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산은 타카페의 산행기을 찾아보니 감악산과 같이 산행을 하는 산이더군요.
앞으로 가볼 산을 아무 생각없이 가는 것도 좋지만, 산행기를 보고 참조하는 것도 좋을것 같아
옮겨봅니다. 원본은 사진까지 겉들여져 있었지만, 짧은 컴실력으로 인해 사진은 옮겨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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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가 서린 감악산!(마차산-감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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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교-431m-마차산-건패고개-감악산-장군봉-임꺽정봉-범륜사/ 2003년 3월 22일/토요일/날씨 : 맑음/총 산행시간 : 7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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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코스
소요산역-소요교-100m-담바위(290m)-망우니고개-310m-431m-밤골재-마차산(588.4m)-410m(점심)-임도-210m-간패고개(368 지방도)-200m-350m헬기장-410m-약수터 안부-설인귀봉(675m)-장군봉-임꺽정봉-540m-사기막 삼거리-약수터삼거리-숯가마터-범륜사-운계폭포-매표소-감악교(849번 지방도)(도상거리 약 1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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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마차산 : 원래 북쪽으로 뻗어가는 산맥이 이 산에서 끝났다 하여 마친산이라 불렀었고 또 마고(磨姑)할미가 비녀를 갈았다하여 마차산(磨叉山)이라 한다.
옛날에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가 이 산정에 있었는데 설인귀 영혼의 묘책으로 이 근방 말과 소의 힘을 이용하여 감악산으로 옮아 갔다는 전설이 있어 마차산으로 불리우고 있음.
▶ 감악산 : 경기 5악에 속하는 험준한 암능과 암봉으로된 산으로 곳곳에 기암과 깍아지른 듯한 바위는 소나무와 잘 어우러져 옛날 풍속화에 나오는 그림같은 산으로 고려시대 이곳에서 사기 그릇을 구워냈다 하여 사기막이라 고도 한다.
감악산은 옛부터 바위사이로 검은 빛과 푸른 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렸다.
▶ 간패고개 : 옛날 임진왜란 당시 왜군(倭軍)이 이곳에서 큰 싸움끝에 이곳을 사수하느라고 방패막이를 하다 못하여 패전을 당한 곳이라 하여서 당시사람들이 이 고개를 방패간(干)자와 패알 패(敗)자를 써서 "간패고개"라 불리워 지금에 이르게 됨.
10 : 20 열차를 이용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무던히 분주하였다.
집에서 2시간 전에 나서서 버스를 타고 7번 전철을 타고 다시 도봉산 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의정부역에 도착하니 10 : 15으로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꽃무늬로 단장한 통일호 경원선 열차는 화사한 봄날과 잘 어울리게 생각된다.
평일에 출근 시간도 아닌데 열차는 빈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승객이 많았다.
울긋불긋한 옷으로 단장한 내 나이 또래의 행락객이 대부분 이었다.
아침을 못먹었기에 달리는 열차 안에서 김밥으로 배를 채우니 열차는 이내 바로 동두천을 거쳐서 소요산 역에 이른다.
소요산역(10 : 50)
소요산을 찾기 위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린다.
역사 대합실은 깨끗하고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을 위하여 한 귀퉁이에 그래도 제법 많은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역사를 빠져나와 모든 사람들은 도로를 건너서 소요산 쪽으로 가는 데 우리는 도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가다가 신천에 놓여 있는 소요교를 건너선다.
신천에 흐르는 물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시꺼먼 물로서 거품을 품으며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서쪽으로 솟은 마차산과 북쪽으로 흐르다 동쪽으로 흐르며 신천에 자락을 내린 산줄기를 보며 하천을 건너자 바로 뚝방 길을 따라서 북쪽을 향한다.
김영도님은 소요초교에서 도로를 따라서 중간에 안부에서 올라 쳤는데 나는 개천 끝자락으로 내린 줄기를 따라서 오르기로 한다.
나지막하게 솟은 봉우리가 있는 데서 논을 가로질러서 산자락에 올라붙는다.
역시 흔적만 희미하게 있으며 잡목이 우거진 곳으로 등로는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낮은 산자락을 올라서니 원 이렇게 교통호와 군 BK 및 시설물이 꽉 들어차 있는 곳이다.
교통호를 따라서 내려서면 좌측으로 이 봉우리로 올라오는 군사 도로와 타이어로 쌓아서 만들어 놓은 군 시설물을 지나서 좁은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좌측으로 향교와 같은 건물이 있어 가보니 유성최씨 제각이었다.
제각 뒤로 묭있는 곳으로 올라가니 계속적으로 유성최씨묘역이 이어 진다.
그중에서 그래도 크고 잘 가꾸어 놓는 묘역에 이르니 진분홍색의 진달래가 화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시 쉬며 산행 복장을 추리고 묘역을 지나서 올라간다.
