 잔여 외화를 소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홍콩에 외화가 소진되고 난 후 새 공항이 얼마나 유용할지는 확실치 않다.(역자 주 : 1995년 당시의 작가 생각이었으며, 그 이후 상황 발전에 따라 다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영국은 "통과 열차(through train)" 정부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 말은 홍콩 입법원 의원의 임기를 1997년 홍콩 반환 이후까지 걸치게 하자는 것이다. 중국이 걱정하는 것은 홍콩 정부 내에 더 많은 "썩은 목재"를 식민지 유물로 물려 받게 되는 것이었다.
제 26 계 :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꾸짖는다(指桑傌槐)
해 설 : 반대를 나타내기 위한 구실로 어떤 대상을 사용한다
명 나라 헌종 황제 시대, 왕지라고 하는 못된 환관이 있었다. 왕지는 황제와 특히 가까웠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었고 이 것은 명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았다.
어느 날, 아 초우(A Chou)라고 하는 궁궐 광대가 궁궐에서 공연을 했는데 거기서 그는 술 주정꾼으로 나왔다. 주정꾼 역이었으므로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공연 내용 중에, 높은 자리의 대신이 공연장으로 오고 있으니 노래와 춤을 멈추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 대해 아 초우는 "나는 높은 대신 정도는 무섭지 않다" 라고 말하면서 춤을 멈추지 않고 익살을 계속했다. 다음에는 황제가 지나 간다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익살을 떨면서 그는 황제라도 두렵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자 환관 왕지가 온다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아 초우는 황급히 무릎을 꿇으면서, "죽어 마땅합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저는 황제도 두렵지 않습니다만, 환관 양지 나리는 무서워합니다"라고 넉살을 떨었다. 여기서, 황제 보다 환관을 더 무섭다고 말함으로써, 아 초우는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왕지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과 황제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렸던 것이다. 또한 교묘하게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황제의 어리석음도 꾸짖고 비평한 것이었다.
이 계책을 쓴다는 것은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무 관계가 없는 다른 것을 빌리거나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책을 쓰는 좋은 예는 미국 중국 간의 무역 분쟁이다.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회나무를 꾸짖는다"는 계책은 원래 옛 중국의 격언이었지만, 미국 무역 협상단은 이미 이를 훌륭하게 배워서 사용하고 있다. 다른 말로 번역하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가리키면서 중국의 외환 시스템과 지적 재산권 문제를 꾸짖는다"
미국의 급증하는 대 중국 무역 적자를 줄이는 협상에서 적당한 방법이 없으니까 미국은 네가티브 작전으로 나가는 것이다. 지난 여름 미국 재무부 차관 로렌스 섬머스는 중국이 외환 시스템을 조작해서 효과적인 지불 내역 조절이 어려워 졌다고 중국을 비난하면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중국의 GATT 가입을 막겠다고 경고했다. (역자 주 : 1995년의 상황이다)
제 27 계 : 일부러 바보인 척 하라(裝聾作啞 장롱작아 역자 주 假痴不癲 가치부전이라고도 한다)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하라
삼국 시대, 사마 의는 일부러 바보인 척 해서 조상으로 하여금 사마 의는 병약하고 쓸모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마 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조상이 방심함을 틈타 그를 죽이고 자기가 병권을 차지하였다.
중국에서 협상하면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잔뜩 차려 입고 중국에 도착한 서방 협상 팀은 회의장에 도착해서 상대방이 청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대는 것을 보고는 상대를 깔보게 된다.
중국 측은 서방 측 보다 멋지게 보이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서방 측이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서방에 대해 알고 있다.
