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비가 오지 않아 답사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답사 후기는 바로 적어야 기억이 생생한데 메모를 별도로 해놓지 않고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며 정리하려니 여행당시에 느꼈던 감흥이 조금은 덜하다.
11월 1일 아침 7시 20분에 병점역에 도착, 40분쯤에 출발하여 8시 30분쯤 아산 공세리 성당에 도착하였다. 공세리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미를 보관하던 공세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공세리 성당의 본당은 아산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드비즈 신부가 공세창이 폐쇄되자 직접 설계해서 1922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종기가 나면 근을 빼야한다며 어머니가 붙여주던 유명한 ‘이명래 고약’의 개발자가 프랑스에서 오신 드비즈 신부라는 것을 우선생님 해설을 들으며 처음 알았다. 드비즈 신부가 자신을 돕던 이명래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문화답사를 다니면 이런 부수적인 얘기를 덤으로 듣는다.
공세리 성당은 신유~병인박해 때 아산지역에서 순교한 32분의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성지로, 수령이 300년이 넘는 아름드리 팽나무, 느티나무 등 3그루의 보호수가 성당의 고고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고딕양식의 성당의 모습은 중세시대 수도원에 온 것처럼 느껴졌고, 성당 안에 신을 벗고 들어가 보니 성스러운 기운에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본당 옆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과정을 14개의 조각상을 통해 보여주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산책로를 따라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했고, 계절마다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350년 된 팽나무와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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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이동하며, 아산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에 들러 참배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 한 후 처음에는 아산 금성산에 모셨다가 16년 후인 광해군 16년(1614년)에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무덤은 병풍석으로 둘러싸여 있고, 무덤 바로 앞에는 제사지낼 때 음식을 차려놓는 상석과 혼이 놀다 간다는 혼유석·향로석이 있으며, 동자상 1쌍, 망주석 1쌍, 석상(양) 1쌍, 문인석 1쌍, 광명등, 묘비석이 놓여있다. 무덤을 보고 내려오는 길(무덤 입구)에는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와 비각이 있다.
<노랗게 물든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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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천원지방의 우리나라 전통 연못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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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석으로 둘러싸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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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묘 앞 좌우에 서있는 문신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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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하는 우동희선생님과 그의 열혈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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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어제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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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로 이동하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서 거북선을 비롯해 충무공과 관련된 유물들과 충무공 영정을 둘러보며 역사공부를 하였다. 이순신장군 기념관에 정조 어제 신도비 탁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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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어제 신도비 탁본
빗머리에 “尙忠旌武之碑(상충정무지비, 충의를 드높이고 무용을 드러내는 비) 여섯 글자가 전서체로 쓰여 있는 이 비는 정조가 이순신에게 영의정을 내린 후 손수 글을 내려 만든 것으로 실물은 충무공 모소 봉분 동남쪽 아래에 있다. 정조는 이 비문에서 우리 선조 대왕께서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에 기틀을 만든 것은 오직 충무공 한 사람의 힘에 의한 것이니 충무공에게 특별히 비명을 짓지 아니하고 누구 비명을 쓰겠는가(烈祖中興之功者維忠武一人之力是賴不於忠武特銘之而誰銘)”라며 이순신에 대한 추모의 정을 드러내고 있다. 정조는 이 비를 만들 때 이순신의 후손을 불러 공역을 감독하게 하였고, 비가 완성된 후에는 탁본을 떠서 4대 사고(史庫)와 관각(館閣=규장각), 태학(太學=성균관)에 나누어 보관하게 하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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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와 현충사에서 오랜 설명으로 온양민속박물관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은 12시경에 도착했다. 온양 민속 박물관은 국내 최대 민속 박물관답게 소장품이 다양하고도 섬세했다. 실내전시장 제1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통과의례, 의식주와 생활문화, 제2실은 농어업, 생업, 제3실은 민속공예, 민간신앙, 세시풍속과 놀이, 제4실은 민화와 불교 그림 등에 관련된 자료로 구성되어 있었다. 점심예약시간에 쫓겨 박물관 내부의 특징적인 곳만 둘러보고 야외전시장인 후원은 보지도 못하고 12시 50분쯤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예약된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역시나 온양민속박물관도 다시 가보아야 될 듯하다.