이곳에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름길로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암릉을 향하여 올라간다.
앞을 막은 암릉에 이르러 우측으로 트레버스를 하여 암릉과 암릉 사이의 협곡을 오르다 우측의 암릉 옆자락으로 올라서 암릉에 오른다.
290m 담바위 (11 : 38)
멀리서 지나며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던 담바위에 올라서니 남쪽으로는 절벽이며 소요산역과 상봉암동 일대와 우리가 올라온 들머리 200m와 지나온 등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여름 T-shirt를 입었건만 무지하게 덥고 땀이 비오듯 흐르며 갈증이 나며 물을 드리킨다.
지금 것 산행을 하며 물을 마신 것이 기억이 나지 않았는 데 이제부터는 사정이 달라 졌다.
서북쪽으로 내려서는 암릉 사이로 진달래와 노란 생강나무 꽃들이 만개를 하였다.
하봉암동을 넘나드는 망우니 고개를 지나며 완만한 오름을 오르내리며 산보하는 듯한 마음으로 산행을 한다.
동북쪽 초성리로 뻗은 310m분기점에 이르러(11 : 58) 서남진을 하며 가는 등로는 생강꽃과 진달래의 향연이었다.
이름 모를 연 보라의 조그마한 종 모양의 꽃들이 앙증맞고 귀엽게 피였으며 산새들이 노래를 하며 봄의 교향악을 울린다.
431m 지하벙커(12 : 18)
완만한 등로가 갑자기 가파라 지며 이 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일부러 쉬지도 않고 계속 올라 종각과 같이 뾰족한 모양의 군 토치카를 올라서면 교통화와 지하 군 시설물들이 있는 431m에 이른다.
이곳의 벙커는 전화 접속단자도 있는 제법 규모가 큰 곳이다.
북쪽으로는 천성리 일대와 옛날 같으면 꿈도 꿀 수가 없었던 아스팔트 도로가 북으로 토하며 이 산줄기는 북북서쪽으로 북진을 하며 임진강에 이른다.
이곳에서 10분 휴식을 취하며 남쪽으로 솟아있는 마차산을 향하여 내려선다.
연천군 천성리와 동두천시 상봉암리를 넘나드는 안부 밤골재를 지나서 오르는 등로는 온통 군 교통호와 토치카로 요새화 되어 있는 곳이다.
지하매설 전화선이 뭉치로 끊어진 곳을 지나서 둔덕에 있는 토치카들을 지나고 우측으로 무엇을 개발하느라 산허리를 잘라가며 파헤쳐 놓은 곳을 바라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좌측의 억새풀 지대를 지나며 오르는 등로는 겹겹이 토치카가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마차산 (12 : 53 /588.4m)
동서로 긴 모양으로 걸쳐 있는 마차산에 오르니 우측의 삼각점이 있는 곳에는 10여명의 산객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쪽의 암봉에 올라서 소요산 일대를 바라보며 샤터를 눌러 본다.
산 허리에 둥지를 틀고 들어 앉아 있는 그레이스켈리 골프장부터 상백운대, 공주봉등 소요산 일대가 가스에 차인체 희미하게 조망된다.
바위를 내려서 마차산 중간부분 헬기장을 지나 산객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삼각점 있는 곳으로 가서 감악산을 바라본다.
우람한 깍아지른 듯한 바위로 된 감악산은 앞쪽의 장군봉은 서울을 바라보며 표효하는 표범과 같이 느껴진다.
남쪽으로 돌로 쌓은 성곽이 있는 마차산을 내려서며 뒤를 돌아본 마차산은 북쪽에서 보던 육산과는 달리 천혜의 요새를 지니고 있는 깍아지른 절벽의 암봉이었다.
가파른 암봉을 즐기며 내려서니 바위 사이를 삐집고 나와 구불구불한 모양을 갖춘 분재모양의 아름다운 소나무를 지난다.
깃봉이 3개 서있는 헬기장을 지나고 서쪽으로 향하며 소나무가 우거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기다란 410m 능선에서 점심 시간을 갖는다.(13 : 21)
27분간의 점심시간을 끝내고 헬기장을 지나서 상패동 내안흥에서 올라오는 임도에 이른다.
임도는 산줄기를 따라서 남쪽으로 나 있으나 임도를 버리고 능선을 올라서니 이내 임도로 다시 내려선다.
임도를 따라 내려서며 따듯한 봄기운에 못 이겨 함박 핀 버들강아지를 지나 어느새 하며 세월을 실감한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안부 세멘 임도를 가로질러서 절개지를 오르니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곳이 발견된다.
몸에 좋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호수를 뽑아서 땅에 업드려 들여 마신다.
항시 마셔 보지만 들적찌근하지 무엇에 좋은 줄을 모르고 넘이 좋다니까 그냥 마신다.