70년 대 후반, 중국은 문화 대혁명의 충격에서 벗어나, 80년 대에 들어 와서는 새로운 경제 성장의 시대에 접어 들게 된다. 그 때에는 서방에서 들어 온 것은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서방 사람들은 그냥 서양적이기만 해도 쉽게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1988년, 일단의 홍콩 비즈니스 사절단이 샹하이를 방문했었다. 그들은 부시장이 운동화를 신은 채 회의장에 들어 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마 그는 현장 방문 후 바로 회의장으로 온 것일 것이다). 번쩍이는 롤렉스 시계를 찬 홍콩 비즈니스맨들은 서로 수근거리면서, 홍콩에서 배운 영국식 액센트로, "정말 못 봐 주겠군! 오, 저 꼴 좀 봐! 정말 못 봐 주겠다니까!" 하고 속삭였다. 그들은 당시 샹하이 부시장이었던 주 롱지(Zhu Rongji)가 5년 후에 제 1 부총리가 되어 중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금융 개혁을 단행할 "금융 황제"가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외국에서 온 관리자들은 경영 기법이나 분석 능력은 뛰어 나지만, 막상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 벽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 파트너가 중국의 각 성끼리의 보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개발해 놓은 유통과 판매 기법, 그리고 국내 시장을 뚫고 들어 가는 데 필수적인 "'쑞�(guanxi), 즉 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방에서 온 비즈니스맨이 최신 컴퓨터에 통계 숫자를 제시한다고 해도, 판매량과 이익에 관한 전망치는 비현실적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중국사람들이 살아 남기 위해 개발한 일종의 "뒷 거래(backdoor)"기술(시장 가격을 낮추기 위해 원자재에 국가 보조금을 받아 낸다던가 하는 등)을 알지 못하고는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 28 계 : 올라간 다음에 사다리를 치운다(上屋抽梯 상옥추제)
해 설 : 적을 함정으로 유인 한 후 퇴로를 차단한다
이 계책은 삼국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한 젊은 장군(역자주 : 유표의 장자 유기)이 가족 간 분규에 빠져 당시 유명한 책사 제갈 량의 조언을 듣고 싶어 했으나 제갈 량은 남의 가족 문제에 끼어 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갈 량은 마지 못해 그 사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그 일에 관여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 장군은 꾀를 써서 그가 소장한 희귀 고전 책들을 보여 주겠다는 핑계로 제갈 량을 2층에 있는 서재로 안내했다. 제갈 량은 서재로 올라 간 후 사다리가 치워진 것을 알았다.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게 되자 그 장군에게 조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마오쩌둥은 "적을 깊숙하게 유인해서 적의 주력을 피해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하는" 전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마오쩌둥은 여러 차례 창카이섹(역자 주 :장개석)의 군대를 "홍군 기지"로 깊숙하게 유인하는 전략을 사용했는데, 그들이 직접적으로 밀고 들어 오면 깊숙하게 유인해 함정에 빠트렸다. 마오쩌둥은 수호지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이 전법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이 권투를 할 때, 현명한 선수는 처음에 조금 양보를 하는 반면, 어리석은 선수는 시작하자마자 맹렬하게 달려 붙어 모든 힘을 다 소진하고 만다. 그래서 끝에 보면, 그는 처음에 양보했던 사람에게 얻어 맞게 된다. 수호지에 보면, 훈련 선생 항(Hang)이 차이 진(Chai Jin)의 영지에서 린 총(Lin Chong)에게 도전하면서, "붙어 봐!, 붙어 봐!" 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결국, 뒤로 빼던 린 총이 항의 약점을 파악하고 한 방에 그를 때려 눕힌다."
쟈르딘 매더슨 지주회사의 한 직원이 볼 베어링 구매를 위한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 겨울에 시엔판(Xianfan)에 있는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공장을 방문하니 공장 측은 놀랍게도 다시 가격을 올리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가격 협상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주 추운 날씨였습니다. 공장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더운 물과 샤워도 없었습니다. 식당에서도 장갑을 껴야 했습니다,"라고 그는 후일 이야기 했다.