<온양민속박물관 입구에 있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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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 민속 박물관내부에 전시된 탈들> 이렇게 많은 탈들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송파산대놀이 / 통영오광대/ 퇴계원산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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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탈춤 / 하회별신굿놀이 / 동래들놀음
▼수영들놀음/ 가산오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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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 양주별산대놀이 / 봉산탈춤
1시 20분쯤 아산 맛집으로 소문난 ‘마음의 고향’이라는 식당에서 보쌈한정식과 묵전, 산채비빔밥으로 포식하고 외암리 민속마을로 이동하였다.
외암은 예안 이씨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외암마을에 있는 느티나무의 수령이 630년이나 되었다 한다.
<외암 민속 마을 입구에 서있는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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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의 수령 630년인 느티나무>- 너무 커서 스마트폰렌즈로는 일부만 담긴다. 저 멀리 설화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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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너머로 찍은 송화댁 안마당,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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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안주인이 대문안으로 들어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안마당에 여러 그루 심어있는 소나무를 비롯해 자연을 그대로 품은 모습에 반하였다. 마을 뒤쪽에 있는 설화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물이 집 안마당을 가로질러 마을로 내려가게 설계되었다. 외암리 마을 중 송화댁을 비롯해 세 군데 집안을 흘러간다고 했다. 물이 어찌나 맑고 물소리가 좋던지 우리 옛 조상의 심미안에 감탄을 연발했다. 안채에서 들락거리던 우리 고유의 품종인 검정 삽살개도 정겨운 풍경을 더해 주었다.
<입춘에 龍虎를 써 대문에 붙여 액막이를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한 컷>
<외암 마을 돌담에 늘어진 담쟁이와 붉게 핀 맨드라미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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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에서는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논에는 아직 베지 않은 누렇게 익은 벼가 남아 있기도 하고, 돌담길을 따라 여기저기 단풍이 곱게 물드는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연엽차도 마시고, 외암마을도 다시 와봐야겠다 생각하며 맹씨 행단으로 이동하였다.
맹씨행단은 조선 최고의 정승이자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의 집안이 살았던 곳으로 경내에는 고택과 세덕사, 구괴정, 쌍행수, 기념관이 있다.
고택은 工자 형태의 맞배형 집으로 원래 최영장군이 살던 집이었으나 조선조 건국후 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이곳에 은둔하여 살면서 후학을 모아 글을 가르쳐서 이를 행단(杏壇)이라 하였으며, 경내에 맹정승이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어 일명 杏壇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세덕사는 맹유, 맹희도, 맹사성 등 신창 맹씨 선조 삼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구괴정은 시간이 없어 직접 가지는 못하고 먼발치로 보면서 설명을 들었다. 구괴정은 맹사성이 황희, 권진 정승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어 구괴정(九槐亭)이라 명명한 전각으로 세 명의 훌륭한 재상이 관련되어 삼상당(三相堂)이라고도 한단다.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역시나 휴대폰 렌즈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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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여년이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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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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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행단에서 나와 한국의 지중해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블루 크리스탈 빌리지로 이동했는데, 글쎄 건물이 마치 한 틀로 찍어 놓은 듯한 모습에 개인적으로는 좀 실망스러웠다.
6시에 순두부와 코다리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경 동양최대의 청동대불이 있다는 각원사로 향했으나 예상과 달리 각원사 경내는 불이 모두 꺼져있어 깜깜한 경내를 올라가 거대한 불상 실루엣만 보고 돌아오게 되었다.
아침 7시 40분에 병점에서 출발해서 아산 공세리성당,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와 현충사, 온양민속박물관, 외암리 민속마을, 맹씨행단, 블루크리스탈빌리지, 각원사를 답사하고 저녁 7시 40분쯤 천안에서 출발해 병점에 도착하니 9시 40분쯤. 역시나 기대에 저버리지 않는 우동희선생님의 깨알 같은 해설과 유머로 즐겁고 알찬 답사였다. 공세리성당과 온양민속박물관은 꼭 다시 가보리라 다짐하며 후기를 마친다. 우동희선생님의 열강을 듣고 답사 후기를 안올리면 마음이 어찌나 무거운지 지금 기분이 숙제를 마친 학생 같다.
첫댓글 정말 값지고 고맙고 귀한 후기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단히 숙제를 잘 마쳤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이런 식으로 체계적으로 글과 사진을 쭉 올린 것을 모으면 좋은 책 한 권이 나오겠습니다. 귀한 후기를 읽으면서 답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분들이 좀 있겠습니다. 모든 분이 꼼꼼하게 후기를 잘 읽기를 바랍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더 알차게 더 훌륭한 답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함께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사진과 후기를 보면서 더 부러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후기만 읽어도 다녀온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