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 랑
김 양 순
눈이 왔다. 첫눈이다. 엊저녁부터 시작하더니 밤사이에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 덕분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사진속에 있을법한 멋진 설경은 아니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내 세상은 동화의 나라, 그야말로 雪國(설국)이다. 첫눈 치고는 눈송이가 제법 탐스러웠다. 분명 瑞雪(서설) 일 게다. 따듯한 지방에서 오래 살았던 나는 옷속을 파고드는 동장군이 사실 겁난다. 그렇긴해도 선물처럼 내려오는 눈이 있어 이곳의 겨울을 사랑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손이 많이 거칠어졌다. 겨울이면 유독 손이 차서 마음까지 차가운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조바심내는 손이다.
풀꽃반지를 만들어 끼고 아카시아 줄기로 동생들 파마를 해주던 손, 사금파리를 모아서 소꿉놀이 하던 손톱 밑이 까맣던 손, 바쁜 농사철에는 엄마 따라서 콩밭에 풀도 뽑고, 쇠죽솥에 불도 지피고, 오늘처럼 이렇게 눈쌓인 날은 언 손 불어가며 눈싸움도 하던 손, 알뜰살뜰 살림 잘하고 두 아이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낸 장한 손이기도 하다. 세월의 더께 만큼 투박해져 볼품없지만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 반짝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을때보다 열심히 살아온 보람으로 거칠어진 지금이 훨씬 예쁘다.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손등에 가벼운 입맞춤라도 해야 할까보다.
눈썰미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는 뭐든 만들기를 좋아했다. 겨울이면 털실로 동생들 벙어리장갑부터 뜨기 시작하다가 모자, 목도리, 솜씨가 더 늘어서는 어른도 힘들다는 손가락장갑도 너끈하게 짜내곤 했다. 바느질하시는 엄마와 도란도란했던 유년의 겨울밤들이 아직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느덧 일흔을 넘겼다. 영원히 청춘일줄 알았다. 긍정의 힘에 기대어 사는 나는 그럴줄 알았다.적어도 마음만은.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취미삼아 즐기던 아기자기한 일들도, 반짝이는 호기심도, 못말리는 수다스러움까지도 시들해진걸 보면....
지난여름에 들였던 봉숭아 꽃물이 손톱 끝에 조금 남았다.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손톱이 빨리 자라지 않기를, 첫눈이 빨리 내리기를 기도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사랑, 떨리기도 부끄럽기도 했던 사랑이라는 말,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연애 이야기는 흥미롭다. 당사자들에겐 인생이 걸린 엄청난 사연도 한바탕 수닷거리로 여기던 야만의 시절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어른들 말을 엿들었던 우리들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 분꽃같이 예쁘고 상냥한 언니가 있었다. 옥희 언니.
이웃이기도 했지만 잘 놀아주는 그언니를 많이 좋아했다. 어려서도 바지런했던 나는 풀방구리 생쥐 드나들듯 그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언니는 밖에 잘 나가는 일 없이 수를 놓거나 뜨개질을 하며 얌전한 집안일 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앓은 병으로 몸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독대 항아리는 언제나 반들반들헀고, 뒤란에는 철마다 예쁜꽃이 만발했다. 언니의 다듬이 소리는 산사의 목탁소리만큼 청아해서 건너 건너에 있는 우리 집에서도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렸다. 이웃들은 그런 언니를 많이 아꼈다. 곱고 착한 언니가 좋은 배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릴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하나 같았다.
부지런하고 듬직한 청년이 있었다. 내 친구 오빠 정수, 그오빠가 그언니를 짝사랑 했드란다. 어쩌면 언니도 오빠를 마음에 두었지만 꽁꽁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총각네 사는 형편이 처녀네만 못해 고백할 엄두도 못 내고 애만 태우다가 군대에 가고 월남에 파병을 가게 되었다 한다. 가세는 처녀네만 못하지만 청년 하나로만 본다면 짝이 기울지는 않았단다.