그가 보기에 협상이 더 이상 진전이 없다고 판단 되어 그는 그 곳을 떠나기로 했다. 최소한 그는 떠날 자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장 측은 그에게 열차 표를 사는 것을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편을 구해 역으로 가서 자기가 직접 표를 구해 보기로 했다. "미안합니다. 공장 버스는 다른 일로 바쁩니다,"라고 공장 측에서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냥 그대로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공장 버스는 그가 새로운 가격 조건에 동의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날 이후 며칠 간 계속 "바빴다."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날 공장은 꽁꽁 언 그를 버스에 태워 역으로 보내 주었다. 아마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제 29 계 : 가짜 꽃으로 나무를 장식해라(樹上開花 수상개화)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당신이 아주 강력하다고 믿도록 오도하기 위해 과장해라
수 나라 양제는 중국 경제를 강화 시키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했다. 더 나아가 그는 외국 사절단들에게 식사 비용을 받지 말고 대신에 " 중국은 부자이기 때문에 식사 비용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도록 식당들에게 명령했다. 겨울에는 수도 낙양거리의 귤나무들을 비단 꽃으로 장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외국 사절들은 낙양을 떠날 때,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보게 되고 비단 꽃은 그저 보여 주기 위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객들이 중국에 도착하게 되면 때때로 유치원 어린이들이 깃발을 흔들고 환영의 노래를 부르면서 환영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 투자자가 오게 되면, 공장 방문을 하게 되고 잘 조직된 생산 팀, 그리고 그 공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등을 보여 주게 된다. (가끔 지방 정부 관계자가 그 기업을 칭찬하고 외국인이 투자하게 되면 가능한 많은 특혜 조치를 해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중국인들은 손님들에게 멋진 쇼를 보여 주는데 전문가이다.
국가 원수가 방문하게 되면 환영군중이 동원되고 거리도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당연히 인상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외국 다국적 기업의 회장이 방문하게 되면, 공항에서의 VIP 대접에서부터 시작해서 벤츠를 대절하고 경찰이 에스코트해서 붉은 카펫과 아주 이국적이고 값 비싼 중국 예술품들로 장식 된 인민 대회당으로 모셔지게 되는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제 투자하고자 하는 공장의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 떨어진 것이다. 다음은 어느 외국 회사의 중국 대표가 한 말이다:
"가장 말려야 할 일은 회사의 CEO가 특정 의제 없이 중국을 방문해서, 감동한 나머지 함부로 약속을 하고, 현지 대표로 하여금 그 세부 내용을 협상하도록 하고 떠나는 것이다"
제 30 계 : 손님의 위치에서 주인으로 바꾸다(反客爲主 반객위주)
해 설 : 장소/위치를 바꾸어라 상황을 반전시켜라
유방과 항우가 진(秦) 나라 천자에 대항한 반란을 성공했을 때, 항우(유방보다 세력이 훨씬 컸다)는 아직 지방에서 작전을 마무리하느라고 바쁜 틈을 타, 유방이 먼저 천자의 대궐을 점령하게 되었다. 유방이 대궐에서의 첫 날 밤, 쫓겨 난 천자의 궁녀들과
함께 잠 자리에 들려 할 때, 그의 신하 한 명이 그에게 간했다. 내용인즉슨, 항우는 당시 유방보다 4배나 군대가 많고, 유방은 단지 "손님"일 뿐이며 항우가 돌아 오면 그가 진정한 "주인"이 될 터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방은 그의 말을 따라서 대궐을 떠났다. 항우가 돌아 와 궁녀들과 대궐의 환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 편, 유방은 군사를 키워 세력이 커지게 되자 돌아 와 항우를 대궐에서 몰아 내었다. (항우와 그의 애첩은 달아 나다가 둘 다 모두 목을 끊어 자살하고 말았다)
손님에서 주인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은 위치를 뒤집어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고전적인 전략이다.
중국에 온지 4년이 넘었던 어느 독일 회사의 현지 대표인 칼 하인쯔 에게(Karl Heinz Ege)는 중국 관리들과 끊임없이 연회에서 간베이를 계속하는데 질린 나머지 마침내 독일 슈납스(Schnapps; 역자 주: 독일의 전통적인 과일 증류주로서 40% 정도 내외의 독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수도 없는 마오타이 간베이 후 모두들 정신이 없을 때 칼 에게는 테이블 밑에 보관해 두었던 종이 백에서 슈납스 한 병을 꺼내서 "독일 마오타이"를 마셔 봐야 한다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중국 관리들은 슈납스를 목으로 털어 넣으면서 모두들 오만상을 찡그렸다. 얼굴들이 처음에는 빨갛게 나중에는 하얗게 변했다. 앞 다투어 간베이하던 술 자리는 점잖은 얘기를 주고 받는 자리로 변했다.
손님에서 주인으로 처지가 바뀐 가장 그럴듯한 경우는 아마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로비 팀을 파견해 지방 성장을 만나기로 한 어느 유럽 회사의 경우일 것이다. 그 유럽 회사의 사장은 현지 대표에게, "이 번은 정말 아주 중요한 회의" 이니 "중국 관리들과 연회도 피하고 술도 마시지 말도록 할 것"과, "우리도 매우 심각하게 행동하고 현안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도록 할 것"을 신신 당부하였다.
