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남성 : (재)울산문화산업개발원 강종진 원장
30년 만에 귀향 ‘문화산업’분야 개척
세계적인 산업문화도시 울산 재창조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새 문화단체 (재)울산문화산업개발원이 지난2월 개원돼 관심을 끌고 있다. 30년 가까이 울산을 떠나 교수로 사진작가로 활동한 강종진 원장(45)이 당찬 의욕을 보이며 출발했기 때문이다. 강 원장은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일종의 사명감을 안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꿈을 실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는 명품문화도시 울산을 이루기 위해 과감히 출사표를 내던졌다.
강 원장은 공업에만 치우친 울산에서 문화산업을 일궈 균형발전을 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문화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영화 ‘아바타’가 히트 문화상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흥미’가 있기 때문이며, 다큐 ‘아마존의 눈물’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도 재미와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울산에는 우리나라의 원동력이 되는 공단이 있습니다. 이 현장을 재미와 감동을 주는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춰 다큐로 재조명한다면 ‘아마존의 눈물’과도 비견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떠난 고향을 찾아 문화산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성남외과의원 강재근 원장이 아버지고 경상남도의회 의원이었던 성주향씨 어머니란 점 외에 문화계에 선뜻 발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를 독창적이고 재미있게 개발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 울산시와 문화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원장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 때문이다.
그의 탁월한 문화적 마인드는 일찌감치 발견됐다. 울산에서 교교시절을 보내던 중 학교행사 때마다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 인정을 받았다. 그는 ‘사진이 좋다’는 말에 힘을 내 무수히 사고(?)를 저질렀다.
지방도시에서 ‘사진은 예술’이라고 크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다. 동아대 주최 사진대회에서 동상을 수상, 학교 관계자를 놀라게 하고 학우들에게 큰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늘 뜻하지 않은 복병이 있었기에,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갈등을 빚어야 했다.
부모님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거나 다른 학과를 선택하길 원했다. 하지만 강 원장은 부모의 뜻과 달리 사진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 시련이 있었지만 인복이 많았던 그는 지인으로부터 대학에 가려면 학과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학과공부에 매달려 노력한 끝에 중앙대 사진학과에 합격했다.
“사진에 자신감이 있었던 제가 곧바로 무너지게 된 것은 입학하면서 부터입니다. 저보다 훨씬 사진과 사진편집기술이 뛰어난 동기생들을 보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힌 세월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졸업작품전을 하게 될 무렵부터 제 진가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광고사진을 찍게 되면서 담당 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은 강 원장은 이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대학 졸업 후 유명광고대행사에 팀장으로 취직이 되는가 하면 대학원에서 조교로도 활동할 만큼 그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었다. 하루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뛴 시절이지만 피곤해 한 적이 없을 만큼 일이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후 최연소 전문대학 교수로 발탁되면서 콘텐츠 개발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강 원장의 남다른 노력으로 대학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 하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의 대학에 프러포즈를 했다. 한국미를 잘 나타내는 장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포트폴리오를 건넨 결과 영국의 대학 교수로부터 ‘대만족’이라는 답신과 함께 유학의 길에 접어들었다.
당초 영국의 대학에서는 그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해 3년 만에 학위를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누구도 3년 만에 끝낼 수 없는 일. 그 말을 믿고 싶은 마음에 예상보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는 등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 초 영국 브라이튼유니버시티에서 예술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좁고 깊게 학문을 연구하는 게 유럽 방식이란 것을 공부하면서 깨달았지요. 현직 교수도 6년 이상 걸리는 박사 학위를 3년 만에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인 셈이었지요.”
그는 오랜 유학생활 끝에 얻은 지식과 지혜를 고향 울산에 쏟아 부으려 한다. 어떠한 시련 속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정신은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는 어머니 성주향 여사와 참 많이 닮았다. 모 문화계 인사가 “100년에 한 명 정도 탄생할까하는 철의 여성”이라고 어머니를 표현했듯, 그 또한 부드러움 속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이 돋보인다.
재단설립을 하기까지 부모님의 격려를 많이 받은 강 원장은 앞으로 1여 년 동안 기획과 아이디어 등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며, 또한 대외적으로 개발원을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말께 아트페어를 열 예정이다. 그는 충분한 연구 끝에 감동적이고, 신선한 알찬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