어려운 집안을 세워야 한다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간다는 말에 모두 안타까워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사히 귀환하기를 염원하였다. 마을에서 열어주는 송별식이 끝나고 어렵게 고백을 했단다. 무사히 돌아오면 결혼해달라고.... 기다릴 테니 꼭 살아만 돌아오라고.... 그렇게 굳은 약속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전쟁터로 떠났다 한다.
그 사이 친척을 통해 중매가 들어왔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다 뿌리치고 오로지 총각만을 기다리며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한다. 그러던 어느 해 아마 추석 때쯤이었던 것 같다. 들판에 벼가 익어가고, 귀뚜라미가 밤새워 울던 어느 가을날, 검게 그을리고 조금 야윈듯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오빠가 돌아왔다. 모두들 내 일처럼 기뻐했고 성대하게 환영잔치도 열었다.
꿈에서도 그리워했을 젊은 연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벅차고 행복했을까. 총각은 약속했던 사연을 집안에 털어놓았고, 부모는 성치 못한 며느리는 못들인다고 펄쩍 뛰고, 처녀네 부모는 가난한 시골청년에게 딸을 못주겠다고 딱 자르고 해서 처녀 총각이 애를 태운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동네에 퍼졌다. 급기야 두 집을 사이에 두고 편이 갈리고, 두세 사람만 모이면 수군거리며 흉을 보고, 처녀는 죽겠다고 해서 부모 속을 태우곤 했다 한다. 그날이 그날, 심심했던 마을 아낙들은 신이 났다. 말에 말을 보태 눈덩이처럼 커지는 헛소문까지....
" 첫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다" 는 말을 서슴없이 내던지기도 했다. 맺어지면 안되는 것처럼. 정말 왜들 그랬는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랑이 슬픈거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때만 해도 일 잘하는 건강한 처녀를 최고의 며느리감으로 생각할때니까 그랬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하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젊은이들이 설득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이 동반 가출 하는 소동을 벌이고서야 그겨울에 혼인 잔치가 열렸다. 며칠을 두고 내리던 눈이 그치고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이었다. 마당에 가마솥이 걸리고, 기르던 돼지를 잡고, 떡을 치고, 국수를 삶고 온 동네가 빈대떡 부치는 들기름 냄새로 진동했던 그날의 풍경은 내가 경험했던 최고의 축제로 기억된다. 마을사람들은 다시 하나가 되고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도 정겨웠다. 발 버리지 말라고 놓아 둔 두둑한 가마니를 성큼성큼,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하며 초례청으로 들어오는 새신랑은 참으로 늠름했다. 족두리 곱게 올린 새색시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럼에도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첫사랑도 이루어질수 있다는 안도의 눈물이었을지도....
그날 초례상에 올려져 있던 목각 기러기 한쌍과 수줍음으로 고개를 못들던 새색시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60여년전의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되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아들딸 잘 낳고 시부모 공경하고 살림도 잘해서 모두를 기쁘게 했다. 새신랑 역시 농사철에는 부지런한 농군으로 농한기에는 도시에 나가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아 지금은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부자가 되었다.
흐르는 세월만큼 내가 늙었듯이 그분들도 여전히 고향 토박이로 늙어가고 계신다. 부드러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처럼 서로를 다독이시는 두 분의 황혼이 아름답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는 말은 사랑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변명 같은 것이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 여러분들의 첫사랑은 안녕하신가요?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가슴에 묻어둔 연둣빛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새삼스레 무슨 첫사랑 타령이냐고 흉은 보지 마시구요. 아련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겨본들 크게 흉 잡힐 일은 아니잖아요. 이만큼의 우리는.
초설 분분한 날,
풋내 가득했던 첫사랑, 그 무지개빛 추억에 건배를 할까요? 가버린 청춘, 그 쓸쓸함에 대해서도요.
저는 오늘, 허공 중에 흩어진 그리움에 안부를 전합니다.
향기로웠던 그대, 언제까지나 평온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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