현지 관리자들이 사장의 회의 참석을 위해 지방 정부 관리들과 협의를 하자, 그 지방 정부의 외사부는(물론 외국 측이 연회 비용을 부담할 것을 기대하면서) 우선 "당신들이 초청하는 성장 참석 연회 식당을 우리가 예약할까요, 아니면 당신들이 직접 예약할건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자기네 사장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기가 곤란해진 그 회사 직원은 그냥 그들 보고 예약하라고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유럽 회사의 사장이 "심각하고 중요한 공식적인 의견 교환"을 위해 도착했었지만 그 회의는 고작 15분 만에 끝났다. 성장은 간단했다:"나는 당신 회사의 프로젝트를 지지합니다. 이제 연회장으로 옮겨서 술이나 듭시다."
사장은 나중에 보니 자기 회사가 수 많은 지방 정부 관리들이 마신 여러 병의 XO와 값 비싼 곰 발바닥 요리 등을 포함한 모든 연회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뿐이 아니라 그 지방 정부가 성장과 만난 회의실의 비용까지 그 회사에 청구한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제 31 계 : 미인을 써서 유혹하라(美人計 미인계)
해 설 : 적으로 하여금 시간이나 정력을 뺏기는 일에 빠져 들게 해서 투지를 잃게 만든다
동한 시대, 어린 천자를 대신해 국정을 맡았던 재상 동탁은 방탕한 독재자였다. 당시 왕 윤은 동탁을 처치할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왕 윤은 그의 어여쁜 딸을 그 계획에 끌어 들였다. 왕 윤은 그의 딸을 동탁과 그의 충성스런 군대 사령관 여포에게 주겠다고 동시에 약속했다. 그의 딸은 미모를 이용해 두 사람 모두에게 애교를 부렸다. 동탁은 재상으로서 여포에게 그 녀로부터 손을 떼도록 명령했다. 군대 사령관이었던 여포는 동탁을 살해하고 만다. 왕 윤의 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것은 오래 된 계책이다. 중국 사람들은 20대의 새파란 미녀를 중년의 경영진 통역으로 회의에 내 보내는 것을 좋아 한다. 이렇게 되면 그 경영진들도 마음을 열어 이야기 하게 되고 통역들은 사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된다.
이 계책은 중국 측이 외국 측의 관리자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합작 회사 이사회에서 거론하기는 곤란할 때 그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된다. 외국인이 중국에 단신으로 너무 오랜 동안 있게 되면 실수를 하기 쉽고 경찰에 쉽게 포착된다.
매음하다 걸리면, 경찰은 "호색한"이라고 여권의 매 페이지마다 스탬프를 찍어서 가장 가까운 공항을 통해 그를 불명예스럽게 추방한다. 어느 호주 경영진은 중국에서 "성범죄"로 걸린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며 그 여권을 액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제 32 계 : 수비할 군사가 없는 성의 성문을 열다(空城計 공성계)
해 설 : 실로 단순하게 행동함으로써 적이 의심하도록 한다적으로 하여금 당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도록 한다
삼국 시대, 유명한 전략가인 제갈 량은 그의 성이 자기 보다 훨씬 강력한 적군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이 계책을 써서 포위된 성의 성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적들이 봤을 때 성 안에는 열린 성문으로부터 먼지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람뿐 아무런 무장도 되어 있지 않은 텅 빈 거리만 보였다. 필시 다른 계책이 있다고 판단한 적은 포위를 풀고 물러 갔다.
시범 공장을 방문했을 때 "모든 것이 OK입니다" 라고 하거나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는 말은 때때로 투자자를 끌어 들이기 보다는 투자자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곤 한다.