잠시 올라 210m에 이르니 남쪽으로는 등로가 확연한데 서쪽으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갑자기 등로가 없어지고 많은 지능선으로 방향을 잘 잡아서 내려가야 된다.
표시기나 이런 건 애당초 없고 등로도 없는 곳으로 이곳에서 감악산을 연결하여 산행하는 사람들이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교통호를 넘나들며 잡목을 헤치며 지도를 보며 방위각을 잡으며 내려선다.
도로는 보이지 않지만 차량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목적지 간패고개에 다 와가고 있음을 알려 준다.
수안 이공묘를 지나며 도로가 보이고 지하 군 시설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세멘도로가 연결된다.
간패고개 (14 : 33)
남양주군과 연천군의 경계선인 368번 지방도 간패고개에 이르니 길 건너에는 푸른 지붕의 세영테프공장이 있는 곳이다.
그냥 공장 옆으로 치고 오르려 하니 술꾼이 저아래 길이 있는 데 길있는 곳으로 가자고 한다.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 농로가 보여 올라가니 묘역이었다.
이곳도 역시 감악산에 오르는 곳이나 등로가 없는 곳으로 희미한 동에 사람만이 다니는 흔적만 있을 따름이다.
뒤돌아보니 우리가 내려온 군 시설물이 있는 곳 일대와 마차산이 아주 잘 조망이 된다.
첫 번째 200m를 오르고(14 : 50) 완만히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나무에 올무를 설치한 것이 발견되어 죽은 나무에 설치되어 있어서 잘라 멀리 집어 던지고 오르니 또 설치가 되어 있어 시간이 걸려도 수거를 한다.
짧은 거리에 연달아 3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얕은 야산에도 무엇이 있을까?
동네 개를 잡으려고 설치한 것은 아닐 테고-----! 남쪽으로는 봉암저수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다.
동북쪽으로 지능선이 뻗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향하며 안부를 지나고(15 : 04) 헬기장을 지난다.(15 : 11)
헬기장에서 남쪽으로는 등로가 확연히 잘나 있고 우리가 진행하는 서쪽 감악산 쪽으로도 이제부터는 등로가 확실하다.
남쪽으로 원당저수지를 바라보며 가파른 사면을 올라선다.
감악산에서 뻗은 능선의 끝 부분이 남동쪽으로 향하는 410m에 올라서(15 : 40) 지형을 살피며 지금까지 온 것을 복도하여 본다.
잠시 틀린 것을 수정을 하고 바로 아래 보이는 원당지와 그 주변은 고요하기만 할 따름이다.
다시 되돌아 감악산을 향하여 오르는 곳은 이제부터 무척이나 가파른 곳이다.
등로 교통호 옆 양지 바른 곳에 노랗게 활짝핀 파랭이 꽃을 바라보니 괜스레 마음이 즐거워지며 미소가 지어 진다.
날막에 설치된 오뚝한 토치카를 올라서니(14 : 01)
헬기장이 있고 그 주변에는 빙 둘러서 3개의 토치카가 있었다.
이곳부터는 군인이 버렸는 지 민간이이 버렸는 지 확실치 않지만 불을 놓은 것으로 보아 군인들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를 버린 곳들이 많으며 지저분하였다.
감악산을 오르며 계속적으로 토치카가 많았다.
우측의 계곡에 약수터가 있는 안부에 오르면 북서쪽으로는 레이다 기지가 있는 군 부대 쪽으로 가는 곳이고 남서쪽으로는 감악산을 향한다.
가파르게 첫 번째 암릉을 오르면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암능을 따라서 가면 군간이 취사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군부대 철책을 따라서 오른다.
동쪽으로는 절벽을 이룬 암봉이나 서쪽으로는 유순한 육산의 모양을 갖춘 암봉을 오르니 그곳에는 성모송이 각인된 성모마리아 상이 서쪽을 향하여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16 : 19)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은 황금빛으로 물들여지고 있다.
앞에 있는 설인귀봉 정상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술꾼은 올라가 있었다.
철책을 따라 내려섯다 올라서는 곳에는 햇볕이 드는 곳에 이름 모를 분홍색의 야생화 군락지가 있었다.
설인귀봉 (14 : 23)
감악산 정상 설인 귀봉이다.
비문이 모두 풍화작용으로 없어진 설인귀비와 설인귀봉임을 알리는 정상표시판이 있다.
설악산이 따로 없이 대청봉이 있듯이 감악산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일대 모두가 감악산인 것이다.
전에는 설인귀봉에는 통신요원들만 나와 있었는 데 이제는 그곳에 통신중대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넓은 정상에는 철책 안의 2층의 초소에는 초병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곳은 1967년도부터 3년간 내가 근무한 25사단 위수지역으로 훈련시 배치되곤 하였던 곳이다.
