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을 잘 못해서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창하지 않아도 좀 떠듬거려도 괜찮아 기죽지마 어깨 피라고 위로해주는 눌의산이 거기 있었다
백두대간인 진부령에서 시작하여 가장 끝인 지리산 천황봉을 3년간 친구들과 백패킹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2017년 봄부터 건강문제 등으로 생긴 약간의 밀린 숙제를 포함하여 다시 지리산 성삼재를 시작으로 설악산을 향하는 북진코스를 느루산악회 산우들과 하고 있다. 말하자면 2대간을 진행중인 것이다. 1월 28일 제 18차가 되는 날 오전9시 반쯤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와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괘방령에 도착했다. 전회차 김천 황악산을 오르고 내려온 바로 그곳이다.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혐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 길이자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상인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인 셈이다. 임진왜란 때 박이룡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도 알려져 있다. 전날까지 몸상태가 좋지않아 좀 망설이다가 아예 배낭을 생략하고 물 한통과 간식거리인 군고구마 두쪽, 연양갱 하나와 수건을 담은 프론트백 복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하루 가장 높은 가성산 772m 가는 길 저 먼 밑에 김천시 봉산면 봉계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풍수지리가들이 명당으로 꼽는 곳이라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봉계는 들이 큰데다가 령(嶺)과 가까워서 평시나 난시 가릴것없이 여러대를 이어 살만한 곳"이라 전해진다고 한다. 난함산이 주산이고 문암봉과 극락산이 좌청룡우백호로 호위하는 형세에다 마을앞으로 직지천이 흐르고 그 너머 덕대산이 마을을 수호하는 안산의 역할을 하는 형상이 흡사 봉황이 물위에 떠있는 모습으로 봉황부유형(鳳凰浮游形)의 명당에 속한다는 것이다. 영일 정씨들이 문중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1980년 신군부 시절육군참모총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등 질곡을 겪으면서도 참된 군인의 길을 걸은 벽송 정승화와 민족주의 시조시인 정완영이 낳고 자랐다.
복장이 가벼워 강추위로 인해 체온유지가 다소 어려웠지만 걸으면서 극복해나갔다. 장군봉 627m과 지도상의 690봉을 거쳐 눌의산을 향했다. 눌이산이 변형된 눌의산 744m을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눌이항산봉수(訥伊項山烽燧)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 옛날 봉화를 올렸던 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산 이름에 어눌하다는 뜻인 말더듬거릴 눌(訥)자를 쓴 것은 발길이 뜸한 산을 에둘러 표현한게 아닐까 짐작이 든다. 산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이성부시인은 이곳 오지의 산을 양쪽으로 하여 넘나들던 민초들의 투박함과 따뜻함이 눌의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했을 것이라는 상상의 노래를 들려준다.
<사랑이 말을 더듬거렸다>-이성부(1942~2012)
산이 땅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일구며 올라간다 이 산을 따라가는 내 발걸음도 갈수록 무거워 나는 내가 버겁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손쉽게 오지 않는 법이다 그럴듯한 수사나 바람둥이같은 매끄러움 부려도 오지 않는다 이 산을 가운데 두고 이쪽저쪽 사람들 서로 서먹서먹했다 마음을 열지 못했다 나지막한 고개가 뚫리면서부터 사랑도 오고갔으나 말을 더듬거렸다 그래서 눌의산이 되었음일까 지금은 이 산기슭으로 철도가 지나가고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국도와 옛길도 나란히 달린다 오랜 어려움 끝에 오는 아름다운 사람이 이리 너그럽고 이리 편하다
간단하게 간식을 들고 추풍령휴게소를 향했다. 추풍령은 경북 봉산면과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해발고도는 221m. 금강과 낙동강 분수계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경부선철도로 인해 문경새재와 죽령, 이화령의 모든 물류가 모이는 곳이다. 낮은 고도와 경사가 완만하여 경부고속도로와 국도가 모두 통과하고 있다. 도로와 휴게소 등으로 인해 1km 이상의 마루금이 단절되어 백두대간 허리가 두 동강으로 끊어진 결과가 되었다. 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를 지나 공원을 거쳐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첫댓글 늘의산 잘 다녀갑니다~