서방 측은 열심히 협상에서 설명하고 협상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중국 측은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흔히 보는 협상장의 풍경이다. 그러나 서방 측은 상대방이 동의 했다고 생각한 계약 조항 어느 부분에 대해서도 향후 중국 측은 동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에서 "예(yes)"라는 것은 다양한 중국 측 대답을 번역한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아마도, "예,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는 의미이거나, 조금 좋게 보면 "괜찮은 것 같군요"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제 2 부 예라고 하는 기술 참조)
중국 측과 기술 이전 계약을 맺으려 하는 어느 외국 회사의 예를 들어 보자. 그 회사 대표단은 그 시의 시장과 중국 파트너와 함께 밤 늦도록 연회를 가졌다. 그들은 "시장이 연회 내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협상이 타결 되었다고 확신하고는 베이징으로 돌아 와서 변호사들에게 계약서를 만들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시장이 자기들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중국 측 공장의 회장도 "모든 것이 OK"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현재 상황 하에서는 모든 것이 OK이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많은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그래서 이전에 동의했던 계약 조건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또 다시) 협의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의 "예 (Yes"s)" 보다 그들이 다른 이유를 댈 가능성(But"s)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 33 계 : 적의 첩자를 이용해서 적 진영의 불화를 조장한다(反間計 반간계)
해 설 : 그릇된 정보를 흘려라 적 진에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라 적의 첩자를 역 이용해서 적 진에 불화와 알력을 조성하라
삼국 시대, 주유는 조조의 첩자를 이용해서 잘못된 정보를 조조에게 보내 조조로 하여금 그의 유능한 수군 지휘자를 처단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조조는 그의 선단을 지휘할 유능한 지휘관을 잃게 되었으며 결과는 참담했다.
손자는 적의 첩자를 이용해 자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 것은 외국 측이나 중국 측 모두가 사용하기 좋아하는 계책이다. 외국 측은 도청되는 줄 뻔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쓸데 없는 얘기를 전화를 통해 하기도 하고, 중국 측은 최신식 수입 의상을 차려 입은 매력적인 통역을 통해 원래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요구를 하기도 한다.
중국 산업 스파이에 관해서 미리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 온 어느 외국 비즈니스맨은 자기가 묵고 있는 1950년대 소련식으로 지어진 호텔에는 틀림없이 어딘가 도청 장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틀림없이 있다고 확신하는 도청 장치를 찾아 내기 위해서 온 호텔 방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그는, 방 전체를 덮고 있는 커다란 중국 카페트 밑에서 바닥에 나사로 고정되어 있는 둥근 금속 판을 찾아 내었다. 그는 잽싸게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첫 번째 나사를 풀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나사도 풀었다. 그는 마침내 방에 설치 된 도청 장치를 찾아 내어 밝혀 낸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세 번째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래 층 방에 있는 소련식 샨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져 부딪치는 소리에 그의 상상은 끝이 났다.
제 34 계 " 적진에 들어 가 적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다(苦肉計 고육계)
해 설 : 적의 신뢰를 얻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라 적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라
춘추 시대, 정 나라 왕은 적대 관계에 있는 호 나라 왕의 적개심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의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호 나라에 대한 친선의 표시로 그는 호 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하던 신하의 목을 베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호 나라 왕은 정 나라와의 국경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정 나라는 호 나라를 기습해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진시황을 살해 하려 했던 자객은 황제를 직접 알현하는 기회를 얻기 위하여 그의 가장 친한 친구(진시황의 수배자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었다)의 목을 베었다.
외국 투자자들은 중국 측이 베푸는 연회, 지방 명승지 관광, 그리고 선물 등, 중국 측이 돈 쓰는 것을 보고는 감명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는 우리의 중국 파트너를 믿는다,,, 그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라고 순진한 외국 투자자는 말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중국으로 돌아 오는 많은 화교들은 처음에 아무 보상도 요구하지 않은 채 선물만 갖고 온다. 그들은 외국에서 번 돈을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살았던 동네에 학교나 도로, 병원을 짓는데 기부한다.
표면상으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친선과 자비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전략적 행동이다. 화교들은 자기 조상들의 고향에다가 기부함으로써,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올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해 줘야겠다는 미묘한 의무감을 관리들에게 심어 주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부나 선물로 나간 돈은 나중에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될 때 다시 돌아 오게 된다.