서북쪽으로 임진강 틸교 원당리 일대와 사미천 까지도 다 보이는 곳이며, 날 좋고 시야가 좋은 날이면 개성의 송악산을 바로 바라 볼 수가 있는 곳이다.
내가 근무한 DMZ 고랑포쪽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워지며 눈 밑이 붉어지며 뜨듯하여 지는 것을 느낀다.
하루 빨리 남북통일을 기원하여 본다.
설인귀봉은 까치봉과 임꺽정봉으로 내려가는 등로가 있는 데 임꺽정봉을 택하여 내려서니 고리라 바위라고 하는 데 어떻게 고리라 같이 보이는 지는 전혀 모르는 곳을 지나서니 이정표가 임꺽정 봉이 30m임을 알려 준다.
임꺽정 봉으로 가기 전에 장군봉쪽을 향하면 그곳은 바위봉우리 3개가 있는 곳이며 그중에 가장 동쪽에 있는 삼각점과 안내판이 있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장군봉에서 북쪽으로 설인귀봉과 동쪽으로 기암절벽에 절경을 이룬 암벽이 고고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장군봉을 내려서면 동쪽으로 보기만 해도 어지러우며 고소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절벽 협곡이 있으며 그곳에는 임꺽정 굴이 있다.
임꺽정굴은 수직의 구멍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밧줄을 타고 내리다 옆으로 들어가야 되는 곳이다.
임꺽정봉 (640m/16 : 57)
떨어지면 축 사망에 이르는 절벽의 암봉으로 된 임꺽정봉에는 표시판이 있다. 이곳의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의 경치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며 말로 표현이 어렵다. 시간이 충분하므로 마음 것 즐기는 산행을 한다.
지나온 장군봉, 임꺽정봉, 앞에 있는 암봉등 모두가 동쪽 사면은 절벽의 암능으로 철옹성의 벽을 이룬 군 의 요충지이며 경기 오악의 嶽이들어간 산임을 말하여 주고 있다.
임꺽정봉을 내려서 뒤돌아 올려다보니 기관이다.
540m 암봉을 오르고 내려오는 곳에는 고인돌 바위가 있으며 고인돌 바위 앞도 여지없이 절벽을 이룬 암벽이다.
암능을 내려서며 설인귀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리며 암벽을 이루고 있는 까치봉 능선은 소나무 숲과 잘 어우러져 있다.
안부에 사기막으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선다.
석양에 물든 까치봉을 올려다보며 내려서면 만남의 숲이 조성된 약수터 삼거리를 지난다.
너덜로 된 계곡을 따라 내려서며 까치봉에서 내려오는 등로를 지나고
숯가마 터를 지나서 너덜 등로를 내려서니 12년전에 땅벌집을 건드려 그너덜을 뒤다가 계곡의 물속으로 몸을 던져 버린 기억을 되살리며 뛰어 들었던 계곡을 건너며 보니 이제는 물이 없어서 뛰어들 만한 곳도 없었다.
범륜사 (17 : 50)
절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노란 테프로 막고 출입금지 표시판을 달아 놓았다.
이곳 감악산 일대도 경방기간에는 출입금지인 모양이다.
절입구의 세계평화탑을 지나서 내려서며 감악산의 명물 운계폭포로 내려간다.
우리는 예전에 우리부대 명칭을 따서 비룡폭포라 불렀었다.
까마득히 높은 폭포의 물줄기는 실날같이 가느다래졌으며 언젠가 끝일 줄 모르겠다.
세멘포장이 된 가파른 도로를 따라 내려서며 쓰레기 집하장의 쓰레기로 더럽혀진 곳을 지나서 매표소를 지난다.
25사단이 飛龍부대라서 우리는 비룡계곡이라고 부르던 설마계곡을 끼고 난 849번 도로 감악산 입구에 이른다.
들머리이며 날머리인 이곳에는 공짜로 출입을 할 수가 있는 능선 등로가 있으며 감악산 안내도와 감악산 설명문이 있다.
한번씩 산행을 권하고 싶은 코스로 소요산역 열차에서 내려 7시간 20분간의 감회가 서린 여유있는 관광을 겸한 산행이었다.
첫댓글 산행정보를 알리시느라고 고생이 많습니다..얼굴 좀 자주봐야될텐데요..한번 위원장님은 영원한위원장이아니신가요..
퍼 오느라 고생 하셨네요, 이것은 감악산과 함꼐 종주입니다. 우리는 하산을 신흥고쪽이져? 신흥고 교가는 마차산으로......우리여고는 소요산,
망우니고개가 아니구 아마 양원리 고개일겁니다. 제가 어렸을때 넘었던 고개...... 이모집을 갈려면 그 산 고개를 넘어 넘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텐데요, 어릴적 오빠따라 다녔던 기억이.....납니다.
잘 다녀 오십시요 저는 함백산 다녀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