제 35 계 : 적이 자기 전함을 서로 연결해 묶도록 하라(連環計 연환계)
해 설 : 적의 강점을 약점으로 만들어라 적이 자만에 빠지도록 해라 오늘 날에는 적이 패배하도록 만드는 일련의 전략들을 의미한다
이 계책은 삼국 시대 조조가 풍랑이 거센 강을 건널 때 전함들이 안정성있게 항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함들을 서로 연결해서 묶은 데서 비롯되었다. 조조는 적이 원하는 대로 계책에 빠져 들었다. 적이 화공으로 공격해 왔을 때 그의 전함들은 서로 쇠 사슬로 묶여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불 타 올랐던 것이다.(역자 주 :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회사의 모든 배들을 한데 묶어서는 안 된다." 또한 당신의 손도 한데 묶어서는 안 된다. (역자 주 :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미리 본사에 보고를 하거나 실행 계획을 상대에게 알려 당신이 상황에 따라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 함) 그리고 회사의 본부가 당신에게 운신할 여지를 주지 않고 꼼짝 못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
어느 다국적 기업이 타이완 출신 관리자에게 전권을 줘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유는 단지 그가 중국어를 할 줄 아니까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과 협상할 줄 알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회사는 아주 선택을 잘 했다고 확신 했다. 그러나 놀라지 말기를!
그 타이완 사람은 본사를 의식하고는 첫 날부터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밀어 부치기 시작했다. 마치 타이페이의 러쉬 아워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면(중국에서의 협상에서는) 그 자동차의 뒷부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의 첫 번째 실수는 중국 측 경영진을 전적으로 통제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와 협상하는 당사자가 바로 그 경영진인데 그들을 통제하겠다니 일이 잘 될 리 없었다. 본사는 그의 그런 강경한 방법을 지지했고 협상에서 계속 그러한 자세를 견지하도록 요구했다.
두 번째 실수는 중국 경영진을 거세하거나 경영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아무리 바보라 해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의 계약서 초안을 중국 경영진에게 제시한 것이었다. 본사는 미국 변호사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 계약서 초안을 좋아했다. 미국에 있는 변호사의 동의가 없이는 협상 중에 한 자도 고칠 수 없게 했다.
회사의 세 번째 실수는 그가 중국 측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거세 조항을 받아 들이고 그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할 수 있다고 믿고 중국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사 사람들은 타이완 사람이 그 협상을 하루 빨리 끝내기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 협상은 그 해 예산에 맞추기 위해서 연말 이전에 타결이 되어야만 했다. 크리스마스 휴가철이 곧 다가 오고 있었다. 모두가 그 결과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 거래에 대한 모든 희망은 본사로부터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퇫" 하고 알루미늄 타구에 담배 내어 뱉는 소리가 났다. 그 타이완 사람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앞으로 갈 길이 멀었음을 깨달아야 했는데,,,.
제 36 계 : 물러 서는 것이 상책이다(走爲上計 주위상계)
해 설 : 발을 빼라 적이 당신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게임은 하지않는다
춘추 시대, 월 나라 왕(역자 주 : 句踐 구천)이 오 나라를 점령했다. 당시 월 나라 왕의 곁에서 보좌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범려와 문종이다. 범려는 그러나 그 이후 정치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문종은 반면에 월 왕을 따라 권력을 잡게 되었지만 월 왕은 문종이 언젠가 그에게 대항할 것이 두려워 그를 죽이고 만다. 이 고사가 시사하는 것은 "오늘 도망가는 이유는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다"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둥이 말 했듯이, "이길 수 있으면 싸우라 그렇지 않으면 피해라."
중국과 무역을 하는 어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중국 측은 당신이 계약서에 서둘러 서명하기를 원할 때는 언제나 말하기를, 딴 사람이 이 계약서에 서명하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서로의 좋은 관계를 고려해서 당신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말한다. 그 들이 상하이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계약서를 보여 줬을 때, 나는 이러한 가격 조건을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친구로서 말하는데, 얼른 그 사람과 계약을 체결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 조건을 받아 들일 수 없고 다른 누가 받아 들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조용해 졌다."
어느 변호사가 베이징에서 3 주째 협상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운전수(그는 변호사를 태우고 회의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 하면 가끔 그에게 담배를 선물로 주곤 했기 때문이다.)는 변호사가 회의실에 박혀 3 주 동안이나 나오지 않자 짜증이 났다. 마침내, 운전수는 변호사의 비서를 통해 변호사의 베이징 사무실에 메모를 남겼다 "당신 고객이 중국에서 돈을 못 벌면 그냥 집으로 돌아 가라고 말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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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휼륭한 계책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